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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 ㅣ 분석심리학의 탐구 2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입문'과 '꿈의 해석'을 읽을 때, 사실은 학문적 관심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무의식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해서였던 것 같다. 물론 답은 조금도 얻지 못했고 그냥 재미있게 읽기만 했다. 융의 '사람의 상징'을 무척 재미있게 읽으면서 아니마와 아니무스란 용어를 심심찮게 써먹은 기억이 난다.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마가 강한 남자, 아니무스가 강한 여자가 오히려 이상적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그런 내용이었던가. 조금은 남성적인 나의 성격에 대해 해석의 열쇠를 발견한 듯한 쾌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니마와 아니무스만을 두꺼운 한 권의 책으로 다룬다는 소식에 출간을 기다렸다 이 책을 구입하였다. 언제나 책을 읽으며 그 책에서 100%를 얻을 욕심은 갖지 않는다. 단 10%를 얻어도, 모두를 다 읽어도 상관은 없다. 그리고 이 정도의 분량을 가진 조금은 학술적인 책들은, 그 중 어딘가엔 내가 읽고 싶지도 안고 읽을 필요도 없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앞의 이론적인 설명들은 정리가 잘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혼'의 개념은 아직 완전히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성학자들이 아니무스를 다룬 대목은 매우 흥미있었다. 융을 읽을 때 막연히 여성에게 감춰진 아니무스가 있다는 정도로만 넘어갔던 것이 부정적 아니무스, 긍정적 아니무스의 서로 다른 역할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는 것, 그것들의 다양한 양상들이 재미있다. 꿈에 나타난 아니무스의 해석에서는 역시 조금의 기대조차 해결이 되진 않았다. 역시 거기 내 꿈에 대한 해석은 없었으므로.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록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이런 생각은 해본다. 난 윤도현, 강산에, 전인권, 안치환, 김경호, 박완규, 임재범, 김동욱 등 바람같은 목소리를 지닌 남자가수의 노래들을 좋아한다. 터질 듯한 드럼 소리, 샤우팅, 혹은 안개 속 같은 까칠한 목소리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는 야생초처럼 생을 헤쳐온 강하고 추운 이미지의 남자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그런 남자와 사랑한 적은 없었다. 나와 친했거나 사랑했던 남자들은 대부분 굉장히 착하고 안정적이고 따뜻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이다.
주제넘게도 그런 사실에 감사한 줄 모르고 살았던 나는 왜 내곁엔 늘 착한 남자만 있는 걸까,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갈망하는 록커같은 남자, 바람같은 남자, 짚차같은, 여행같은 남자는 내 안의 거칠거칠한 아니무스일 뿐, 실지로 그런 남자를 만나서는 결코 내가 행복할 수 없음을, 그리하여 나의 거친 또 다른 자아를 잠재우고 위무하기 위해서 한없이 안정적인 남자가 곁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이것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