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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
노무현 지음 / 새터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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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009년 5월 23일 요즘의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느지막이 눈을 뜬 나는, 그 뜬 눈을 다시 감아버리고 싶을 만큼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놀란 가슴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았고, 많은 국민들이 그랬듯 나도 슬픔과 애도 속에 한 주를 보냈다. 29일 그를 영영 보내게 되는 순간까지도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가 유서에 남겼듯 나 또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힘들게 되어버린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일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한동안 멍하니 있기도 하였다.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는 28일 집과 가까운 전주 종합경기장의 분향소를 찾았다. 노란 끈에 마지막 편지를 그에게 남긴 후,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그의 영전 앞에 바치며 나는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진하게 피어있는 향냄새와 그가 마지막에 찾았다는 담배 냄새가, 그때까지도 인정이 되지 않았던 그 와의 이별을 어느 정도 실감 나게 하였다. 바보 노무현과의 이별은 하염없는 그리움을 남겼다. 나는 그를 보내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그 어떤 심정으로 그의 향기와 추억을 잡고 싶어, 생전에 그가 썼던 책을 잡게 되었다. 이 책을 받아본 날은 29일. 그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었다. TV로 영결식 중계를 계속 지켜보면서 이 책을 넘겨나갔는데 마음이 아려와 한 번에 오래도록 책장을 넘기지는 못하였다. 슬픔을 다스리고 감정을 정리하느냐 이 책을 넘기는 게 쉽지 않은 탓이었다.

2. 시골 촌뜨기 노무현

 힘겹게 그러나 힘차게 책장을 넘겨갔다. 나지막한 그의 고백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p.2 내가 이 이야기를 숨기는 한, 내 삶의 어떠한 고백도 결국 거짓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며 숨기고 싶었을 자신의 치부까지도 드러내며 글을 시작한 것이다. 잘못한 일은 곱게 포장해버리고, 핑계대고 싶어 했을 법한데, 경솔했던 자신의 행동을 첫머리에 고백하며 시작하다니 역시 바보답다. 그러나 그 바보는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그렇게 잘못한 일들은 잊지 않고 자신을 가다듬고 반성하는데 사용하였다. 자신의 어린 시절 잘못까지 훗날 돌이켜 거울로 삼을 정도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시골 촌뜨기 어린 노무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참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란 걸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 너무 가난하여 중학교 진학도 간신히 하였고, 입학금이 없어 고등학교 진학은 더더욱 어려웠다. 학교 다닐 적엔 기성회비를 제 때 못내 벌을 섰을 일이 있었을 만큼 그의 집은 가난하였다. 그는 봉화산과 자왕골을 등에 지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칡을 캐고, 진달래 따고, 바위를 타기도 하며 자랐다. 가난하였지만 막내로 태어나 가족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가 누나 둘 형님 둘을 둔 막둥이란 사실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형의 장난감이 갖고 싶으면 엉엉 울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대목에서는 그가 영락없는 막내였구나 싶었다. 시골 작은 마을, 막내둥이를 사랑하는 가족들,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을 때 그를 믿고 혼인한 아내가 그를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해준 디딤돌이었던 것 같다.

3. 노무현의 정치 인생

 이 책은 굴곡 많았던 그의 일생을 담담하게 말해준다. 때론 시련과 아픔을 겪고, 때론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낀 인간 노무현을 말해준다. 그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무수히 겪은 시련들과 인간적인 번뇌를 그려낸다.
 <p.80 줄을 잘 서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기회주의의 시대, 나는 그러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본보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노짱은 기회주의 세상과 맞짱을 떴다. 그의 생활기록부에 선생님이 기록해 놓은 것처럼 적절히 타협하는 법이 없었던 그는,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를 할 적에는 판사나 검사에게 슬슬 기던 그 당시 세태에 맞짱을 떠, 뒤에 올 불이익이나 어려움을 각오하고서까지 판사나 검사의 부당한 행동에는 열심히도 싸웠다. 정치를 시작 한 후에는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故 정주영 회장에게도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며, 국민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싹싹 긁어줘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3당 합당을 할 적에는 야당 없는 민주주의가 어디 있겠냐며, 반란의 책임자들에 대한 역사의 심판은 해야 한다며 끝까지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반대했다.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을 그는 주저 하지 않고 했다. 그야말로 수레와 맞짱을 뜨겠다는 사마귀와도 같은 바보 노무현이었다. 약한 자에는 약하고 강한 자에는 더 강했던 그의 다부짐이 노란 돼지 저금통 부대를 만들었고, 그를 대통령의 자리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셀 수 없는 좌절과 아픔을 겪으며 치사한 세상과 맞짱 떠온 그는, 모두가 가난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 꿈을 위해 오기와 포부로 달렸다.

