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조금 더 나이가 먹으면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먼데 나설땐 자전거를 굴리고, 마당에는 고추랑 상추를 심고, 마당엔 포장을 하지 않아 비오는 날이면 땅이 좀 패이고, 바람에 흙먼지도 날리게 하고싶다.

 옥찌들이 놀러오면 작은 밭에 심어둔 옥수수를 따서 가마솥에 쪄내고 놀이터 모래흙보다 더 찰기있는 마당흙으로 소꼽놀이를 할 수 있게 하고싶다.

 나중에 아주 가까운 날엔

 꼭 이런 집에서 두런거리는 새소리에 잠을 깨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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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0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난 어릴 때 저런 집에서 살아서 그런 로망은 없어용! ^^
시니에님이 살면 그때 놀러갈게요~ 괜찮죠? ㅎㅎ

푸하 2008-06-07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이런데서 살고 싶네요. 뭐가 필요할지 차차 알아봐야 할듯...^^:
안녕하세요 시니에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Arch 2008-06-0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뭐 사람에 따라서 다르니까요. ^^ 놀러오신다면 제가 온돌 좀 뜨끈하게 해놓겠습니다.// 푸하님 반가워요. 필요한건 글쎄 뭘까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것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삼일 연휴 아닌가. 오늘은 방청소를 하고 군산 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 말고는 할일도 없었어요. 그래서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난 옥찌들에게 간곡히 부탁했죠.

-옥찌, 딱 한시간만 더 자자.

-그럼 우린 뭐해? 나 심심해.

-응, 이모가 조금만 더 자고, 같이 놀이터도 가고 정말 재미있게 놀아줄게.

-알겠어. 시계 어디로 가면? (지희는 아직 작은 바늘하고 큰 바늘을 헷갈려한다.) 그러니까 작은 바늘 8에 가 있고, 큰바늘이 12에 가있으면 8시거든. 그때까지만 잘게. 이모가 맛있는 것도 해줄게.

- 알겠어. 내가 지민이 데리고 잘 놀게.

 쉽게 수긍하는게 미심쩍긴 했지만 잠도 오고, 아까 꾸던 꿈이 간만의 훈훈한 내용이라 다시 이어서 꾸고 싶기도해서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죠. 꿈은 커녕 기억도 안 나는 뒤숭숭한 장면을 모자이크처럼 구겨 넣다가 더이상은 잠이 안 와 주섬주섬 일어났죠. 집안은 괴기할 정도로 조용했어요. 한시간도 채 안 됐지만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죠.

 거실 곳곳에는 옥찌들의 흔적이 있었어요. 베란다는 엄마 아빠 놀이용 요리터로 변해 물이 흥건했고, 방바닥은 뭘 뿌려놨는지 까슬거렸어요. 그나저나 얘넨 뭘하길래 이렇게 조용한거지?

 옥찌들의 방에 들어섰죠.


현장 사진, 증거 자료1

 콩순이 인형은 발가벗긴채 다리가 의자에 깔려 있고, 온갖 물건들을 다 끄집어낸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죠. 옥찌들은 어디? 요 녀석들은 창문가에 가서 종이를 뿌려대는 중이었어요.


현장 사진. 증거 자료2

 막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며 뭐라고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야 어쩌고.

-옥찌, 대체 이게 뭡니까. 이모가 정말 딱 1시간이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옥찌 방으로도 모자라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으면 대체 이모가  몸이 몇개도 아니고 이걸  다 치우란 말입니까? 그리고 지금 위험하게 창문 열어놓고 뭘 하는겁니까.

 내가 잔 잘못도 있고 해서 조근조근 얘기를 했더니 평소엔 말 많은 누나 덕분에 발언권이 없던 지민이가 한마디 했다.

지민 -이모, 편지.

잠꾸러기 이모 -무슨 편지

지희 - 이모 내가 나무한테 편지 써서 보냈거든. 나무한테 잘 받았냐고 물어본거야.

 범행 현장을 바로 잡아내긴 했으나 이거 혼내지도 못하고, 대충 후다닥 방을 정리하곤 나무가 반송시킨 편지를 회수하러 나갈 수 밖에요.

 사건 조사 결과 방바닥의 까끌거리던건 뛰어 다닐때 미끄럼 방지용으로 뻥튀기를 부숴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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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6-0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에님 조카들 얘기 읽다보면, 동화작가도 아니면서 동화의 모티브가 불쑥불쑥 떠올라요 ^^

Arch 2008-06-08 13:17   좋아요 0 | URL
이참에 동화 한편^^ 잘 쓰실 것 같은데.

2008-06-08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배철수의 음악텐트 방송 중.

 오늘은 네버엔딩 팝스토리의 임진모씨와 함께 한 날.

대화 도중 IQ 얘기가 나왔다.

임- 제가 IQ가 좀 낮아요.

배- 아닙니다. 임진모씨 평소에 하시는 말씀이나 출신 학교 등등을 두루 보면 IQ높은 편입니다.

임- 아, 그런가요.

배- 그럼요. 대신 EQ가 좀 낮죠.

