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옥찌들과 월명산을 갔다 왔다.

산을 열심히 뛰고 걷고 하다가 맞은편에서 강아지가 산책하는걸 본 민.

대뜸 '메롱~'이런다.

행여나 강아지 주인이 아이가 한짓이지만 불쾌하게 생각할까봐 좀 들으라는 듯이 -이러는 나도 참.-

-민아, 멍멍이한테 왜 메롱해.

하니까

민- 멍멍이가 메롱하잖아.

이런다. 보니까 강아지가 더워서 헥헥대는걸 보고 메롱이라고 하는 민.

그래서 가물가물거리는 기억으르 불러다 개의 체온 조절이며 과학적인 상식을 죄다 꺼내서 두서없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옥찌가 한마디 했다.

-그러니까 이모 말은 더워서 침을 퉥 뱉어서 털을 식힌다는거지?

아니, 그건 아닌데... 이거 좀 신선하잖아!

2. 월명산 중턱-중턱이라고 해봤자, 약간 오르막길 정도-쯤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 안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 자리를 딱 잡고, 옥찌는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책을 읽고, 민이는 민이대로 만화로 된 호랑이와 자동차 사진을 유심히 봤다. 나는 나대로 로쟈님이 괜찮다고 하신 편혜영 소설, 아오이 가든을 봤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좀 소름이 돋았고, 아찔했다. 계속 목 부근에 고양이 털이 거칠게 숨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리고 이기호의 소설,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이게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었던가. 내 서재 소갯말도 거기서 따왔다. 내가 하는 짓도 좀 그렇고.

 책을 읽고, 김밥이며 과일이랑 배부르게 먹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왔다.

 나오기 전에 옥찌가 읽은 인어공주가 생각나서 지희에게 물었다.

-옥찌, 인어 공주 어때?

-응, 미나 공주(인어 공준데.) 좋아.

-왜? (Why형 부모가 Why형 아이를 만든다나 뭐라나. 팔랑귀라 이 영향이 좀 있었다.)

-응, 바다에 살거든. 이렇게(잠깐 멈춰서더니 손을 휘젓는다.) 발을 못써서, 땅에서는 기어다녀.

-물고기도 바다에 사는데 왜 인어 공주만 좋아?

-미나 공주는 이쁘니까.

 왜 이쁘냐, 바닷 속에도 이쁜게 참 많다란 얘기 끝에 인어공주란 동화책이 갖고 있는 말못하는 여성과 왜 굳이 인어공주는 왕자 때문에 아름다운 다리를 포기했나, 이건 사랑 때문이라고 하기엔 가혹하단 (나 너무 앞서가고 있는거야.)얘기를 지희에게 해봤다.

-응, 그게 왕자를 만나려고 했거든. 그런데 죽어.

-왜 죽는데?

-그러니까 왕자를 만났는데 죽어.

 재차 왜라고 묻자, 답변이 궁색한 옥찌. 책을 약간 건성으로 읽은 듯도 하고, 마녀라는 말이 잘 생각이 안 난 듯도 하고. 당황한 기색없이

-그런데 입으로 물이랑 음식이 들어가면 오줌이 마려웁고, 똥이 나와.

-그래서?

 얘, 뜬금없이 뭔소리지?

-그러니까 나 지금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 돌리는 재주는 탁월하다. 화장실에 갔다와서 다시 물었다. 집요한 이모같으니라고. 이게 아이들 독서 습관을 기르는데 아주 안 좋다는건 알고, 그만해야지 싶은데도 이게 참,

-옥찌, 그러니까 왜, 누가 인어 공주를 죽인거야?

-대조영이.

 응? 이건 무슨. 내가 웃으면서 뜬금없이 무슨 대조영이냐니까, 이때다 싶었는지 맨날 반복되는 똥치로 얘기가 급반전. 똥치가 사람을 죽였고, 죽은 사람의 살때기를 진짜 칼로 벤다.-이런 하드고어적인 얘기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똥 얘기에 신이나서 폴짝폴짝 뛰는 지희. 내가 졌다. 졌어. 아무래도 나와 더불어 아빠의 대조영, 연개소문, 대왕세종에 이르기까지의 사극 컬렉션에 옥찌도 어지간히 질렸나보다. 그렇다고 거기에 대조영이라니.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어쩌고 하려다 감히 옥찌의 똥치 얘기를 중단시킬 수 없었기에... 덤으로 개똥벌레를 불러줬더니 벌레가 똥이라며 아주 즐거워하는데 달리 무슨.

