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진유정 2016 효형출판

 

그럴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 도서관에 공부하러(읭?)갔다가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의 진유정작가님의 강연을 듣게 됐다. ‘아시아스포트라이트 베트남‘이라는 배너가 도서관 1층에 세워져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 곳으로 향했고 강의실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들어가니 ‘들어보실래요? 나의 여행이야기...‘가 띄워져있었다. 보는 순간 바로 심쿵! 얼마든지요~~속대답을 하면서 얼른 자리를 앉았다.

앗, 이것은 다락방님의 페이퍼에서 달디 달게 읽었던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왔네‘  바로 그 책? 국수를 싫어하지만 이 책을 보고는 바로 국수를 먹으러 베트남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던 바로 그 책의 저자분이시구나. 라고 생각하며 힐낏, 쳐다 본 그 곳에는 말갛게 선하고 아름다운과 예쁜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외모와 다소곳한 말투의 그 분이 계셨다. 내성적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조곤조곤 경험담을 적극적으로 들려주고 베트남의 정서를 나누고자 하는 작가님의 열의가 느껴졌다.

국수사진을 한 백장쯤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앉고 눈을 반짝이며 앉아있는데 그러니까 국수 사진이 등장하기 까지 길고 지루한^^; 여행이야기를 듣고 한 30여분이 남았을 때야 겨우 십 여장의 사진을 볼 수있었다. 내가 먹고 싶었던 국수는 바나나 꽃을 채썰어 고명으로 얹어 먹는다는 분 맘이다. 맘이 젓갈이란 뜻이고, 아마 맑은 육수의 다른 국수와 달리, 젓갈로 간을 하기에 저렇게 발간 국물이 나오나 보았다. 처음 먹는 사람은 잘 못 먹는 맛이라는데, 어찌나 도전욕이 생기던지....

 

강의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열람실로 달려갔건만 진유정작가님의 책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지 않았다. 이전의 책도 한 권도 없었다. 이런 이런, 강연자로 초대를 했으면 강연 시작전에 책을 구비해놓는 센스 정도는 당연히 발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분개하며 희망도서 신청도 하고 다음 주엔 책을 들고 가서 사인을 받고 나의 전번을 드려야지라고 생각했다.(담 번에 베트남 가실 때 저 좀 달고 가 주셔요 네?저는 열흘 내내 국수만 먹을 수 있거든요. 준비운동없이 하드코어 국수도 바로 가능이고요.)

마음은 오로지 국수에만 있었지만 오늘 이렇게 의외의 여행 이야기를 들은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지도를 띄워놓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 군데 한 군데 이야기를 들려주고 질문도 받고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여행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다 싶었다. 이렇게 좋은 시간은 그 자체로도 충만하다는 느낌이어서. 더 신나는 건 이 강연이 전체 2차시여서 다음 주 한 주가 더 남았다는 것. 오늘은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남부를 여행했고 다음 주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여행을 할 예정이다. 이 참에 베트남 여행서도 한 권 읽고 가야 겠다. 예습 차원으루다가..ㅎㅎㅎ

김영하작가님의 도쿄책에 보면 론리플래닛이 서양인들을 위한 서양인들의 가이드북이라고 했는데, 한국인 맞춤형을 표방하고 있는 프렌즈 베트남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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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9-05 22:53   좋아요 2 | URL
제가 저 책 읽고 베트남에 두 번 다녀왔고요 내년에 또 예매해뒀어요!! 아니, 저 책의 저자분의, 무려 베트남에 대한 강연을 들으셨다고요???? 우악 부럽습니다!!!!!

2017-09-05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2013 문학동네

 

도서관 강의를 들으러 가기 전에 영풍문고에 들렀다. 책 구매에 관해서 편하기로 치자면 인터넷 서점이 당연히 일등이지만 가끔은 볼일이 없어도 마실삼아 대형문고나 중고서점에 들린다. 업계 관계자라도 되는 듯이 매대에 깔린 책들을 확인하고 분야별 베스트셀러를 체크한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쌓아놓은 베스트셀러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저렇게 쌓아놓으면 무슨 책인들 안팔릴까?‘

