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 1 - 오늘 나는 그냥 슬프다 일공일삼 69
휘스 카위어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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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는건 어렵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 나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다. 집중해서 이야기를 읽지 않으면 수십 페이지쯤 지나서야 그래서 이 사람이 자꾸 누굴 그 이름으로 부른거구나라고 알아챈다. 폴레케의 이야기도 그랬다. 제법 긴 제목 <내가 시인이라서 미문이 나와 절교를 선언한 이야기>를 보고서 미문을 폴레케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아름다운 문장으로 봤다. 그런데 갑자기 미문이 사람이 돼서 '내 손에 쪽지를 쥐어 주었다.'


 요 근래 조카들 덕분에 동화책을 많이 봤다. 아직 동화책 초보라 작가 위주로 골라서 봤는데 아름답고 따뜻한데다 교훈이 가득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걔중에는 안 교훈을 위해 노력하는 동화책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교훈으로 돌아오고마는 이도 저도 아닌 반절 교훈 책도 있었다. 헌데 폴레케는 아예 처음부터 '이건 동화책이라기보다 폴레케의 이야기야'라고 선언하듯 책을 통해 뭔가를 얻으려는 '나 같은' 독자를 철저히 배제시켰다. 나는 그 배제가 참 정겨웠다. 나 좀 봐달라는 요란한 아치보다 '네가 어떻든 나는 이대로 있을래'란 태도가 믿음직하달까. 동화책이니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줘야겠다고 작정하지 않은 폼도 괜찮았다.


 시를 짓지 않는 시인 아빠 이아(이상한 아빠)와 담임 선생님과 연애중인 엄마, 자신의 이름을 갖고 태어난 어린 송아지, 아프리카처럼 새까만 눈의 남자친구 미문. 레즈비언과 이혼과 수정란 임신이 낯설지 않은 11살 소녀 폴레케. 폴레케는 위악을 부리거나 겉으로 아는 애늙은이처럼 굴지 않는다. 이 책은 나의 11살을 떠올려볼 정도로 정감있고 생생하다. 작가가 아닌 폴레케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몫은 휘스 카위어의 솜씨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네꼬님 페이퍼를 보니 번역도 아주 잘 되어 있다고 하던데. 번역가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와 이름이 같다.


 폴레케를 둘러싼 세계는 지희 말에 의하면 어른들만 알 법한 일들이 왕왕 일어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이 책을 쓸쓸하게 만드는건 아니다. 왜냐하면 폴레케는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어른들은 정말 애 같다. 자기들은 나한테 허구한 날 "안 돼."라고 하면서 내가 한번 "안 돼"라고 하면 저렇게 울상을 짓는다니까.


 옥찌는 아빠가 불러주는 '우리 폴레케'라는 말이 제일 좋다는 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를 읽고 어떤 글을 쓸지 궁금하다.


 열쇠를 꽂으라고

열쇠 구멍이 늘 비어 있듯

내 마음 한구석에도

우리 폴레케를 위한 자리가

늘 비어 있다네.

아빠가 폴레케에게 써준 시


때로는 눈송이처럼

때로는 돌멩이처럼

단어가 떨어진다.

그럼 다들 말하지

쉿, 저기 단어가 떨어진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내게로 왔다'가 떠오르는 폴레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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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6-13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동화책 많이 읽으신다면,
이원수 동화책과 임길택 동화책 하나하나 모두 챙겨서 읽어 보셔요.
한국에서 가장 빛나는 동화문학과 동시문학을 두 분이 나란히 이루셨거든요.
시대와 소재를 넘어, 두 분 어린이문학에는 '사랑'이 아름답답니다...

옛날 분 어린이문학으로는 현덕 동화가 눈부시지요...
윤동주 님 시하고... (윤동주 님 시는 웬만한 작품은 동시라 할 만해요)

Arch 2012-06-15 13:53   좋아요 0 | URL
아직 초보예요. 이원수, 임길택, 현덕... 다음에 책을 고를 때 찾아볼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