 다른 아이들도 이런가? 옥찌들이 유별난건가? 하드고어. 왜 자꾸 칼 얘기가 나오는지. 좀 무섭네...

3. 빨리 내려온다고 서둘렀는데도 벌써 해가 져버렸다. 띄엄띄엄 서있는 가로등 아래를 걷고 있는데 요 그림자들이 앞으로 뒤로 옆으로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거다.

-옥찌, 그림자들이 왜 움직일까?

-기냥.

-왜?

-기냥.

-왜?

-기냥

 그때 가만히 있던 민이가 한마디 했다.

-화나서.

-응?

-그림자가 화가 났어.

그러자 지희도 거들었다.

-아냐, 화나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는거야. 화난거 아닌데.

 어? 화가 날때? 그러고보니 민이는 화가 나면 화를 어떻게 할줄 모르고 방안을 동동거리며 펄펄 뛰고, 옥찌는 삐지거나 울어버린다. 그러니까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고서도 이렇게 다르게 읽을 수 있는거였다. 자신들이 어떻게 화를 내는지 생각을 안 해봤겠지만 어쩜 이리도 그림자와 닮은꼴인지.

4. 예전에 친척 동생 명절 때 TV를 보다가 눈여겨본 순간이 있었는데,

작년까지만해도 -친척이 모여봤자 명절 때가 전부라고 할 수 있으니- 텔레비전에서 포옹이나 뽀뽀 장면이 나와도 아무렇지 않게 보던 녀석이

 그 해 명절엔 영화에서 포옹하는 장면이 나오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딴청을 하는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뽀뽀나 포옹이 의미하는바가 뭔줄 안다는 얘기 같은데 그래서 좀 부끄럽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때 그 녀석 나이가 9살 정도였다.

 오늘 민이가 연속극을 지나가면서 보다가 포옹 장면이 나오자

눈을 휙 돌리고, 딴청을 했다.

민, 넌 아직 네살 밖에 안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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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8-0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의외로 조숙한 민?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인어공주를 죽였느냐는 말은, 참 철학적인데요? 누구인걸까요?

Arch 2008-08-06 10:01   좋아요 0 | URL
민이가 그렇다니까요^^ 마녀의 욕심이 있었지만, 실은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인어공주의 자의식 문제가 아닐까란... 이거 좀 오바 맞죠!

무스탕 2008-08-0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 깜찍을 아는군요!!

인어공주는 결코 죽은게 아니란다. 비록 몸은 사라졌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영혼은 왕자님과 가족들의 가슴에 영원토록 살아가고 있는거지..
라는 뻔하디 뻔한 답변.. -_-

Arch 2008-08-06 12:22   좋아요 0 | URL
동화는 동화일 뿐이고, 어서 깨어나야한다고 자꾸 옥찌에게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요. 공주 얘기만 나오면, 아니 예쁜 친구들만 보이면 이건 나, 얘는 뭐가 이뻐라며 사랑해주는데 차마 사실 그건 어쩌고 저쩌고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듀나 게시판의 정회원이 되려면 꼭 거쳐야하는 관문이 이 프루스트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거래요. 답변을 작성하다 올려봅니다. 알라디너들도 한번씩 해보세요. 전, 설문하는거 좋아해서.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질문
14살 때, 프루스트는 <고백: 사고와 감정을 기록하는 비망록>이라는 영문책을 받았다. 7년 후 그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펴냈다. 이 묻고 답하기 놀이는 19세기 파리의 문학 살롱의 인기 있는 여흥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신 성격의 특징은
 오지랖퍼. 잔소리가 심하다.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도 뱉어놓고는 아차 싶어진다. 계획을 세우거나 무슨 일을 할 때 의욕은 최강이지만 실행력과 의지는 거의 빵점 수준. 가족내에서는 쪼잔하고 잘 삐진다, 혹은 그만큼 믿음직스럽다란 평가를 받는데 밖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족내 믿음과 상반되게 줄곧 덤벙대고, 믿음 안 가는 면모를 보여주고 다닌다. 예전엔 웃겨자빠지는 상황에서 자제가 안 돼 여러 사람한테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조금 정말 조금 나아졌다. 수줍어하는 경향이 있기도 한데 가끔씩은 한번 나서고 싶어서 간질거려 죽을 지경이 되기도. 대체로 관통하는 성격은 청개구리 심보.
 
