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
이승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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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가 한국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또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 이승우 작가라는 것 역시 그렇다. 르 클레지오 작가가 우리나라에 관해 상당히 호의적인 말들을 많이 했지만, 그 중 내가 가장 반갑고 설렜던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 할 작가가 곧 나올 것이라고 말해준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도 머잖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가 나오기를 염원하며 이 책을 펼쳤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 같다.

 이 책 오래된 일기는 이승우 작가가 몇 년간 문학지에 발표한 단편소설들을 하나로 엮어놓은 책이다. 따로따로 있었을 때에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하나로 묶어 놓아도 각 작품들이 어딘 가 모르게 연결 된 부분들이 있어, 번잡하거나 어색하거나 하는 것이 없다. 잘 엮어진 그물처럼 촘촘하고 꼼꼼하게 각 작품들이 얽어져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잘 짜인 그물에 걸린 작은 물고기 쯤 되었을까.

 물고기가 된 나는 그가 쳐 놓은 그물에서, 한없이 캄캄하고 어두운 그 어떤 것들을 만나게 되었다. 밝은 빛을 찾으려 팔딱 거려 보아도 어디에도 나를 비추는 빛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그러하다고 평가되고 있듯이, 이 작품 역시 그리 밝지 않다. 비상금 숨겨두듯 꼭꼭 숨겨두고만 싶은 어릴 적 트라우마나, 그것의 크기가 크든 작든 누구나 언젠가는 느꼈던 죄의식들을 굳이 잡아 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의 표제작 오래된 일기에서 그는 누구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자신의 분신 일 주인공의 정직한 일기장을 공개함으로써, 우리들이 불편해 할 내밀한 진실을 밝힌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저질렀을 죄, 그것이 자신이 원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가야 할 죄(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 풍장-정남진행2), 가슴엔 담아도 차마 고백은 하기 힘든 빚진 마음(실종 사례) 이런 것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이런 것들을 불러 모은 자리가 편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난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라며 슬그머니 이 자리를 빠져 나오려는 것은 더욱 편치 못할 일이다. 그래요, 나도 살면서 어쨌든 죄 짓고 살았어요. 그래서 어쩔 건데요? 하고 대들어 볼까도 했지만 그는 나를 혼내려는 생각도 없어 보인다. 어쩌면 자신도 그렇다 하며, 내가 실수로 컵을 깨트릴 때, 자신은 비싼 도자기를 깨 보임으로써 그걸 입증해 보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 있는 이런 것들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죄 때문에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그 원죄 의식과도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그가 굳이 비싼 도자기를 깨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분신을 통해 적은 일기장처럼 훗날 내 일기장에는 정직하게 나의 죄를 고백할 수 있을까. 불편하지만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진실들을 정면으로 보게 된 나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될까. 이 책을 덮고 난 밤 나는 꼬리를 물고 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으로가 아닌 실제로 작가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들은 듯 한 느낌이 지워지지가 않아서였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꼈던 사실은 작가들은 참 생각이 젊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작가의 생각을 젊게 하는 것인지, 생각이 젊은 사람들이 작가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작가의 신체 나이가 몇 살이든 관계 없이 여러 연령층의 독자와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 작가들의 생각이 젊다는 것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작가와 소통을 했다고 하면 외람된 말일 지도 모르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호기심이 생긴 것을,앞으로 자신과의 소통을 허락한다는 이승우 작가의 무언동의 쯤으로 여기고 싶다.

 글을 마치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책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작가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의 훌륭한, 이타적인 독자들에게 인사한다. 또 넘어가주고 넘어간 척해주고, 또 빈말해 달라. 그러면 나는 또 엄살 부리고 스스로를 달랠 힘을 얻겠다.

어쩌면 그가 말한 것처럼 나도 그에게 넘어가 준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쳐 놓은 그물에 일부러 뛰어들은 물고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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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1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어느멋진날 2009-06-14 23:32   좋아요 0 | URL
많이 길고 지루한 글이었을 텐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ㅡ^

노이에자이트 2009-06-1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 클레지오가 화순 운주사를 방문했을 때 인상이 깊었다고 말하더군요.
이승우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군요.한승원,이청준과 고향이 같아요.전남 장흥.

어느멋진날 2009-06-14 23:4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은 모르시는게 없는 것 같아요.정체가,,,?? ㅎㅎ
그래도 하나는 알았어요^^ 광주에 사시는거 ㅎㅎ

노이에자이트 2009-06-15 00:11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게 많지요? 모르는 것 빼고 다 알아요.

