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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개전
조흔파 지음 / 아이필드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음의 이름들을 기억하십니까?
남궁동자, 나일등, 차억만, 공영칠, 모귀남...
혹은 이승현, 손창호, 진유영, 강주희, 김정훈...
설사 저 위의 이름들을 미처 기억하지 못하신다 할지라도 '나두수'라는 이름은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두수'라는 이름에도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얄개'라고 하면 그제서야 생각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래도 모르시겠다구요? 그렇다면 아마 저보다는 조금 늦게 세상구경을 하신 분들일 것 같습니다. 뭐 그렇더라도 너무 신경쓰지는 마십시오. 이제부터라도 그 이름을 알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얄개전>은 1950년대에 씌여진 우리나라 청소년 학원 문학의 선구가 되는 작품입니다. "얄개"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 '얄망궂고 잔재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얄미워 보이지만 미워할수 없는 장난꾸러기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조흔파 선생이 50년대 중반에 <학원>지에 연재했던 이 소설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청소년 명랑 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기념비적인 소설입니다. 연재 당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최요안 선생이나 오영민 선생등이 비슷한 장르의 소설들을 발표하며 인기를 모았습니다.
80년대 초반까지 조흔파, 최요안, 오영민 등의 작품들이 학원 소설 문고인 <아리랑 문고>로 출판되고 있었지요. <남궁동자>, <억만이의 미소>, <2미터 선생님>, <꼬마전>, <개구장이 나일등>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수많은 학원 명랑물들 중 가장 뛰어나며,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다름아닌 <얄개전>입니다. 70년대에는 영화로도 각색되어 이승현, 손창호 등이 주연한 <고교 얄개>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80년대 이후 만화가 전면에 등장하고 여타 각종 다른 오락물들이 청소년들의 문화 세계를 점령하고 나면서 이러한 학원 소설들은 침체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새로운 변변한 창작물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입시 경쟁이 심화되면서 순수 오락물인 청소년 소설을 읽을 만한 여유도 줄어 들었겠지요. 시대상도 맞지 않는 옛날 옛적 고리짝 소설들을 읽느니 차라리 전자 오락실이나 영화관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요새는 인터넷이나 PC 게임등에 몰두 하겠지요. 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오락물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얄개전>은 KK 중학교 1학년생인 나두수를 주인공으로 그가 벌이는 여러가지 기발한 장난과 풋사랑, 분투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1학년생인 나두수가 KK 중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사가 된 것은 그의 화려한 장난 이력서에 기인합니다. 교장 선생님부터 누나, 매형에 이르기 까지 그의 장난 대상에는 성역이 없습니다. 공부보다 장난을 꾸미는데 더욱 열중하는 그가 낙제생이 된건 필연인듯 합니다. 동갑내기들이 3학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1학년에 머무르고 있는 나두수군. 이제 심기일전, 모범생이자 신진 인격자로 거듭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신진 인격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천하의 나두수가 장난을 거를수야 없는 법. 좀 구닥다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종일관 밝고 따뜻한 유머로 독자를 편안한 웃음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그 시절의 중학생들은 어떤면에서는 굉장히 어른스럽고 또 어떤면에서는 아주 아이답습니다. 영악함이 없어서 일까요.
학원 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입시 경쟁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요즘의 삭막한 학교에서 과중한 수업과 학원 수강등으로 지쳐가는 학생들이 <얄개전>을 통해 잠시라도 50년전 이땅의 선배 청소년들이 가졌던 낭만과 치기, 순수함과 열정 등을 느껴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여년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