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음 / 궁리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을 예습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진심으로, 잘 죽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아무리 모모한 삶을 살았다 해도 비참하고 능욕스런 죽음을 맞이한다면 평범하게 살다 평안하게 죽는 인생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아무리 멋진 삶을 살았대도 죽음 앞에서 삶에 연연하고 비굴하게 삶을 구걸하는 그런 마무리도 원치 않는다. 죽음 앞에 초연한 생명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래도, 마음의 연습이라도 해두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의연해지지 않을까...

내 기억 속의 한 아름다운 죽음은 김용택 '섬진강' 속에서 본 할머니의 죽음이다. 연세가 높으신데, 겨울 들판을 보면서 봄에 땅 녹으면 갈란다, 했다던가, 그 할머니의 장례를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로 풀었는지,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 가끔, 햇살이 좋은 날 마당이나 들판이나 운동장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그 가물가물한 조을음 속에서 내가 서른 몇의 젊은 아낙인지, 여든 몇 쯤 세월을 뛰어넘은 노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아지랑이처럼 주마등처럼 지난 일들이 홱 지나쳤다 드러났다 요동칠 때, 아, 이렇게 조을다가 가고 싶다, 그런 생각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 나라에 죽음에 관한 한 권의 책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는 작자의 말만큼 그 사명을 다하며 매우 학술적이지도 않았고 나처럼 감상적으로 좋은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의 마음의 예습을 시켜주지도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할 것도, 그렇다고 친밀하게 생각할 것도 아니라면서 죽음을 삶의 예식으로 끌어들인 우리 민족의 의례도 말하고 죽음과 우주의 세계를 넘나드는 영적인 매개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죽음을 노래한 아름다운 만가들의 가사라도 죽 풀어 써주었더라면 그 선율에 미리 가슴 저려 해 볼만도 했으련만, 그런 것도 아니고...

한국인의 죽음론을 한두어 시간의 강의로 들은 강의록을 본 느낌이랄까. 말하자면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반갑게 만나길 기대했던 친구에게 느낀 무덤덤함에서 오는 서운함 같은 것이다. 문장이 쉽게 읽히길래 앞에서는 정말 많이 생각한 사람이 자기 것으로 녹아난 죽음의 철학을 쉬운 언어로 조근조근 말해줄 줄 알고 은근히 기대도 했는데... 나는 또 그, 예습해 봐야 소용도 없는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이런저런 사설들을 뒤적거리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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