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예능을 볼 때 입소문을 듣는 경우가 많다. (라디오 스타나 무한도전, 비틀즈 코드, 최근 보기 시작한 옥펑크는 예외. 허구헌 날 텔레비전만 본다고 생각할텐데, 맞다) 조여정의 깜찍한 연기와 낭만화 된 사랑이 아니라 이해 가능한 사랑을 보여준 ‘로맨스가 필요해’는 눈썹이 진한 소년 여자가 추천을 해줬는데 무척 재미있게 봤다. 요즘 통장 잔고를 걱정하는 여자 주인공은 흔해졌지만 헤어진 남자친구가 속을 긁어놓자 ‘니 마빡도 개박살을 내놓을거야’라거나 연하남에게 ‘관뚜껑 덮고 누워있다가도 내가 만나자면 벌떡 일어나서 나와’라고 하는 대사나 통통 튀는 조여정의 존재감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첨언하자면 이 드라마를 캐릭터가 흔하고 스토리는 살짝만 바뀐 로맨틱 코미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완벽한 이야기를 찾으려고 드라마를 보는 건 아니잖은가. 나로선 키득거리며 웃을 수 있는 이 드라마가 좋을 수 밖에.


 10아시아에서 소개해준 프로그램도 한 번씩 본다. ‘브레인’은 신하균이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게 뜨악해서 패쓰, 힐링캠프는 애석하게도 힐링이 안 돼 패쓰, 1박 2일은 강호동이 떠나고 캐릭터가 잡혔다고 하는데도 강심장과 마찬가지로 ‘좋은 생각’류의 감성을 전달하는게 맘에 안 들어 패쓰. 10아시아가 좋다고 하는 프로그램을 다 보진 않지만 10아시아의 글은 좋아한다.(특히 김희주씨의 글) ‘브레인’을 소개하며 자신의 욕망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변화하는 얘기에 공감하고 ‘나도, 꽃’에서 ‘나를 좀 안 사랑하면 어때’란 식으로 짚어준 부분도 맘에 든다. 그러게. 왜 우린 그동안 나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고, 세련되려 노력했을까.


 얼마 전에 머리하면서 음악과 결혼했다는 서태지의 그늘에 가려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이지아 기사를 본데다 10아시아의 펌프질도 있어 ‘나도, 꽃’을 한번 볼까 어떨까 싶어졌다.  김도우 작가의 작품이란 점과 ‘차봉선’이란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강희 때문에 ‘내 사랑’과 ‘애자’를 봤지만 신통치 않은 성격과 이야기가 맘에 들진 않았다. 이지아란 배우에 대한 호감이 없는데 이 드라마를 봐도 될까.


 일단 보고나서 판단하기로 하고 어제 5회부터 봤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해 갔지만 썩 눈을 끌만한 요소가 안 보였다. 그런데 이건 뭐지?

 봉선이 형사계 경찰이랑 대화하는 부분을 보다가 이래서 나도 꽃, 나도 꽃 했던건가 싶어졌다.


 31살의 봉선에게 선배 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왜 결혼은 안 하냐, 내가 소개해줄까란 말들을 건넨다. 봉선은 그냥 넘겨도 될 말을 인상 잔뜩 찌푸리며 그 소리는 입사 때부터 하셨잖아요 등등의 좋게 좋게 넘어가지 않는 말들을 쏟아낸다. 선배는 애가 왜 그렇게 뻣뻣하냐란 말을 하고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듯 그 장면은 그대로 넘어갈 뻔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재희가 좋게 넘어가지 않을 소리를 해놓고 뻣뻣하다고 말하면 다냐고 버럭 화를 낸다.


 그러니까. 오바해서 건든다 싶은데 왜 가만히 있는걸 예의 있다거나 침착하다는 식으로 덮어버리냐고. 언제부터 세련되고 여유 있는 자세가  성숙의 지표가 되었지? 얼마 전에 본 ‘세상의 모든 계절’의 메리도 세련미라고는 한톨도 찾을 수 없는 여자다. 감독은 좀 더 나아가 더 센 인물로 조카를 등장시키지만 구구절절함으론 메리가 한 수 위였다. 그런데 그게 왜 민폐란 말인가. 친구 아들의 맘을 오해했기로서니, 핑퐁처럼 대화 좀 못했기로서니, 싫은게 티가 나고 스위치처럼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게 어때서.

