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새로 만나기 시작한 C. 그 전에 헤어진 여자와의 관계를 정리한다며 그녀에게 전화를 했단다. 호기심이 발동한 난 걔가 아직도 널 귀찮게해서 새로운 여자가 생겼단 쐐기를 박으려고 한거냐고 물었다.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살레살레 저으며 그가 말했다. 전에 자신이 빌려줬던 책을 받으려고 전화했다고. 택배로 받는다고 했다며 송장번호가 문자로 왔단 그의 해맑은 얼굴을 대하자 난 아연해지고 말았다.
 

 관계 후에 남는건 정서적인 결핍감이 아니라 일테면 고작 우체국 송장번호란 말인가.
 
 할일없이 CD케이스를 뒤지다 문득 오리엔 탱고의 곡이 생각났다. 경쾌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바이올린 연주와 딱 맞아 떨어지는 피아노 소리가 귓가에 찰랑거렸다. 얼른 찾아서 들어봐야지. 헌데 없다. 한번 꽂힌 물건이 제자리에 없을 때 사람들은 집을 들었다 놓는다. 다행히 난 콩알만한 방만 뒤지면 됐다. 그런데도 없다. 눈먼 우르술라는 물건이 없어진걸 직관으로 찾아냈지만 난 택도 없었다. 젠장 대체 어디 있는거지. CD가 없을거라곤 상상도 안 한 1분 전에 비해 욕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누가 감히 담배는 의지력으로 끊을 수 있다고 했단 말인가. 맘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 CD를 방 밖으로 데리고 나간적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아! 전에 만나던 양반에게 들어보라고 준적이...... 그래서 케이스도 안 보였구나. 어수선한 방 한 가운데에서 난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안 만난지 오래됐지만 아무렇지도 않은척 안부를 물은 후에 CD를 받아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CD는 옷더미 사이에서 발견됐다. 대관절 얘가 왜 이 틈에 껴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헤어진 양반에게 전화하려던 이유가 일테면 고작 CD때문이었던 내 속을 죽었다 깨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연애를 하고 헤어짐을 겪으면서 사람에 대한 것보다는 물건이나 음악이 더 기억에 남는다. C를 의아하게 볼 이유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대개는 난 절대로 저렇게 안 한단 장담인데 나도 그보단 음반을 더 먼저 떠올리고 말았으니까. 내 맘이 차가워지고 문화적 감수성이 뛰어나서 약게 말하면 돈이 아까워서 그랬다곤 생각지 않는다. 변덕 심하고 제멋대로인 내 맘처럼 급물살 타는 관계에 몰입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상처같은건 죽어도 받지 않겠단 장담인데 장담의 특성상 무너질 가능성은 농후하다.

 

 관계 후에 남는 것들이라......


 진득한 관계 후의 남는 것들을 떠올리자니 '미국의 송어 낚시'에 나온 애액으로 만든 베개와 포근한 정액 담요가 생각났다. 기분은 솜털인데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

 
 삭발을 실행에 옮겼을 때 난 이미 연애 중이었다. 남자에게 여자의 머리가 어떤 의미인지는 지금이나 그때나 관심 없었다. 그때 난 화풀이를 해야할데를 찾고 있었다. 뭔가를 때려부수자니 나중에 그걸 치울 생각을 하니 더 화가 뻗쳐 엄두도 못내는 중이었다. 자해를 생각했지만 엄살이 심해 실현 불가능 쪽으로 밀어두고 이리저리 헤아리자니 화는 가시는데 이렇게 넘기자니 껄쩍지근한 상황. 고심 끝에 머리 자르기를 생각했다.


 남자 친구는 처음에 내 말을 듣곤 반신반의했지만 막상 보더니 의외로 담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체념의 웃음이었다. 그리곤 그냥 내 머릴 받아들였다. 지가 안 받아들임 또 어쩔거야. 녀석은 밤톨같이 까칠한 머릴 손으로 쓱쓱 문지르더니 이젠 예쁜 옷 못입겠네란 얘길했다. 예쁜 옷의 기준이 없던 때였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옷장은 내가 입을 수 있는 옷과 입을 수 없는 옷으로 나눠졌다. 여성임을 드러내는 옷과 머리 스타일은 맞지 않았다. 그렇게 서툰 구분은 사람들의 시선을 거치면서 짜증과 귀찮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될대로되란 더 남자같이 주워입고 다니는 오기를 발동시켰다. 
 

