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게시판의 정회원이 되려면 꼭 거쳐야하는 관문이 이 프루스트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거래요. 답변을 작성하다 올려봅니다. 알라디너들도 한번씩 해보세요. 전, 설문하는거 좋아해서.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질문
14살 때, 프루스트는 <고백: 사고와 감정을 기록하는 비망록>이라는 영문책을 받았다. 7년 후 그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펴냈다. 이 묻고 답하기 놀이는 19세기 파리의 문학 살롱의 인기 있는 여흥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신 성격의 특징은
 오지랖퍼. 잔소리가 심하다.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도 뱉어놓고는 아차 싶어진다. 계획을 세우거나 무슨 일을 할 때 의욕은 최강이지만 실행력과 의지는 거의 빵점 수준. 가족내에서는 쪼잔하고 잘 삐진다, 혹은 그만큼 믿음직스럽다란 평가를 받는데 밖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족내 믿음과 상반되게 줄곧 덤벙대고, 믿음 안 가는 면모를 보여주고 다닌다. 예전엔 웃겨자빠지는 상황에서 자제가 안 돼 여러 사람한테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조금 정말 조금 나아졌다. 수줍어하는 경향이 있기도 한데 가끔씩은 한번 나서고 싶어서 간질거려 죽을 지경이 되기도. 대체로 관통하는 성격은 청개구리 심보.
 
*남성에게 기대하는 자질은
 아무래도 여전히 남성위주의 사회이다보니 다른 시각으로 성별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조금 깨인 감성이 있다면 좋겠고, 가사를 자기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있다면 다른건 뭐. 요리를 잘하면 금상첨화.

*여성에 있어서는?
 착하지만 않으면 된다. 싸울 의지와 알아서 죄책감을 각인하는 짓만 안 한다면. 너무 부정적인 바람이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장대비처럼 시원하게 뿜어대는 유머 감각을 지닌 여유로운 사람.

*친구들 간에 가장 고맙게 여기는 것
 추억을 환기시켜서 주는 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지만 나를 좋게 보려고 애쓰는 점. 나에게 쓴소리를 할때는 유머 감각을 발휘할줄 아는 센스.

*당신의 최대 결점은
 자기 합리화에 지극히 능하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의 부재. 언행불일치의 표본

*좋아하는 일
 한시간 정도의 산책과 도서관에 드러누워 책읽기. 멀쩡한 재료로 나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하는 것. 반짝이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는 것. 약간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얼음을 아삭아삭 씹는 것. 친구랑 껄껄대며 웃고 수다떨기. 싸고 맛있고, 밥을 많이 주는 식당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는 것. 알라딘 서재에서 놀기. 놀이터에서 조카들과 놀기. 옛날 댄스곡 틀어놓고 몸 흔들기(이건 절대 춤이 아니다) 잡지나 신문 스크랩하기, 아저씨들 유머 엿보기, 엄마 아빠한테 내가 어렸을 때 어땠는지 얘기 듣는 것, 뭔가를 부단히 배우고, 깨닫는 것 등등.

*바라건대
 나의 길에 올인했으면, 그게 아니라면 밥벌이라도 좀, 그것도 어렵다면 자기 인식이라도 좀.
 대통령이 큰 실수 안 하고 임기를 마쳤으면
 조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랐으면 
 우리 가족 뿐 아니라 모두가 행복했으면
 전쟁이나 기아로 아이들이 죽지 않았으면
 착취와 자원 낭비가 더 이상은 없었으면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불행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게 되는 것. 내가 정말 이렇게 삽질하다 느닷없이 죽는 것.

*되고 싶은 사람
 나의 멘토처럼 성찰과 자기 인식이 분명한 사람.

*살고 싶은 곳
 강원도의 산골, 슈바빙의 으슥한 골목에 있는 샛방, 남미의 분홍색 집.

*좋아하는 색
 연보라색

*좋아하는 꽃
 황금 달맞이, 샤스트 데이지, 목련

*좋아하는 새
 참새, 산속의 이름모를 새들.

*좋아하는 작가
 프루스트, 여전히 알랭 드 보통, 아베 코보와 조지 오웰, 레마르크, 폴 오스터, 카뮈, 마루야마 겐지, 톨스토이, 은희경, 김연수// 문학에 국한되는게 아니라면 강준만, 진중권, 박노자, 서경식, 정희진, 시네21의 김소희 기자, 바자의 에디터 김경씨의 글들. 써놓고보니 역시나 얕다. 넓은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시인
 이성복, 윤동주

*픽션 속 인물 중 당신의 영웅을 뽑는다면
 토지의 주갑, 버팔로66의 남자 주인공 , 조르바, 아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픽션 속 여성들 중에서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니나

*좋아하는 음악가
루시드 폴, 피아쏘야, 조빔, 김광석, 유재하, DJ DOC, 쿱, 에디 하긴스 트리오, 빌리 할리데이

*좋아하는 미술가
 르네 마그리트, 피카소, 샤갈, 김홍도, 이중섭

*실제 세계 속 영웅은
 영국 사람인데 팔레스타인 협상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역사 인물 중 당신의 여신을 꼽는다면?
 이제는 역사가 된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나혜석

*좋아하는 이름
 이름 속에 민과 섭이 들어간 이름. 나는 아이디를 지을 때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말들을 조합하는데 그게 대개는 일본식 이름일 때가 많다. 내가 짓지는 않았지만 엘로이즈란 이름을 좋아한다. 이건 밀리언 달러 호텔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탐탐 역시 좋다.

*가장 싫어하는 것
 습관적인 불친절함. 잘난체(내가 많이 저지르고 다녀서)

*가장 혐오하는 역사적 인물
 연개소문, 대조영 등 사극 속 인물들. 요즘 아버지가 하나 티비로 계속 보시는 바람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배경 음악만 나와도 으윽. 이건 정말 농담이고.
 히틀러와 부시, 네로 황제, 전두환과 박정희

*가장 좋아하는 군사적 사건
 흠, 관심이 없어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혁신이 있다면
 호주제가 가족관계법으로 바뀐 것. 혁신이란 말을 한번도 써본 적이 없다는 것?

*하늘이 내려주었으면 싶은 선물
 창호지로 문풍지를 만든 방에 쨍하고 해가 비치고 라디오가 있고, 삼면은 책으로 쫙 둘러싸인 내 집. 문을 열어놓으면 먼데 바닷가에  떠돌던 냄새들이 바람에 실려 짭쪼름함을 전해주고, 솔향도 나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듯. 

*어떻게 죽고 싶은가?
 스코트 니어링처럼 내가 죽고 싶은 순간, 서서히 굶으면서. 과연 내가 그런 의지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당신의 정신적 상태
 무직자의 정신 상태. 자포자기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불끈불끈 솟아대고, 그러려니 했다가 버럭버럭 화가 나고. 대체적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편. 말하는거봐선 상태가 심각하지만.

*참을 수 있는 결점
 약간의 무심함, 멋있어 보일려고 심각한 포즈를 취하는 것. 내가 웃겨자빠지는 표정과 에피소드를 많이 알고 있으니 커버가 된다.

*당신의 모토
 넓게 보고, 충분히 느끼고, 깊게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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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8-0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도 의외로 질문은 평범하게 만들었군요. 대답은 평범하지 않게 했을 것 같은데...
시니에님의 답변도 질문보다 열배는 멋집니다!

Arch 2008-08-05 22:28   좋아요 0 | URL
hnine님 말씀만 그렇게 하시지 말고, 답변 해주실거죠? ^^ 막 강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