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예능을 볼 때 입소문을 듣는 경우가 많다. (라디오 스타나 무한도전, 비틀즈 코드, 최근 보기 시작한 옥펑크는 예외. 허구헌 날 텔레비전만 본다고 생각할텐데, 맞다) 조여정의 깜찍한 연기와 낭만화 된 사랑이 아니라 이해 가능한 사랑을 보여준 ‘로맨스가 필요해’는 눈썹이 진한 소년 여자가 추천을 해줬는데 무척 재미있게 봤다. 요즘 통장 잔고를 걱정하는 여자 주인공은 흔해졌지만 헤어진 남자친구가 속을 긁어놓자 ‘니 마빡도 개박살을 내놓을거야’라거나 연하남에게 ‘관뚜껑 덮고 누워있다가도 내가 만나자면 벌떡 일어나서 나와’라고 하는 대사나 통통 튀는 조여정의 존재감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첨언하자면 이 드라마를 캐릭터가 흔하고 스토리는 살짝만 바뀐 로맨틱 코미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완벽한 이야기를 찾으려고 드라마를 보는 건 아니잖은가. 나로선 키득거리며 웃을 수 있는 이 드라마가 좋을 수 밖에.
10아시아에서 소개해준 프로그램도 한 번씩 본다. ‘브레인’은 신하균이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게 뜨악해서 패쓰, 힐링캠프는 애석하게도 힐링이 안 돼 패쓰, 1박 2일은 강호동이 떠나고 캐릭터가 잡혔다고 하는데도 강심장과 마찬가지로 ‘좋은 생각’류의 감성을 전달하는게 맘에 안 들어 패쓰. 10아시아가 좋다고 하는 프로그램을 다 보진 않지만 10아시아의 글은 좋아한다.(특히 김희주씨의 글) ‘브레인’을 소개하며 자신의 욕망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변화하는 얘기에 공감하고 ‘나도, 꽃’에서 ‘나를 좀 안 사랑하면 어때’란 식으로 짚어준 부분도 맘에 든다. 그러게. 왜 우린 그동안 나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고, 세련되려 노력했을까.
얼마 전에 머리하면서 음악과 결혼했다는 서태지의 그늘에 가려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이지아 기사를 본데다 10아시아의 펌프질도 있어 ‘나도, 꽃’을 한번 볼까 어떨까 싶어졌다. 김도우 작가의 작품이란 점과 ‘차봉선’이란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강희 때문에 ‘내 사랑’과 ‘애자’를 봤지만 신통치 않은 성격과 이야기가 맘에 들진 않았다. 이지아란 배우에 대한 호감이 없는데 이 드라마를 봐도 될까.
일단 보고나서 판단하기로 하고 어제 5회부터 봤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해 갔지만 썩 눈을 끌만한 요소가 안 보였다. 그런데 이건 뭐지?
봉선이 형사계 경찰이랑 대화하는 부분을 보다가 이래서 나도 꽃, 나도 꽃 했던건가 싶어졌다.
31살의 봉선에게 선배 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왜 결혼은 안 하냐, 내가 소개해줄까란 말들을 건넨다. 봉선은 그냥 넘겨도 될 말을 인상 잔뜩 찌푸리며 그 소리는 입사 때부터 하셨잖아요 등등의 좋게 좋게 넘어가지 않는 말들을 쏟아낸다. 선배는 애가 왜 그렇게 뻣뻣하냐란 말을 하고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듯 그 장면은 그대로 넘어갈 뻔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재희가 좋게 넘어가지 않을 소리를 해놓고 뻣뻣하다고 말하면 다냐고 버럭 화를 낸다.
그러니까. 오바해서 건든다 싶은데 왜 가만히 있는걸 예의 있다거나 침착하다는 식으로 덮어버리냐고. 언제부터 세련되고 여유 있는 자세가 성숙의 지표가 되었지? 얼마 전에 본 ‘세상의 모든 계절’의 메리도 세련미라고는 한톨도 찾을 수 없는 여자다. 감독은 좀 더 나아가 더 센 인물로 조카를 등장시키지만 구구절절함으론 메리가 한 수 위였다. 그런데 그게 왜 민폐란 말인가. 친구 아들의 맘을 오해했기로서니, 핑퐁처럼 대화 좀 못했기로서니, 싫은게 티가 나고 스위치처럼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게 어때서.
이렇게 생각하며 메리에게 공감했지만 한편으론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란 생각을 했던걸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모난 사람들에게도 희망 한줄기쯤 주고 싶지만 봉선의 앞날도 영화가 끝난 후의 메리도 여전히 지지부진할 것이다. 다만 그냥 그렇게 모난대로 살아도 된다고,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조금만 미워하자고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긴하다. 그건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