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연휴 아닌가. 오늘은 방청소를 하고 군산 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 말고는 할일도 없었어요. 그래서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난 옥찌들에게 간곡히 부탁했죠.

-옥찌, 딱 한시간만 더 자자.

-그럼 우린 뭐해? 나 심심해.

-응, 이모가 조금만 더 자고, 같이 놀이터도 가고 정말 재미있게 놀아줄게.

-알겠어. 시계 어디로 가면? (지희는 아직 작은 바늘하고 큰 바늘을 헷갈려한다.) 그러니까 작은 바늘 8에 가 있고, 큰바늘이 12에 가있으면 8시거든. 그때까지만 잘게. 이모가 맛있는 것도 해줄게.

- 알겠어. 내가 지민이 데리고 잘 놀게.

 쉽게 수긍하는게 미심쩍긴 했지만 잠도 오고, 아까 꾸던 꿈이 간만의 훈훈한 내용이라 다시 이어서 꾸고 싶기도해서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죠. 꿈은 커녕 기억도 안 나는 뒤숭숭한 장면을 모자이크처럼 구겨 넣다가 더이상은 잠이 안 와 주섬주섬 일어났죠. 집안은 괴기할 정도로 조용했어요. 한시간도 채 안 됐지만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죠.

 거실 곳곳에는 옥찌들의 흔적이 있었어요. 베란다는 엄마 아빠 놀이용 요리터로 변해 물이 흥건했고, 방바닥은 뭘 뿌려놨는지 까슬거렸어요. 그나저나 얘넨 뭘하길래 이렇게 조용한거지?

 옥찌들의 방에 들어섰죠.


현장 사진, 증거 자료1

 콩순이 인형은 발가벗긴채 다리가 의자에 깔려 있고, 온갖 물건들을 다 끄집어낸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죠. 옥찌들은 어디? 요 녀석들은 창문가에 가서 종이를 뿌려대는 중이었어요.


현장 사진. 증거 자료2

 막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며 뭐라고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야 어쩌고.

-옥찌, 대체 이게 뭡니까. 이모가 정말 딱 1시간이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옥찌 방으로도 모자라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으면 대체 이모가  몸이 몇개도 아니고 이걸  다 치우란 말입니까? 그리고 지금 위험하게 창문 열어놓고 뭘 하는겁니까.

 내가 잔 잘못도 있고 해서 조근조근 얘기를 했더니 평소엔 말 많은 누나 덕분에 발언권이 없던 지민이가 한마디 했다.

지민 -이모, 편지.

잠꾸러기 이모 -무슨 편지

지희 - 이모 내가 나무한테 편지 써서 보냈거든. 나무한테 잘 받았냐고 물어본거야.

 범행 현장을 바로 잡아내긴 했으나 이거 혼내지도 못하고, 대충 후다닥 방을 정리하곤 나무가 반송시킨 편지를 회수하러 나갈 수 밖에요.

 사건 조사 결과 방바닥의 까끌거리던건 뛰어 다닐때 미끄럼 방지용으로 뻥튀기를 부숴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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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6-0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에님 조카들 얘기 읽다보면, 동화작가도 아니면서 동화의 모티브가 불쑥불쑥 떠올라요 ^^

Arch 2008-06-08 13:17   좋아요 0 | URL
이참에 동화 한편^^ 잘 쓰실 것 같은데.

2008-06-08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