 오기의 꼭대기에서 마구잡이로 패악을 부려대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날 살짝 불러냈다. 녀석은 자신의 입 밖으로 꺼낸 그야말로 예쁜 옷을 선물해줬다. 그 녀석이 그 옷을 산다고 얼마나 궁상을 떨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그 옷을 입곤 그 애 손을 잡고 오랜만에 남자와 여자처럼 데이트를 했다.


 관계 후에 남는건 이젠 촌스러워 더 이상 입고 다닐 수 없는 옷,

 나프탈렌과 함께 옷장 깊숙히 잠든 옷.

 내가 회수하고 싶은건 CD나 책이 아니라 그때의 그 맘이었음을. 제각각의 환상과 뭉글거리는 감정들의 덧칠에도 꽤 그럴듯했던 유치한 관계였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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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6-3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유명 작가가 되어버려서 가볍게 블로그에 올린 글도 바로 화제가 되어버리는 그런 스타 작가의 글을 슬쩍 와서 읽고 가는 느낌이에요. 시니에님의 글의 조각조각들이 예쁘게 박혀요.

Arch 2008-06-30 15:26   좋아요 0 | URL
윽, 마노아님 완전 꿈같은 얘기인걸요. 딱 고정도예요. 조각조각 가끔 예쁜. 다른식의 글쓰기와 내용담기를 생각하려구요. 그래도 마노아님의 칭찬이 참 감사한건 아시죠?

Mephistopheles 2008-06-3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야하다~! 라고 생각하는 저는 "야동중년"인겐가요???

Arch 2008-06-30 21:03   좋아요 0 | URL
메피님^^ 제목이 야한가? 야동중년이라 그러신거 아니에요?
 

<아침> 

 지희가 일어나자마자 내게 다가와선 날 꼭 안아줬다.

-이모 사랑해.

 옥찌가 뭔가 아쉬워서 사랑한단 말을 하는건 아니었지만 잠에서 깨자마자 이러는건 어떤 기분 때문일까 궁금했다.

-나도 지희 사랑해. 그런데 이모를 어떻게 사랑해?

-(옥찌의 눈동자가 위 45도에서 머물다가) 이모가 애기였을때도 사랑해.

 내가 애기였을땐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 녀석이 그때부터 나를 사랑한다니. 갑자기 최규석씨의 '대한민국 원주민'이 생각났다. 울고 있는 꼬마를 다 큰 내가 꼬옥 껴안아주는 장면. 물론 그 책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어렸을때 나라니.

 이번엔 어떤 정의일까?

-지희야, 사랑이 뭔데?

-이모테 사랑해라고 편지를 쓰는 것.

-아,

 지희랑 쭈욱 뭉개고 있다가 밖에서 소리가 들리길래 부스스 일어났다. 부엌에선 엄마가 라디오를 들으며 냉장고에 쓸만한게 있나 보고 있으셨다.

-엄마, 나 뭐할까. 어! 라디오 듣네.

-응, 이만수 방송인데 재미있어.

 이만수는 또 누구냐. 오늘 아침은을 진행하는 이문세. 엄마의 말실수편(나도 만만치가 않다.)은 따로 시간내서 써봐야겠다.

 지희는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리다 내게 신중하게 말해줬다.

-이모, 내가 이모랑 할아버지랑 그리는데 목도 그려줄게.

 아, 지희는 이제 사람들 목도 그려넣을 줄 알게됐다. 손이랑 발도 뭉퉁그려지지 않고, 손가락 발가락만 없을 뿐 그림은 꽤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자라고 있다는게 가끔은 이렇게 실감되기도 한다.

 지희랑 지민이랑 좀 놀아주다가 밖에 나갔다.