 

 이렇게 생각하며 메리에게 공감했지만 한편으론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란 생각을 했던걸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모난 사람들에게도 희망 한줄기쯤 주고 싶지만 봉선의 앞날도 영화가 끝난 후의 메리도 여전히 지지부진할 것이다. 다만 그냥 그렇게 모난대로 살아도 된다고,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조금만 미워하자고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긴하다. 그건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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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2-01-0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펑크는 4화까지 드문드문 본 소감으로는 기대 이하, 나도 꽃 역시 드문드문 봤는데 작정하고 볼 마음이 안 들던데요.
꾸준하게 작정하고 보는 건 하이킥 뿐, 으흑, 요새 드라마는 다시 빈곤해졌어요.
(아 참, 종편임에도 불구하고 빠담빠담을 오매불망 기다리면서 보고 있군요. ㅋ)

Arch 2012-01-08 20:56   좋아요 0 | URL
김옥빈은 생각보다 별로였지만 이태선과 데빈(대빈인가, 뭐였지)이 참 좋던데요. 좀 더 다듬어지고 각자의 개성이 더 드러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도 꽃은 저도 그 장면이 괜찮네 하고 데면데면해졌어요. 여주인공을 좋아해야 그 드라마가 좋아지는데 이지아의 연기톤도 배우 자체의 매력도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요.
김병욱은 시트콤을 참 잘 만드는 것 같아요. 윤계상에게서 어떻게 저런 성격을 뽑아낼까 싶어서 더 좋아요.
빠담빠담은 노희경 작품이라 기대했는데 저는 생각보다 별로여서 지금은 안 보고 있어요. 여자 주인공의 성격이 좀 뻔한 느낌이 들었고 정우성의 연기가 뻣뻣하단 생각이 들어서. 그사세는 참 좋았는데.

치니님, 담에 담에 또 재미있는거 있으면 알려주세요. 성균관 스캔들은 보셨어요? 어린 연기자들이 너무 어깨에 힘준 것 같긴 하지만 또박또박 얘기를 잘 만들어나가요. 성스가 뿌리깊은 나무보다 좋아요.

다락방 2012-01-0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 저 위에 ttb 광고한것 중에 [애욕전선 이상없다]는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던 그 만화인가요? 그거 되게 웃긴데. 저 아치 광고보고 으응 이건 뭐지, 내가 아는 그건가 싶어서 클릭해봤다가 보관함에 슝- 던져넣었어요. ㅋㅋㅋㅋㅋ(페이퍼와는 딴소리네요 ㅎㅎ)

Arch 2012-01-10 09:30   좋아요 0 | URL
다락방 뜬금없긴^^ 맞아요. 그 작가가 쓴 그 만화예요. 콧털 삐져나온 사람들이 비비꼬인 대사 날리며 노는 만화요~

숲노래 2012-01-09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왜 짝을 지어서 빨리빨리 시집장가를 보내려고 애를 쓸까요.
이런 말 듣는 사람이
얼마나 짜증스러울는지
어느 만큼 생각을 해 볼까요.
아마 이 연속극 보는 사람들은
이 연속그에서 나오는 말을 또 들으며
또 골이 아프겠군요..

시집장가 아닌 아름다운 삶을
예쁘게 누리면 되는데...

Arch 2012-01-10 09:31   좋아요 0 | URL
할말이 없어서 그러나보다 생각한적도 있어요.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니까 고작 생각해낸게 그런거죠. 직장은 잡았냐, 결혼은 했냐, 애는 낳았냐, 둘째는 언제... 저도 그런말을 생각없이 할 때가 있어서 좀 웃기단 생각을 하긴 했어요.

Forgettable. 2012-01-09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생각 류의 감성이라 ㅋㅋㅋ 전 "아오 자막이 오글거려서 시러 ㅋㅋ" 정도밖에 안되던데 ㅋㅋ 이런 느낌이었군요. 전 예전부터도 이지아 별마음 안생겼는데 나도꽃도 주인공이 징징거리고 무뚝뚝하고 툴툴거리다보니(제가 본 부분만 그럴라나) 딱히 볼 맘이 안들더라구요. 그런 캐릭터는 주위에도 많으니 ㅡㅡ 하지만 그런 여자애 목매는 재벌 훈남은 없으니 ㅡㅡ

Arch 2012-01-10 09: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막도 오글오글거려요.
저도 그랬어요. 머리 컬링이나 스타일이 예쁜 여자 주인공이 좋은줄 알았는데 제가 좋아하는 연기톤이 있더라구요. 기광인 예쁜데 한두번 밖에 안 나오니...
엄마와 오해가 풀린 부분은 찡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쭉 볼만한 힘을 얻지 못했어요. 결국 모난 캐릭터는 드라마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가 싶어 씁쓸.

2012-01-10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1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무실 상사가 할 일이 없는지 일하는 직원을 꼬여내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상사의 요설에 따르면 조직에 맞는 사람은 누군가 추천해준 사람이란다. 공개로 사람을 모집하는 건 검증이 안 된다는거다. 할 일 없어 사람들 달달 볶고 오만 간데 참견하고 잔소리하기를 서슴치 않는거야 그렇다치지만 비개념어를 남발하는 것도 모자라 호응까지 원하는건 정말 꼴불견이다.

