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엔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나 <창가의 토토>처럼 교사들이 읽으면 좋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한 여교사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 땅의 많은 교사들도 <내 생애의 아이들>을 몇 개, 몇 수십 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가브리엘 루아만큼의 고운 문장력을 지니지 못했을 뿐이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 두 장 넘어가면서, 아마도 드미트리오프 가의 아이들 이야기를 읽을 때쯤이었나, 이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교사였거나 단지 사랑이 많은 선생님이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니고 참 애들은 이뻐, 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눈동자를 넘어 그 아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자신의 인생과 미래에 대한 깊이 바라보며 생각하는 연민으로 가득찬 시선. 아마도 다른 교사를 만났더라면 미처 발견되지 않았을 그 아이만의 능력,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던 혜안. 그것이 있었다.

모든 것에서 뒤처진 드미트리오프에게서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맘껏 자기를 표현하게 하는 이야기나 종달새라 불리는 소년의 아름다운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행복을 전하는 장면은 자기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책 속의 한 장면 장면들이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 건, 그녀가 바로 갓 소녀를 벗어난 그 젊은 여선생일 때가 아닌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간 후 인생을 되돌이켜 생각하면서 쓴 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도 같다.

가브리엘 루아, 스키를 타고 눈 덮인 언덕을 넘어 머나먼 길을 찾아가는 젊은 여선생, 막 사춘기를 맞이하는 야생마 같은 메데릭과 함께 험산을 넘나들고 논보라를 헤치며 난 여기서 생을 마치지 않으면 아주 많은 여행을 다닐 거야, 라며 열망을 태우는 저 열정적인 젊은 여인...

처음엔 이렇게 놀라운 교사가 끊임없이 자기가 시골 여선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것이 난 안타까웠다. 그러나 용서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주어진 인생의 규모가 자꾸 그녀를 넓은 세상으로 불렀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업을 왜 하지? - 꼼꼼하게 들여다본 아홉 개의 수업 장면
서근원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흥미를 끌었던 것은 (아마도) 실명으로, 실제의 학교 수업을 비디오나 오디오로 기록하듯이 고스란히 담아놓아 남의 수업을 들여다 보는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다른 이의 수업을(가능하면 날것으로 보는 게 더 좋지만) 들여다 보면 이만저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연구수업이 아니더라도 동료의 양해를 얻어 자주 수업참관을 한다. 대개는 아이, 별거 없는데, 그러면서 쑥스러워 하지만 사실은 그 별거 없는 수업, 자습도 시키고 학습활동도 풀고 이 단원에서 저 단원으로 어설피 넘어가는 그 순간을 보아도 그 교사의 아이들 대하는 방식을 읽을 수 있다. 돌발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얼마나 아이들을 존중하는지, 유머감각과 융통성이 있는지, 자기 교과에 능통한지, 아이들을 잘 다루는지, 정말 사랑하는지...

물론 이 책은 초등학교 현장을 다루고 있어서 내 입장에선 좀 아쉽기도 했지만 어쨌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필자가 어떤 경로로 섭외한 수업인지는 몰라도 잘 꾸며진 수업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잘 꾸며진 연구수업, 공개수업은 참으로 많이 보아왔다. 평소에 쓰지 않던 경어를 쓰고, 평소에 쓰지 않던 학습목표를 칠판 왼쪽 위에 적어두고,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모둠 수업, 멀티미디어 수업도 하고, 심지어는 한 번 리허설도 하는 그런, 그런 수업을 보고 얻는 것은 별로 없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걸 안다.