*남성에게 기대하는 자질은
 아무래도 여전히 남성위주의 사회이다보니 다른 시각으로 성별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조금 깨인 감성이 있다면 좋겠고, 가사를 자기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있다면 다른건 뭐. 요리를 잘하면 금상첨화.

*여성에 있어서는?
 착하지만 않으면 된다. 싸울 의지와 알아서 죄책감을 각인하는 짓만 안 한다면. 너무 부정적인 바람이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장대비처럼 시원하게 뿜어대는 유머 감각을 지닌 여유로운 사람.

*친구들 간에 가장 고맙게 여기는 것
 추억을 환기시켜서 주는 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지만 나를 좋게 보려고 애쓰는 점. 나에게 쓴소리를 할때는 유머 감각을 발휘할줄 아는 센스.

*당신의 최대 결점은
 자기 합리화에 지극히 능하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의 부재. 언행불일치의 표본

*좋아하는 일
 한시간 정도의 산책과 도서관에 드러누워 책읽기. 멀쩡한 재료로 나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하는 것. 반짝이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는 것. 약간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얼음을 아삭아삭 씹는 것. 친구랑 껄껄대며 웃고 수다떨기. 싸고 맛있고, 밥을 많이 주는 식당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는 것. 알라딘 서재에서 놀기. 놀이터에서 조카들과 놀기. 옛날 댄스곡 틀어놓고 몸 흔들기(이건 절대 춤이 아니다) 잡지나 신문 스크랩하기, 아저씨들 유머 엿보기, 엄마 아빠한테 내가 어렸을 때 어땠는지 얘기 듣는 것, 뭔가를 부단히 배우고, 깨닫는 것 등등.

*바라건대
 나의 길에 올인했으면, 그게 아니라면 밥벌이라도 좀, 그것도 어렵다면 자기 인식이라도 좀.
 대통령이 큰 실수 안 하고 임기를 마쳤으면
 조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랐으면 
 우리 가족 뿐 아니라 모두가 행복했으면
 전쟁이나 기아로 아이들이 죽지 않았으면
 착취와 자원 낭비가 더 이상은 없었으면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불행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게 되는 것. 내가 정말 이렇게 삽질하다 느닷없이 죽는 것.

*되고 싶은 사람
 나의 멘토처럼 성찰과 자기 인식이 분명한 사람.

*살고 싶은 곳
 강원도의 산골, 슈바빙의 으슥한 골목에 있는 샛방, 남미의 분홍색 집.

*좋아하는 색
 연보라색

*좋아하는 꽃
 황금 달맞이, 샤스트 데이지, 목련

*좋아하는 새
 참새, 산속의 이름모를 새들.

*좋아하는 작가
 프루스트, 여전히 알랭 드 보통, 아베 코보와 조지 오웰, 레마르크, 폴 오스터, 카뮈, 마루야마 겐지, 톨스토이, 은희경, 김연수// 문학에 국한되는게 아니라면 강준만, 진중권, 박노자, 서경식, 정희진, 시네21의 김소희 기자, 바자의 에디터 김경씨의 글들. 써놓고보니 역시나 얕다. 넓은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시인
 이성복, 윤동주

*픽션 속 인물 중 당신의 영웅을 뽑는다면
 토지의 주갑, 버팔로66의 남자 주인공 , 조르바, 아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픽션 속 여성들 중에서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니나

*좋아하는 음악가
루시드 폴, 피아쏘야, 조빔, 김광석, 유재하, DJ DOC, 쿱, 에디 하긴스 트리오, 빌리 할리데이

*좋아하는 미술가
 르네 마그리트, 피카소, 샤갈, 김홍도, 이중섭

*실제 세계 속 영웅은
 영국 사람인데 팔레스타인 협상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역사 인물 중 당신의 여신을 꼽는다면?
 이제는 역사가 된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나혜석

*좋아하는 이름
 이름 속에 민과 섭이 들어간 이름. 나는 아이디를 지을 때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말들을 조합하는데 그게 대개는 일본식 이름일 때가 많다. 내가 짓지는 않았지만 엘로이즈란 이름을 좋아한다. 이건 밀리언 달러 호텔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탐탐 역시 좋다.

