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의 탐구 - DNA 이중나선에 얽힌 생명의 비밀 김영사 모던&클래식
프랜시스 크릭 지음, 권태익.조태주 옮김 / 김영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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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디옥시리보핵산(DNA) 염의 구조를 제창하고자 한다. 이 구조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1953425, 과학학술지 <네이쳐>에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한 페이지짜리 논문이 게재된다. 900여 단어로 이루어진 이 짧은 논문은 자신의 예언처럼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생물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이 논문으로 인해 유전정보의 복제, 전달 과정이 해명될 수 있었고 베일에 가려있던 생명의 신비에 한층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과학에 무지한 혹은 무관심한 일반인들이라 하더라도 우월한 유전자‘DNA에 각인된과 같은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데에는 이들의 발견과 그로 인한 분자생물학의 급격한 발전이 큰 역할을 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과 더불어 20세기 과학의 결정적 장면으로 꼽히는 DNA 구조의 해명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이들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초기 연구에 많은 공헌을 했던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안타깝게도 또 한 명의 결정적 기여자인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1958년 암으로 사망하여 상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 즉 연구의 시작부터 노벨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는 책이 바로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최돈찬 옮김, 궁리, 2006)이다. 이 책에서 왓슨은 과학적 탐구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의 갈등, 노벨상을 향한 경쟁심 등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물론 <이중나선>DNA 구조의 발견 과정에 대한 생생한 보고이자 크릭의 표현처럼 추리소설 같이 읽혀지도록쓰여져 있어 매우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재미에 비중을 둔 탓인지 과학적 설명보다는 과학자들의 일상이나 태도를 묘사하는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과학적 내용을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도 친절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져 있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 바로 프랜시스 크릭의 <열광의 탐구>이다.

 

왓슨은 <이중나선>에서 크릭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하며 그에 대한 첫인상을 거침없는 태도를 가진 말 많은 수다쟁이로 묘사했다. 그러나 <열광의 탐구>에서 만나게 되는 크릭은 신중한 태도로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하는 노학자를 연상케 한다. 책이 처음 출간된 1988년에 이미 70세를 넘긴 나이였으니 젊었을 때의 혈기가 다소 누그러들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건 그는 이 책에서 자신과 왓슨의 연구가 어떠한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나는 이 책을 나의 동료 과학자와 일반 독자를 위해 썼는데 문외한이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내가 적은 것이 비교적 전문적인 내용이 될지도 모르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취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21)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당연히 자신과 왓슨이 성취한 이론적 성과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는 진화론의 기본 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연구가 시작될 당시의 성과와 과제들, 그리고 논문 발표 이후의 다양한 발전 양상까지 분자생물학의 전개 과정을 차근차근 짚어준다. 물론 책 전반에 걸쳐 전문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책의 머리말에서 공언한 것처럼 비전공자들을 배려해 가능한 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영예를 차지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끊임없는 의욕,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때 과감히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그들의 두뇌가 뛰어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너무 빨리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144)

 

다른 하나는 과학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를 역설하는 부분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과감한 도전정신과 합리적 태도를 강조한다. 크릭과 왓슨, 둘 다 DNA 연구가 자신들의 중심 과제가 아니었음에도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과감히 자신들의 시간을 쪼개어 DNA 연구에 투자하였다. 또한 끊임없이 이론을 세우고 토론하고 동료의 비판을 통해 실수를 수정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뿐만 아니라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뇌과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과학자가 연구에 있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종종 자신의 이론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진정으로 멋지게 들어맞는 이론이 완전히 그릇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자연이란 것은 너무나 복잡해서, 하나의 현상을 서로 상이한 여러 가지의 이론들로 설명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274)

 

또한 생물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이 쓰여지던 20세기 후반은 진화론의 성과와 분자생물학의 성과가 결합하여 생물학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크릭은 이러한 분위기에 도취되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며 조언한다. 깔끔하게 들어맞는 단순하고 명료해 보이는 이론이라고 할지라도 자연의 복잡함을 생각한다면 보다 신중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여러 가설들을 고려해야 하고, 자신이 선택한 가설에 대한 실험적 증거를 확보해야 하며, 실험 결과에 대해서도 그것이 오해를 야기하거나 그릇된 것일 수 있기에 성급한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처럼 이미 세계적인 대학자로 존경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연구에 있어 항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크릭의 모습을 통해 명성이나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해나가는 과학자의 한 전형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학자가 드러내보여준 진리는 무척 아름답다.

