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것이 마지막 가치라면…


사진도 찍지 않았고 몇 가지 잡무를 처리하고
편지는 펑크를 낼 심산으로 밤 11시 좀 넘어 자리에 누웠다.
거의 독서를 하지 않는 내 머리맡에는 몇 권의 책이 항상 있다.
호시노 미치오의 책 세 권은 간혹 들추어 보기 위해 가장 가까이 있다.
그리고 <뿌리깊은나무>의 몇 권 책들은 읽지는 않지만 하나의 경전으로
그 옆에 놓여 있다. 그리고 아룬다트 로이의 <9월이여, 오라>도
고정 목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언급한 책들은 이를테면,
‘내가 책을 쓴다면’ 이런 책들의 가치에 절반이라도 필적해야
종이로 소용된 나무에게 미안함이 덜할 것이란 기준점이 되는 책들이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교체하는 책. 잡지다. 내가 읽는 유일한 잡지.
<전라도닷컴> 신년호가 지난 토요일인가 내 책 상 위에 배달되었다.
읽는데 까지 읽다가 평소 보다 이른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에디토리얼에 해당하는 편집장의 머리글을 별 생각 없이 읽었다.
딱 한 페이지의 글을 읽고 난 후, 일어나서 카메라를 들고 내 머리맡의
책 사진을 찍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잡지 <전라도닷컴>이 힘들다. 사실 항상 힘들었다.
그러나 2012년 1월호 머리글에 편집장이,
‘…이러다가 잡지를 온전히 지킬 수 없겠구나…
하여 몇 번을 망설이다가 참 염치없는 부탁을 드린다.
한 분의 독자가 올해가 가기 전에 딱 한 사람의 새 독자를 만들어주시길!…’
이라는 글을 올리기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서 깜박이는 커서를 얼마나
바라보았을지 짐작해 보면 내 가슴이 다 오그라든다.
불과 며칠 전 송년의 끝자락에 전라도닷컴의 몇 분을 지리산닷컴
송년회 자리에 청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시지 못했다. 마지막 날까지
일을 하고 계셨다. ‘아, 31일은 놀아야죠!’ 라고, 별 생각 없이 올 수 없는
손님들에게 지청구를 부렸다.

세상에는 사라져 가는 마지막 가치들이 있다.
이제는 ‘종이 책’이라고 부른다. 비트 언어로 만들어진 다른 책이
책 시장의 주인으로 자리할 것이란 예측을 하기도 한다. 그런 소리에 대해,
‘그래도 종이를 넘기는 맛’을 논하는 사람들은 생 후 1년이 되기도 전에
아빠의 아이폰을 터치해서 저장된 사진을 보는 아이들이 느끼는 ‘맛’의
힘과 지속성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2012년 1월 현재 통권 118호까지 발행하였다.
거의 광고가 없는, 단행본도 아닌 잡지를 118호까지 발행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발행인 집안이 재력가이거나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미쳤거나.
둘 중 어떤 경우의 수이건 잡지 <전라도닷컴>은 마지막 가치다.
종이와 비트의 접점에서 마지막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담는 그릇의 종류
문제에 불과하다. 지금의 <전라도닷컴>을 만드는 ‘미친 사람들’이 아니면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발로 쫓아다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가치다.
아직은 안 된다.
118호를 발행하는 동안 전라도닷컴이 전해왔던 이야기들은 사라져 가는
마지막 가치들의 목소리를 붙잡는 일이었다.
잡지 <전라도닷컴>을 잃는다는 것은, 마지막 가치를 담을 그릇을 잃는 일이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돈 빌려달란 전화를 하기 전에는 담배가 잣고
가슴이 오그라든다. 그러나 구차해 보이고 싶지 않아 항상 당당하고
뻔뻔하게 용건을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과 다르게 가슴이 오그라든다.
필요한 가치를 지키자는 부탁을 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을 오그라들게 한다.
커피를 파는 가게는 커피 맛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밥을 파는 가게는 밥맛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책은, 잡지는 내용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 내용들을,
그 가치들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지 않는다.
결국 작은 힘들을 보태야 한다. 한 번의 잡지를 발행할 수 있는 광고도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결국 광고라는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성을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기구독자를 더 많이 확보하는 길 이외에는 없다.