*가장 싫어하는 것
 습관적인 불친절함. 잘난체(내가 많이 저지르고 다녀서)

*가장 혐오하는 역사적 인물
 연개소문, 대조영 등 사극 속 인물들. 요즘 아버지가 하나 티비로 계속 보시는 바람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배경 음악만 나와도 으윽. 이건 정말 농담이고.
 히틀러와 부시, 네로 황제, 전두환과 박정희

*가장 좋아하는 군사적 사건
 흠, 관심이 없어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혁신이 있다면
 호주제가 가족관계법으로 바뀐 것. 혁신이란 말을 한번도 써본 적이 없다는 것?

*하늘이 내려주었으면 싶은 선물
 창호지로 문풍지를 만든 방에 쨍하고 해가 비치고 라디오가 있고, 삼면은 책으로 쫙 둘러싸인 내 집. 문을 열어놓으면 먼데 바닷가에  떠돌던 냄새들이 바람에 실려 짭쪼름함을 전해주고, 솔향도 나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듯. 

*어떻게 죽고 싶은가?
 스코트 니어링처럼 내가 죽고 싶은 순간, 서서히 굶으면서. 과연 내가 그런 의지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당신의 정신적 상태
 무직자의 정신 상태. 자포자기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불끈불끈 솟아대고, 그러려니 했다가 버럭버럭 화가 나고. 대체적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편. 말하는거봐선 상태가 심각하지만.

*참을 수 있는 결점
 약간의 무심함, 멋있어 보일려고 심각한 포즈를 취하는 것. 내가 웃겨자빠지는 표정과 에피소드를 많이 알고 있으니 커버가 된다.

*당신의 모토
 넓게 보고, 충분히 느끼고, 깊게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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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8-0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도 의외로 질문은 평범하게 만들었군요. 대답은 평범하지 않게 했을 것 같은데...
시니에님의 답변도 질문보다 열배는 멋집니다!

Arch 2008-08-05 22:28   좋아요 0 | URL
hnine님 말씀만 그렇게 하시지 말고, 답변 해주실거죠? ^^ 막 강요한다.
 

 지언니는 최근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딸내미가 맘대로 생일 파티 계획을 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던 것. 엄마랑은 한마디 상의도 안 한채 갑자기 애들이, 그것도 20명 가량이 몰려오니 당황스러울 밖에. 결국 부랴부랴 자장면으로 생일 파티 비슷한걸 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후유증으로 딸내미가 은근히 팔짱을 낄때면 괜히 몸이 움츠려든다고 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땐 참 별난 아이도 있구나 싶었는데 울 옥찌도 이모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가려고 옷이랑 챙기고 있는데 지희가 말했다.

-이모, 나 오늘 데려오지마.

-왜?

-응, 규리네서 놀고 오기로 했거든.

-응? 규리네 엄마가 너네 데려가기로 했어?

-아니, 내가 찾아가기로 했어.

내가 눈이 동그래서 네가 거길 어떻게 가냐고 하니까

옥찌는 규리랑 같이 그렸다면서 약도를 보여줬다.





 그러니까 저기 하트가 있는 집이 어린이 집인데 거기서부터 규리네를 가면 된다고.

-지희야, 이모가 생각할땐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지만, 뭐 규리네 엄마랑 이모랑 좀 친해져보지.

-그래? 알겠어. 그런데 정말 이대로 가면 되는데.

 그렇게 옥찌의 알아서 계획했는데 계획 뿐인 일은 그걸로 끝인줄 알았다.

하지만 어디 그럴 옥찌던가.

금요일에 집에 오면서 방학도 되고 했으니까 뭘할거냐고 물어봤더니 다 알아서 계획을 세워놨다는 듯이 지희가 말했다.

-응, 바다 가려고.

-(금시초문인지라) 응? 누구랑?

-이모랑

-이모랑 얘기도 안 해보곤 지희가 정했네?

-응, 바다 갈거지?

 아직 바다 갈 계획은 없지만, 자라나는 새싹의 계획을 모른척 할 수도 없고.