우리는 '쌩쑈'를 통해 다른 동료들도 나만큼 애들과 씨름한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난장판 교실에서 아이들을 정돈하고 차분히 수업을 이끌어가는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들 만하다가도 의문이 드는 건, 그렇다고 일부러 때로는 느슨하고 때로는 안이한 수업조차를 취재에 넣은 것인지 하는 거다. 꼼꼼히 들여다본 아홉 장면의 수업이라며, 책 한 권에 고작 아홉 장면이라면 유형화가 되어서 엄선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 물론 그들 중 유창한 수업과 늘어지는 수업, 아이들이 움직이는 수업과 교사의 카리스마로 살아남는 수업, 많은 교재와 도구를 현란하리만큼 사용하는 수업과 교과서 하나로 감동을 주는 수업을 횡으로 종으로 잘 짜면 더 좋을 터이겠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홉'이라고 선정되려면 어떤 '이유'가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체계화가 되지 않았더라도, 아홉 아니라 열아홉 장면의 수업이, 장면 그대로 실렸더라면 난 더 재미나게 읽고 얻는 바가 많았을 것 같다. 필자는 어떤 소명을 느끼며, 전문가적 안목으로(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입장에서) 각 수업에 대한 평가를 달아준다. 그 평가들이 나의 평가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는 거부감. 차라리 그냥 수업만 보여주었더라면,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제기와 교사의 자질 및 교육관에 대한 문제제기는 무엇이 선이고 후인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성심껏 쓴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문제라는 것인지, 아니면 교사의 자질이 문제라는 것인지, 그러니까 교사가 줏대와 가치관을 세워 수업을 잘 하라는 것인지 교육부보러 교육과정을 잘 세우라는 것인지, 교사에게 잘못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내가 보기엔 아홉 교사는 각기 단점 못지 않게 흔히 볼 수없는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걸 칭찬해 주었더라면 지금쯤 그 교사들, 더 뿌듯해 있진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깊은 사람은 평생 마음이 가난하다. 내가 그러했는데, 내 아들이 또 그러하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슬픔이 저의 것이요(윤동주)... 슬픔이 곁에 있어 슬픔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네가 고맙다. 네가 있어서 고마웠는데 너로 인해 슬퍼서 또, 네가 고맙다.

나는 공지영이 부럽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시절을 보낸 그녀는 글재주와 미모와 예민한 감수성과 자의식과...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일찌감치 성공하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이상한 충만감과 이상한 부족감을 느낀다. 혹시 그 부족감에는 그녀에 대한 시기심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곤 하였다. 그러나 신현림이나 신경숙, 한비야 등등에게는 그런 것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나는 글쓰는 이들에게 좀더 겸손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기자랑의 다름 아니라고 믿는 이상한 습관 탓인지도...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수도원 이야기라는 것, 또 하나는 책 속의 스산하고도 어여쁜 수도원들의 사진들 때문이었다. 사진 속의 수도원을 그리고 싶었다. 아니면 그냥 바라보고 싶었다. 어쩌면 공지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 썼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녀의 글을 읽고 18년 만에 다시 영성체를 받았다는 종교적 체험에 의심도 가졌다. 한때 같이 근무했던 사람 중에 감수성의 과잉으로 종교적 편력이 심했던 어떤 여교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나, 어쨌든 그녀의 감수성의 깊이가 어쨌든지 간에 여행 중에 한없이 들여다보이는 자기자신의 모습에 몸부림치는 모습에 많은 공감을 했고 감정이입도 했다. 결혼, 출산, 글쓰기, 자기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회한, 그 사람이 까발리고 울었던 자기 고민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나는 이 책을 읽은지 1년이 지난 이번 가을에 다시 한 번 책 속의 수도원들을 그림으로 옮겨 그리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가면 1 - 애장판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난 유리가면을 죽기 전까지 세 번쯤 읽을 생각이다. 지금은 고등학교 때 이후 두 번째니까 한 번쯤 더.

어린 시절,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天才가 나에게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었다. 어느 날 알고 보니 나는 부잣집 딸이었더라는 상상처럼, 간절히. 내일 모레 마흔인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숨겨진 어떤 가능성이, 마치 미켈란젤로를 아직 만나지 못한 대리석처럼 숨겨있으리란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중2때부터 연극 공연장을 혼자 찾아 다니며 구석자리를 지키던 나에게 유리가면 속의 마야는 마치 내 모습 같이 보였다. 무대에만 오르면 신기가 내린 사람 같이 달라지는 마야. 내게도 그런 계기가, 내게도 그런 끼가, 내게도 그런 열정을 읽어줄 영원의 지지자가 있다면...