4. 별이 지다

 이 책은 1994년에 쓰였다고 하니 꽤 오래 전이다. 그러나 이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일주일 전에 쓰였던 그의 유서처럼 느껴진다. 그의 인간적인 번뇌와 여러 생각들이 가슴에 와 박힌다. 그가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은 그의 못다 이룬 꿈만은 아닐 것이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자신의 남편이나 부모님의 상을 당한 양 그 슬픔을 끌어안고 나누는 모습에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래도 아직은 대한민국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신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은 여기 남아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의 애도와 슬픔 속에 그는 먼 길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원칙과 소신들은 우리 가슴에 작은 씨앗이 되어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 날 것이다. 이마에 깊게 패인 일자 주름과 같은 성품을 지녔던 바보 노무현을 그 씨앗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정치인이기보다는 따스한 한 인간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의 마지막 길에 날린 노란 종이 비행기에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실어 보낸다.

떠나는 사람이야 말이 없다지만
보내는 사람들의 전하지 못한 말은
끝없이 메아리치네.

많이 그리웁다 말하면 전해질까
보내기 싫다 떼쓰면 돌아올까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끝없이 후회를 만드는 추억에 사무치네.

국화꽃 한 송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눈물 한 방울
노란 종이비행기 그리움 날리며
눈물 한 방울

아아, 가더라도 아주 가지는 말기를
부디 아주 가버리지는 말기를. 
                                                                                 2009.5.29 그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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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7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멋진날 2009-06-08 10:03   좋아요 0 | URL
부끄럽지만 제가 쓴거에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어쩌다보니 제가 시를 쓰게 되었네요.
 
오래된 마을 - 김용택 산문집
김용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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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이 전하는 정겨운 시골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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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을 - 김용택 산문집
김용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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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용택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

1. 시인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김용택-그 여자네 집 中에서...

 김용택 시인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그 여자네 집>에서 인용된 시 '그 여자네 집'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김용택 시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이 '그 여자네 집'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으로 그의 작품을 만난 것은 아마도 '섬진강'인 듯하다. 그의 시 섬진강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섬진강시인이라고도 부른다. 참으로 시인에게 어울리는 애칭이 아닌가. 실제로 김용택 시인의 삶은 섬진강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곤란할 테니까 말이다. 서정주 시인을 키운 것이 8할이 바람이라면 김용택 시인을 키운 것은 섬진강일 테니까 말이다. 나는 자연에서 살아온 그에게서 자연의 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과 또 마주하게 되었다.

2. 김용택 시인이 전하는 자연의 소리, 사람 사는 소리

(1) 자연의 소리
 꽃이 피는 살구나무 아래 앉아 문득 고개 들었더니 서른이었고, 살구나무 아래 앉아 아이들이랑 살구 줍다가 일어섰더니 마흔이었고, 날리는 꽃잎을 줍던 아이들 웃음소리에 뒤돌아보았더니 쉰이었다고, 학교를 떠나며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는 살구나무를 바라다보니, 어느새 예순이 되었다는 김용택 시인. 일평생을 자연과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보낸 그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나이가 얼마만큼 차면 큰 도시로 나가는 것이 법에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가지만, 김용택 시인은 자신을 묵묵히 바라봤다는 살구나무같이 묵묵하게 고향에서 자연의 소리를 벗 삼고, 뛰노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에게는 자연의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재산이라도 되는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재산에 참으로 욕심이 났다. 흔들리는 나뭇잎에 눈부셔 하고, 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렁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그의 재산이 탐이 났던 것이다.<p63 햇살이 쏟아지는 커다란 나무 아래 서서 바람 속에 온몸을 다 맡긴 나무를 바라볼 줄 아는 이는 살 줄 아는 이지요.> 살 줄 아는 시인 김용택이 부러웠다. 그가 대접해주는 따끈한 자연의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며, 결국엔 자꾸 탐이 났던 그의 여유를 훔쳤다. 자연을 바라볼 줄 아는 그 눈을 훔쳤다. 그것은 나눠도 나눠도 줄 지 않을 것이므로 시인도 양해해 줄 꺼라 믿으면서 말이다.

(2) 사람 사는 소리
 자연이 삶이고, 삶이 자연인 진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또한 이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이 말하다 저 말해도 말이 이어지고, 어떤 말이 잊어버릴 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 불쑥 대꾸하는 욕심 없고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새가 우는 소리를 알아듣고 해석하는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선 정겨운 시골냄새가 난다. 자연의 숨소리와 함께 숨을 쉬는 오래된 마을 사람들에게서만 나는 시골냄새. 네 일 내 일 구분 없이 네 일이 내 일인 진메마을 사람 사는 소리가 참으로 사람 사는 소리답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어울림을 자연의 이치를 통해 배운 그들이 이야기가 사람 사는 이야기 아닐까. 
 스스로 자신을 얼치기 시인이라고 하고, 시골쥐라고 하는 김용택 시인이 참 정겹다. 촌사람을 좋아한다는 시인. 나 또한 그가 촌사람이어서 참 좋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풀꽃들에게도 이름을 모르면 미안한 일이라고 말하는 촌사람 김용택이, 인간냄새 풀풀 나는 그가 좋다.