 

그는 DNA 모형을 흐릿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간신히 한 말은 너무나 아름다운 구조인 겁니다. 알죠? 너무 아름답다고요였다. 정말 그것은 아름다웠다.”(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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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맹찬형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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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을 처음 듣는 순간 다소 어리둥절했다. ‘따뜻한 경쟁이라니, 도대체 그게 가능한가? ‘따뜻한 경쟁은 일종의 형용모순처럼 느껴진다. 경쟁의 사전적 정의는 같은 목적에 대하여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다툼, 생물의 여러 개체가 제한된 환경을 이용하기 위하여 벌이는 상호 작용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경쟁이란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싸움이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면 입시 경쟁이란 없을 것이며,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면 취업 경쟁이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같은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경쟁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따뜻한 경쟁이란 그래, 멋진 시합이었어라며 서로 악수를 나누는, 승자의 겸손과 패자의 수긍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스포츠 경기의 한 장면처럼 들린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그런 아름다운 게임 따윈 현실에 없다. 입시나 취업 스트레스, 사업 실패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지상을 오르내린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전전하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전공 공부는 제쳐놓은 채 토익이나 토플 등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에 빠져 있다. 취직을 했다고 해도 승진을 위해 상사의 눈치를 보거나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그렇게 평생 경쟁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과장된 묘사다. 하지만 늦은 시각 학원에서 참고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학생들, 어학원을 꽉 채우고 있는 수강생들, 출퇴근 지하철에서 영어학습서나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는 직장인들, 그리고 뉴스가 전하는 자살자들의 사연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무한 경쟁의 수레바퀴라는 과장된 표현을 단순한 과장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어떤 비참한 기분이 느껴진다. 이러한 현실에서 따뜻함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유럽을 한번 둘러보라고 제안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문이나 TV의 다큐프로그램 혹은 여러 책들을 통해 한번쯤 익히 들어봤을 복지국가의 장밋빛 풍경을 스케치한다.

 

책은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대에 재수를 해서 입학하고, 졸업 후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자리를 얻지 못해 특허국에 취직하게 된다. 특허국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며 틈틈이 물리학 연구를 하고, 마침내 세계가 놀랄 물리학 이론을 발표하게 된다. 이 한 가지 사례에 저자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목표와 경로를 다양화하고 패자에게 여러 번의 부활의 기회를 주는 경쟁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유럽의 앞선 나라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 길이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경쟁의 경로가 다양해져야 개인의 장점이 최대한으로 발휘되고, 패자 부활이 원활해야 지능을 가진 이들이 두려움 없이 도전에 나설 수 있으며, 거기서 일궈낸 성과는 사회 전체에 확산될 수 있다.”(230)

 

저자가 통신사 특파원이라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가지게 된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목표가 다양화된 사회다. 의사가 되거나 사법고시를 통과해야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안정된 생활이 가능한 사회, 공공서비스를 통해 사회에 헌신하고자 하는 신념보다는 그것이 안정된 직장이기에 공무원 시험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사회를 생각해보자. 이처럼 몇몇 특수 직종으로 목표가 제한된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구성원이 행복할 수 없다. 그 몇몇 직종에서 구성원 모두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경쟁이 다양한 행복을 낳는다고 강조한다.

 