임- 그것보다 제가 자신있는게 MQ거든요.

배- 그게 뭔가요?

임- 도덕지수라고.

 이때 전파를 타고 확인불명의 흐느낌이 들렸다. 라디오에 귀를 바짝대자 소리는 굴곡을 거듭한 끝에 배철수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아저씨의 트레이드 마크인 껄껄거리는 웃음 소리.

배-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오바해서 웃었습니다. 임진모씨 간만에 큰웃음 주시는데요. 자기 입으로 MQ가 높다고 하시는건.

임- 아 그런가요?

 이 두분의 대화가 한쪽이 던지면 받고, 밀고 당기는 재미가 있는 만담처럼 찰진 맛을 지닌건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고, 정말 뜬금없이 재미있다. 내 얕은 필력으로 그 뉘앙스와 재미를 옮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하면 굳이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예사로 넘기지도 않는다. 느긋하지만 지겹지 않고, 성급하게 톡톡튀거나 막무가내로 구수하지도 않다.

 다만 분별력과 성실함으로 목요일 저녁을 촘촘하게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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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06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Arch 2008-06-06 14:44   좋아요 0 | URL
에헴^^

hnine 2008-06-0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배 철수 씨의 목소리 자체가 어떤 위로와 힘이 될 때가 있어요.
차분한 여성 DJ의 멘트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들 하던데 저는 이분의 목소리, 말투가 더 그렇던걸요.
IQ, EQ, MQ, 저도 하나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

Arch 2008-06-06 14:47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제가 전에 사연으로도 쓴적이 있지만 가끔씩 사연 보낸 사람이 무안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몰아세우기도 하고, 힘내세요 이 한마디에 괜히 코끝이 시큰거리기도 하니까요. 아마 그래서 음악텐트가 오래가는게 아닐까 싶어요.
 

 어린이집 차를 거의 한시간 가량 타고선 집에 도착하는 옥찌들. 지민이야 어린이집에서 자서 멀쩡하지만 지희는 거의 몽롱한 상태로 차에서 내리기 일쑤였다. . 귀 얇은 이모는 차에서 자꾸 조는게 멀미 때문이란 측근의 말에 아이들의 귀가길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 첫 날,

 아이들과 다니기엔 마땅한 인도가 없어서 집으로 가는 직선 코스 대신 시장과 학교 운동장을 거치는 길을 가기로 정했다. 오는길에 목도 마를까봐 물통도 준비하고, 간단한 간식거리도 쌌다.

 의기양양하게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데 의외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는데 지희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이모, 나 화장실

 이건 생각을 못했다. 공중 화장실은 보이지 않고, 급한대로 노상방뇨를 하려고 아이를 데리고 후미진 곳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모, 그거 말고 큰거.

 -이모가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모르니까 저기 파출소에 가서 물어보자.

 아이들 손을 잡고 파출소에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지민인 평소대로 '안냐세요'라며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약간 뻘쭘한 채로 이 근처에 화장실이 어디있냐고 묻자, 경찰 아저씨가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흔쾌히 화장실을 쓰라고 하셨다. 지희는 당연하다는듯 화장실에 들어가고, 지민인 가만히 누나를 기다리란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경찰 아저씨랑 이런저런 잡담을 시작했다. 난 민망했다. 영업장 화장실이라기 보다는 근무하는 사적인 공간을 쓰는듯 싶어 죄송스럽기도 하고, 괜히 신세지는 것 같고, 또 일상적으로 지은 죄가 많다보니는 구라이고, 그냥 좀 멋쩍었다. 화장실과 지민이 있는 곳을 두리번거리는 수 밖에. 평소에 쾌변을 자랑하는 옥찌가 태평하게 응가 활동을 하고, 지민인 본래의 수줍음을 잊고 마침 파출소 아저씨들이 먹는 수박까지 하나 얻어 먹는 넉살을 보여줬다. 요 두 녀석은 당췌 나갈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지희는 유난히 파출소 화장실이 편했는지

-이모 여긴 도둑들 오는덴데. 여기서 응가하네.

-그러게. 그런데 도둑이 뭔줄은 아셔?

-그럼, 남의 물건 가져가서 잡혀오는 사람이잖아. 나쁜 사람

-그런건 어디서 배웠어.

-내가 다 알아.

 응, 다 아는거 이제 알았으니까 어서 응가를 마쳤으면 좋겠는데  옥찌들의 특징이자 제일 울화통 터지는 내가 강하게 원하는걸 반대로 하길 즐기는 성격상 쉽게 응가활동을 끝낼 것 같지 않았다. 잠깐 밖의 동정을 살폈다. 수박 교류로 한층 쿵짝이 맞아진 지민이와 경찰 아저씨는 의례적으로 나이를 묻는걸 넘어서서 경찰서 기물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을 갖았다.

 옥찌의 응가 활동이 끝나 쫓기듯이 옥찌들 손을 잡고 나오는데 뒤에서 경찰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 저기 수박 하나 들어요.