 혼자서 뭘할지 생각했을 옥찌의 머릿 속을 떠올리자 나도 괜히 흐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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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27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약도는 진짜 좀 짱이네요, 저걸 보고 찾아간다면, 아이들은 우리들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근데 나도 진짜 요상한 약도 그러놓고는 못찾아서 헤맨 기억이 있다는 ㅋㅋ (그것도 그! 싫어하는 신촌에서)

Arch 2008-07-27 23:30   좋아요 0 | URL
지희 세계에서 웬디양님이 가끔 마실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웬디양님 닮은 웬즈데이였나? 이건 무슨!

웽스북스 2008-07-28 00:18   좋아요 0 | URL
지희와 저는 이상한 약도의 나라에서 헤매다 가끔 마주치는 사이? ㅋㅋㅋ

Arch 2008-07-28 09:07   좋아요 0 | URL
지희는 안 헤맨다구요.^^ 웬디양님이 가끔 길을 물어본다는 후문이
 

 승주나무님의 페이퍼, 박노자의 '숫자력'을 보다가 제목이 떠올랐어요.

 다들 궁금하시죠. 21%가 뭘까. 이거 웃긴 얘기 한답시고 혼자 먼저 웃어버리는 짓 같단 생각이.

 목요일에 교육감 선거가 있었는데 저희 전북은 투표율이 21%였답니다. 점점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으니 곧 다른 지방에서 열리는 선거에도 높은 수치가 나올거라 생각해요. 비록 제가 투표한 사람이 안 되긴 했지만, 소중한 한표를 아낌없이 주고 와서 기분이 좋았답니다.

 더군다나 그런거 해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울 아부지가

어디 같이 나가봅시다 하면 족히 4-5번은 조르고 윽박지르고, 퍼졌다가 다시 일어나 졸라야 그럼 한번 가볼까가 되시곤 하던 울 아부지가

-아빠 선거하러 가게.

라는 한마디에 바람같은 속도로 옷을 챙겨입으신건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은 사건이었죠.

물론 제가 선거 전에 옆에서 뽐뿌질을 좀 하긴 했습니다.

 교육의 미래가 어쩌고 하는건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아 옥찌들이 나중에 학교 다니는게 정말 행복했음 좋을텐데란 얘기랑 예산이 엄청 많다는데 이상한 사람 뽑아놓으면 명박이때처럼 두고두고 후회하고. 이게 다 국민 세금인데 블라블라 얘기를 했더랬죠.

 투표가 끝나자, 뭔가를 부지런히 기다리다 끝나서인지 약간은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빠랑 같이 옥찌들 손을 나란히 잡았습니다. 시원한 수박이라도 달콤하게 쓱쓱 베어물고 싶을 정도로 무더웠지만 맘만은 정말 가벼운 하루였죠.

 전북 뉴스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지만 다른 지역 교육감 선거에 비해꾸준히 투표율이 올라가는 것이 촛불집회로 시민의식이 향상된데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방향을 달리하는 지방의 고유 노선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한다는 논평이 나왔어요.

 다들 후보자 공약이나 면면을 잘 살피셔서 꼭 투표하세요. 평일이라고 아침 6시에서 밤 8시까지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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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2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도 아자아자예요! 제대로 된 교육감을 뽑아야 해요ㅠ.ㅠ

Arch 2008-07-26 23:15   좋아요 0 | URL
그럼요. 벌써들 말들이 많던데, 말 말고 실행으로. 아자아자! 마노아님은 따로 블라블라 필요없는걸요.
 


 이건 알라디너들도 많이 많이 올리시면 좋겠어요. 책이 꽂혀있는 어딘가, 사진이랑 같이-이건 좀 나중에-. 릴레이로 말이죠. 아마 울 웬디양님 슬쩍 먼댓글 달거라고 조심스레 점쳐보는데^^ 부지런한 순오기님도 잊진 않았어요.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보다보니 내겐 어떤 명품이 있나 두리번두리번거리다 찾아냈다. 내겐 몰스킨 버금가는 육심원의 바램이 있다. 하드커버이고, 다이어리용이라기 보다는 단순 노트. 동물원 옆 미술관에서 고르고 골라 산 것. 2년 넘게 사용했지만 심부분이 약간 흔들거리는거 말고는 튼튼한데다 종이도 여전히 붙어있다. 풀로 붙이거나 실로 꿰맨 종이들 중에는 뜬금없이 뜯어지거나 한번 뜯어지기 시작해 걷잡을 수 없는 놈들이 있는데 다행히 얘는 잘 붙어 있다. 거의 다 써가지만 아직 겉표지 그림만 다른게 하나 더 있다. 하나 은행에서 사은품으로 나눠줄 때 기를 쓰고 받아낸 것. 이럴때보면 참으로 집요해.