출판시장도 빈익빈 부익부다. 팔리는 책만 팔린다. 아무리 부동의 베셀이라해도 아니다 싶은 책에는 눈길도 안줬는데 많이 팔리다보니 흘러흘러 내게로도 와서 예의상 들춰보지만 역시 나는 아니다 싶은 책도 많다. 이 와중에 김지영의 활약이 단연 돋보인다. 소설은 그렇다쳐도 종합베스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선전에 응원을 보낸다. 산처럼 높이 싸인 특정 책들에 시큰둥한 눈길을 보내며 베셀 순위들을 보는데 어제 강의를 들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여기저기에 깔려있다. 조만간 영화가 개봉될거라 영화 장면 띠지까지 둘러서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선두를 다투는 모양새다. 최근에 나온 오직 두사람도 순위에 올라있다. 평소 나는 이렇게 말해왔었다.

‘김영하, 김연수 소설들은 이상하게 안읽혀~~ 몇 번 시도했으나 포기!‘

주변에 매니아들이 많아서 한 두번 시도를 해봤으나 다른 책들로의 이행이 안됐으니 두 작가의 매력을 못 느낀 셈이다. 그런데 강의를 들은 다음 날 살인자의 기억법이 눈에 띄었고 심지어 200페이지가 안된다. 휘르륵 펼치니 글도 듬성듬성 빈 공간이 많다.

‘그래? 어디 한 번 더 시도해볼까?‘

그리하여 <살인자의 기억법>은 내게 김영하를 기억하게 한 첫 책이 된 셈이다. 수년전에 어렴풋이 단편집 한 권을 읽은 기억이 난다고도 아니난다고도 할 수 없으므로. 한 시간 남짓 걸려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졌다. 2013년도 나온 책이고 내가 읽은 책이 32쇄다.

간결하고 감각적인 문장, 유머코드(여성들이 좋아할만한),평소 많은 독서량을 소설 곳곳에 얽어 넣는 재주, 가독성, 속도감!

아! 김영하소설이 이런 거였어? 겨우 한 권 읽고 재단할 일은 아니지만 막힘없이 톡톡 튀는 그의 추진력있는 언변과 닮아 있었다. 적어도 살인자의 기억법은. (아, 이렇게 쓰고 있으니 얼마전에 <오직 두 사람>에서 읽은 오직 두사람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

 

술만 마시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는 동네사람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키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52쪽

 

한 권 더 읽어 볼까하고 도서관에 간 김에 김영하로 검색을 했더니 왠만한 책은 다 대출중이다. 뭐야 이런 인기남 같으니라구 하고 포기하려는 찰나 얻어 걸린 것이 <김영하여행자도쿄>.
2008년 7월에 나온 책이다.

대충 훑어보는데 별로 잘 찍은 것 같지 않고 촛점 안맞는 사진들이 많다. 만만해 보여서 읽어 보기로 했다. 마침 도쿄 여행도 계획하고 있으니.

세 파트로 나뉘어진 구성이다. 1부 쇼트 스토리, 2부 아이즈 와이즈 샷, 3부 에세이.

쇼트 스토리는 여성화자가 서술자이다. 어찌나 풋풋한지 김영하의 여성성이 발현 된 케이스다. 다만 여행에세이라고 생각하고 펼친 독자에겐 다소 긴 스토리였다. 맨 뒤로 배치하는게 좋았단 생각. 읽다보니 흐릿한 사진들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애초 이 책의 기획의도가 이런 거였다.

 

이렇게 길게 롤라이35에 대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여전히 남은 질문이 있다. '여행자'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카메라로 한 도시를 찍는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하이델베르크의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다 문득, 도시마다 궁합이 맞는 한 대의 카메라가 있찌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첫 번째 도시인 하이델베르크는 콘탁스G1으로 찍었다. 그럼 도쿄는? 도쿄에는 어떤 카메라가 어울릴까? 나는 선반 위의 내 카메라들을 훑어보았다. 푼돈을 모아, 때로는 거금을 들여 마련한 낡은 카메라들, 처음에는 일제 카메라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은 펜탁스로, 러시아는 로모로, 독일은 라이카로, 그럼 멕시코는? 카메라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는? 국적에 따라 카메라를 도시와 짝짓는다는 발상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헥 되면 상당히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도대체 도쿄는 어떤 도시인가, 라는 질문 말이다. 206쪽