 

 친밀한 관계의 누군가가 얼토당토 않는 얘기를 하면 건성으로 듣거나 대꾸를 안 한다. 서로 엉터리라는걸 알기 때문에 말한 사람도 호응을 보이지 않은 사람도 선선하게 넘어간다. 하지만 직장에선 상사가 엉터리로 말해도 가식적으로라도 호응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싸가지 없는 누구로 찍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사의 조직론에 따르면 공개채용을 한 사람은 말을 안 듣고 일을 잘 안해서 부적합하단다. 상사가 일하는걸 본적이 없어서 역시 개념없단 생각이 들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직장에선 일을 잘하는 것만큼 눈치 있고 무능한 상사들을 두루두루 챙겨주며 ‘일 하는 척’하는 게 더 중요하다. 지난번 외교관 자녀 특채채용에는 분노했지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일들에는 무감해진다.

 

 지원자들은 이번에도 그랬듯이 다음에도 들러리가 될 것이다.

 

 줄 타고 들어온 사람들은 메이드 인 조직원일까 싶을 정도로 조직 적응력이 뛰어나고 일도 잘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부모 욕 먹을까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뿐이다. 자신도 촌스럽고 한심하지만 자신의 밥줄을 만든 줄이 결국 족쇄가 되는거다. 일이 아니라 평판과 조직의 생리를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내가 속한 조직만 그런걸까.

 

 상사의 상사가 나오지 않아 2시간 동안 점심시간을 보내고 온 상사가 다시 흰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언제까지 들어줘야할까.

 

 일이 끝나고 집에 가면 장판을 켜놓고 이불 속에 쏙 들어가 성균관 스캔들을 본다.

 

 원칙주의자 이선준의 주장에 격하게 동의하며 이선준 같은 사람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융통성 없이 꽉 막혔지만, 올바른 길로 가려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사람. 둥글둥글하지 못하지만 기죽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사람. 드라마는 이선준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과 성장을 다룰 것이다.

 

 현실에서도 성균관 스캔들처럼 우여곡절 끝에 모두가 원칙적이고 공정하게 지내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도리어 현실은 ‘용서받지 못한 자’와 닮은건 아닐까. 어쩌면 이선준의 원칙이 모든 불합리와 관습적인 것에 자극을 주는건 노론의 수장인 아버지의 후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승영이 친구인 태정의 빽을 믿고 까불었던 것처럼. 결국 원칙주의자의 행복한 결말을 위해선 상병쯤의 빽이 아니라 좀 더 굵직한 빽이 필요한걸까. 꼬우면 니가 상사해라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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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2-01-08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 궁금한 거 - 그러는 그 상사 님은 공개 채용으로 뽑혔어요 아니면 줄 타고? 본인이 공개 채용으로 온 거면 저리 말하지 않겠다 싶기는 해도, 그래도 궁금. (난 왜 이런 것들이 일일히 궁금할까요. ㅋㅋ) 에혀, 아무튼 아치 님네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조직이나 다 그럴 거다라는 게 거의 확실해서 씁쓸하기 짝이 없네요.

Arch 2012-01-08 15:39   좋아요 0 | URL
그분은 시험봐서 들어왔죠. 이 조직은 시험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정직원이고 아닌 사람들은 줄타거나 지원해서 들어와요. 타잔도 아닌데 막 줄타고^^
그러니까요. 여기만 벗어나면 좋겠다 싶지만 나가도 다를게 없다는걸 아니까 멈칫거려요.

숲노래 2012-01-08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arch님은 그 회사에 어떻게 들어가셨나요?
설마 줄타기로... ㅋㅋㅋ
어떤 회사인지 몹시 궁금하네요 @.@

그러니까, 빨리빨리
그 상사보다 웃사람이 되어야
주절거림과 흰소리에서 풀려날 수 있겠군요 ㅠ.ㅜ

Arch 2012-01-08 21:00   좋아요 0 | URL
제가 지원한 분야는 줄로 세울 수 있는 자격 조건을 갖춘 사람이 없어서 (나름 희소가치 있는 인력) 공개채용으로^^ 줄타기하면 제 줄은 여러모로 욕 들어먹었을거에요.
어쩌면 상사가 취미를 갖도록 독려하는게 더 빠른 방법일지도 몰라요.
 

 우듬지는 나무의 꼭대기 줄기이다. 우듬지란 말을 두권의 책에서 본적이 있다.


