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표지였다. 띠표지에 우리가 먹어야 할 50가지 음식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란 식의 선전 구호가 있었던가. 그저 그런 책인줄 알았는데 첫제목 빨간 테니스공에서부터 흥미진진했다. 어느 날 냉장고에 오랫동안 있던 토마토를 창밖으로 던져봤단다. 토마토는 테니스 공처럼 어느 한군데 상하지도 않고 잘 굴러가더란다. 예전보다 음식의 양과 모양새는 그럴싸해졌지만 그 전보다 영양소와 맛은 떨어졌다는 주제를 창밖으로 나가 통통 굴러가는 토마토로 이미지화한 부분은 설득력이 있었다.
누군가의 책상에 있던 책을 살짝 읽은 터라 다음을 기약했는데, 아뿔싸! 책 제목을 적어두지 않았다. 분명 제목을 내 눈이 봤고, 내 손이 책장을 넘겼다. 다음에 읽어야겠다며 맘까지 먹었다. 메모 한장 안 했다고 (메모해도 어디에 둔지 기억 못하는 것도 다반사지만) 읽으려고 찜했던 책 제목을 까먹다니. 결국 그 책과는 인연이 없는걸로 결론을 내렸지만 아쉬웠다. 왜 아니겠는가. 아직 읽지 않은 책만큼 매혹적인건 세상에 없다. 책은 기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있을 것처럼 기세등등한 뒷모습만 남긴채 사라졌다.
윌리엄 레이몽은 패스트푸드에서 뿐 아니라 가공식품 속 식품첨가물이 좀 더 빠르고 즉각적인 맛을 위해 사용하는 물질들을 독소로 보았다. 이 책은 작가의 전작을 봐야 이 작가의 책을 앞으로 더 읽을지 말지 결정할 딱 그만큼의 성취만 보여준다. 자기 주장이 옳다는 확신이 넘치고 이야기 얼개는 살짝 조잡하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며 새로운걸 알아가고 동의하는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몇 군데 구멍 난 모기장을 쳐놓긴 했지만 초조한 맘으로 모기에 물리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랄까. 반절 이상 읽었는데 '나는 사실 전작에 기대어 대충 찍은 책'이란 고백을 듣고 싶진 않았다. 제목 잘 뽑고, 표지도 괜찮다. '독소'란 책도 좋았다며! 그런데 이런식은 아니아니아니아니되오. 물론 식품에 대한 그물망이 크고 성근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오긴 한다.
암튼 이 책에서 그때 그 빨간 표지에서 읽었던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나왔다. 혹시 하는 심정에 이번엔 저자의 이름과 책제목을 적어뒀다.
오늘 아침 전희식 선생님이 쓴 이 책의 서평(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438502)을 보지 않았다면 빨간 표지의 책 역시 그때 당시 정말 보고 싶었지만 아마도 잊어버렸을 것이다. 뭔가 정말 하고 싶다가 이내 시들해지는게 내 천성인지 원래 사람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다. 박찬일의 '어쨌든, 잇태리'를 보고서 오전 내내 이탈리아에서 사는 꿈을 꿨다. 이탈리아 제스처도 해보고 싶고 맛있는 음식 먹으러 토리노에도 가보고 싶었다. 급기야 점심 때는 누구 보고 이탈리아 가자고 꼬시기까지 했다. 오후 동안 이탈리아에서 사는 방법을 검색해보다 취업이나 유학처럼 공력 많이 들어야 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길래 가고 싶은 맘이 시들해지고 말았다. 청산도에 살고 싶다고 섬에 가서 빈집 얻고 사는 수준으로 외국 나가서 살 생각을 한 내 식견은 한심하다. 유학이나 취업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니 귀찮다. 그 정도로까지 하고 싶진 않은 정도, 딱 그 정도의 열망만 꿈꾼다. 나는 요새 하루짜리 열망만 갖고 산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우리가 익히 채소 많이 먹으면 좋다고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요즘 채소는 '많이 먹어도 좋은 채소'가 아님이 분명해 보인다. 요즘 채소는 비닐 하우스에서 빨리 자라라고 주는 질소 비료를 과다하게 먹는다. 어떤 농가에서는 채소를 몇수십번씩 돌려 키우기도 한단다. 질소가 채소에 흡수되면 질산태질소로 변한다. 채소가 진초록이 되는 이유다. 질산태질소가 체내에 들어가서 고기나 생선에 포함된 단백질과 결합하면 '니트로소아민'이란 발암물질을 만든단다. 헐~
그때 다시 빨간 표지의 그 책이 떠올랐다. 맛과 영양이 아니라 보관, 유통, 이윤만을 위해 생산되는 채소들. 빨간 테니스 공!
드디어 이 책을 찾았다.
마이클 폴란이 아니라 토마스 F. 폴릭이다. 기대만큼 괜찮은 책일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찾아서 다행이다. 이제까지 '육식 나빠, 그렇지만 맛있어, 채소 먹어야지'했는데 채소도 지금처럼 길러선 육식만큼 해로울 것 같다. 인간이 합성된 영양소만 먹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식물도 그렇다는걸.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걸 왜 깨닫지 못할까.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안심할 수 있는 음식을 찾아야 하는 상황은 안타깝다.
그 밖에 식품 산업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책


음식에 대해 읽고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