(개미 소리만하게) -아, 네. 급하게 가봐야할데가.(아무데도 없으면서)

 방금 속을 비운 지희는 지민이가 먹는 수박을 탐냈고, 결국 협박과 구걸로 지민이에게 반토막 얻어낸 수박을 지희 속에 쥐어줬다. 전경하고 경찰이 다른데도 괜히 요즘 혼자 겁먹기나 하고 말야. 그러게 MQ지수를 강화하라고. MQ는 다음 페이퍼에 바로 다음 페이퍼에 나옵니다. (이런 얕은 미끼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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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06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 역할이 너무 무거워지는거 아닌가요?
유치원 차 이리저리 다 돌아서 아이들 내려주니까 한 시간...그래도 길다~~ 아이가 힘들겠어요.ㅠㅠ
경찰서나 경찰이 모처럼 제대로 역할 한 것 같은데요.^^

Arch 2008-06-06 14:44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역할 별로 안 무거워요. 같이 걸어다니면 재미있어요. 그리고 걸어다니면 운동도 되니까 일찍 주무시니 좋아요.
 

 아침이면 정신이 없다. 나야 원판불변의 법칙을 맹신하는 게으름뱅이기 때문에 꾸미는데 별다른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아이들 챙겨주느라 늘 시간이 모자란다. 아이들이 알아서 옷입고 씻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밥먹을때만은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데 진땀나는 상황만 발생한다.

 오늘도 밥을 먹다가 결국은 서로 씩씩대는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처음 시작은 김치였다. 옥찌가 김치를 주라고해서 좀 큰 줄기를 한번 찢어선 먹기 좋게 밥에 놔줬더니 금세 얼굴을 찡그리며 항의를 한다.

-이모, 나 이렇게 큰거 못먹는다고.

-그래? 알았어. 그럼. 더 작게 해줄게.

 가위를 가져다가 좀 잘라선 다시 밥에 놔줬더니 다시 인상을 찌푸린다.

-아, 왜 밥에 놓냐고. 난 김에다 싸 먹을건데.

 아침에 콩우유를 먹더니 배가 불러서 밥이 먹기 싫은건지, 나한테 무슨 불만이 있어서 저러는건지. 왜 저럴까 생각하기엔 아침은 너무 바빴고, 정신없고, 매번 밥먹을 때마다 실랑이를 하는게 힘들어서 버럭 짜증을 내고 말았다.

-옥찌, 밥 제대로 안 먹어? 이모가 아침엔 바쁘니까 우리가 서로 도와야한다고 말했지? 대체 왜 그러니.

 써놓고보니 조근조근체지만 사실은 고함도 좀 질렀고, 인상도 마구잡이로 구겼다. 옥찌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입이 대자로 나와선 밥을 뜨는둥 마는둥 했고, 민이는 그런 옥찌와 나 사이를 살피며 눈치를 봤다.

 총체적 난국. 가만가만 기세를 살피고 조심하지만 결국엔 밟고야마는 지뢰.

 현명한 양육자라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운걸 알고선 얼르거나 기분좋게 넘어가거나 아이 기분을 좀 맞춰줬을 것이다. 그게 어떤 상황이라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 이건 요즘 양육에 관한 책에서 너도나도 설명하는 얘기다. 하지만 진짜. 너무. 힘들다.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자니 내가 보살펴줘야하는 영역이 있고, 내가 다 해주자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는데 어떤식으로 관계 설정을 한단 말인가. 모두들 잘 키운다는데 왜 나만 이렇게 헤매는걸까.

 대체 어떤식으로 아이를 키워야하는지. 왜 아이와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일은 따로 교육도 하지 않는걸까. 이 일은 보살핌의 범주로 설정하지 말고, 전문적으로 접근해야하는게 아닐까? 김형경의 천개의 공감에 보면 합리적인 부모보다 동물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낫다고 하는데. 여전히 질풍노도의 중간쯤에서 헤매는 알량한 인격체가 다른 존재를 양육하는게 가능은 한걸까.

 남들 시선에 무관하다면서 그래도 밖에선 몇번씩 참다가 그동안 참은 것까지 집에서 다 토로해낸다. 결국은 죄책감에 조카들 앞에서 알랑방귀를 뀐다. 옥찌들은 '이모 왜 저래'란 반응을 보여서 나를 더욱 민망하게 한다.  매번의 반복이 굳은살처럼 쌓여가는데도 개선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옥찌들에게 화내면 안 돼. 오늘은 절대로 화내선 안 돼. 이건 나와의 약속이야. 최면은 그저 최면일뿐, 어제와 다른 일로 화내거나 조금 늦게 화내는 것만 다를 뿐이다.

 왜 화를 낼까. 내 뜻대로 안 되니까. 잘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약올리는거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보이는 성의를 알아주지 않으니까. 조악한 이유를 분석해보니 내 기대치가 너무 높거나 너무 내 위주로 생각을 한다는 판단이 섰다. 어른들 사이에선 적절한 피드백과 대화로 풀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 옥찌들에 비해 권력이 더 많다는(그래봤자 나이 많은 어른이란게 다지만) 이유로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삽질을 해대서 땅이 남아나지 않기 전에 참을인 세개를 세기고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옥찌들을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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