경쟁이 다양해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패자부활전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이후의 삶을 좌우하는 비중이 클수록 경쟁은 점점 어린 시기로 소급된다. 취업을 위해 대학을, 대학을 위해 고등학교를, 고등학교를 위해 중학교를 잘 가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이 어린 시기에 벌어질수록 부모의 경제력이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 ‘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40% 가량이 소득 상위 10% 안에 드는 최고소득층의 자녀라는 최근의 보도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우리 현실과 패자부활전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패자부활전이 보장되어 구성원들의 목표가 다양화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저자는 단연코 보편적 복지제도가 정답이라고 제시한다. 보편적 공교육 제도와 보편적 의료복지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어린 시기부터 부모의 경제력으로 인해 경쟁의 기회가 박탈되지 않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이처럼 생존 안전망이 탄탄하게 보장된다면 사람들이 얼마든지 자신의 재능과 특성을 발휘하여 여러 다른 직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제도를 통해 강자에 대한 견제와 약자에 대한 보호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무한 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보편적 복지가 정착됨으로써 패자부활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무한 경쟁이 점차 완화된다면 자연스레 공존의 가치가 사회에 안착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와 공존 가치의 확립을 위해 적극적 시민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기 주변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방지하고 소수를 위한 사회가 아닌 다수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계층의 진정한 이해에 눈을 뜨면 그것이 날줄이 되고,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 연대의 필요성을 각성하면 씨줄이 된다. 날줄과 씨줄이 촘촘하게 그물처럼 엮이면 빈곤선 이하로 추락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되고, 기득권을 가진 이들로부터 양보와 동의를 받아내는 압력 수단이 될 것이다.”(215)

 

이처럼 저자가 여러 나라들의 사례를 통해 대략적으로 그려내는 사회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다. 그리고 만일 그런 사회가 현실화된다면 그땐 이미 경쟁이란 단어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에서 경쟁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따뜻한 경쟁이라기보다는 따뜻한 공존이 더 적절한 제목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총론만 있고 각론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어떻게 사회의 방향을 바꿔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지 않다. 물론 저자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저자는 기자로서 대략적인 스케치를 제시할 뿐이고, 그가 보여주는 밑그림이 맘에 든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그림의 완성을 요구하면 될 것이다실제로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유럽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하여 우리 사회의 실정에 맞게 변형하여 대안적 정책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선거를 한 달 앞둔 지금, 그러한 정당의 지지율은 얼마나 되고 시민단체의 참여율을 얼마나 되는가. ‘현실이 이미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조적 냉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끊임없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나마 최근 벌어진 한 가지 사례는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준다. 311일 전주시 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18개의 SSM이 일제히 휴업을 했다. 이는 지난 27일 전주시의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전주시의 조례안 통과 이후 SSM 규제안은 전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조례안이 전국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70%가 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규제안을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서 영업권 제한을 이유로 제기한 헌법 소원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힐 수도 있다. 그러나 값싸고 편리하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지역 중소상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이유로 SSM의 규제를 찬성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경쟁보다는 공존의 가치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두 선거에서 이 갈망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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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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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이제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 놓아도 쌀쌀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꽃이 피지 않고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다<침묵의 봄>이 더욱 절실하게 읽힌다. 사실 도시에서 나고 자라온 터라 꽃과 새들의 변화보다는 그저 따사로운 햇볕이나 가벼워진 옷차림 정도로만 봄을 인지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이 이처럼 도시에서의 일상에 익숙해져 있기에 더더욱 봄의 침묵에 무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들의 무감각에 경종을 울리는 레이첼 카슨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봄을 침묵하게 하는가? 카슨은 화학 살충제의 무분별한 남용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편익을 위해 만들어진 화학 살충제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땅 속 지하수에서부터 대지와 강물, 그리고 하늘에 이르기까지 온 과정을 차근차근 추적해 나간다. 그럼으로써 핵전쟁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절멸 가능성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심각한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물질들로 인한 환경오염”(32)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각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화학 살충제가 왜 문제인가? 먼저 화학 살충제는 태생부터 비윤리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화학 살충제 산업이 탄생하고 번성하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전쟁 기간 중 화학전에 사용할 약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몇 종류의 물질은 곤충에 치명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발견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약제를 시험하는 데 곤충류가 자주 사용된 때문이었다.”(40) 인간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화학 약품이 전쟁 후 살충제 산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물론 군사적 목적의 기술이 인간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살충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화학 살충제는 자연 상태에 계속 잔류하고 축적되어 인간 및 여러 생물들에게 다양하고 치명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오늘날 잔류 농약의 위험성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그로 인해 무농약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찾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나긴 먹이사슬의 연쇄를 따라 북극곰과 에스키모에까지 DDT와 같은 살충제의 잔류물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단지 살충제 살포의 위험성이 한 시기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이러한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이 책의 대부분은 화학 살충제가 야기한 부정적 현실을 열거하는데 할애되고 있다. 즉 농작물과 숲이 말라버리고, 새들과 물고기가 죽어 땅 위에 뒹굴고 물 위에 떠오르고,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이 인간에게 발생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화학 살충제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어 보이나 실질적 방제 효과는 매우 떨어진다. 왜냐하면 해충뿐만 아니라 익충이나 다른 생물에게까지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여 예상치 못했던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고, 그뿐 아니라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개체들이 금세 새로 생겨나기 때문에 점점 더 강력하고 점점 더 많은 양의 살충제를 살포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귀결된다. 이러한 내성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내성이란 수많은 세대를 거치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100년 동안 세대가 평균 세 번 바뀐다. 하지만 곤충의 경우에는 며칠 또는 몇 주 단위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다.”(303) 그러므로 인간은 곤충의 적응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고, 원하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물들에게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균형이 현재 모습 그대로 유지되는 불변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균형이란 유동적이고 계속 변화하며 조절과 조정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인간 역시 자연이 이루는 균형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가끔씩 인간이 이런 상태를 자의적으로 바꾸곤 한다. 그 결과 인간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문제가 생긴다.”(275)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충제의 무분별한 남용은 자연의 균형을 심각하게 파괴한다.어떤 일을 계획할 때에는 그 주변의 역사와 풍토를 고려해야만 한다. 자연 식생은 그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생물이 벌이는 상호작용의 표현이기 때문이다.”(88) 그러나 살충제를 통한 방제 사업은 자연 식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특정 해충의 박멸이라는 목적에 눈이 먼 나머지 다른 요소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해결책에만 급급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살충제와 같은 화학적 방제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해충의 위험으로 벗어나 지금과 같은 생산성을 유지할 대안은 있는가?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는 자연이 이미 대면한 것이고 또 자연은 그런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잘 해결했다.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고 열심히 따라할 정도로 영리하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107)