                                         

 

 

  

 밤은 노래한다에 나온 구절은 '삼나무 높은 우듬지까지 올라가 본 까마귀, 다시는 뜰로 내려앉지 않는 법' 이다. 어떤 경지 혹은 이면을 봐버린 사람은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김연수는 소설 속에서 이 구절을 여러번 불러낸다. 하라 켄야는 '포스터를 훔쳐라'에서 우듬지에 올라가 본 사람은 그곳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라 켄야는 디자이너라는 본업만큼 에세이스트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그의 글은 에세이 탐독 전문 독자인(누구?) 내가 봐도 참 좋아 두장 건너 한장은 꼭 책 귀퉁이를 접어놓을 정도였다.

 김연수의 우듬지에 대한 얘기는 멋진 말이긴 한데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버릇이나 습관을 기껏 바꿔놓고도 무심결에 그래버리는 것처럼 이면의 충격이나 감동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까마귀는 다시 뜰을 거닐고 가끔 우듬지를 바라보는걸 낙으로 삼지는 않을까. 아니면 우듬지에 올라가본 적이 없어 우듬지라는 이면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치니님의 사루비아 다방 선정 도서 추천책을 읽다가 오오, 하다가 아차 싶은 구절을 만났다.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에 관한 부분인데 다음과 같다.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가 뭐야?” 보스는 선우에게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캐묻는다.

 보스의 믿음은 원인-결과로 확인되는 부하의 객관적 충실도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 객관성을 비집고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부하의 주관성은 단지 배신의 시늉이 아니다. 말하자면, 보스는 그가 조직의 세계에서 ‘돌이킬 수 없이’(이것은 이 영화의 채택되지 못한 제목이기도 했다.)어긋난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직감했던 것이다. 사과의 맛을 본 아담이 돌이킬 수 없이 낙원에서 멀어진 것처럼, 소크라테스를 만난 플라톤이, 혹은 예수를 만난 바울이 돌이킬 수 없이 변해간 것처럼, 그 여자의 어떤 이미지를 접한 그는 이미 객관성(인과의 충실성) 속에 붙잡아둘 수 있는 조직의 단말기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스의 과도한 반응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선우는 늘 자신의 소임을 오차 없이 수행하는 해결사로서 ‘체계의 노동’에 완벽했지만, 스쳐 지나가야만 했던 그 여자의 인상에 밟힌 그는 실없는 ‘정서의 노동’을 자임하며 보스의 체계와 치명적으로 대치한다. (‘체계의 노동’이나 ‘정서의 노동’과 더불어 삼발이를 이루는 ‘인식의 노동’은, 선우가 자신이 몸 바쳐온 그 체계와 치명적으로 대치하는 과정을 통해서 수행적으로,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다.)

 우듬지는 버릇이나 습관보다는 좀 더 관념적이다. 예컨대 관습은 도덕의 이름을 빌려 제도에 얹혀있는 것 뿐이라던가, 여성우위나 남성비하가 아닌 진짜 페미니즘은 뭘까, 지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란 의식을 하면서 사람의 행동이나 말은 예전과는 좀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을 습관이나 버릇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조금 달라진' 것일 뿐이니 뜰로 내려앉는건 순간일 뿐이다.

 이런 면만 놓고 보면 나는 사람의 변화나 진보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권하고 나에게 강박적으로 주문을 외우거나 자책하고 속상해하는건 왜일까. 자기계발와 위안의 덫 사이에서 헤매는걸까. 여전히 내게 뭔가 남았다는 희망이 있는걸까. 느즈막한 저녁에 배불리 밥을 먹고 '성균관 스캔들'을 보는 정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는데서 왜 불안한 만족을 느끼는걸까.

 '포스터를 훔쳐라'를 읽으며 모두가 모두의 이야기를 한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농심은 과자의 뒷부분에 나온대로 과자를 만드는걸까? 회사 컴퓨터로는 아무리해도 안 되는 양면 인쇄를 같은걸 제본소에서는 어떤 식으로 척척 해내는걸까.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기자, 소설가처럼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다면 어떨까. 물론 인터넷 매체에 자기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기술적이거나 단도직입적인 것 말고 문화인류학자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듯이 촘촘하고 삶의 결을 따라 이야기를 한다면 어떨까.