 

그렇다, 롤라이35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길게 지루하게 이어진다. 나는 사진을 배운답시고 기웃거려도 보고 카메라에 관심도 많은 터라 그런 이야기들을 공부하듯이 읽었지만, 여행에세이를 기대하고 읽었던 독자라면 읽다가 팽개칠 만한 수준의 길이였다.^^; 하지만 이런 발상, 기획을 알고나니 뭔가 산만했던 책이 다르게 보였다. 알기 전에도 뭔가 책을 한 번 만들어 보겠다는 노력이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여행에세이라면 대개는 감성적인 멘트와 아기자기한 사진을 기대해봄직하다. 하지만 김영하여행자도쿄는 일견 기록 다큐멘터리 같다. 그는, 무엇을 봐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탐구하고 기록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ㅎㅎ 쇼트 스토리는 재밌었고, 사진은 애매모호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야기하는 롤라이35의 특징을 설명들으며 사진을 보는 맛이 있다. 그리고 에세이. 여행자로서 도쿄에 놓여졌을 때의 방향을 일러준다. 시행착오와 다년의 경험의 통해 얻은 나침반 같은 단상들이었다. 그냥 갔다면 전혀 관심이 없었을 토쿄만에 접한 신도시 오다이바에 가보고 싶어졌다. 골목골목 상점투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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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9-05 21:01   좋아요 0 | URL
저는 김연수를 좋아하지만 잘 안 읽힌다는데에... 한 표.
저는 김연수의 산문집을 좋아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김영하는 좋아하는데 많이는 못 읽었네요. 김영하는 컬렉션이 있더라구요.
알고보니 다작하는 작가~~ ^^
김영하는 원래 많이 읽히기는 하는데, 확실히 방송의 힘이 큰 것 같기는 해요.
두 권이나 베스트셀러에 들어있다니.... 헤헷... (좋으시겄다)

2017-09-05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7-09-05 21:22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잠깐 우리동네 서점에 들렀다가 이승우 작가의 새소설책을 찾다가 없어서 베스트만 모아놓은 곳에서 김지영작가의 소설이 똬악!!! 있는게 이뻐서 사가지고 왔어요^^
대체로 비슷하군요
매대의 책들 진열된 순서가요^^

저도 김영하,김연수 작가님들 좋아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길 했어도 소설을 죄다 찾아 읽진 못했어요.
한꺼번에 다 찾아 읽음 쉽게 질릴까봐 늘 무심한 듯,생각날때 한 권씩 찾아 읽곤 합니다.그러면 좀 반가워서라도 집중해서 읽게 되더라구요^^
아~~읽어야할 소설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고민이네요!!

2017-09-05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축의 표정

 

송준 2017 글항아리

출판도시 인문학당 주최로 서강도서관에서 진행한 ‘영국 건축문화기행‘ 강의를 듣고 왔다. <건축의 표정>저자 송준작가님이 삶의 질, 도시 건축, 좋은 집 세 파트로 나눠서 2시간 동안 열강하셨다. 가기전에 책을 대충 훑어보고 갔는데 비디오자료와 함께 설명을 들으니 건축기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강의의 포인트는 기행에 맞춰진 것은 아니고 런던이 어떻게 잘 건축을 규제해서 오늘 날 하이테크건축의 전위적인 국가가 되었나와 거기에 견주어 우리나라의 도시건축의 실태와 개선점등을 간단히 언급하셨다.

할렘가에 지어져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성공적인 모델이 된 알솝의 페컴 라이브러리와 친환경하이테크 빌딩의 전형인 노먼 포스터의 런던시청, 거킨빌딩등을 슬라이드 자료로 보고 쓸데없이 크게 짓지 않는(우리나라의 지하철은 지나지게 깊고 크다고 지적) 적정사이즈의 적정 인구가 생활할수 있는 압축도시의 개념을 예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리니치 빌리지를 예로 들어 보여주는데 정말 부러운 공간이었다. 세계의 대도시가 다 그렇겠지만 런던은 정말 볼만한 건축물이 많다. 오늘 강의로 특히 친환경건축의 선두주자임을 다시 확인했다. 건축의 기존 관념을 깬 하이드 파크 안의 다이애나비 추모 분수도 인상적이었데 그 보다 더한 파격적인 생태 건축물들이 많았다. 오늘 강의 시간엔 언급되지 않았지만 책에는 있는 데이트 모던 갤러리의 스토리도 흥미진진하다.