<낮>

 월명산을 돌까, 버스를 타고 군산을 한바퀴 돌까하다 동네 주위만 어슬렁댔다. 비가 올 것 같았고, 먼곳으로 훌쩍 떠날만큼 기분이 상쾌하진 않았다. 갑자기 쑥차를 먹고싶단 생각에 동네 주변 마트를 둘러봤다. 자판기용에서 개별 포장까지. 가격도 성분도 제각각이었다. 아빠 말로는 쑥차는 따로 분말로 만들어 차를 타도 맛이 안 난다고 하셨다. 맛을 내기 위해서인지 뭔가 요상한게 잔뜩 들어있었다. 다음엔 세곳 중에 물건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한 A마트에서 성분 잘 확인하고 사야겠다.(이런 얘긴 대체 왜 하는거야. 낮이 너무 빈다 싶어 그만.)

 낮엔 주로 멍때리거나 나무를 그리거나 영화를 봤다. 공산당선언을 읽으려다 눈이 침침해져(꼭 이럴때만) 서문만 황급히 훑고 말았다.

<밤>

 옥찌들은 나갔다와서 피곤했는지 일찍 잠이 들었다. 드라마 열혈팬인 엄마와 동생이 '엄마가 뿔났다'를 보면서 열무 비빔국수에 꽂혀선 급조된 열무 김치와 오이를 공수해 요리 플랜을 짜는데. 아뿔사, 국수가 떨어졌다. 결국 열무 비빔밥을 먹었는데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특히 고추장이 매운데다 급조된 친구치곤 열무 김치가 적당히 익어줘서 아주 짜릿할 정도였다.

 엄마랑 동생이 수순대로 주말 드라마를 섭렵하다, 어떤 장면에서 부인이 남편의 외도를 한다는걸 다시 또(징글징글하단 표현이 맞다)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 야, 저거 결재 서류 보는건데 뭐라고 써있는줄 알아?

동생 - 엄마, 나랑 같이 봤잖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엄마는 드라마 몰입 맥이 끊기셨는지 점 본 얘기를 해주셨다. 굳이 방에서 뭉기적거리는 나까지 친히 불러내서.

엄마 - 신기가 있대.

나 - 응? 누가?

동생 - 가족 모두 다.

나 - 그래?

엄마 - 1500만원 있으면 너 신기 풀어줄 수 있대.

나 - 난 신기 있는줄 모르겠는데. 그런데 점보시는 분은 그걸 어떻게 알았대?

동생 - 엄마가 다 말했대. (가족 각자의 사정 나열)

나- 엄마 내가 점쟁이어도 신기 타령하게 생겼네. 그거 풀려고 1500만원 벌려고 용쓰다 보면 뭐 따로 풀어줄 필요 없이 성공하겠네. 뭐.

엄마 - 신기 풀어주면 돈도 잘 벌고, 성공한다는데.

 엄마는 못내 굿을 못해주는게 아쉽나보다. 점은 화살을 쏴놓고, 과녁을 그리는거라던데. 족집게는 달리 쭉 집어내는게 아니라 대부분 점을 보는 사람이 알아서 구구절절 설명을 해서라고 말을 해도 엄마한텐 소용이 없다는걸 잘 안다. 엄마는 그저 잠시동안의 위안. 이게 결코 아이들이나 아빠가 못나서가 아니라 단지 신기때문일지도 모른단 위안이 필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불행하기 보다는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맘이 놓일지도 모르는 일. 그리고 당분간은 1500만원 때문에 뭔가가 안 풀린다는 생각이 사소한 핑계거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 물론 굿을 벌일 비용이 당장 없다는게 가끔 한방씩 먹일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복채 3만원에 가족 모두 신기타령만 한거면 점을 못봐도 너무 못본다니까 엄마는 그래도 누구네 누구네는 귀신같이 잘됐다며 내게 방귀 한방 날려주셨다. 열무 비빔밥이 독하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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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6-30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저도 알아요 그 방송. 이 문세가 진행하는 '오늘 아침은'. 프로 제목도 모르고 들었었는데 이 참에 알게 되었네요. 어제도 얼마나 웃으면서 들었는지.
저의 일요일은, 하루 종일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하는 주부의 일상의 쌤플이었습니다.

순오기 2008-06-30 0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방귀 한방~~~~ ㅎㅎㅎ 압권입니다!