 

저자는 현재의 방식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안전하고 지속적인 방법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방제가 바로 그것이다. 생물학적 방제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천적의 수를 인위적으로 늘려 해충의 수를 자연스레 감소시키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해충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두 경우 모두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해충을 줄일 수 있고, 화학 살충제가 야기하는 여러 심각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그런데 왜 생물학적 방제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먼저 이러한 방법은 살충제와 달리 가시적으로 분명하게 효과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살충제를 뿌리면 그 효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생물학적 방제법은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식이기에 장기간 천천히 그 효과를 발휘한다. 눈에 띄는 효과를 선호하는 인간의 조급함이 화학 방제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해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본과 기술력 그리고 우수한 과학자들이 화학적 방제 연구에만 집중되는 것이다. 생물학적 방제 연구에 대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새롭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창의적인 접근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들, 그 생명체의 밀고 밀리는 관계, 전진과 후퇴이다. 생물들이 지닌 힘을 고려하고 그 생명력을 호의적인 방향으로 인도해갈 때, 곤충과 인간이 이해할 만한 화해를 이루게 될 것이다.”(325)

 

더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오늘날과 같이 살충제 사용이 필수불가결하게 된 데에는 현대적 방식의 대규모 농업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지적하고 있듯이 곤충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농업이 본격화하고 대규모 농지에 단일 작물 재배를 선호하게 되면서부터다. 이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게 되면 특정 곤충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34) 대규모 단일 작물의 재배가 지배적인 방식이 되다보니 특정한 해충의 피해가 대규모로 집중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규모, 다품종 농업 생산과 같은 방식으로의 전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형학자인 데이비드 몽고메리도 <>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토양 파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산업화된 기술 집약적 영농 방식을 버리고 소규모 노동 집약적인 영농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랙터와 쟁기로 땅을 파헤치는 방식을 버리고 무경운 농법을 시행해야 하며, 화학비료에 기댄 단일 경작 방식에서 벗어나 돌려짓기와 똥거름 주기 등을 통해 흙의 비옥함이 자연스럽게 순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 인류에게 필요한 적절한 양의 식량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그러나 널리 알려졌듯이 현재 생산되는 농산물의 상당수가 소와 돼지, 닭과 같은 육류 식품 생산을 위한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육류 섭취를 줄인다면 대규모 사료용 농작물에 대한 수요도 감소할 것이고, 이로 인해 산업화된 기술 집약적 농업의 필요성도 점차 감소하지 않을까. 더 나은 환경을 위한 생활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환경생태학의 고전이라 칭해지는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50년이 지났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데에도 이 책이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반세기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이 나아졌을까 자문해 본다면 그리 밝은 대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과거보다 줄긴 했지만 살충제의 사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유전자변형식품과 같이 아직 그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도 있는 농작물도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끊이지 않는 개발의 논리가 강과 산과 바다와 공기를 계속 오염시키고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한순간의 편리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꽃과 새가 우는 아름다운 자연을 바란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후세에 물려주길 원한다면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전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는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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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하지 않는가 -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
존 커크 보이드 지음, 최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임을 자랑하곤 하지만우리나라는 여전히 인권 후진국이다당장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쟁들을 보자임신 또는 출산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문구를 청소년 임신과 동성애를 적극 장려한다고 해석하여 극렬히 반대하거나체벌을 비롯한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는 구절을 보곤 체벌을 금지하면 교육이 엉망이 될 것이라 주장하고학생의 인권을 적극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교육부가 이를 재의하라고 요구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존엄하며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마치 별세계의 얘기처럼 들린다.

 