 이런 방면에서 가장 뛰어난건 하라 켄야가 아닐까 싶다. 디자이너로서 철학은 물론 일을 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까지. 그의 글쓰기처럼 나도 나의 일에 대해 쓰려 했으나-피아노는 어떻게 닦아야할까(가 그 시도)-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상황을 시트콤처럼 보고 무리해서 웃기려고 한다. 누군가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소재나 전문적인 내용도 과도한 의욕으로 흐지부지 되어버린다. 어쩌면 일에 대한 철학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듬지에 올라가보지도 못했는데 우듬지 얘기를 한다니, 아니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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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5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2-01-0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알콩달콩하고 속 깊은 페이퍼. 재밌다 재밌어요. :)

Arch 2012-01-04 19:37   좋아요 0 | URL
히~ 고맙습니다. 치니님.
뭔가 대단한걸 쓰고 싶어서 무려 한달 동안 이 페이퍼를 묵혀뒀는데 결국 제가 할 수 있는건 대단한 글을 쓰는것보다 한편의 페이퍼를 '쓰는 것'이란걸 알았어요.

nada 2012-01-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 참 좋아요.
아치님 글 좋다니까요.
아치님 속내는 어떨지 몰라도, 과도한 의욕이나 무리해서 웃기려는 욕심은 별로 느껴지지 않아요.

저도 나름 "에세이 탐독 전문 독자"인데ㅎㅎㅎ 하라 켄야 읽어봐야겠어요.
아치님 덕분에 우듬지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저는 우듬지에 올라가고 싶은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뜰에서 깔짝거리는 삶도 괜찮다 싶고.

근데, 아치님도 이제 사루비아 다방 인문강좌 나가시는 거예요?^^

Arch 2012-01-08 13:54   좋아요 0 | URL
으아, 아이.. 좋아라.
아무래도 분위기를 타는 것 같아요. 웃기겠지, 했는데 안 웃으면 내가 좀 오바했나 싶은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네, 하라 켄야는 글을 참 잘 쓰는 디자이너예요. 우듬지의 비유는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단어들 좋아요.

한번쯤 나가고 싶은데 워낙 짬이 안 나네요. 치니님이 인문강좌 얘기하셨을 때 읽어본 책이에요. 이 책도 괜찮아요.
 

만약 그것이 마지막 가치라면…


사진도 찍지 않았고 몇 가지 잡무를 처리하고
편지는 펑크를 낼 심산으로 밤 11시 좀 넘어 자리에 누웠다.
거의 독서를 하지 않는 내 머리맡에는 몇 권의 책이 항상 있다.
호시노 미치오의 책 세 권은 간혹 들추어 보기 위해 가장 가까이 있다.
그리고 <뿌리깊은나무>의 몇 권 책들은 읽지는 않지만 하나의 경전으로
그 옆에 놓여 있다. 그리고 아룬다트 로이의 <9월이여, 오라>도
고정 목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언급한 책들은 이를테면,
‘내가 책을 쓴다면’ 이런 책들의 가치에 절반이라도 필적해야
종이로 소용된 나무에게 미안함이 덜할 것이란 기준점이 되는 책들이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교체하는 책. 잡지다. 내가 읽는 유일한 잡지.
<전라도닷컴> 신년호가 지난 토요일인가 내 책 상 위에 배달되었다.
읽는데 까지 읽다가 평소 보다 이른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에디토리얼에 해당하는 편집장의 머리글을 별 생각 없이 읽었다.
딱 한 페이지의 글을 읽고 난 후, 일어나서 카메라를 들고 내 머리맡의
책 사진을 찍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잡지 <전라도닷컴>이 힘들다. 사실 항상 힘들었다.
그러나 2012년 1월호 머리글에 편집장이,
‘…이러다가 잡지를 온전히 지킬 수 없겠구나…
하여 몇 번을 망설이다가 참 염치없는 부탁을 드린다.
한 분의 독자가 올해가 가기 전에 딱 한 사람의 새 독자를 만들어주시길!…’
이라는 글을 올리기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서 깜박이는 커서를 얼마나
바라보았을지 짐작해 보면 내 가슴이 다 오그라든다.
불과 며칠 전 송년의 끝자락에 전라도닷컴의 몇 분을 지리산닷컴
송년회 자리에 청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시지 못했다. 마지막 날까지
일을 하고 계셨다. ‘아, 31일은 놀아야죠!’ 라고, 별 생각 없이 올 수 없는
손님들에게 지청구를 부렸다.