Arch 2008-06-3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치우고 먹고 치우고. 일요일은 왜 이럴까요. 순오기님 방귀뿐은 아니지만 엄마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다 까발려놓곤) 그 정도로만.
 

 오늘 나들이 간다고 한껏 안 부리던 멋을 좀 부려먹고 있는데 어린이집 가려고 준비하던 옥찌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이모, 치마 입었네. 오~ 이쁜데. 그런데 옷이 검정색이야.

-응, 이쁘지?

-속옷도 검정색인 것 같고.

-(예리하군) 응. 이상해?

-머리도 검정색이야.

-머린 원래 검정색이잖아.

-좀 추접스러운데.

-(패션 센스는 엿바꿔먹은 나로선 난감해져) 응? 뭐가...

-아니, 색을 다 검정색으로 맞추니까 추접스럽다고.

-그래? 그런데 그런건 대체  어디서 배운거야?

-딩동댕 유치원에 다 나왔어.

-희안하네. 유치원 프로에 그런것도 나오나?

-그나저나 좀 추접해.

-가방이랑 신발은 다른색인데 괜찮을까?

-글쎄.

 옥찌는 평소에 치마에는 샌들, 캐쥬얼한 옷에는 운동화를 신을 정도로 패션 감각이 정직하다. 옷색도 얼마나 다르게 맞추려고 하는지 유재석의 3컬러 코디법을 배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음엔 옥찌의 의견을 물어가며 옷을 입도록 해야겠다. 아니면 최신 패션 트렌드를 알려주는 딩동댕 유치원에서 팁을 얻어야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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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캣 2008-06-2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엽고 직설적인 코디가 옆에 있군요. 전 조언해줄 사람이 없으니 딩동댕 유치원을 시청해야 할까봐요~-.-;;

Arch 2008-06-25 11:17   좋아요 0 | URL
블루캣님 반갑습니다.^^ 코디가 너무 직설적이라 상처도 받고 좀 그래요. 자기 스타일도 웃기면서 칫. 그런데 정말 딩동댕 유치원에 그런 팁이 있는지 의문이라니까요.

hnine 2008-06-2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정말 '딩동댕 유치원'에서 배운 말일까요? ^^
아이들은 원래 원색에 가까운 색들을 좋아하더라구요.
예전에 제 아이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님께서도 선생님들에게 유치하더라도 밝은 색 옷을 입으라고 하시던 것이 생각나요. 엄마도 집에서 무채색보다 유채색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고 저에게 압력을 주시기도~ ^^
즐거운 나들이 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치니 2008-06-25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 와보았는데, 매력에 빠져 거의 20개 정도 되는 글들을 후루룩 다 읽고 갑니다.
자주 올게요 ~

클리오 2008-06-2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딩동댕 유치원에서는, 검정색 옷은 더워보인다고 나왔을 뿐이었던 것 같은데.. (다만, 그 검정색 옷을 입었던 캐릭터가 약간 그러해서 비호감이었겠지만요..^^)

Arch 2008-06-2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원색이 아니라서 촌스럽게 느껴졌나봐요. 어머낫. 머릴 염색할 수도 없고 말이죠.ㅋ 치니님 반갑습니다. 읍. 쑥쓰... 클리오님 다시 또 보니까 반가운데요^^ 더워보이는거랑 촌스러운거라.. 연구 좀 해봐야겠어요. 딩동댕 유치원 모니터링을 하실줄이야.^^

클리오 2008-06-27 12:41   좋아요 0 | URL
모니터링이라니요. 아이와 함께 즐기는 수준이 되어버렸답니다. 애들 프로도 보다보니 재밌더군요. ㅎㅎ

도넛공주 2008-06-3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워요..흑흑...저희 조카들도 크면 그러려나..

Arch 2008-06-30 12:28   좋아요 0 | URL
도넛공주님 다시 또^^ 반가워요. 별로 안 무서웠는데. 좀 자극적이랬달까.
 

