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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영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두통에 시달린다. 평생 처음으로 겪는 두통.. 그리고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일들의 퍼레이드.. 기영과 아내 마리와 그의 딸 현미에게 일어난 여느 때와는 다른 하루.
일단 김영하의 신작이라는 것을 알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빼든 책. 그런데 표지가 이게 무슨... ㅡ.ㅡ;; 대학교재 제본 해 놓은듯한 특이한 표지에 놀랐다. 여태껏 이런 책 표지는 본 적이 없었다. 하여튼, 주인공이 남파간첩이라는 정보조차 없이 읽어 내려간 책,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닥치는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수 밖에.
끝까지 다 읽고난 지금의 심정은 미로의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다. 대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너무나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책이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이다.
내게 비춰진 이 책은, 나이듦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기영과 마리와 현미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른이 될만한, 아니 세월이 흘러 어른의 우악스럽고 어두운 부분을 한차례 겪는다. 기영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나이 마흔에 고민하고 마리는 마리대로, 현미는 사춘기 소녀가 겪을만한 특별하고 기억될만한 하루를 겪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무얼까. 치기어린 생각으로 사전적인 어른이라는 단어에는 훌륭함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명해진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실제로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세월의 풍파에 닳고 깎이며 한편으론 추악해지는 것이다.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을 더 많이 보게되고 고민이 많아지고 추악해지는 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다. 내 경험을 비추어보아도 나이가 들면 훨씬 편해지고 사소한 것은 대범히 넘겨버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왠걸, 이 세계가 그렇게 깨끗하지 않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서 최소한 나는 깨끗하려고 노력하자고 다짐하고 또다짐하면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