세상에는 사라져 가는 마지막 가치들이 있다.
이제는 ‘종이 책’이라고 부른다. 비트 언어로 만들어진 다른 책이
책 시장의 주인으로 자리할 것이란 예측을 하기도 한다. 그런 소리에 대해,
‘그래도 종이를 넘기는 맛’을 논하는 사람들은 생 후 1년이 되기도 전에
아빠의 아이폰을 터치해서 저장된 사진을 보는 아이들이 느끼는 ‘맛’의
힘과 지속성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2012년 1월 현재 통권 118호까지 발행하였다.
거의 광고가 없는, 단행본도 아닌 잡지를 118호까지 발행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발행인 집안이 재력가이거나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미쳤거나.
둘 중 어떤 경우의 수이건 잡지 <전라도닷컴>은 마지막 가치다.
종이와 비트의 접점에서 마지막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담는 그릇의 종류
문제에 불과하다. 지금의 <전라도닷컴>을 만드는 ‘미친 사람들’이 아니면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발로 쫓아다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가치다.
아직은 안 된다.
118호를 발행하는 동안 전라도닷컴이 전해왔던 이야기들은 사라져 가는
마지막 가치들의 목소리를 붙잡는 일이었다.
잡지 <전라도닷컴>을 잃는다는 것은, 마지막 가치를 담을 그릇을 잃는 일이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돈 빌려달란 전화를 하기 전에는 담배가 잣고
가슴이 오그라든다. 그러나 구차해 보이고 싶지 않아 항상 당당하고
뻔뻔하게 용건을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과 다르게 가슴이 오그라든다.
필요한 가치를 지키자는 부탁을 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을 오그라들게 한다.
커피를 파는 가게는 커피 맛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밥을 파는 가게는 밥맛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책은, 잡지는 내용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 내용들을,
그 가치들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지 않는다.
결국 작은 힘들을 보태야 한다. 한 번의 잡지를 발행할 수 있는 광고도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결국 광고라는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성을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기구독자를 더 많이 확보하는 길 이외에는 없다.

잡지 <전라도닷컴> 정기구독을 권한다. 일 년 정기구독료 오만 원이다.
팍팍한 우리네 삶에 쉽게 지출할 수 있는 액수는 아니다. 쇼핑몰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간혹 뭔가를 팔아 보니 삼만 원이 심리적 기준선인 듯하다.
그러나 자신 있게 권한다. <전라도닷컴>이 전하는 이야기들의 가치를
자신하기 때문이다.
http://jeonlado.com 로 가셔서 신청하실 수 있다.
062-654-9085로 전화를 하셔서 신청하실 수도 있다.
이 글을 보고 신청하실 때에는 <지리산닷컴 소개로 신청한다>고 말씀해 달라.
그런 분이 일백 사람이면 <전라도닷컴>에 밥 한 그릇 사라고 행패를 부리고 싶다.
이 글을 만드는데 거의 두 시간 걸렸다.
일상적인 글 보다 두 배는 더 걸린 것이다.
나 역시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다.


4dr@naver.com

 

 

 메리포핀스님 서재에서 보고 지리산닷컴을 방문해 글을 퍼왔다.

지리산닷컴을 보니 http://haeumj.tistory.com/94 이런 포스팅도 있다. (이분 밥상 완전 부럽다)

개인적으로 구독이 어렵다면 동네 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한다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잡지가 매체에 소개되어 이 잡지를 왜 나만 몰랐나 안타까워서 계속 안타까워한적이 있다.

안타까움이 이어져 바로 잡지를 찾아서 본다거나 구매를 하는 연속적인 과정은 늘 그랬듯 지지부진이었다.

 우연찮게 시장 구경을 하다가 조그만 건물에 자리한 사무실을 발견했고 사무실을 찾아가 따뜻한 차 한잔 얻어마시며 편집장인 황풍년씨 책도 보고 민들레 통신이란 책도 봤다. (사무실도 가봤다고 자랑하는 중이다.)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이것저것 사들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날 천원짜리 국수에 오뎅을 빠뜨려 먹으며 이런 국수는 맨날 먹어도 좋겠단 생각을 했는데.

 

 전라도닷컴, 재미있다. 부러 해학이니 풍자니 하지 않아도 단어 하나마다 표정 한컷마다 재미있어 뜨뜻한 구들에서 같이 읽으며 얘기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안타까움이 계속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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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1-0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밥상 사진 보니 금방 또 배고파요. ㅇ.ㅇ
아치님 글 읽으니 과월호도 받아보고 싶어졌어요.
음~ 새해부터 너무 지르면 안되는지라, 그래도,
음~ 심각 모드.. ㅋ

Arch 2012-01-04 19:17   좋아요 0 | URL
제가 다 읽고 보내드릴까요? 저도 여태 안 읽고 있어서...
정말 맛난 밥상이죠!

메리포핀스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숲노래 2012-01-05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라도만 아니라
경상도도 경기도도
서울도 인천도 부산도
충청도도 강원도도
저마다
재미난 이야기잡지가
태어나면 좋겠어요..

Arch 2012-01-05 12:45   좋아요 0 | URL
^^ 그러니까요. 모든 매체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어 아쉽습니다.

하이드 2012-01-05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좋은데요? 어떤 책인데요? 구구절절 사연보다 어떤 글들이 있는 책인지 힌트라도 있으면 마음이 더 동할것 같은데요.