이처럼 인권인식 혹은 인권감수성이 허약한 우리 현실에서 인권과 관련된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나아가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는 강렬한 제목을 달고 나왔다는 것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우리가 쉽게 인식하지 못해 그냥 지나치고 있는 부당한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안내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인권인식 혹은 인권감수성을 갖기 위해선 상당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왜냐하면 인권이란 항상 소수자의 인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다수자의 입장에선 일상적 상황에서 소수자가 느끼는 부당함을 인식하기 어렵다얼마 전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궜던 코피 사건도 일상적으로 나누는 남성들의 성적 농담이 여성에게 어떤 불쾌감을 주는지 인식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여기서 소수자란 단순히 수적으로 적음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즉 사회적 약자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에 대한 인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부당한 현실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고쳐나가려 노력해야 한다그러나 아쉽게도 책은 제목과 달리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2048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한 일종의 선전책자(팸플릿). ‘2048 프로젝트란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100년째 되는 해인2048년까지 세계인권조약을 체결하여 세계 모든 지역에 적용 가능한 세계권리장전을 수립하려는 운동이다이 운동이 왜 필요한가저자는 세계인권선언 이후 각종 국제 규약이 비준되고 많은 국가들이 규약에 서명했지만, “규약들은 예외 사항이 가득했고거의 모든 국가의 법정에서 아무런 강제력을 갖지 못했기에그 결과 인권 침해에 대항할 수 있는 법적 혹은 경제적 영향력이 부족하다.”(38)고 지적한다그러므로 현실적 구속력을 갖추기 위해선 선언의 수준에 머물 것이 아니라 강제력을 가진 조약의 수준으로 한 단계 뛰어올라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언론의 자유종교의 자유결핍으로부터의 자유환경에 대한 자유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다섯 가지 핵심 의제를 설정하고전세계가 동의할 수 있는 구체적 조항을 작성하기 위해 함께 모여함께 생각하고함께 작성하여함께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좋은 얘기다그러나 매우 공허하다왜 그런가앞서 지적했듯이 인권의식의 향상은 소수자가 처한 부당한 현실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영화 관람과 같은 일상적 오락 활동을 생각해보자당신이 만일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면 어떨까울퉁불퉁하고 턱진 보도와 불편한 교통수단그리고 장애인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건물 등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 상당하다혹은 당신이 청각장애인이라면 어떨까한국 영화에 자막을 제공하는 극장이 거의 없기에 우리 영화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이렇게 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소수자들이 느끼는 부당함을 인식하는 것그래서 그 부당한 처사에 분노하는 것이것이 바로 인권 의식의 각성을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문제들을 마치 당연한 상식인양 자세히 지적하지 않고 지나간다물론 저자의 나라(미국)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상식일 수 있다하지만 저자의 목표처럼 전세계의 모든 이들이 함께 모여함께 생각하고함께 작성하여함께 결정하고자 한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인권 취약 국가들의 인권 의식 향상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이를 위해 인권이란 무엇이고 왜 보장되어야 하는지인권에 대한 무지가 왜 위험한지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권 침해의 사례는 무엇인지 등등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그래야만 책 제목처럼 부당한 현실을 자각하고 분노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현실 인식도 매우 단순하다저자는 현재의 기술 발전즉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이 2048년 세계인권조약의 체결을 이끌 탄탄한 밑거름이라고 강조한다저자의 이행 방법인 함께 모여함께 생각하고함께 작성하여함께 결정하자를 실현할 물적 토대가 갖춰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단 소셜 네트워크란 전세계적 현상이 아니다세계 인구의 20%가 절대빈곤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실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전세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란 환상에 불과하다모두가 함께 모여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토론하자고 하지만 정작 결핍의 처지에 놓인 이들은 정작 토론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다섯 가지 의제의 동시 실현보다는 더 시급하고 절박한 것을 중심으로 우선순위의 설정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우선순위의 설정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세계권리조약의 체결 자체가 현실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핵확산금지조약이나 여러 세계무역협정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조항의 구체적 내용이 강대국이나 거대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또 갈등이 발생할 경우에도 그들의 발언권이 더 큰 힘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다시 말해 이미 경제적정치적 불균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불균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공평한 조약의 수립과 이행은 어려운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특히 인권과 같이 소수자 중심의 사고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더더욱 힘든 일이 될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세계권리조약이란 현실 변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이라기보다는 현실 변화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자 그러한 권리를 갖지 못한 소수자에게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다그리고 인간의 역사는 그러한 권리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격렬한 투쟁을 통해서 얻어진 것임을 보여준다세계인권선언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인권선언이나 미국의 권리장전은 모두 지배질서에 대항한 혁명의 산물이었다결국 현실 변혁에 대한 적극적 의지 없이 보편적 인권의 획득은 신기루일 뿐이다예를 들어 저자는 자신의 계획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공공 서비스가 강화된 자본주의일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자본주의와 공공성이 얼마나 어울리기 힘든 단어인지 최근의 신자유주의는 잘 보여주고 있으며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 수정 없이 공공 서비스가 강화될 리 없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상식이다.