잡지 <전라도닷컴> 정기구독을 권한다. 일 년 정기구독료 오만 원이다.
팍팍한 우리네 삶에 쉽게 지출할 수 있는 액수는 아니다. 쇼핑몰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간혹 뭔가를 팔아 보니 삼만 원이 심리적 기준선인 듯하다.
그러나 자신 있게 권한다. <전라도닷컴>이 전하는 이야기들의 가치를
자신하기 때문이다.
http://jeonlado.com 로 가셔서 신청하실 수 있다.
062-654-9085로 전화를 하셔서 신청하실 수도 있다.
이 글을 보고 신청하실 때에는 <지리산닷컴 소개로 신청한다>고 말씀해 달라.
그런 분이 일백 사람이면 <전라도닷컴>에 밥 한 그릇 사라고 행패를 부리고 싶다.
이 글을 만드는데 거의 두 시간 걸렸다.
일상적인 글 보다 두 배는 더 걸린 것이다.
나 역시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다.


4dr@naver.com

 

 

 메리포핀스님 서재에서 보고 지리산닷컴을 방문해 글을 퍼왔다.

지리산닷컴을 보니 http://haeumj.tistory.com/94 이런 포스팅도 있다. (이분 밥상 완전 부럽다)

개인적으로 구독이 어렵다면 동네 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한다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잡지가 매체에 소개되어 이 잡지를 왜 나만 몰랐나 안타까워서 계속 안타까워한적이 있다.

안타까움이 이어져 바로 잡지를 찾아서 본다거나 구매를 하는 연속적인 과정은 늘 그랬듯 지지부진이었다.

 우연찮게 시장 구경을 하다가 조그만 건물에 자리한 사무실을 발견했고 사무실을 찾아가 따뜻한 차 한잔 얻어마시며 편집장인 황풍년씨 책도 보고 민들레 통신이란 책도 봤다. (사무실도 가봤다고 자랑하는 중이다.)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이것저것 사들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날 천원짜리 국수에 오뎅을 빠뜨려 먹으며 이런 국수는 맨날 먹어도 좋겠단 생각을 했는데.

 

 전라도닷컴, 재미있다. 부러 해학이니 풍자니 하지 않아도 단어 하나마다 표정 한컷마다 재미있어 뜨뜻한 구들에서 같이 읽으며 얘기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안타까움이 계속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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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1-0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밥상 사진 보니 금방 또 배고파요. ㅇ.ㅇ
아치님 글 읽으니 과월호도 받아보고 싶어졌어요.
음~ 새해부터 너무 지르면 안되는지라, 그래도,
음~ 심각 모드.. ㅋ

Arch 2012-01-04 19:17   좋아요 0 | URL
제가 다 읽고 보내드릴까요? 저도 여태 안 읽고 있어서...
정말 맛난 밥상이죠!

메리포핀스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숲노래 2012-01-05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라도만 아니라
경상도도 경기도도
서울도 인천도 부산도
충청도도 강원도도
저마다
재미난 이야기잡지가
태어나면 좋겠어요..

Arch 2012-01-05 12:45   좋아요 0 | URL
^^ 그러니까요. 모든 매체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어 아쉽습니다.

하이드 2012-01-05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좋은데요? 어떤 책인데요? 구구절절 사연보다 어떤 글들이 있는 책인지 힌트라도 있으면 마음이 더 동할것 같은데요.

Arch 2012-01-05 12:44   좋아요 0 | URL
전라도 닷컴은 전라도 사람들, 전라도 문화, 전라도 풍광까지. 전라도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잡지입니다.

이 잡지가 좋은 이유는 우선 전라도 이야기를 하는 게 좋고, 사투리 그대로 기사를 써주는 게 좋아요. 전라도 이야기를 누군가 먹고 즐기기 위해 겉절이로 하는게 아니라 바로 옆에서 보는 것 마냥 생생하게 전해줘서 더 좋아요. 어르신들의 입담이 고스란히 녹아든 지면을 읽는 재미가 있어서, 교훈이나 감동을 주려고 글을 쓴게 아닌데도 잡지를 읽다보면 나도 그 자리에 끼고 싶을 정도로 포근해서 좋아요.

송년회 모임 기사 일부인데요. 잡지의 정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아 발췌해봤습니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문창과 교수)의 시낭송이 먼저 마음을 덥혔다. 독자들과 함께 나눈 시는 ‘방을 얻다’.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고 싶어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리던 시인이 수더분한 꽃들 피어있는 마당에 들어서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말 꺼내자 그 집 아짐이 들려준 대답이 아름다운 시이다.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깃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 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http://jeonlado.com/v3/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사이트 주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