Arch 2012-01-05 12:44   좋아요 0 | URL
전라도 닷컴은 전라도 사람들, 전라도 문화, 전라도 풍광까지. 전라도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잡지입니다.

이 잡지가 좋은 이유는 우선 전라도 이야기를 하는 게 좋고, 사투리 그대로 기사를 써주는 게 좋아요. 전라도 이야기를 누군가 먹고 즐기기 위해 겉절이로 하는게 아니라 바로 옆에서 보는 것 마냥 생생하게 전해줘서 더 좋아요. 어르신들의 입담이 고스란히 녹아든 지면을 읽는 재미가 있어서, 교훈이나 감동을 주려고 글을 쓴게 아닌데도 잡지를 읽다보면 나도 그 자리에 끼고 싶을 정도로 포근해서 좋아요.

송년회 모임 기사 일부인데요. 잡지의 정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아 발췌해봤습니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문창과 교수)의 시낭송이 먼저 마음을 덥혔다. 독자들과 함께 나눈 시는 ‘방을 얻다’.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고 싶어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리던 시인이 수더분한 꽃들 피어있는 마당에 들어서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말 꺼내자 그 집 아짐이 들려준 대답이 아름다운 시이다.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깃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 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http://jeonlado.com/v3/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사이트 주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서재분이 귀농귀촌 3종 세트 책을 권해주셨다. 이 책은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인데 인용한 곳은 ‘살구나무와 이웃들 그리고 신입생’ 부분이다. 표지가 명랑해서 자의식 과도한 귀농형 인간의 회고록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웬걸, 완전 괜찮은 책이었다. 도시에서도 고만고만 행복했으면서 시골에 가면 아주 많이 행복해질 것처럼 ‘시골을 낭만화’하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타자화하는건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은 그 지점을 잘 짚어준 귀농, 귀촌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성실한 기록자이다. 때론 성실함이 지나쳐 적나라하기까지 하지만 시골에서 사무장을 한다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 수 있을까란 막연한 질문들을 곰곰이 되씹게 한다. 지리산 닷컴의 이장인 저자가 쓴 이 책은 내가 어렴풋이 꿈꿔온 기획이기도 했다. 벼의 사계를 담고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꼴리는대로 기록하고 알아가고 묻는 것 말이다. 지난해에는 마쓰모토 하지메를 닮고 싶었는데, 올해는 권산씨의 씩씩함을 닮고 싶어졌다. 몹쓸 변덕 같으니 



‘지정댁 방식’-시멘트 마당 때문에 오래된 살구나무를 베는 것-이 이곳 사람들 방식이고 그녀들로서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이곳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이곳 주민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전한 이곳 사람이 되는 것은 농약과 화학비료르르 인정하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날은 아닐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녀들이 살아왔던 더 많은 이야기들을 통째로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자연이다, 생태다’ 도시에서는 책에서 읽은 글들을 보고, 또는 간혹 여행길에 만나는 돌담과 흙길의 소담함에 마음을 두었지만 막상 시골에서 돌담과 흙마당은 애물단지다. 사는 사람들에게 돌담은 매년 보수해야 하는 귀찮고 낙후한 어쩔 수 없는 담벼락이며, 흙마당은 고추 하나 내어 말리지 못하는 질척거리는 땅에 불과하다. 철이면 철마다 건조시켜야할 작물이 어디 한두 가진가? 도시 사람들은 자연건조 태양초에 유기농이다 뭐다를 더해서 원하지만, 막상 그들이 찾는 자연광 건조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시멘트 마당이 적격이다. 시멘트 마당이 없었다면 도시에서 먹는 고추의 구 할은 건조기에서 말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돌담과 자연건조 태양초는 공존하기 힘든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지정댁은 ‘보로꾸 담’을 원하고 도시 사람들은 ‘자연건조 태양초’를 원한다.

 

 내가 왜 농약을 하지 않는지 그녀들도 잘 안다. ‘뭔 말인지 알어. 한번 혀봐.’ 이것이 그녀들이 나를 바라보는 기본 시선일 것이다. 나는 그 ‘차이’를 인정하고 완강하게 저항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머물다보니 농약조차 그녀들 기준으로는 ‘작물들이 짠혀서’ 약을 주고 주사를 처방하는 일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은 작물들을 사랑해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정기적이고 습관적으로 뿌려준다.

 

 그렇게 뿌리고 남은 농약을 이른 새벽에 두어 번 나의 텃밭에 뿌린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무슨 인생철학이 손상된 것처럼 시비 걸 생각은 전혀 없다. 그녀드르 방식으로 나를 도운 것이다. 무엇보다 나의 텃밭은 생계형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주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 또한 그녀들의 본심을 염두해 둔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녀들도 안다. 그래서 간혹 해거름에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고추 따갖고 가. 끝물이라 요즘은 약 안 흔께 걱정 말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농약 텃밭이 아니라 이런 일상의 신뢰와 배려다.