 

이처럼 현실적 불평등에 대한 분명한 변혁 의지나 계획 없이 단지 100주년이라는 상징적 시기에 맞춰 이상적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은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just-so story),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세계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자는 저자의 목표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이는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목표이다단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위해 함께 모여 토론하자와 같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이를 토대로 구체적 이행 계획이 필요하며그것이 현존하는 질서를 파괴해야 가능한 것이라면 이를 위한 적극적 실천 의지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헌법을 가방에 넣어 다니는 변호사와 학생의 사례를 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실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의 사람들이 세계권리장전에 대해 배우고 꺼내 사용할 수 있다면그것은 문화의 기본 구조가 되고 존중받을 것이다.”(31) 나는 이 구절을 보고 한 가지 상상을 한다학교나 선생님의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당했을 때 가방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꺼내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학생의 모습을그러나 이는 대학서열화나 입시지옥과 같은 학벌 차별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학생인권조례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학생인권조례가 학생 문화의 기본의 구조가 되기 위해선 학벌 차별 철폐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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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GPE 총서 1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작년 전세계가 주목했던 사건 중 하나는 바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였다. 신자유주의적인 금융 지배에 대한 불만이 월스트리트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극적으로 표출된 이 시위는 작년 9월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전세계로 번져나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여의도를 점령하라라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5개월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이 시위는 최근 강경한 진압과 추워진 날씨로 인해 다소 소강상태에 들어가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불거져 나오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이 시위가 겨냥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란 무엇인가. 이는 시위대가 내놓은 대표적 구호인 우리는 99%(We are 99%)”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99%,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 즉 사회적 양극화는 계속 극대화되고 있는데 이를 적절히 교정할만한 변변한 장치가 하나도 없는 현실일 것이다. 실업률은 계속 상승하고 실질임금은 점차 하락하여 평범한 시민들의 삶은 계속 괴로워져가고 있는데, 수조 원의 공적 자금을 들여 쓰러져가는 기업을 살려주었더니 그들은 그 돈으로 보너스 잔치를 하고 있고, 이러한 도덕적 해이를 규제할 제도적 장치는 하나도 없는 현실. 이러한 현실에 분노하지 않고 묵묵히 쳐다보고 있기란 힘든 일인 것이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한미 FTA의 비준으로 인해 앞으로 점차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우리사회에 확산된다면 우리 역시 동일한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작년 말 한 경제신문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가계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경제고통지수2011년에 역대 3번째로 높았다고 한다. 작년보다 높았던 두 번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과 금융위기 때인 2008년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좀체 보이지 않고 있다. 연초 한 해 전망을 다루는 기사들을 보면 역시 중산층 붕괴로 인해 신빈곤층이 확산되리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진심이건 아니건 혹은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하건 간에 복지를 자신들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복지 정책을 잘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작년 한 해 동안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무상급식 논쟁에서 경험한 바 있듯이 복지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그 과정에서 우리 정치사의 단골 메뉴인 이념 논쟁도 뜨겁게 불거져 나올 것이다. 그 결과 과거 여러 많은 개혁 법안과 민생 법안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여 누더기가 되거나 책상 서랍에 고이 잠들어 있다 폐기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사회상과 그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이 복합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그포르스의 정치경제학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이 빛을 발한다. 다소 낯선 이름의 이 사람은 대공황 이후의 경제 위기와 좌파/우파 간의 갈등이라는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스웨덴의 복지 체제를 안착시킨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다. 이 책은 비그포르스의 사상을 지탱하고 있는 두 축인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이념 지향과 나라 살림의 계획이라는 실천 방식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과 그러한 사회에 이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다.