 내 생애에서 나의 말에 온 존재를 모아 귀 기울여주었던 사람을 내가 가진 적이 있었을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면서 눈물이 났던건 아마 그때문이었을지도. 영화는 배우들의 이미지로 채색되어 있었다. 으~ 저건 아니야 대체 날 언제 울린건데란 푸념이 쏟아지고 영화보는내내 왜 저렇게 풀어나가는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한번쯤 끔찍하게 실컷 울고 싶을 때 선택한 영화치곤 내용이 상투적이고 밍숭밍숭해서 정말 울고싶을 정도로 절망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몸이 떨리고 얼굴에 덜덜 경련이 일 정도로 난 울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기만의 얘기들을 갖고 있는 주인공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소통하는 순간. 그런 순간을 난 가진적이 있었던가? 온 존재를 모아 귀 기울여주었던 사람을 내가 되어준적은 있던가.

 학교 다닐땐 아이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고, 남자친구를 사귀었을땐 땡깡놓듯 악다구니만 피워댔고 위로해주는 친구에겐 정색하며 그 정도로 심각한건 아니라고 일갈했다.

 난 지금, 나 상처받은 사람이에요. 애정결핍 중증이라고 이실직고 고백하는게 아니다. 간절하게 타인과 소통하길 바라는 것만큼 내 온 존재를 바쳐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지를 묻는 것이다. 나와 당신에게.

 잭 니콜슨이 나와서 눈길이 갔던 ‘성질 죽이기’란 영화. 애덤 샌들러가 약간 거짓말을 섞어 잭 니콜슨에게 엄마가 심각한 병으로 수술한다는 말을 전한다. 잭 니콜슨은 얼굴까지 빨개지며 오열한다. “아, 우리 엄마는 내 전부였는데. 엄마가 만들어준 요리며......” 신기했다. 나이든 남자가 우는게. 저렇게 즉각적으로 슬픔에 반응하는게.

 나였다면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거나 사람은 누구나 죽고 엄마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거니까 별거 아닐거란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큰딸로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가 우선일테고 그러한 고민을 나타내는 다시없을 심각한 표정을 드러내는건 추가옵션이었을거다. 엄마가 심각하게 아프다. 어쩔 수 없는 죽음 때문에 다신 엄마를 볼 수가 없다. 엄마, 엄마, 이건 아주 나중에 주억거릴 혼잣말이 될테고. 물론 극적인 반응보다 건조한 표정이 슬픔을 더 오래 반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한 감정적인 반응을 건너뛰곤 했던 난 누구 말대로 위악을 떨고 있었던건 아닐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고나서 들여다본 책엔 이런 말도 나온다.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 받는거 그거 창피한거 아니야.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야...... 위악을 떠는 사람은 그래. 자긴 사실 착하고 약한데 이럴 수 밖에 없는거라고. 언젠간 알아줄거란 기대까지해.

 소통을 막고 있는건 나였다. 왜 내게 맘을 안 털어놓는데 그런식으로 하면 나 종교에 귀의한단식의 위악만 떨어댔다. 누구하나 말리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하란 식의 반응에 다시 상처받았다며 땅굴파고. 귀엽지도 않게 유치한데다 갸륵할 지경까지 처절했다.

 알았으니까 바뀌는건 시간문제야라고 콧방퀴 뀌지만 아플만큼 깨닫진 못했다.

 아직 갈길이 너무 멀다고 똥싼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진 않겠다. 내 똥은 깨끗하다거나 이편이 편해서라고 날 속이는거 말고, 어그적거리며 일어서서 그들 존재에 귀 기울여 내밀한 말들을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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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카들이 방으로 몰려와선 한차례 웃고 장난치다 나간다. 거실에 있는 막내는 아이들 보고 걸어다니라며 윽박지르며 쫓기놀이를 한다. 쫓아내면서 걸어다니라고 말하는건 능청스런 막내다운 수법이다. 다시금 썰물처럼 밀려든 요녀석들의 소요. 화장실을 간다, 밥을 먹어야겠다며 정신없이 굴어댄다.
 

-이모, 근데 밥은 시계가 저기 가리키면 먹는거지?
-응, 옥찌. 조금만 있어봐. 벌써 배고파?

  조그만 올챙이 같던 녀석이 벌써 다섯 살이다. 이건 어디서 배웠을까. 내 손가락을 끌어다가 고사리 같은 새끼 손가락에 끼운다. 졸지에 밥순이 신세다.
 틀어놓은 음악소리만큼이나 감미롭게 번지는 웃음, 행복하다.
 그래서 더욱 맘이 불편해진다.