 일상적으로 나와 이웃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룰이 존재한다. 이곳 아주머니, 엄니, 할머니들은 지리산닷컴 사무실 문턱을 넘어서지 않는다. 용건이 있을 때면 가장 가까운 지정댁이나 운암댁, 대구댁, 대평댁은 각자의 방식으로 밖에서 나를 부르고 대꾸를 기다린다. 이제 창문이나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와 박자, 강도만으로 누가 나를 찾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절대 지리산닷컴 문턱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차 한잔 마시자는 나의 제안은 항상 거절당한다.


 나의 초청을 거절하는 그녀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불쑥 창문을 두드리고 나의 인기척을 확인하면 밖에서 창문을 열고 감자나 옥수수 접시를 넣어주고 간다. 그녀들에게는 한가로이 앉아 커피를 나누며 방담을 나누는 문화가 없다. 그것은 사치다. 시간낭비며 그 시간에 ‘깨나 털겠다’라는 것이 살아온 이력이 남긴 유전적 문신이다.


 시골은 태생적으로, 구조적으로 도시와 다른 방식의 번잡스러움과 간섭이 많은 곳이다. 말이 나의 입술을 빠져나가기도 전인데 내가 하려 했던 말은 이미 마을 입구에 도착한 경우가 허다하다. 도시는 익명을 보장하지만 이곳은 익명이 존재할 수 없다. 마을에 외지 사람이 등장하면 금세 마을로 소리 없이 전해진다. 이를테면 ‘요즘 젊은 것들은 어른 앞에서 담배를 펴쌓더만’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만이, ‘그 컨테이너 박스 있자녀? 아 그 즐믄 놈이 길 가상에 따악 하니 서서 담배를 펴쌓네’와 같은 구체적 대상을 향한 비난으로 진화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귀찮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을과 담을 쌓는 경우이다. 그러면 마을의 그녀들은 친절을 주머니 깊숙한 곳으로 집어넣어버린다. 사생활을 존중하는 방식과 문화가 다른 것이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사생활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하고 이곳의 그녀들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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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1-0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부터 가을까지는 바쁘시고, 겨울 한 철은 모두들
그야말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면서 지내셔요.
겨울에 초대를 하시면 즐거이 오시지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좋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Arch 2012-01-03 12:46   좋아요 0 | URL
된장님 반갑습니다. 서재에 한번 들른적 있었는데^^ 아이들이 참 예쁘더라구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간혹 이렇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촘촘하게 보듬는 이야기는 좋아요.

nada 2012-01-0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약을 치네 안 치네, 원주민들과의 실랑이는 어느 귀촌일기에나 나오더라구요.
근본적으로는 나라가 농업을 버렸기 때문일 텐데, 무조건 농민들 탓만 할 수도 없고..
참 어려운 문제예요.

길을 내든 뭘 하든, 어떻게든 나무 서 있는 자리를 피해볼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베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안타까워요.
그 자리를 몇 십 년 지킨 나무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ㅠㅠㅠ

Arch 2012-01-04 14:32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말미에 국밥집 얘기 한 부분이 찡했다는거죠~ 저도 그랬어요.

농약도 유전자변형도 실시간으로 인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사를 짓는 분들이 문제가 아니라 예쁘고 윤기나고 단 야채나 과일을 사려고 하는 소비자들 문제 같단 생각도 들고. 생산지와 멀리 떨어져있다보니 농약에 대한 걱정도 별로 안 하는 것 같고. 걱정을 하는 맘을 돈벌이로 보고 유기농 마케팅에 열 올리는건 또 싫고. 정말, 그래서 어쩌라고...인 것 같아요.

끝부분에 왜 자기는 농촌에 와서 사람들을 바꾸려했는지 모르겠다며 도시 사람들을 바꾸려고 해보진 않았다는 얘기를 하는데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나온 얘기가 생각났어요. 스리랑카에서 쓰나미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서양 의료인들이 대거 투입되거든요. 물적 지원을 넘어서서 좀 과도할 정도로. 그렇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대거 미국으로 건너가 굿을 하거나 민간 치료법을 알려준다면 어땠을까요. 앞엣건 있을 법한 일인데 뒷 상황은 좀 뜬금없게 느껴지잖아요. 그 차이를 세밀하게 기술하고 느끼고 싶은데 잘 안 돼요.

나무 입장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자의 심경변화나 농촌 적응기가 더 흥미로워서. 살구나무가 있는 마당을 시멘트 바닥으로 만들려고 베어낸거라 태양초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2012-01-05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