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접목 / 나무들 비탈에 서다 - 황순원전집 7
황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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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6.25를 겪으며 작가 황순원의 인식은 변하기 시작한다. 시와 단편 소설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에 관해 천착하던 그가 전쟁을 겪으면서 드디어 인간의 추악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접목>, <나무들 비탈에 서다>, <움직이는 성>은 황순원이 인간의 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악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나무의 속성과 이미지를 사용해 직접적으로 나무와 인간을 대입시키고 있다. (아직 <움직이는 성>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조만간 읽어볼 작정이다)

  <인간접목>에서 작가는 인간의 악이란 거울에 낀 때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접목>의 원제가 '천사'였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원래 천사같은 존재지만 사회에 의해 악이 때처럼 표면에 붙어버린다고 작가는 말한다. 주인공 종호가 소년원 아이들을 씻겨주면서 그 아이들의 때가 벗겨지고 피부가 드러났을 때 작가의 목소리가 그대로 종호의 입장에서 드러난다. 제목이 '인간접목'인 것도 나무를 접목시켜 더 나은 열매를 얻을 수 있듯이 인간도 접목하듯 개량하여 악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 작가의 악에 대한 인식은 변하기 시작한다. 과연 악이 표면적인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결국 작가는 악은 내성적일 수도 있다고 본다. 유리조각이 살갗을 뚫고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 그것이 악이다. 농업용어로 가지치기를 뜻하는 '전지'라는 단어가 등장하여 인간의 악은 닦아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어서 잘라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장편 소설로써의 미학적 성취를 이뤄낸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 등장 인물들은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전쟁에 의해 누군가를 죽이고 또 전쟁의 폭력성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진다.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숙이마저 원치 않는 임신을 하면서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이념에 의해 다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양립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전쟁에 대해, 인간의 악에 대해 우리는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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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디퍼 쿄우 38 - 완결
카미죠 아키미네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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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부터 연재되어 드디어 완결!!! 마지막까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작가의 장인정신에 별 다섯개를 준다. 보통 작품의 스케일이 커지다보면 작가가 감당못하고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은데(대표적으로 슬램덩크) 이 작가는 완결성면에서도 높은 퀠리티를 보여줘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마지막 반전으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또 생각해 보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점점 악해지는 길이라는 것에 어느정도는 동감한다.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마주치게 되고 그러면서 절망하고 그래도 살아가야 하고... 어느 것 하나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살아간다. 부모에게 실망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아이를 키우면서 지쳐가고, 결국 왜 사는지 모르면서 돈 많이 버는 것에만 집착하고..

선대 홍왕의 허무주의가 이해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 대극에 선 사람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은 나의 의지인 것이다. 무엇을 위해 달려가든, 선대 홍왕같은 극한의 허무주의든, 유야의 믿음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결국 뜨겁게 살았다.

뜨겁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 모두에게 박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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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시선 1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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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정말 사람을 안달나게 한다. 많은 인물들이 대체 무엇때문에 쫓고 쫓기는지 흥미진진.. 감질맛나게 자꾸만 다음 장을 넘겨보라고 요구한다. 1권의 끝에서야 그레이스와 스콧 덩컨이 만나게 되고..

한장의 사진으로 촉발된 납치와 폭력. 어두운 과거를 안고 살던 그레이스는 가족에 대한 사랑 하나로 남편의 납치에 대한 것을 조사하고 사람들을 찾아가고 그 속에서 점점 정점을 향해 달린다.

흠.. 2권까지 다 읽을 때까지 반전의 반전에, 사람의 넋을 쏙 빼놓는다. 그 점에서 마음에 든다. 스릴러는 일단 책을 덮을 때까지 다음 장이 궁금해 죽을만큼 사람을 뒤흔들어 놓아야 한다. 책을 덮고 나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 점에서 90점 이상을 줄 수 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과거의 한 사건으로부터 피해를 받지만 또한 가해자이기도 하다. 15년 전의 사건이 지금에와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변모하고... 그래서 모두가 한 장의 사진을 놓고 목숨걸고 뛰어들고...

