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돌아온 동생이 아주 참신하고 매력적이며 탐나고(어흑) 귀여운 남자친구를 실고 왔다. 어디에? 맘 속에.
장장 몇시간 동안 동생의 호주 체류기간 풀스토리를 듣다가 지쳐서 걸레질과 스트레칭, 낚서를 하다가 어느 순간 눈이 반짝이게 됐는데 그건 바로 동생이 (실재하는)첫사랑 이야기를 할때부터였다. 물론 태생이 능청맞은데다 입이 가볍고 손발이 무거운 아치를 진즉에 알아보는 비상한 머리의 동생인지라 쉽게 털어놓진 않았다. 하지만 연애물 먹은지도 햇수로 어언 열손가락은 넘어가려고 하는 아치인지라 단박에 알아보고 말았다. 응, 바보 아니면 죄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서를 흘리고 다니긴 했지.
같은 호텔에서 일하는 A란 친군데 사진으로 봤을 때 너무 풋풋하고 생기로워서 약간 샘이 날 정도였다. 둘이 어떻게 좋아하게 됐고, 어떤 데이트를 했고, 이럴 때 위로가 되었고, 동생이 흉내내는 A의 표정과 말투, A가 좋아하는 놀이까지. 내 애인도 아닌데 난 자꾸 얼굴이 붉어지고, 이럴땐 어떻게 맞장구를 쳐줘야 절대로 부러워하거나 샘내는게 아니란걸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될 정도였다. 착하고 로맨틱한 A랑 만나다보니 여자친구 있는걸 뻔히 아는데도 들이대는데 도가 튼 일부 한국 남자들이 탐탁치 않은건 둘째치고, 정말이지 왜 그러나 싶었다는 동생의 말은 일정 부분 공감가기도 했고.
둘이 MSN 화상채팅 하는데 끼어들어서 프리티하지만 약간 올드한 누이가 있다고 전해달라고 주접을 떨고, 덧니 난 얼굴로 웃는 모습에 다시 또 침을 꿀꺽. 요즘 어린 친구들은 누군가 말끔하게 닦아놓은 듯 윤이 난다.
어디까지 가봤는데.
아, 이렇게 좀스럽고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설마스런 질문을 던진거냐고 묻는다면 머리통에 심 하나 박은 표정으로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질문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동생이 어떻게 얘기를 할지 짐작이 되기 때문에 다분히 낚시로 던진 것 뿐이었다. 내 눈에 익숙한 동생의 패턴으로 보자면 아치랑은 이런 얘기를 하는게 아니었어, 그럴줄 알았어 등등의 마초 성토성 따분한 반응이 나올게 뻔했으니까. 그래서 이 질문도 대충 둘러댈거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웬걸, 아, 어쩌나...... 쑥쓰러운지 전부를 세세하게 말해주진 않았지만, 미적거리며 털어놓은 얘기는 너무 사랑스러운걸!
지금 내가 부러워하고 강하게 호기심을 드러낸 부분은 동생의 연애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내가 잃어가고 있는 처음 마음, 첫사랑, 혹은 사랑했던 어느 순간의 반짝이는 순간들일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좋아 싶은 시작하는 연인들을 바라보는 기분일지도 모르고. 첫걸음을 떼는 아이, 하루가 온통 다른 누군가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의 설레임, 여행을 내딛는 첫 발자국,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시작을 위해서 시간을 내기도 망설이고, 이제 아주 큼지막한 자극이 아니면 꿈쩍도 안 할 정도로 역치가 높아져 있다는걸. 그래서 내일을 모르는 것처럼 덤비는 처음이, 두려운 가운데서도 나지막하게 화이팅을 외칠 수 있는 첫 마음이 자꾸 그리워진다는걸.
나의 동생, 멋진 처음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