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지만 그것 조차 못하고 있는 게 요즘 나의 변변치 못한 일상이다. 모처럼 주말 자유시간을 질러 놓고보니 생기면 안되는 여유가 생겨 머리 맡에 놓인, 너무 오래 놓여 있기만 해서 미안한 책 몇 권들을 들춘다.
2003년 여름 어느 날, 나는 드레스덴 주립미술관에서 이 그림 앞에 섰다. 일본 NHK의 <신일요미술관>이라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스텝들과 함께 촬영차 찾은 것이다. 이 그림을 중점적으로 다룬 미술 프로그램을 하나 만드는 일은 나의 오랜 염원이었다. 일본의 시청자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보여주고 싶었다'기보다 그들에게 '부딪쳐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그것도 일본 사회가 노골적으로 전재에제를 향해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이 현재라는 시점에 꼭 부딪혀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염원이 이루어졌다. 108쪽
이 그림은 전쟁에 의한 파괴와 살육의 현실을 거부감이 들 정도로 남김없이 그려서 보여준다. 고야의 <전쟁의 참화>를 제외하고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주제를 이렇게까지 철저히 그려낸 작품은 이전에 없었으리라. 예술이 기적이다. 이 그림은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다. '잘 그린 그림'인가 하는 것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이 그림은 '그림은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철저하게 깨뜨린다. 인류사상 최초의 총력적인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후에 '아름다움 그림'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총력전 시대에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110쪽
오토 딕스는 이 그림을 그리는 데 1929년부터 1932년까지의 4년이란 시간을 들였다. 나치의 정권 탈취 직전에 완성된 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현실을 병사로서 체험한 화가는, 나치가 대두하고 또 한 번의 세계대전으로 세계가 전락해가는 바로 그때에, 엄청난 에너지들을 쏟아서 이 대화면 전체에 자신의 전쟁 체험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 에너지, 그 집념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110쪽

오토 딕스. <전쟁>(전쟁제단화). 1929~1932
중앙에 대화면을 놓은 세 개의 화면 구성은 트립티크라 불리며, 중앙 하단의 옆으로 긴 화면은 프레델라라고 한다. 이 그림은 유럽 중세 이후의 기독교 제단화 형식을 답습한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을 '전쟁제단화'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전통적인 제단화라면 중앙의 대화면에는 인류의 원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그려져야 한다. 하지만 딕스의 전쟁제단화에서는 그 자리에 예수가 아니라, 포탄에 맞고 철책에 걸린 채 부패해가는 병사의 시체가 그려져 있다. 이 제단화에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그것도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116쪽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오토는 23세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 예술가들은 적지 않다. 아우구스트 마체와 프란츠 마르크는 전사했고,키르히너와 베크만은 살아남았지만 정신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딕스만큼 제1차 세계대전의 전 기간을 그것도 가장 치열한 최전선에서 경험한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딕스는 지원병이 된 이유에 대해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썼다.136쪽
<고뇌의 원근법>을 손에 들게 된 것은 펠릭스 누스바움 때문이었지만 이리 저리 들추다가 눈이 간 것이 오토 딕스의 그림이었다. 평소 잘 알고 있는 화가들의 그림이 주는 안정감과 감동들이 있어 왔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나타나는 화가들의 그림 앞에서 심쿵의 순간을 맞는 것은 늘 감사한 일이다.
1891년 독일 게라 출신인 딕스는 18세에 드레스덴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그 해 가을 드레스덴에서 열린 고흐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또 한 사람 그에게 영향을 준 이는 니체였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요즘 관심 키워드인 드레스덴과 니체가 오토 딕스 안에 다 있었다. 딕스는 20세부터 니체를 탐독해서 1912년에는 니체의 석고 흉상을 제작했는데, 1938년 나치 정권에 의해 소재불명이 되었다. 그는 니체는 전체주의 권력을 숭상하는 그들의 사상에 의해 오해되었고, 나치가 니체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화를 냈다고 한다.
어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는 취지의 25%독서법에 대해 들었는데, 그정도만 읽어도 읽은 것으로 간주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나에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는 강박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만 하는 것에 대해 조금의 위안을 받았다. 이 책 <고뇌의 원근법>에서 오토 딕스와 펠릭스 누스바움을 읽으면 무려 35%정도의 독서가 된다. 오토 딕스 부분이 조금 더 할애가 되었는데, 오토 딕스 부분만 읽어도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상식정도의 약사는 충분히 알아진다. 요즘 관심이 가는 전쟁사나 혁명사들을 언제 작정하고 읽어 보아야지 하던 강박에서도 벗어나야 겠다. 저자 특유의 진솔한 톤이 미술과 세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편안하게 따라가게 만든다. 역시 책읽기만한 즐거움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침.
이 책은 미술에 관한 서경식이 세번째 책이다. 두 권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술기행'을 고집하는 그의 글쓰기는 예술작품으로부터 시대의 봉합되지 않은 상처와 인간의 고투를 읽어내려는 집요한 시선을 보여준다.....서경식의 여정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미술관들을 답파하면서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해 온 일본과 남북한의 역사적이거나 현재적인 장소와 시대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여행은 '떠나기'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가기'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수많은 여행서들이 부추기는 낭만이 파열된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들 앞으로 스스로를 내몰아, 그로부터 전쟁과 학살에 대한 시대적 질문들을 쏟아낸다. 그에게 미술은 단순히 시대의 삽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의 모순과 열광과 상처가 가장 첨예하게 집약된 장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부딪히는 장소가 된다. 고로 서경식에게 '미술기행'은 단순한 낭만적인 이랄로도, 교양주의적 여행으로도 단정지을 수 없는 '순례'이자 '고행'일 수 밖에 없을 터이다. 역자 후기에서 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