이 소녀, 뭔가 느끼는 표정이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어쨌든 바램이다.



이곳엔 책에서 읽은 내용을 적거나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 이 유머를 나중에 써먹어야겠다는걸 주로 적는데 가끔은 저거 꼭 먹어봐야지거나 저 포즈 좋구려 싶은 것도 뜯어다 붙여놓는다.


옥찌는...
 옥찌가 그려준 그림을 붙여놓기도 하고, 곰돌이는 정성스레 오려서 살짝 내 손에 쥐어줘서 나도 살짝 붙여줬다.


영화에 나온 대사도 단골 메뉴. 어린 지희는 저랬어요.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다이어리 꾸미고 할때는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늙어서 주책은 아니고, 이렇게 소소한 즐거움이 될줄이야. 글씨가 작은데다 빽빽하게 쓰는 버릇이 있어 좀 팍팍한 느낌이 들어 그림을 그려넣다보니 지희보다 못한 그림 솜씨가 날이 갈수록 날개를 다는 듯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거 아닌거 나도 다 안다. 그래서 차마 발로 그린 그림은 못올리겠다.

 그리고, 오늘 옥찌가 앞으로 쭈욱 생활명품이 될 듯한걸 짊어지고 오셨다.


이 시계

 분명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반경 50m안에 다 들릴게 분명하지만 옥찌가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했을텐데 어떻게 장식으로만 놔둘 수가 있겠는가. 잘때만 건전지를 살짝 빼놓을 생각.

 생활명품은 결국 쓰면서 기쁨을 느끼게 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육심원의 하드커버 노트를 볼때마다 괜히 므흣한 상상도 되고, 견고해서 그동안 노트에 쌓였던 불신감도 달아나 더없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처럼. 옥찌의 작품이 심플하고 멋스러운 명품 시계보다 낫진 않다. 그런데 난 이 시계가 자꾸 좋아진다. 저렇게 붙어있는게 떨어지는건 시간문제겠고 굳이 시계를 안 보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란 시계 존재론적 고민까지-엄살은- 할 정도로 소리가 크겠지.

 그치만 좋은걸 어떡해. 자꾸 조물조물 옥찌 손이 눈에 선한걸.

그리고 하나 더!


바로 요놈

 여유돈이 있을때마다 자전거를 사야지 사야지 했었는데 동생이 먼저 질러버렸다. 내 인생에서 자전거는 두개였는데 두개 다 도난을 당하는 바람에 살 때 제일 염두해둔 부분이 디자인이나 무게보다 남들이 눈독 안 들일만한거였는데. 이 놈은 좀 무겁고, 다른 기능 전혀 없이 그저 산뜻하고 이쁜게 다긴 하지만 자전거 도난의 표적인 청소년용이 아닌데다 눈에 쉽게 튀니 훔쳐갈 일은 없지 않을까라고 점쳐보는데. 아마 입방정 때문에 곧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하고.

 자전거를 탄다.

내리막길에서 바람을 맞으며

다리에 들어간 힘을 온몸으로 전달하며

자전거를 굴린다.

바람은 자전거의 은밀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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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8-07-2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아 멋져요!

Arch 2008-07-26 19:39   좋아요 0 | URL
와아아, 도넛공주님도 멋져요.

웽스북스 2008-07-2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자전거 나도 사고싶어요 그런데 안탈게 너무 분명!
생활명품은 따라하고싶긴 한데, 제가 물욕이 없는 편이라 (어머?) 물건에 잘 집착을 안해요- 뭐 굳이 있다면 얼마 전 샀던 명품노트? ㅎㅎㅎ

Arch 2008-07-27 23:32   좋아요 0 | URL
혹시 그 명품 아저씨께 산거 아니에요? ^^ 나름대로 추측하고 앉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