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의 인터넷 계정을 두개 갖고 있었다. 동생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갖고 온건데 그중 하나는 정지해놓고, 다른 하나만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지가 3개월 밖에 안 된다는데다 두개를 갖고 찜쪄먹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조만간에 정리하자, 정리하자 하고 있었는데 마침 B사에서 우리걸로 바꿔보지 않겠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위약금이며 뭐며 자신들이 다 물어주겠다고 하는데다 나이 많은 상담사 아저씨의 강력하고도 확신에 찬 어투에 감화받아 그러마 해놓고선 B사에 전화를 걸어 요금과 위약금 내용을 확인했다. 

 정리하자 했으면서도 미뤄놨던건 웬만해선 예외적인 상황도 허용하지 않는 관료적인 서비스 태도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고,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는 이유로 한눈에 보기에도 과한 금액을 이것저것 갖다 붙이는 직원과 피차 피곤하게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전화는 좀 달랐다. 

 내가 이전할거란 뜻을 비추자마자 상담원은 나에게만 예외적인 상황으로 한 계정을 위약금 없이 해지를 한 후 이용할 수 있겠다란 파격적인 제안을 했고, 평소에 A사를 이용하는데 별다른 불만이 없었던 나로선 조금 귀찮은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시 B사에 전화를 걸어 사정 얘기를 하고, 그대로 이용하는게 낫겠다란 의사를 표명하자 아저씨는 예상했던대로 펄쩍 뛰면서 자신의 조건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감지를 못한게 아니냐며 득달같이 나를 설득했다. 한번 뱉은 말도 있고, 아저씨의 영업 이익과 아저씨가 나로 인해 소요된 시간을 생각해서 A사의 해지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조건으로 다시 또 맘을 바꿨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 통신사를 꾸준히 이용하는게 좋다. 게다가 난 B사의 비싼 요금과 서비스에 불만을 갖고 있는터였다. 자꾸 옮기는건 몇번의 전화와 설치 기사의 방문 등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란 생각이다. 하지만 굳이 해지 의사를 비춰야만 고객을 붙들기 위해 예외적인 사항을 만들어내는 영업행태를 조금이라도 접하기만 한다면 티끌만한 이득에도 움직일 수 밖에 없다란 생각이 든다. 이 경우 해지 의사를 밝힘으로써 A사로부터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최저요금과 몇가지 부가적인 혜택이 있었음에도 바꾸는걸 철회하지 않았다. B사의 영업 직원과 긴밀한 접촉을 한데다 통신회사간의 과열경쟁으로 소외된 소비자로서 괘씸한 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업하시는 분의 말씀에 따르면 광랜이든 전화선이든 인터넷 망 작업은 대개 끝났다라고 한다. 기본적인 수요는 한정되어 있고, 통신사마다 보유하고 있는 망으로 가입자수를 늘리다보니 경쟁이 붙을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소비자가 이득을 보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우선은 인터넷 요금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A사의 경우 인터넷 TV는 약정에 포함시키지 않아 위약금을 부과할 때 이 부분을 패키지로 묶길 권유받았다고 주장하면 허용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느 곳으로 옮기든 요금은 비슷하다. 몇몇 제휴 카드를 이용한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오래 이용한 고객에게 별다른 혜택없이 (울지 않으면 젖을 물리지 않는다.) 관리를 안 하다가 해지 의사를 밝혀야만 너 거기 있었냐는 식으로 대응한다. 

 인터넷 뿐만이 아니다. A사의 휴대폰의 경우 이른바 로얄 고객이라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한 통신사만을 이용하다 핸드폰이 고장나 기기변경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A사의 고객 관리를 한다면 충성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정책을 개발했을 것이다. 뭔가 대단히 복잡하고, 세세하게 따져보지 않는 이상 혜택이랄 것도 없는 것 말고. 하지만 대리점 특히나 직영점이 아닐 경우에는 중고폰이나 다름없는 핸드폰을 고객에게 권해주고선 생색을 낸다. 충성고객은 쉽게 맘을 바꾸진 않지만 한번 바꾸면 절대로 맘을 돌리지 않는다. 물론 기업이 손해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지만 어느 것에 우선 순위를 둬야할지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까다로운 소비자, 구매자가 될 생각은 없다. 결국 내가 상대하는건 격무와 클레임으로 녹초가 된 서비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걸 말한다고 시정이 될거란 기대를 하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B사로 옮기는 것을 탐탁치 않아하는 내게 '그럼 1년 뒤에 다른 곳으로 옳기면 되지.'라고 말하는 아저씨를 보자 문득 봉이 김선달이 떠올랐다. 사실 봉이 김선달은 둘째치고, 그대로 A사를 쓸 것 하는 후회가 먼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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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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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7: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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