 뉴스는 목도리녀처럼 예쁜 사연만을 전해주진 않는다. 그래서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사건에 무감각하게 반응하는게 싫고, 감각의 역치를 사정없이 높여버리는 일들이 두려운 까닭이다.
 그래서 시사프로도 아닌 미담 위주의 저녁 프로에서 아이의 죽은 얘기가 나올때 모른척 했어야 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아이, 4개월도 안 된 아인 24시간 위탁기관에 맡겨졌단다. 한달에 한번 아빠만 들여다볼 뿐인 아인 보호시설에 있기엔 너무 어렸다. 아이 엄마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란 존재가 갑작스러웠고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기엔 받은 사랑이 너무 없었을 뿐이었다. 부모에게만 사랑받는건 아니겠지만, 고아인 여자에겐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아이를 놀이방에서 데려와 기르던 엄만 밤늦도록 칭얼대는 아일 견디지 못했다.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외면하거나 도망친다. 견딜 수 없었던 그 순간에 엄마는 차라리 도망을 쳤어야 했다. 모성애란게 생기기 전까진. 아니 그런 거창한게 아니더라도 내 몸에서 나온 살가운 존재에 대한 일말의 애착이라도 갖기 전엔.

 하지만 엄만 아이 울음소리에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졌고, 그만 아이를 때리고 말았다. 이제 그만. 엄만 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일 얼래서 맘에 품어야했다. 그래, 하지만 그 날 엄만 신경이 날가로웠던걸까. 다른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벽에 아이 머릴 쿵.
 아인 혼수상태로 전기 장판에 아침까지 방치되었다.

 아침 댓바람에 병원 응급실에 아일 데리고 온 엄만 아침에 아이가 죽어있었단 얘길 한다. 의사가 화상과 피멍든 자국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여자의 말은 유아돌연사란 흔한 일로 묻혀졌을지도 모른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두개골에 금이 간걸 의심해서 경찰을 부른다. 경찰 앞에서 여잔 사실을 다 말한다. 아마  아침이 되기까지 두려움과 고통으로 떨었을 아이 얘긴 아마 한마디도 하지 않았겠지.

 나혜석은 모된 감상기에서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했다. 조카를 보기 전에 난 그 말이 섬뜩해 나혜석이 남다른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하나보군 정도로 치부했다. 동생이 아이를 키우는걸 옆에서 보고, 간혹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혜석이 별난 여자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양육하는건 생겨날지 여부를 알 수도 없는 모성애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걸 알게 되었으니까.  

 엄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을 한다고 한다. 엄마의 도움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일 키우는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건 연애처럼 서로 으쌰으쌰해서 맞춰가는 것도 아니고 애완견을 기르듯 물건을 사들이듯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맹목적인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사력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양육은 어찌보면 숭고하지만 대체적으로 반복적인 노동과 지난한 피로감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보상없는 일에서 느끼는 허탈감은 아이의 깨알같이 쏟아지는 웃음과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 보드라운 손, 나를 닮은 존재의 생명이란 인식으로 갈음된다.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고, 육체적으로 솔깃하지 않지만 단지 아이란 이유로 이러한 일들은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옆에서 가끔 기저귀나 갈아주고 예뻐해주기만 하면 되는 주변 사람은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난 그 여자를 ‘처죽일 년’이라고 섣불리 말하진 못하겠다. 아직까진 여자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방송의 선정적인 보도에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제일 먼저 떠오른건 의식을 잃은 채 아팠을 아이였다. 그리고 너무 미안하게도 조카들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해버린 미안함이었다. 죄 많은 인간 어른이라 아이에게 미안했다.

 예쁘게 커서 재롱도 피우고, 놀이방에서 배운 노래도 부르고, 새끼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하는 야무진 면도 보이고, 더 쑥쑥 자라선 사랑도 하고 실연도 당하고 살다가 좌절도 느끼고, 행복도 느끼면서 그렇게 그렇게 살아있음 좋았을텐데......

 어린 죽음은 그들이 밟지않은 길을 자꾸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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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4 1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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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4 1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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