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정신이 없다. 나야 원판불변의 법칙을 맹신하는 게으름뱅이기 때문에 꾸미는데 별다른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아이들 챙겨주느라 늘 시간이 모자란다. 아이들이 알아서 옷입고 씻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밥먹을때만은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데 진땀나는 상황만 발생한다.

 오늘도 밥을 먹다가 결국은 서로 씩씩대는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처음 시작은 김치였다. 옥찌가 김치를 주라고해서 좀 큰 줄기를 한번 찢어선 먹기 좋게 밥에 놔줬더니 금세 얼굴을 찡그리며 항의를 한다.

-이모, 나 이렇게 큰거 못먹는다고.

-그래? 알았어. 그럼. 더 작게 해줄게.

 가위를 가져다가 좀 잘라선 다시 밥에 놔줬더니 다시 인상을 찌푸린다.

-아, 왜 밥에 놓냐고. 난 김에다 싸 먹을건데.

 아침에 콩우유를 먹더니 배가 불러서 밥이 먹기 싫은건지, 나한테 무슨 불만이 있어서 저러는건지. 왜 저럴까 생각하기엔 아침은 너무 바빴고, 정신없고, 매번 밥먹을 때마다 실랑이를 하는게 힘들어서 버럭 짜증을 내고 말았다.

-옥찌, 밥 제대로 안 먹어? 이모가 아침엔 바쁘니까 우리가 서로 도와야한다고 말했지? 대체 왜 그러니.

 써놓고보니 조근조근체지만 사실은 고함도 좀 질렀고, 인상도 마구잡이로 구겼다. 옥찌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입이 대자로 나와선 밥을 뜨는둥 마는둥 했고, 민이는 그런 옥찌와 나 사이를 살피며 눈치를 봤다.

 총체적 난국. 가만가만 기세를 살피고 조심하지만 결국엔 밟고야마는 지뢰.

 현명한 양육자라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운걸 알고선 얼르거나 기분좋게 넘어가거나 아이 기분을 좀 맞춰줬을 것이다. 그게 어떤 상황이라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 이건 요즘 양육에 관한 책에서 너도나도 설명하는 얘기다. 하지만 진짜. 너무. 힘들다.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자니 내가 보살펴줘야하는 영역이 있고, 내가 다 해주자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는데 어떤식으로 관계 설정을 한단 말인가. 모두들 잘 키운다는데 왜 나만 이렇게 헤매는걸까.

 대체 어떤식으로 아이를 키워야하는지. 왜 아이와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일은 따로 교육도 하지 않는걸까. 이 일은 보살핌의 범주로 설정하지 말고, 전문적으로 접근해야하는게 아닐까? 김형경의 천개의 공감에 보면 합리적인 부모보다 동물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낫다고 하는데. 여전히 질풍노도의 중간쯤에서 헤매는 알량한 인격체가 다른 존재를 양육하는게 가능은 한걸까.

 남들 시선에 무관하다면서 그래도 밖에선 몇번씩 참다가 그동안 참은 것까지 집에서 다 토로해낸다. 결국은 죄책감에 조카들 앞에서 알랑방귀를 뀐다. 옥찌들은 '이모 왜 저래'란 반응을 보여서 나를 더욱 민망하게 한다.  매번의 반복이 굳은살처럼 쌓여가는데도 개선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옥찌들에게 화내면 안 돼. 오늘은 절대로 화내선 안 돼. 이건 나와의 약속이야. 최면은 그저 최면일뿐, 어제와 다른 일로 화내거나 조금 늦게 화내는 것만 다를 뿐이다.

 왜 화를 낼까. 내 뜻대로 안 되니까. 잘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약올리는거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보이는 성의를 알아주지 않으니까. 조악한 이유를 분석해보니 내 기대치가 너무 높거나 너무 내 위주로 생각을 한다는 판단이 섰다. 어른들 사이에선 적절한 피드백과 대화로 풀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 옥찌들에 비해 권력이 더 많다는(그래봤자 나이 많은 어른이란게 다지만) 이유로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삽질을 해대서 땅이 남아나지 않기 전에 참을인 세개를 세기고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옥찌들을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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