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상사가 할 일이 없는지 일하는 직원을 꼬여내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상사의 요설에 따르면 조직에 맞는 사람은 누군가 추천해준 사람이란다. 공개로 사람을 모집하는 건 검증이 안 된다는거다. 할 일 없어 사람들 달달 볶고 오만 간데 참견하고 잔소리하기를 서슴치 않는거야 그렇다치지만 비개념어를 남발하는 것도 모자라 호응까지 원하는건 정말 꼴불견이다.
친밀한 관계의 누군가가 얼토당토 않는 얘기를 하면 건성으로 듣거나 대꾸를 안 한다. 서로 엉터리라는걸 알기 때문에 말한 사람도 호응을 보이지 않은 사람도 선선하게 넘어간다. 하지만 직장에선 상사가 엉터리로 말해도 가식적으로라도 호응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싸가지 없는 누구로 찍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사의 조직론에 따르면 공개채용을 한 사람은 말을 안 듣고 일을 잘 안해서 부적합하단다. 상사가 일하는걸 본적이 없어서 역시 개념없단 생각이 들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직장에선 일을 잘하는 것만큼 눈치 있고 무능한 상사들을 두루두루 챙겨주며 ‘일 하는 척’하는 게 더 중요하다. 지난번 외교관 자녀 특채채용에는 분노했지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일들에는 무감해진다.
지원자들은 이번에도 그랬듯이 다음에도 들러리가 될 것이다.
줄 타고 들어온 사람들은 메이드 인 조직원일까 싶을 정도로 조직 적응력이 뛰어나고 일도 잘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부모 욕 먹을까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뿐이다. 자신도 촌스럽고 한심하지만 자신의 밥줄을 만든 줄이 결국 족쇄가 되는거다. 일이 아니라 평판과 조직의 생리를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내가 속한 조직만 그런걸까.
상사의 상사가 나오지 않아 2시간 동안 점심시간을 보내고 온 상사가 다시 흰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언제까지 들어줘야할까.
일이 끝나고 집에 가면 장판을 켜놓고 이불 속에 쏙 들어가 성균관 스캔들을 본다.
원칙주의자 이선준의 주장에 격하게 동의하며 이선준 같은 사람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융통성 없이 꽉 막혔지만, 올바른 길로 가려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사람. 둥글둥글하지 못하지만 기죽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사람. 드라마는 이선준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과 성장을 다룰 것이다.
현실에서도 성균관 스캔들처럼 우여곡절 끝에 모두가 원칙적이고 공정하게 지내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도리어 현실은 ‘용서받지 못한 자’와 닮은건 아닐까. 어쩌면 이선준의 원칙이 모든 불합리와 관습적인 것에 자극을 주는건 노론의 수장인 아버지의 후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승영이 친구인 태정의 빽을 믿고 까불었던 것처럼. 결국 원칙주의자의 행복한 결말을 위해선 상병쯤의 빽이 아니라 좀 더 굵직한 빽이 필요한걸까. 꼬우면 니가 상사해라는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