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책이 뭐야? 여행한 곳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황당하기 그지 없다. 책이라던가, 여행이라던가 하는 것은 기준에 따라 좋고 나쁨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고, 그야말로 그 때 그 때 다 좋았어요. 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종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책이 뭐야? (감명 깊게 읽은 책, 진짜 소설이라고 느낀 책은? 이런 질문과 별개로)라고 할 때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책이 있는데, 그건 송정림 작가의 <사랑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송정림 작가가 읽어주는 35가지 사랑의 장면들이 담겨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감정을 권하는 책이다. 사랑하라고, 슬퍼하라고, 미련을 거두라고...언제 출간 되었는지 모르는 이 책을 나는 한 번에 독파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읽기가 진행중인 책이다. 그러다 언젠가 여행가방에 꾸려 넣을 수 있는 책으로 그저 고이 모셔놓고 책등만 훑는 책들 중의 한 권이기도 하다. 오늘 이 책을 다시 꺼내 든 것은 송정림 작가의 신간 예고를 봤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꼭지는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 사랑하는 사람은 운명으로 정해진, 이다. "사랑이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거야"라는 그 유명한 대사만큼이나 진부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 러브스토리다. 익숙해서 지나치고 싶었지만 서너페이지 남짓한 단상의 마지막 부분, 우리가 다 아는 그 이야기에서 위로 받는다.
그 사람이 날 아프게 해도, 그 사람이 날 슬프게 해도, 그 사람이 많은 결점을 지녔는데도...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좋은 것. 그 사람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유일한 조건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사연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란 제목으로 소개된 슈니츨러의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편에 이런 문맥은 와닿는다.
그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모든 시간이 통곡 소리를 내고, 그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기쁨은 빛을 잃어 버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면 나혼자 힘없이 걸어갈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걸어 가는 때도 있다. 내가 뒷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할 때도 있고, 그 사람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만 봐야 하는 때도 있다. 그 쓸쓸함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사랑의 길은 화사한 꽃길만은 아니다. 그 사람에게 가는 길이 폭설로 막힐 때도 있고, 세상의 거친 파도가 놓일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랑은 안타깝고 아득하다.
따져보면 사랑은 8할이 슬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의 본질이다.
슈니츨러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의학도였지만 플로베르와 모파상의 작품을 읽은 후 창작에 눈에 돌리게 되었고 희곡과 소설에서 모두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슈니츨러 책까지 읽을 일이 뭐 있으랴 싶으니, 겨우 5페이지 남짓에 걸쳐 소개된 <라이젠보그 남작이 운명>을 거저 먹는 느낌이다. 이후에 책을 찾아 읽거나 말거나는 순전히 독자의 운명일테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읽고, 언제일지 모르는 여행가방 꾸리는 날과 함께 송작가님의 신간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