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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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현대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어 오랫만에 예전 시인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성복, 김승희, 최승자, 김혜순, 박재삼, 정현종,마종기,황동규,오규원,장정일...
오늘은 문득 이성부 시인이 떠올라 검색해보니 2012년에 돌아가셨다.
졸업 후에도 <전야>, <백제행>, <우리들의 양식>은 정말 아끼는 시집이었는데
당시 직장 동료에게 빌려줬다가 못 돌려 받았다.
자취를 하던 그 분이 말하길 도둑이 들어와서 책을 가져갔다고 했다.
흠..시집을 훔쳐가는 도둑이라..도둑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고, 깨끗히 포기했지만
잠 안 오는 밤에 한 번씩 그 시집들이 생각난다.
이성부 시인의 시 '봄'은 20대에 유난히 좋아했던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