3. 오래된 마을 지키기    

<p18 인간들의 탐욕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땅과 하늘, 문명의 탈을 쓴 이 야만의 시대여!>그는 인간의 끝임 없는 욕심으로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걱정한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세상을 안타까워한다. 모든 창조는 자연에게서 나온다는 그는 우리의 어머니인 자연과의 상생적인 공동체를 꿈꾼다. 그것이 그만의 꿈이여 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 사는 이치를 가르쳐 주는 자연에 있어서 겸손함을 가지고 또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 역시 김용택 시인에게서 훔쳐온 것이다. 정겨운 시골냄새를 맡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그와 함께 꾼다. 항상 누군가에게 쫓기 듯 살아가는 우리네들에게 시인이 준 여유라는 선물을 겸허히 받는다. 신발 두 짝을 손에 들고 맨발로 보드라운 흙길을 걸은 듯 상쾌함이 온 몸을 감싸준다. 이 상쾌함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도록 오래된 마을을 지켜줘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시인과의 티타임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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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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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심장을 쏴라>라는 작품이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걸 알고나서는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 제1회와 제4회의 수상작인 박현욱 작가의 <아내가 결혼했다>와 백영옥 작가의 <스타일>을 매우 흥미롭게 읽은 탓이었다. <내 심장을 쏴라> 제목부터가 흥미롭지 않은가.  

 처음 책장을 펼치고 이 책의 주인공들을 만나러 가는 과정은 사실 힘든 여정이었다. 나와는 무언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 또 쉽게 남과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주인공의 성격때문에 나 또한 주인공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주인공과의 서먹한 만남으로 책 전반부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읽다보니 어느순간 주인공이 툭툭 한마디씩 건네며 친한 척을 하였고 이내 이 책의 주인공들이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는 순간부터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지르며 책을 읽게 되었다. 

 그가 내가 되는 순간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내 친구가 된 듯 살가워졌다.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 어쩌면 나에게 선입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와는 다르다. 그래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고쳐지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도 나와 같이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나의 뜨거운 심장으로 그들에 대한 연민을 보냈다. 그들의 심장은 어쩌면 나보다도 더욱더 경렬하게 뛰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간절히 원하는 것도 없이 하루하루 보내는 나보다는 정신병원의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무언가를 갈구하는 그들의 심장이 더 뛰고 있었을 것이다.  

 이 책속의 인물들의 심장뛰는 소리를 느낄 때 이제 나는 그들과 타인이 아니었다. 가냘픈 외모로 미스리라 불리며 여자취급도 당했지만 결국은 내 심장까지 뛰게 만든 '이수명'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승민" 승민을 자신의 또별이라 여기며 승민 등에 붙어 다니는 "만식씨" 수리 희망병원의 공식 커플 지은이와 한이까지 모두 나, 또는 내 가족이 되어 간다. 더이상 낯설지 않은 그들에게서 나를 느낀다. 뜨거운 희망을 느낀다.  

 그다지 공평하지 않은 이 세상에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한테서, 자신한테서 도망치는 병을 가진 주인공이 기필코 자신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루하루를 다람쥐 쳇바퀴 돌리 듯 똑같은 자리에서 반복하는 우리의 일상이 정신병원에 갇혀 하루하루를 보내는 정신병동 주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인생이라지만 결코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뜨거운 심장을 느낀다. 세상 그 무엇보다 숭고한 아름다운 감정을 느낀다. 주인공 수명은 자신한테서 도망치고 마는 아픔을 이겨냈고, 그토록 날고 싶어 하는 승민은 세상을 향해 날았다. 매일 밤 염소가 기억을 뜯어먹어 치매기운이 있음에도 자신의 또별의 신변에 생긴일은 염소에게 뜯기지 않는 만식씨. 지은이가 귀찮아 해도 늘 지은이의 침을 닦아주는 한이의 마음은 결코 헛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 같이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나는 나일 뿐이라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다.  

 그들의 세상에 대한 외침은 내 심장 또한 뜨겁게 뛰게 하는 메아리를 남겼다. 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 적이 있던가. 내가 주인공인 이 무대에서 나는 멋진 공연을 하고 있는가. 그게 아니었다면 이제라도 뛰는 가슴으로 멋진 공연을 펼쳐 보일 작정이다. 그들의 세상에 대한 외침이 저 먼산에까지도 퍼졌으면 좋겠다. 어떤 누구라도 좋으니 메아리 쳐달라고 부탁해본다.

 p264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나도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쳐본다. 모두 비키라고.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들은 지금 바로 비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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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멋진날 2009-06-1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4주 이주의 마이리뷰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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