런던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도시건축(지금 DDP에서 도시건축비엔날레도 하고 있다)이나 생태건축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건축의 표정>이 좋은 길잡이가 될것이다. 뉴욕의 건축에 대한 책들은 많지만 런던의 건축에 대한 책은 거의 첫 책이 아닐까한다.

왔다갔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건축물 사진 실컷 보고 새로운 건축개념을 알게 된 뿌듯함으로 사람에게 적당한 건축 (휴먼스케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분 좋은 밤이다.

사진은페컴 라이브러리와  타워브릿지가 보이는 런던시청 건물.

 

영국 건축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시작되었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영국의 초기 산업화 과정을 ‘악마의 맷돌’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만큼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편리함과 동시에 끔직한 질병과 환경 문제,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를 안겨주었다. 영국은 그러한 끔찍한 과정 속에서 아름다운 건축을 일궈낸 나라다. 이런 영국 건축의 양면성을 저자는 여행자의 눈길로, 전문가의 시선으로 놓치지 않고 읽어낸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이나 테이트 모던의 ‘터빈 제너레이션(turbine generation)’처럼 런던 르네상스의 성과들을 찬탄하면서도 산업혁명에 얽힌 끔찍함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 한다. 산업혁명 이후의 대안적 실험들, ‘미래형 공동주택’, ‘에덴 프로젝트’와 ‘대안기술센터CAT’ 같은 친환경 실험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우아한 나라 영국의 풍경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건축과 역사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며 흥미를 자아낸다.<알라딘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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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학교 10주강의를 들은지 만 3년이 되어간다. 여러모로 의미있는 시간이었고 무리해서 힘들게 들었는데 이후로 오히려 여성주의를 멀리하게 된 병폐가 있었다. 강의를 들었던 강사님도 수강생들도 너무나 똑똑하여 나와는 다른 사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냥 똑똑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렇게 살기까지 하는 능력있는 사람들과 수많은 관련 책들. 일부러까지는 아니겠지만 베스트셀러를 읽기 싫은 기분으로 여성주의관련 책들도 읽기 싫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싫고 좋고의 느낌없이 되는대로 주어지면 어떤 책이든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날이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우리집 둘째까지 e-book으로 사봤다니 가히 붐이라고 할만하다. 출간 10개월만에 27만부를 찍었다고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독서모임의 막내가 82년생이라 구체적인 감을 잡으며 읽을 수 있었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을 때처럼 자료기사를 모아놓은 이야기를 읽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두 책 다 리얼한 현실을 그리는데 가볍게 잘 읽힌다, 이런 주제를 이슈화한 공로와 그래도 소설을 읽게 한 인정 받을 만 하겠지만 소설적인 느낌이 없는 것은 나의 취향은 아니다.

어제 머리맡에 있는 책들을 좀 읽고 책꽂이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잡은 책이 2017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여기에 있는 작가들이 모두 8명인데  임현작가를 제외하고 대체로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중반 태생의 여성이니 김지영들의 작품집이라 할 만하다. 김금희의 문상을 제외하고 주인공이 여성이면서 여성문제가 주제이니 더 그렇다.

읽으면서 계속 모르겠다, 이런 속말이 자꾸 나왔다.  내가 왜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한국문학을 읽으려고 노력하는지. 그간 철저하게 외면해왔다는 죄의식 때문인가.80년대 이상문학상, 문학사상에 실리던 단편들을 탐독하던 이후로 문학과 음악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90년대 이후, 정확하게 육아기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읽은 책들은 육아서와 아이의 성장에 맞춘 그림책, 동화책, 청소년소설이 다였다. 어린이문학이론서들까지 탐독했다. 열외로 읽은 책이 있다면 식물과 곤충, 미술관련책들인데 그것도 아이들을 숲체험 활동, 미술관 수업에 데리고 다니려고 그랬다. 여성주의 학교 듣고 나니 애들 때문이 아니라 내 욕구가 투사된 걸 알게 되었지만.