어느멋진날 2009-06-15 00:27   좋아요 0 | URL
깜짝 깜짝 놀라요,, 노이에자이트님 때문에,,ㅎㅎ 두루두루 박식하신 것이 부럽네요. 연륜이 쌓이고 내공이 쌓이면 저도 언젠가 그 모습 닮아가겠죠? 하하,,

노이에자이트 2009-06-15 01:17   좋아요 0 | URL
연륜이라뇨...저 아직 청춘이에요.청춘남녀끼리 다 아시면서...

어느멋진날 2009-06-17 12:53   좋아요 0 | URL
헤헤~알다마다요^^ 노이에자이트님 청춘!

[해이] 2009-06-1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주목해야 겠어요^^

어느멋진날 2009-06-15 00:26   좋아요 0 | URL
네^^저두 주목해 보려고 하는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이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어느멋진날 2009-06-1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 3주 이주의 다음 블로거뉴스 특종으로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ㅡ^
 
오래된 일기
이승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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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부재를 통해 그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낸다.-17쪽

진부함과 지루함이야말로 삶의 속성. 진부함은 편안하고 지루함은 안정감을 준다.-42쪽

지진이야 늘 일어나지. 땅은 살아 있으니까. 사람이 의식하든 않든 땅도 생명체처럼 숨을 쉬고 꿈틀거리는 거지. 아주 가끔 사람들이 그 움직임을 눈치채고 호들갑을 떠는 거지. 그게 지진이지.-59쪽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떼어내서 하루씩 삶을 연명하는 거랍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내놓아야 하는 거지요. 그것이 인생이에요. 떼어낼 것이 없어지면 삶도 멈추는 거겠지요.-91쪽

같은 일이 반복되거나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그게 일상이지. 다른 사람이라고 뭐 다를라고.-96쪽

그러니까 타인과의 삶을 상정하는 윤리의식이라고 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개인의 이기심에서 발원하고, 또 그것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개인의 모든 윤리적 활동의 동기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이기심일 뿐이라는 주장도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다.-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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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6-1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리직톤의 초상> 읽은지가 가물가물...이승우 씨는 여기 광주에 살면서 조선대 교수로 있어요.광주에 산다는 것을 작년에 처음 알았네요.

어느멋진날 2009-06-14 00:25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이승우 작가님이 광주에 사시는군요. 전라남도 광주 말씀하시는 거 맞죠? 생각했던 것 보다 가까이 사신다니 그냥 기분이 좋네요. 내일쯤 해서 오래된 일기 리뷰를 쓰려고 먼저 밑줄긋기로 시동 걸어놨어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09-06-14 14:46   좋아요 0 | URL
광주가 광역시 된지 오래되었어요.그런데 광주 사람들까지 전라도 광주라고 하는 통에 아직도 전남 광주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그래서 저는 "인천이나 대구는 다 광역시인줄 아는데 광주 사람들까지 전남 광주라고 부르니 타지역 사람들이 광역시인줄 어떻게 아느냐"고 혼내?주지요.하긴 기자들까지 전남 광주라고 하는 것을 오늘도 봤네요.

어느멋진날 2009-06-14 14:49   좋아요 0 | URL
아~ 광주가 광역시인지 몰라서 전남 광주냐고 하는 게 아니구요,, 경기도인가에도 광주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곳을 구분하기 위해 전남 쪽 광주 이렇게 말들을 하는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9-06-14 14:59   좋아요 0 | URL
어린시절(군사정권 때)에 강원도 영월에서 광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경기도 광주로 가느냐고 물어봐서 저기 전라도로 간다고 하니까 와...엄청나게 먼데로 간다고...하기야 지금도 영월에서 광주가 먼데...영월은 가보셨나요? 우리동네 바로 앞에 동강이 있었는데...