 

먼저 왜 잠정적유토피아인가? 비그포르스가 보기에 많은 사상가들이 현실의 모순과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이상향들을 제시해 왔지만, 그러한 이상향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구체적 시도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적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는 결코 윤리적 열망과 희망 사항만으로 무책임하게 시도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마음속에 바라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른다고 해도, 정말로 그것이 실현 가능한지, 그리고 우리가 애초에 열망한 바를 정말로 만족스럽게 실현할 수 있는지는 직접 시도해봐야 알 수 있다.”(335) 그는 과학에서 작업가설을 설정하고 실험과 검증을 통해 가설을 폐기, 수정, 보완, 재설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개혁도 시시각각 변화되는 현실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유토피아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는 항상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점진주의적 관점과 무엇이 다른가? 비그포르스는 사회 변화를 이룩하기 위해선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밑그림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부분을 보수하는 땜질식 처방은 안 된다는 것이다.비그포르스가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핵심 가치로 꼽은 것들은 평등,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 불안에서의 해방, 경제에 대한 의식적 통제를 통한 더 효율적이고 증대된 생산 등이었다.”(328) 이처럼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확고한 방향 설정과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의 실험과 검증, 이 두 가지의 결합이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 살림의 계획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사회 성원들 전체에게 인간적 존엄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삶의 물질적 기초를 제공하기 위하여 사회 전체 차원에서의 산업 생산이 가장 합리적 · 효율적으로 조직될 수 있도록 안배하는 모든 장치와 제도와 정책을 총칭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해가는 상업 기술과 사회적 상태를 감안해 시장 경제에서 국유 기업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제 형태와 제도 정책을 배합”(363)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앞서 소개한 잠정적 유토피아를 위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경제적 실험들의 조합이 바로 나라 살림의 계획인 것이다. 저자는 비그포르스가 이와 같은 두 축을 바탕으로 1930년대 스웨덴이 처한 상황, 즉 대공황 직후의 경제적 어려움과 좌우간의 갈등의 심화라는 난국을 돌파해 나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책은 비그포르스가 살았던 당시 스웨덴의 구체적 상황과 그 상황을 그가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그의 방식이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1930년대의 스웨덴과 2012년의 한국은 겉보기엔 대략 유사해 보이지만 세세한 구체적 상황과 조건은 매우 다를 것이기에 당시 스웨덴에 유효했던 방식이 우리에게도 유효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고 있고 그러한 사회가 스웨덴이 이룩해놓은 모습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면, 나아가 평등,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 불안에서의 해방과 같은 비그포르스의 전망에 동의한다면 이를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버릴 순 없을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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