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옥찌들과 월명산을 갔다 왔다.

산을 열심히 뛰고 걷고 하다가 맞은편에서 강아지가 산책하는걸 본 민.

대뜸 '메롱~'이런다.

행여나 강아지 주인이 아이가 한짓이지만 불쾌하게 생각할까봐 좀 들으라는 듯이 -이러는 나도 참.-

-민아, 멍멍이한테 왜 메롱해.

하니까

민- 멍멍이가 메롱하잖아.

이런다. 보니까 강아지가 더워서 헥헥대는걸 보고 메롱이라고 하는 민.

그래서 가물가물거리는 기억으르 불러다 개의 체온 조절이며 과학적인 상식을 죄다 꺼내서 두서없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옥찌가 한마디 했다.

-그러니까 이모 말은 더워서 침을 퉥 뱉어서 털을 식힌다는거지?

아니, 그건 아닌데... 이거 좀 신선하잖아!

2. 월명산 중턱-중턱이라고 해봤자, 약간 오르막길 정도-쯤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 안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 자리를 딱 잡고, 옥찌는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책을 읽고, 민이는 민이대로 만화로 된 호랑이와 자동차 사진을 유심히 봤다. 나는 나대로 로쟈님이 괜찮다고 하신 편혜영 소설, 아오이 가든을 봤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좀 소름이 돋았고, 아찔했다. 계속 목 부근에 고양이 털이 거칠게 숨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리고 이기호의 소설,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이게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었던가. 내 서재 소갯말도 거기서 따왔다. 내가 하는 짓도 좀 그렇고.

 책을 읽고, 김밥이며 과일이랑 배부르게 먹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왔다.

 나오기 전에 옥찌가 읽은 인어공주가 생각나서 지희에게 물었다.

-옥찌, 인어 공주 어때?

-응, 미나 공주(인어 공준데.) 좋아.

-왜? (Why형 부모가 Why형 아이를 만든다나 뭐라나. 팔랑귀라 이 영향이 좀 있었다.)

-응, 바다에 살거든. 이렇게(잠깐 멈춰서더니 손을 휘젓는다.) 발을 못써서, 땅에서는 기어다녀.

-물고기도 바다에 사는데 왜 인어 공주만 좋아?

-미나 공주는 이쁘니까.

 왜 이쁘냐, 바닷 속에도 이쁜게 참 많다란 얘기 끝에 인어공주란 동화책이 갖고 있는 말못하는 여성과 왜 굳이 인어공주는 왕자 때문에 아름다운 다리를 포기했나, 이건 사랑 때문이라고 하기엔 가혹하단 (나 너무 앞서가고 있는거야.)얘기를 지희에게 해봤다.

-응, 그게 왕자를 만나려고 했거든. 그런데 죽어.

-왜 죽는데?

-그러니까 왕자를 만났는데 죽어.

 재차 왜라고 묻자, 답변이 궁색한 옥찌. 책을 약간 건성으로 읽은 듯도 하고, 마녀라는 말이 잘 생각이 안 난 듯도 하고. 당황한 기색없이

-그런데 입으로 물이랑 음식이 들어가면 오줌이 마려웁고, 똥이 나와.

-그래서?

 얘, 뜬금없이 뭔소리지?

-그러니까 나 지금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 돌리는 재주는 탁월하다. 화장실에 갔다와서 다시 물었다. 집요한 이모같으니라고. 이게 아이들 독서 습관을 기르는데 아주 안 좋다는건 알고, 그만해야지 싶은데도 이게 참,

-옥찌, 그러니까 왜, 누가 인어 공주를 죽인거야?

-대조영이.

 응? 이건 무슨. 내가 웃으면서 뜬금없이 무슨 대조영이냐니까, 이때다 싶었는지 맨날 반복되는 똥치로 얘기가 급반전. 똥치가 사람을 죽였고, 죽은 사람의 살때기를 진짜 칼로 벤다.-이런 하드고어적인 얘기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똥 얘기에 신이나서 폴짝폴짝 뛰는 지희. 내가 졌다. 졌어. 아무래도 나와 더불어 아빠의 대조영, 연개소문, 대왕세종에 이르기까지의 사극 컬렉션에 옥찌도 어지간히 질렸나보다. 그렇다고 거기에 대조영이라니.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어쩌고 하려다 감히 옥찌의 똥치 얘기를 중단시킬 수 없었기에... 덤으로 개똥벌레를 불러줬더니 벌레가 똥이라며 아주 즐거워하는데 달리 무슨.

 다른 아이들도 이런가? 옥찌들이 유별난건가? 하드고어. 왜 자꾸 칼 얘기가 나오는지. 좀 무섭네...

3. 빨리 내려온다고 서둘렀는데도 벌써 해가 져버렸다. 띄엄띄엄 서있는 가로등 아래를 걷고 있는데 요 그림자들이 앞으로 뒤로 옆으로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거다.

-옥찌, 그림자들이 왜 움직일까?

-기냥.

-왜?

-기냥.

-왜?

-기냥

 그때 가만히 있던 민이가 한마디 했다.

-화나서.

-응?

-그림자가 화가 났어.

그러자 지희도 거들었다.

-아냐, 화나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는거야. 화난거 아닌데.

 어? 화가 날때? 그러고보니 민이는 화가 나면 화를 어떻게 할줄 모르고 방안을 동동거리며 펄펄 뛰고, 옥찌는 삐지거나 울어버린다. 그러니까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고서도 이렇게 다르게 읽을 수 있는거였다. 자신들이 어떻게 화를 내는지 생각을 안 해봤겠지만 어쩜 이리도 그림자와 닮은꼴인지.

4. 예전에 친척 동생 명절 때 TV를 보다가 눈여겨본 순간이 있었는데,

작년까지만해도 -친척이 모여봤자 명절 때가 전부라고 할 수 있으니- 텔레비전에서 포옹이나 뽀뽀 장면이 나와도 아무렇지 않게 보던 녀석이

 그 해 명절엔 영화에서 포옹하는 장면이 나오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딴청을 하는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뽀뽀나 포옹이 의미하는바가 뭔줄 안다는 얘기 같은데 그래서 좀 부끄럽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때 그 녀석 나이가 9살 정도였다.

 오늘 민이가 연속극을 지나가면서 보다가 포옹 장면이 나오자

눈을 휙 돌리고, 딴청을 했다.

민, 넌 아직 네살 밖에 안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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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8-0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의외로 조숙한 민?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인어공주를 죽였느냐는 말은, 참 철학적인데요? 누구인걸까요?

Arch 2008-08-06 10:01   좋아요 0 | URL
민이가 그렇다니까요^^ 마녀의 욕심이 있었지만, 실은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인어공주의 자의식 문제가 아닐까란... 이거 좀 오바 맞죠!

무스탕 2008-08-0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 깜찍을 아는군요!!

인어공주는 결코 죽은게 아니란다. 비록 몸은 사라졌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영혼은 왕자님과 가족들의 가슴에 영원토록 살아가고 있는거지..
라는 뻔하디 뻔한 답변.. -_-

Arch 2008-08-06 12:22   좋아요 0 | URL
동화는 동화일 뿐이고, 어서 깨어나야한다고 자꾸 옥찌에게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요. 공주 얘기만 나오면, 아니 예쁜 친구들만 보이면 이건 나, 얘는 뭐가 이뻐라며 사랑해주는데 차마 사실 그건 어쩌고 저쩌고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