어느멋진날 2009-06-14 15:01   좋아요 0 | URL
정말 멀리 이사 오셨네요^^저는 이사를 몇 번 하긴 했지만 전라북도는 벗어나지 않았네요,,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을 쉽게 벗어나진 못할 것 같아요.ㅎㅎ
 
워낭소리 - Old Par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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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신문을 읽던 아빠께서 영화 워낭소리 이야기를 꺼냈다. 워낭소리가 뭔 줄 아느냐고, 나는 처음 들어 본 말이라 시인하였고, 아빠한테서 소에게 달아 놓은 방울 소리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소 방울 소리? 그게 워낭소리라,, 이름 참 예쁘게 잘 지었네, 하며 그러냐고 했더니 아빠는 이 영화 꼭 한 번 보고오라고 당부를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워낭소리가 100만 관객을 돌파했네,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그 영화에 출연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각종 매스컴에서 찾아서 힘들게 하네, 하는 이런저런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아빠의 당부가 있었지만, 나는 결국 그때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 끝까지 안 볼 생각을 한건 아니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보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 기회가 오늘 찾아왔다. 워낭소리가 개봉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고, 그 시간동안 워낭소리는 독립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약 290만 관객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이 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을 울린 그 소가 보고 싶기도 해서,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오늘 워낭소리를 듣게 되었다.

 팔순이 다 되어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마흔 살 된 소가 꾸려가는 이야기다. 소가 마흔 살이나 먹었다니. 원래 소의 수명은 15~20살쯤이라고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농사일도 하여야 하고, 할아버지 병원에 갈 때나 어디든 갈 때 교통수단이 되어 주어야 하는 소는 자신의 할 일이 아직 많다고 생각해서 인지 마흔 살이나 먹을 때까지 제 나이를 모르고 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제 나이를 알면서도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정성스레 여물을 끓여주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내는 워낭소리는 귀신같이 들어주는 할아버지를 두고 쉽게 갈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팔순 다 된 할아버지와 마흔 먹은 소는 참 많이도 닮아 있다.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몸에 담고 있어, 잘 걷지도 듣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와, 비틀비틀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 소의 모습이 아프게 닮아있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는 것도 닮았다. 마치 자신의 숙명이라 여기는 듯, 비가와도 할아버지는 비옷을 입고, 소는 비닐을 덮고 어김없이 할 일을 해나간다.

 그렇게 소를 부려 일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농약과 기계로 비교적 쉽게 농사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가 된다. 우리도 농약을 하자고 하는 할머니의 말에 농약 치면 풀을 소 못 먹인다고 안 된다고 해버린다. 고추가 중해요 소가 중해요? 하는 물음에도 망설임도 없이 소가 중하다고 하는 정도면, 소가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 할아버지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소는 알고 있는 듯하다. 그 증거를 대보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많지는 않지만, 소의 그 커다란 눈이, 할아버지가 가자고 하면 어디든 가는 소의 그 모습이 그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할아버지에게 소는 친구고, 자동차고, 자랑거리다.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도, 자신이 소를 타고 가다가 깜박 졸았는데 눈 떠보니 집에 와있더라고 하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자랑한다. 또 차가 오면 알아서 지가 비킨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나는 중학교 때 지금 살고 있는 시골마을로 이사를 왔다. 지금은 이사 온 지 10년 정도가 지났는데, 내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나보다도 먼저 터 잡고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소가 있다. 소 주인인 동네 할아버지는 늘 소를 타고 다니시는데, 어느 날 우리 집으로 놀러 온, 서울이 고향인 친구가 그 모습을 보더니 신기하다며 사진까지 찍고 했다. 나는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소를 자주 보아 별로 신기하지 않았는데, 서울이 고향인 그 친구의 눈엔 마냥 신기했나 보다. 소의 모습에 무뎌진 나에게도 정말 신기해 할 일이 한 2년 전에 일어났다. 어느 날 차를 타고 동네로 들어온 나는 멀찌감치 묶여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소 때문에 잠시 고민했다. 소가 차가 지나가야 할 길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그 주인인 할아버지를 찾아서 말씀드려야 하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 소가 나를 보더니 딱 비켜서 길을 내주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다칠까봐서 비킨 건지 그냥 나 갈길 가라고 비켜 준건지는 확실치 않으나 정말 신기한 일인 것임은 확실했다. 이제 2년이 지난 일인데도 나는 아직도 생각이 나면 가족들한테도, 친구들한테도 몇 번이고 그 일을 이야기 하고 다닌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의 차가 오면 지가 알아서 비켜 하는 그 말씀은 거짓이 아니란 건 내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정말 그런 소가 있다는 것이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과 함께 세월을 보낸, 같이 농사일을 하는 소는 이미 반쯤 사람이 된 것 같다. 할머니와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소를 팔기로 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는 밥도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그 소가, 그 눈이 반쯤 사람 된 소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강산도 4번이나 변했을 40년 세월을 함께 한 소를 우시장에 데려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소를 얼마면 팔겠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500만원! 그 이하론 안 팔어! 하고 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선 어쩌면 처음부터 소를 팔 생각이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500만원? 마흔 먹은 소를 누가 그 돈 주고 사~ 거저 줘도 안 가져가~ 하는 사람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그걸 뒷받침 해 줬다. 이미 반 사람이 된 소고, 이미 할아버지의 일부가 된 소가 아니던가. 너무도 닮은 그들을 어떻게 떼어놓을 수 있을까. 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잔을 뚝딱 해치우는 이 소는 농사짓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다름없다.