복수라는 것, 사람의 이기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사소하달 수 있는 자신의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15년 전의 돌발적 상황. 연속된 이기심에 의한 거짓말과 음모가 결국 15년에 걸쳐 사람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버린다.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없는 상황. 감옥의 그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손자를 손자라 부를 수 없는 감상적인 눈빛까지, 각자는 15년전 그 상황에서 지금까지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충실히 살고 그것으로 상처받지만 또 다른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동물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레이스만이 댓가없는 사랑으로 남편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반전은 그것마저 허락치 않는다. 봉인된 것이 아닌 무의식이 봉인한 기억일지도 모르니까.

아쉬운 점은 에릭우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전면에서 무기의 역할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댓가가 무엇이었을까, 왜 명령에 충실했을까, 하는 의문은 뒷맛을 개운치 않게 만들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련다. 그만큼 반전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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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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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가려움을 주관하는, 뇌의 이름 모를 두엽을 생각했다. 순수한 고통이나 기쁨이 아니면서 그 두 감각이 공존하는, 당시에는 미칠 것 같지만 긁어주기만 하면 달콤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기이한 감각. 가려움은 성감과도 비슷하다. 처음 섹스를 하기 위해 침대에 누웠던 밤, 왜 그렇게 그 남자의 손길이 닿는 모든 구석에서 가려움 혹은 간지러움을 느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100쪽

속물이 속물인 것을 감추려면 쿨할 수 밖에 없다. 쿨과 냉소가 없다면 그들의 속물성은 금세 무자비한 햇빛 아래 알몸을 드러낼 것이다. 대도시의 익명성은 세련을 가장한 이런 속물성 덕분에 유지된다. 다시 말해 이곳에선 누구든지 모습을 감추고 살 수 있다.-101쪽

그녀는 문득, 엄마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런 일이 과연 자신의 인생에 닥쳐올까, 따위를 생각했다. 끔찍하기만 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키스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아까처럼, 끔찍했던 어떤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것, 그런 것이 반복되는 것, 혹시 그런 게 인생이 아닐까.-308쪽

"오늘 문득 깨달았어. 지금까지 난 인간들이 상당히 추상적인 고민들을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인생, 운명, 정치, 뭐 이런 것. 너도 알다시피 나 수학 좋아하잖아."
"형이 늘 말했죠. 순수한 추상의 세계라고."
"맞아. 문제 풀고 있노라면 시간 참 잘 가지. 난 다른 사람들도 얼마간은 다 그런 면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아. 그런데 오늘 보니 다들......"
"다들?"
"살아남기 위해, 오직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들 사는 것 같아. 왜 나만 그것 몰랐을까?"-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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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2006-10-0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랬어. 인생이 수학 같이 명확할 줄 알았어. 아니란 것을 알고난 뒤, 아마 죽을때까지 인생이 뭔지 알기 위해 떠돌아다닐 것 같아,난...
 
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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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두통에 시달린다. 평생 처음으로 겪는 두통.. 그리고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일들의 퍼레이드.. 기영과 아내 마리와 그의 딸 현미에게 일어난 여느 때와는 다른 하루.

일단 김영하의 신작이라는 것을 알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빼든 책. 그런데 표지가 이게 무슨... ㅡ.ㅡ;; 대학교재 제본 해 놓은듯한 특이한 표지에 놀랐다. 여태껏 이런 책 표지는 본 적이 없었다. 하여튼, 주인공이 남파간첩이라는 정보조차 없이 읽어 내려간 책,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닥치는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수 밖에.

끝까지 다 읽고난 지금의 심정은 미로의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다. 대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너무나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책이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이다.

내게 비춰진 이 책은, 나이듦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기영과 마리와 현미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른이 될만한, 아니 세월이 흘러 어른의 우악스럽고 어두운 부분을  한차례 겪는다. 기영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나이 마흔에 고민하고 마리는 마리대로, 현미는 사춘기 소녀가 겪을만한 특별하고 기억될만한 하루를 겪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무얼까. 치기어린 생각으로 사전적인 어른이라는 단어에는 훌륭함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명해진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실제로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세월의 풍파에 닳고 깎이며 한편으론 추악해지는 것이다.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을 더 많이 보게되고 고민이 많아지고 추악해지는 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다. 내 경험을 비추어보아도 나이가 들면 훨씬 편해지고 사소한 것은 대범히 넘겨버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왠걸, 이 세계가 그렇게 깨끗하지 않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서 최소한 나는 깨끗하려고 노력하자고 다짐하고 또다짐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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