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마을 - 김용택 산문집
김용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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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용택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

1. 시인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김용택-그 여자네 집 中에서...

 김용택 시인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그 여자네 집>에서 인용된 시 '그 여자네 집'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김용택 시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이 '그 여자네 집'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으로 그의 작품을 만난 것은 아마도 '섬진강'인 듯하다. 그의 시 섬진강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섬진강시인이라고도 부른다. 참으로 시인에게 어울리는 애칭이 아닌가. 실제로 김용택 시인의 삶은 섬진강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곤란할 테니까 말이다. 서정주 시인을 키운 것이 8할이 바람이라면 김용택 시인을 키운 것은 섬진강일 테니까 말이다. 나는 자연에서 살아온 그에게서 자연의 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과 또 마주하게 되었다.

2. 김용택 시인이 전하는 자연의 소리, 사람 사는 소리

(1) 자연의 소리
 꽃이 피는 살구나무 아래 앉아 문득 고개 들었더니 서른이었고, 살구나무 아래 앉아 아이들이랑 살구 줍다가 일어섰더니 마흔이었고, 날리는 꽃잎을 줍던 아이들 웃음소리에 뒤돌아보았더니 쉰이었다고, 학교를 떠나며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는 살구나무를 바라다보니, 어느새 예순이 되었다는 김용택 시인. 일평생을 자연과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보낸 그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나이가 얼마만큼 차면 큰 도시로 나가는 것이 법에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가지만, 김용택 시인은 자신을 묵묵히 바라봤다는 살구나무같이 묵묵하게 고향에서 자연의 소리를 벗 삼고, 뛰노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에게는 자연의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재산이라도 되는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재산에 참으로 욕심이 났다. 흔들리는 나뭇잎에 눈부셔 하고, 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렁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그의 재산이 탐이 났던 것이다.<p63 햇살이 쏟아지는 커다란 나무 아래 서서 바람 속에 온몸을 다 맡긴 나무를 바라볼 줄 아는 이는 살 줄 아는 이지요.> 살 줄 아는 시인 김용택이 부러웠다. 그가 대접해주는 따끈한 자연의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며, 결국엔 자꾸 탐이 났던 그의 여유를 훔쳤다. 자연을 바라볼 줄 아는 그 눈을 훔쳤다. 그것은 나눠도 나눠도 줄 지 않을 것이므로 시인도 양해해 줄 꺼라 믿으면서 말이다.

(2) 사람 사는 소리
 자연이 삶이고, 삶이 자연인 진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또한 이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이 말하다 저 말해도 말이 이어지고, 어떤 말이 잊어버릴 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 불쑥 대꾸하는 욕심 없고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새가 우는 소리를 알아듣고 해석하는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선 정겨운 시골냄새가 난다. 자연의 숨소리와 함께 숨을 쉬는 오래된 마을 사람들에게서만 나는 시골냄새. 네 일 내 일 구분 없이 네 일이 내 일인 진메마을 사람 사는 소리가 참으로 사람 사는 소리답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어울림을 자연의 이치를 통해 배운 그들이 이야기가 사람 사는 이야기 아닐까. 
 스스로 자신을 얼치기 시인이라고 하고, 시골쥐라고 하는 김용택 시인이 참 정겹다. 촌사람을 좋아한다는 시인. 나 또한 그가 촌사람이어서 참 좋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풀꽃들에게도 이름을 모르면 미안한 일이라고 말하는 촌사람 김용택이, 인간냄새 풀풀 나는 그가 좋다.

3. 오래된 마을 지키기    

<p18 인간들의 탐욕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땅과 하늘, 문명의 탈을 쓴 이 야만의 시대여!>그는 인간의 끝임 없는 욕심으로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걱정한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세상을 안타까워한다. 모든 창조는 자연에게서 나온다는 그는 우리의 어머니인 자연과의 상생적인 공동체를 꿈꾼다. 그것이 그만의 꿈이여 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 사는 이치를 가르쳐 주는 자연에 있어서 겸손함을 가지고 또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 역시 김용택 시인에게서 훔쳐온 것이다. 정겨운 시골냄새를 맡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그와 함께 꾼다. 항상 누군가에게 쫓기 듯 살아가는 우리네들에게 시인이 준 여유라는 선물을 겸허히 받는다. 신발 두 짝을 손에 들고 맨발로 보드라운 흙길을 걸은 듯 상쾌함이 온 몸을 감싸준다. 이 상쾌함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도록 오래된 마을을 지켜줘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시인과의 티타임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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