연극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쓸수도 그릴 수도 없는 만화가 이 유리가면이다. 깊이 있게 들어가서 영혼으로 쓰고 그린 것들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만 이 만화는 아마도, 배우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소망이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마야가 폭풍의 언덕의 캐더린을 연기하는 장면에서 울었다. 폭풍의 언덕을 책으로 읽을 때는 히스클리프가 미친놈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캐더린의 유령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대목에서 정말 이렇게 사랑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 새벽에 가슴을 저미며 울었다. 나이 서른 여덟에.

물론 다시 읽으니 전형적인 만화적 구도가 눈에 보이고 마야와 아유미의 대결구도도 정형화가 되어 읽히긴 한다. 일본만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선과 악, 혹은 두 재인들 간의 치열한 경쟁, 겉으로 보기엔 좀더 화려하고 뛰어나 보이는 사람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사실은 미묘한 차이, 섬세한 천재성으로 인해 결국은 초라해 보이던 주인공에게 승리의 눈길이 돌아가는, 그런 구조 말이다.

어째 매번 마야의 소박하지만 생동감있는 타고난 끼를 누군가가 발견해주는가 말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선행과 뛰어남은 종종 아무의 눈에도 띄질 않아 그냥 그대로 묻혀버리곤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나, 마야와 아유미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방향으로 자신들의 과제를 소화해 가는 모습은 정말 예측이 불가하다. 천재는 마야가 아니라 작가 바로 자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우물에서의 은어낚시 - 1990년대 한국단편소설선
이남호 엮음 / 작가정신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구입하면 뿌듯하기야 한결같지만 이 책이 오던 날은 더 그랬다. 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마치 어떤 영양소가 특별히 결핍되면 그 음식을 갈구하게 되듯 가끔 내게 소설이 필요하다. 너무나 바빴던 날들이 지나면, 너무 열심히 살았던 날들이 지나면, 시처럼 저녁바다처럼 그렇게 살았던 날들이 너무 길면, 난 지적으로 고아하지도 않고 환상의 세계도 아니며 뒤도 돌아볼 수도 있는 허름한 재래시장 같은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진다. 그럴 때 소설은 나에게 결핍되었던 어떤 무기질과도 같다. 그럴 때 난 이 책을 샀다. 가끔 그렇게 소설 한두 편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갈증을 종합선물셋트처럼 푸짐하게 마련했다. 그래서 아껴 읽었다.

여기 담긴 작품이 모두 좋았는가, 뭐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양귀자의 소설은 늘 재미있지만 숨은꽃도 괜찮았다. 아마도 언젠가 읽은 것도 같다. 겉으로 초라하고 억세 보이는 시골 사내, 그 나름의 초탈한 삶의 이치를 꿰고 있는 남자 냄새 많이 나는 거친 사내, 그 안에 삶의 회한을 읽을 줄 아는 감성을 지녀 단소부는 술집여자를 알아 볼 수 있었던 사내... 그것은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아니무스다. 또한 내 초임발령 5년의 세월을 보낸 강원도 어느 지방에서 만날 법한, 있을 법한, 한 교실에서 나와 공부했던 사내아이들 중 어떤 아이의 혹은 그 아비의 것일 법한 그런 이미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바다가 아니더냐.

이렇게 여러 편을 모아 두껍게 만든 책들 대부분에는 큰 것 밑에 작은 놈을 껴묻어 파는 한 상자의 사과처럼 상술이 묻어있거나 작품을 모아 엮은 이의 편협함으로 인해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그렇게 날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마치,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아침에 머리맡에 놓인 종합선물셋트를 열었을 때 싫어하는 과자가 하나도 없어 두고두고 한 열흘 쯤 뿌듯했던 그 날의 기억처럼 말이다.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