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덕과 고흥의 짧은 추억

순천에 사는 동안 아버지의 근무지가 몇번 바뀌었고, 그에 따라 몇달간 어머니와 누나, 나 (방학중에는 형까지)는 아버지의 근무지에서 보낸 적이 있다.

대덕, 충남에도 대덕이란 곳이 있지만 여기서 대덕은 물론 전남에 있는 지명이다. 아주 작은 면으로 전남 장흥군에 속해 있다. 바다가 가깝고 이조백자 도예지가 있는 대덕, 내가 3-4살때 몇달간 지낸, 아주 몇몇의 단편적인 기억들만 남아 있는 곳이다.

 - 오토바이 아저씨
당시 아버지의 직장에 근무하던 아저씨 였던 것 같다.
내 눈에 그야말로 신기하고 멋있어 보이던 커다란 오토바이(실제로는 커다랗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를 타고 다녔으며 우리집에 자주 오셨었다.
당시 우리가 머물던 집은 관사에 해당하는 듯한 집이었고 마당이 굉장히 넓고 앞뒤가 트인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방이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었다. 마당에는 개구리들이 굉장히 많아서 개굴개굴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오토바이의 뒤에 나를 태우고 마당을 빙글빙글 돌던 아저씨의 넓은 등과 신이 나서 더 태워달라고 조르던 내모습이 생각난다.

 - 풍차바지와 찐빵
어머니는 가끔 누나와 나를 집에 남겨두고 외출을 하셨는데, 집에 남겨진 어린 남매는 TV를 보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때 나는 풍차바지(어떻게 생겼는 지는 아실것이다.)를 입고 있었다는데 내가 넓은 마루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흘려놓은 '부산물'들을 6살배기였던 누나가 다 치워 주곤 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그런 지저분한 기억은 추호도 없다.)
지금도 누나는 그 이야기를 하며 조숙했던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며 공치사를 하곤한다. 물론 풍차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놀림도 빼놓지 않고.
그 때가 겨울이었는지 어머니는 외출하셨다가 집에 오실때 꼭 찐빵을 사가지고 오셨는데 그때의 찐빵 맛은 기억이 없지만 모락모락 김이 나던 봉지에 들어있던 하얀 찐빵의 탐스러움은 잊을 수 없다.


고흥, 광주에서도 차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남해의 끄트머리에 불쑥 튀어나온 고흥반도에 자리잡은 곳. 국립 나병환자 요양소가 있는 소록도가 있고 다도해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내나로도, 외나로도가 있는 곳이다. 4살때 몇달간을 보낸 고흥의 기억은 대덕에서의 어렴풋한 기억에 비해 비교적 소상하다.

고흥에서는 세를 들어 살았었는데, 주인집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구조였다. 가운데 있던 마당에는 화단이 있었고, 해바라기가 많이 피어있었다.

 - 막냉이 이모
주인집에는 딸이 둘 있었는데, 언니는 하얀 칼라가 달린 교복을 입던 고등학생이었고, 동생은 단발머리의 중학생이었다. 중학생이었던 동생을 나는 '막냉이(막내) 이모'라고 부르며 무척 따랐었는데, 자주 주인집에 놀러가 '아카시아꿀'에 밥을 비벼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막냉이 이모도 나를 좋아하여 우리는 자주 동네의 놀이터에 놀러가거나 이런저런 놀잇감을 찾아 나와 놀아 주곤 했다.
막냉이 이모... 지금은 40대 중반의 중년 부인이 되어 있겠지.

 - 어깨동무
당시 초등학생이던 형과 누나는 방학때 고흥에 와 있었는데, 어머니를 졸라서 <어깨동무>란 어린이 잡지를 사보게 되었다. (익히 아시겠지만, <어깨동무>는 <새소년>, <소년중앙> 등과 함께 70-80년대 어린이 잡지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었다.) 눈오는 날 어머니가 사들고 온 75년 1월호 <어깨동무>, 그로부터 10 년 가까이 -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몇번 빼먹지 않고 열심히 구독했던 잡지이다.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주먹대장', '요철발명왕', '도깨비 감투'등은 글을 모르던 나에게도 만화라는 매체의 마력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어린 시절의 감성과 교양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단한권도 남아 있지 않지만 <어깨동무>는 유소년기 나의 보물이었다.

아버지는 고흥에서 다시 광주로 발령을 받으셨다. 순천의 집을 정리하고 어머니는 고흥에 있던 몇몇 짐을 싸서 우리는 광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커다란 트럭에 짐을 싣고 트럭 앞자리의 어머니 옆에 앉아서 광주로 향하던 그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 나에게 세상은 굉장히 넓었으며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큰 도시인 광주는 새로운 낯설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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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4-08-1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흥 살던 그 시절에 먹었던 기억은 납니다. 어떤 맛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요. 좀 호사스러웠나요? 핫핫. 어차피 얻어먹은 건데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