 딸랑 딸랑~ 하며 울려 퍼지는 그 워낭소리를 그리고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소는 귀신같이 알아듣는 소를 모는 할아버지의 그 소리를 오래도록 듣고 싶다. 우직하게 농촌을 지키고 농사를 짓는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 표현대로 부리는 소들이, 사람과 함께하는 그 소들이 이 땅에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내 귀에는 오래도록 워낭소리가 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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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1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워낭소리'를 놓쳤어요.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맘이 컸어요.
다들 너무 워낭소리워낭소리 그러니까 청개구리처럼요.
리뷰 잘 읽었어요. 디비디로 빌려볼 생각입니다.^^

어느멋진날 2009-06-14 23:31   좋아요 0 | URL
저도 좀 그랬던 것 같아요. 워낭소리 때문에 시끄러우니까,,그래서 시간 지난 후에야 봤네요,,꼭 빌려 보세요^^ 한번 꼭 봐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이야님 반가워요^^

유쾌한마녀 2009-06-2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밍밍한 영화인것 같아서 일부러 안봤는데 보고싶은 마음이 생겼네요 ㅎㅎ 기회되면 빌려봐야겠어요 ^^

어느멋진날 2009-06-21 13:07   좋아요 0 | URL
너무 울지는 마셔요^^ 전 엉엉 울어버렸답니다,,
 
천사와 악마 - Angels & De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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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간 동생이 작대기 하나를 더 달고 휴가를 나왔다. 작대기 하나를 더 달아서 인지, 짬이 생겨 머리를 조금 더 길러서 나와서 인지 같이 영화를 보러 나가자 했다. 일반인으로서 군인의 작은 소원 들어주는 것은 북한이 도발하고 있는 이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같이 여겨졌다. 하지만 곧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발견해 냈다. 그것은 군인동생이 지금 보고 싶은 영화가 무어냐고 물어보는 일이었다. 군인동생은 바로 천사와 악마라고 했다. 이것이 오늘 내가 이 영화를 보러 가게 된 전말이다. 동생이 보고 싶다는 영화를 갑작스레 보러 가게 되는 바람에 난 이 영화에 대한 일말의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영화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달콤한 팝콘은 잊지 않았다. 
  

 영화의 제목만 알고 극장에 들어가게 된 나는 동생에게 무슨 내용이야, 물으려다 행여 스포일러가 있을까봐 그만둔 대신, 제목만 가지고 내용을 살짝 유추해 보려 노력해 보았다. 천사와 악마라,, 제목 한번 유치하다. 결국 내가 떠올린 건 날개 달린 하얀 천사와 창을 번쩍 들고 있는 악마의 모습이 다였다.
 결국 영화에 대한 코빼기의 정보도 없던 나는 영화 시작과 함께, 영문도 모른 채 바티칸으로 초대되었다. 화려한 로마 성당 안을 둘러싼 알 수 없는 음모의 그림자가 긴장감을 갖게 함과 동시에 흡인력을 발휘하였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영화가 가볍지 않을 것임을 눈치 챘다. 종교라는 배경이 가볍고 쉽게 다뤄졌던 것을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황을 선두로 한 종교와, 법칙과 원리로 무장한 과학과의 싸움이 어디 가벼워보이는가.(반전이 있긴 하지만.) 