그런 긴 독서단절기를 지나 다시 한국문학을 읽으려고 하니 읽히지가 않았다. 더구나 취향이 에밀졸라, 필립로스, 밀란 쿤데라이니 체질적으로 단편들이 맞지 않는다.특히나 뭔가 특유의 한국단편들이 주는 잔잔함 같은 게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3년간은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서 알라딘에서 회자되는 작품집들은 대체로 읽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몇몇 작가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고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도 그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려 손에 들었다가 다 읽게 되었다.

무슨 얘긴지 이해가 안되어 두 번 읽은 작품도 있고 작가후기나 뒤에 실린 짧은 평론글들을 읽어가며 집중하니 그럭저럭 읽어낼 수 있었다. 두 번 읽은 작품이 호수-다른사람인데 평론까지 읽고 나서야 좀 이해가 되었다.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 다른사람이어서 같은 작품인가 찾아봤더니 아니다. 다른사람은 장편소설이다. 줄거리를 봤더니 아마 단편 호수-다른사람이 모티브가 된 듯하다. 7편의 작품중에 가장 불편함을 주는 소설이었다. 단편이 아니라 적어도 중편은 되어야 겠다고 느낀 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줬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분량에 비해서너너무 여러가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불편하고 독특하다는 점에서 강화길이란 이름이 기억될 것 같다.

 

그러면서 민영을 바라봤다. 이전에 민영은 그와 술을 마시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었다. 그가 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런다고 했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재밌는 일은 얼마든지 많다며 좋다고 했다. 그의 반응을 보며 나는 민영이 그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가 내게 말한 것과는 반대라는 걸 눈치챘다. 강화길 호수 -다른사람 177

 

임현 최은미 백수린 천희란은 처음 읽어 보는 작가들이었는데, 다들 그만그만 했다. 특출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느낌. 기존의 작품을 읽은 작가는 최은영, 김금희였는데, 최은영은그 여름에서도 여성 심리를 잘 포착하여 과하지 않게 서술했다. 쇼코의 미소 단편들에 비해 조금 더 강한 표현들이 보인다.

 

손가락 하나 잡지 않고도, 조금도 스치지 않고도 수이 옆에 다가서면 몸이 반응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수이의 손을 잡았을 때,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창고 구석에서 수이를 처음 안으며너 이경은 자신이 뼈와 살과 피부를 가진 존재라는 것에 감사했고,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기억에 남는 건 이런 일들밖에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최은영 <그여름>220

 

김금희는 이 중 가장 올드한 느낌으로 읽었는데, 예전에 읽던 소설들을 읽는 느낌 그래서 편하게 잘 읽혔다. 찌질한 캐릭터를 선명하게 그렸다. 읽고 나니 티비문학관 한 편을 본 듯하다. 김금희의 소설은 장면이 이미지화가 되어 남아 있다.

 

송은 그 말이 너무 유치하고 어이가 없어서 일격을 당한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건 송이 대구에 온 뒤로 희극배우에게서 들은 어떤 말보다도 웃긴 말이었다. 희극배우는 더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고 송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는 무언가를 견디면서 들었다. 그렇게 견디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송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희극배우가 정말 웃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김금희 <문상>111

 

백수린의 고요한 시간은 책 뒷장에 남진우 평론가가 남겨 놓은  '삶을 소리없이 마모시키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우수 어린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에 공감했다.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은 어린 소녀 시절 불편한 진실을 간직하며 살아야 했던 여성이 성인이 되어 다시 맞닥뜨린 상처를 일상속에서 풀어내고 있는 소설이다. 상처를 잘 형상화 해냈다고 생각한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소설이 될 것 같다. 천희란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무가는 성소수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굉장히 정제된 감정과 단단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김금희의 한낮의 연애는 좀 비껴나있지만, 쇼코의 미소나 2017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요즘 화제가 되는 책들에서 소설의 주제들이 변화함을 느낀다. 일상의 성차별이나 성폭력문제들,성소수자들의 이야기도 자주 보인다. 문학이 역할 중의 하나가 현실을 반영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여성혐오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소설 속으로 가져와 그간 덜 시급한 것으로 취급되어 온 여서운제를 전면으로 들오 나온' 아내들의 학교나,'데이트 폭력, 여혐, 성폭력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있다는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읽어 볼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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