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참으로 뜻하지 않은 일에 부딫히는 경우가 있다.
지난 8월 15일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더니, 지난 주 금요일까지 하루 하루 조금씩 통증이 심해지더라. 설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소화가 안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금요일에 늦은 퇴근을 하고 콩주를 보러 수지 부모님댁에 내려간게 밤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그날 밤, 계속 아파오는 배에 잠을 설치면서 나에게는 흔치 않은 "내일 날이 밝으면 병원부터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평소 병원을 멀리 하는 나는 병원에 외래로 진료를 받기 위해 간 것이 15년도 더 된 일인것 같다.
부모님 댁 근처의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내과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누워있는 내 배 여기 저기를 눌러보면서 계속 하는 말.
"배에 힘 좀 빼세요. 긴장하지 마시고..."
내 배가 풍만함에 비해 원래 좀 땅땅하다. -_-;;; 더 이상 뺄 힘이 없었다. 정말. 뻥 안까고.
정체불명의 통증인데 뭐 눌러보고 다 진단할 수 있겠는가. 초음파 검사를 받고 오랜다. 초음파 검사비 6만원이나 한다. 크아악.
초음파 실에 있는 진단의학과 의사 아저씨 한참 여기 저기 밀어보더니, 충격적인 한마디.
"맹장이네요. 수술해야겠네요."
그러면서 친절하게 부연설명.
"요게 창자고요. 곱창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누르니까 납작해지죠?"
"요게 맹장입니다. 끝이 막혀있죠? 그래서 맹장이라고 부릅니다. 얘는 눌러도 안 납작하고 그대로지요?"
"많이 부었네. 크기가 1cm 정도 됩니다. 지금. 보통 맹장염 환자들이 4~5mm 정도 크기일 때 병원에 오는데."
충격을 수습하고 다시 일반외과로 갔다. 수술을 위해.
일반외과 의사 아저씨도 웃겼다. 표정하나 안 변한채.
"통증 관리 주사에 들어가는 이 약은 #%@*&라고 하는데, 모르핀보다 20배 강한 성분입니다. 되게 비싸기도 하고. 나도 한번 시험삼아 주사 맞아 봤는데, 기분 진짜 좋습니다. 여자들이 다 옷을 벗고 다니더라고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바로 그날(토요일 오후 1시 10분)에 충수 제거 수술을 받았다.
전신 마취와 마취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은 참 괴로운 일이다. 물론 배에 구멍을 낸 채로 후줄근한 4인용 병실에 누워 있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배가 아파서 한 번 굶어야 겠다고 밥을 거른 금요일 저녁부터 처음으로 미음을 먹은 월요일 아침까지의 기나긴 금식도 말이다. 미음이나 죽 말고 밥을 처음 먹은건 무려 오늘 점심때였다. (살이 좀 빠져 주었으면 좋으련만, 항생제와 혈관주사 땜에 더 부은것 같다. -_-;)
그러나, 내가 누군가. 수술 다음날 아침 바로 방귀뀌어주고, 이틀반 동안의 금식 이후 미음 먹자마자 응가 해주고. 부득부득 우겨서 오늘(화요일 오후 6시) 조금 이른 퇴원을 했다. 출근은 언제부터 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지만. 놀아도 집에서 놀고, 아파도 집에서 아픈게 낫지 않겠나.
이래저래 사람은 아프지 말아야 한다. 더더군다나 "맹장염"처럼 촌스럽고 없어 보이는 병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