 처음에 내가 유치하다며 떠올렸던 하얀 천사와 검은 악마의 모습은 없었다. 누가 천사고 누가 악마인가. 어느 쪽이 천사고 어느 쪽이 악마인가. 영화가 끝나고 출연진의 이름이 올라갈 때까지 나는 결국 답을 내리지 못했다. 천사와 악마는 혼재해 있다는 것이 마지막 내 결론이었다. 천사라고 뿔이 날 때가 없겠는가. 악마라고 동정심이 발동 할 때가 단 한순간도 없겠는가 말이다. 지금 내가 한 말을 누군가가 듣는다면 혹자는 천사에 대한 모독이다, 악마의 편을 든다 하며 나에게 힐난을 가할지 모르겠으나, 여기서 내가 말한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날개 달린 천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내가 말한 악마는 사탄이라 지칭되는 그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다.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결국 신을 섬기는 신자들도 사람이고, 각종 법칙을 발견해 내는 과학자들도 사람이다. 우리 인간들에겐 참으로 다양한 모습이 내재되어 있다.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이든, 악마의 탈을 쓴 천사이든 한가지만의 모습은 분명 아니다. 왜 천사는 하얗고 악마는 검다고 하는가. 어쩌면 흑백논리의 시초는 천사와 악마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흑과 백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공생의 관계이며, 상생해야 할 관계인 것이다. 이렇게 공생하여야 할 것이 공생하지 못하고 서로를 배척한다면 그것은 결국 파멸이다. 필요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어떤 것들이 한쪽을 파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경험해 왔다. 나는 어느 쪽이 천사이고 악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천사와 악마의 공생을 간절하게 꿈꾼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어떤 것과 자꾸 겹쳐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빈치코드였다. 종교적 내용을 다룬 것도 그렇고, 기호학자가 사건을 풀어가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자꾸 영화를 보는 내내 다빈치코드가 생각이 났었다. 집에 돌아오고 난 후 알게 된 사실인데, 천사와 악마는 이미 소설책으로 먼저 나와 많은 사람들한테 읽힌 전력이 있었고, 이 책을 쓴 작가는 다빈치코드를 쓴 작가와 동일한 댄 브라운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랬구나, 어쩐지! 하며 다빈치코드를 생각해낸 내가 당연한 거였어! 했는데 동생이 다빈치코드도 영화로 만들어졌잖아, 그 감독이 이 영화 만든 거야, 하고 알려주었다. 결국 다빈치코드랑 작가와 감독이 같다는 얘기인데, 미리 알고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빈치코드는 책으로도 읽고,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영화로도 봤는데 사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었다. 영화로 다빈치코드와 천사와 악마를 비교하자면 뒤에 만들어진 천사와 악마가 일보 진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나를 잡아 끈 것을 본다면 말이다.  


 급하게 진행되는 많은 사건들과 반전, 그래서 결국 쉬지 못하고 계속 뛰어야 했던 영화 천사와 악마 로 볼 때 원작 소설 천사와 악마 또한 읽을거리가 굉장히 많을 것 같다. 늦은 감이 있지만 책으로도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오늘 난 비싼 돈 내지 않고 바티칸으로 초대되어 좋았다. 화려한 로마의 성당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고, 그곳의 많은 조각품들 또한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 빠질 수 없는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 같다. 이 영화가 다룬 소재자체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어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가는 관객들에게 짧게나마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아, 오늘 처음으로 캐러멜 팝콘을 먹었는데 이 녀석 맛이 아주 괜찮았다. 앞으론 그냥 팝콘은 못먹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천사와 악마 영화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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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6-1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사와 악마 재밌다고 하드라고요. 전 책으로는 다빈치코드밖에 안봤는데 빨리 막 내리기 전에 영화 봐야 할듯 ㅋ

어느멋진날 2009-06-12 11:08   좋아요 0 | URL
네^^ 천사와 악마 책도 무지 잼있다고 하던데,,ㅎㅎ 책으로도 한번 읽어 보려구요~ㅎㅎ

유쾌한마녀 2009-07-1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티비로 봤는데 마지막 날개 부러진 장면에서 오싹....;;;

어느멋진날 2009-07-13 20:42   좋아요 0 | URL
티비? 예고편을 보신건가요?^^ 동생이랑 봤는데 괜찮더라구요.

유쾌한마녀 2009-07-13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니다 이거 아니라 콘스탄틴을 말한거였어요; 아 갑자기 민망 ㅋㅋㅋㅋㅋㅋ

어느멋진날 2009-07-13 21:21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죠^^ 전 콘스탄틴을 못봤네요. 그거 재미있나요?

유쾌한마녀 2009-07-1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없어요. 그냥 스토리만 아는 것으로 족해요 ㅎㅎ

어느멋진날 2009-07-15 13:30   좋아요 0 | URL
콘스탄틴 재미있다고 하면 보려고 했더니ㅋㅋ 재미있는 거 알아내시면 댓글 주셔요~ 영화 보러가게요^^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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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다. 그래서 순간순간이 재미있다.-154쪽

상처 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살아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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