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 - 만화가 이우일의 추억을 담은 여행책
이우일 글 그림 / 시공사 / 2009년 6월
절판


"난 여행갈 때 가지고 가는 책은 별로 재미없는 걸로 골라요. 재미있는 책은 집에서 읽으면 좋잖아요. 편하게 소파에 누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읽으면 천국이 따로 없지. 재미는 없지만 한번쯤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책을 여행 갈 때 가지고 가면 좋아요. 혹시 다 못 읽어도 크게 후회되지 않고. 헤로도토스의 <역사> 같은 책이 폼도 나고 좋지. 그 책을 들고 헤로도토스처럼 세상을 떠도는 거야. 흠이라면 역시 조금 두껍다는 것 정도?"-11쪽

새로운 여행의 추억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려면 더 오래된 낡은 추억들이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한다. 말 그대로 추억의 포화상태.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게 다 욕심 때문인 것을. 과거의 향수, 여행의 추억, 삶의 흔적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여행의 기억들을 음미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새로운 여행의 추억을 만들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렇게 추억만 만들다 떠난다면 그것을 누가 추억해 줄까? 우리가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며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자신뿐인데 말이다. 기념품에 얽힌 여행의 추억은 물론 소중하지만, 정작 그것을 알아줄 우리 자신들이 없다면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추억보다는 당장의 시간, 이 순간들을 즐겨야지. 흘러간 시간은 이미 기한이 다한 통조림 같은 것인지도 모르니까.-31쪽

이제 배낭여행도 꽤 많이 해서인지 우린 많은 것을 본능에 맡기곤 한다. 예를 들면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한 기차표나 비행기표, 차표가 그렇다. 미리 예약같은 건 하지 않는다. 닥치면 해결된다는 식이다. 아주 급하지만 않다면 하루이틀 배가 기다리거나, 빙 돌아가는 버스를 타게 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배낭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런 여행에 비해 꽉짜인 스케줄의 여행은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이 삶과 같다면 그런 여행은 매일매일이 감옥에서의 삶 같은 느낌일 것이다.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여행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시행착오투성이의 배낭여행을 좋아한다. 비록 실수투성이고 한심하지만 우리와 닮았으니까.-85쪽

여행을 일상으로 만드는 장소들이 있다. 작은 카페나 공원, 헌책방, 동물원 같은 곳이 그런 곳들이다...내가 사는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나는 진정한 여행자임을 실감한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일상을 경험한 덕분에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줄곧 여행자로 남게 된다.-108쪽

도쿄를 여행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식당밖에 놓아둔 음식 모형이나 사진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형이나 사진과 실제 음식이 극히 다른 식당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일단 식당에 들어서면 식당에서 제시한 예와 거의 흡사한 모습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물론 모양이 맛을 책임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충분히 믿을 만하다. 피규어의 나라, 그래픽의 왕국답다.-172쪽

멋진 여행가를 보면 언제나 부럽다.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 아무렇게나 입은 것 같은 셔츠, 나달나달한 거대한 배낭, 무엇보다 그들의 눈이 대단하다.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투명에 가까운 여행가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그 검은 눈동자에 풍덩 하고 빠질 것만 같다. 다른 것은 그럭저럭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지만 그 눈동자만은 어쩔 수가 없다. 나이가 젊은 여행가든 노인 여행가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이 없다. 멋진 여행가는 모두 비슷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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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더 1 커피 한 잔 더
야마카와 나오토 지음,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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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배울 생각 없지? 사실은 컴퓨터를 못하는 아날로그한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 헌책방 갔다가..카페에 가서..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방금 산 책을 읽는..아빠의 놀이란 이런 거란다.
- 블렌드는 카페의 간판 메뉴, 처음 들어온 가게에서는 일단 블렌드를 주문하는 게 예의다.
- 이유는 딱히 없는데, 맛있는 커피를 내오는 가게는 배전 샵, 분위기가 좋은 가게는 카페, 그렇게 부르곤 했다. 카페의 커피는 적당히 맛있는 게 좋다. 너무 맛있는 커피 앞에서는 긴장해버리니까.
- 남자도 서른 살을 넘기면 시간을 때우기가 힘들어진다. 결국 돈을 쓰도록 되어있다. 돈은..쓰면 없어진다. 또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 이브리스크식, 사이폰식, 넬 드립, 도쿄의 간다 고서점 거리-1쪽

- 옅고 미지근하다면 혹시 뜨거운 커피를 바로 얼음 위에 부은 거 아니에요? 그러면 바로 얼음이 녹아버려요. 넓은 그릇에 얼음물을 부어놓고 그 안에 커피 서버째 넣어서 온도를 낮춰야 돼요.
- 입춘 전날에, 그해 길하다는 방향을 보며 후토마키 초밥을 한 줄 통채로 물고 아무 말 없이 먹으면 일 년을 잘 보낼 수 있다고. 이 초밥을 에호우 마키라고 부르는 듯.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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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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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가스 요사는 이렇게 지적한다. "단지 성만을 다루는 작품은 그다지 매력이 없다. 그런 작품은 활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단지 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생을 오로지 성으로만 다루는 작품은 너무 인위적이다." 바르가스 요사는 그런 작품은 너무 단조롭고 예측 가능한 틀 속에서 전개되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간파하면서, 최고의 에로티시즘은 성이 다양하고 복잡한 세계 속의 원료가 되는 작품 속에서 구현된다고 밝힌다. 다시 말해 에로티시즘은 쾌락이나 섹스를 숨기지 않은 채 성행위를 장식하여 예술적 차원을 덧붙이는 작업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238쪽

바르가스 요사의 이런 생각은 에로티시즘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8세기에는 쾌락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보다 낫고 보다 진정하며 보다 자유로운 세상을 얻게 만드는 도구였고, 교회나 인습에서 개인을 해방시키는 방편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에로티시즘은 아주 세련된 유희로 변했지만, 20세기에는 식상하고 피상적인 것으로 변질되었으며, 상업화되고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구성을 따르게 되었다. 에로티시즘은 더이상 형식적 실험을 하지 않았고 사회 비판이나 기존 도덕에 대한 도전적 어조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의 작가는 어떤 에로티시즘 작품을 써야 예술적 차원을 획득할 수 있을까?-238쪽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은 문학적 의미를 획득한다. 일반적인 에로티시즘 문학이 음침하고 잔인하며 폭력적인 분위기를 띄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밝고 우아하며 심지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또한 문자예술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파괴하면서, 성은 예술적 차원을 획득한다. 바르가스 요사는 이 작품에 관해 이렇게 평한다. "<새엄마 찬양>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에로틱한 이미지를 언급하는 유희적 글쓰기이다. 나는 이 소설을 쓰면서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기존 작품에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능적 역할을 위한 언어를 사용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주 풍요롭고 암시적이며, 이전 작품에서 결코 사용하지 않았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239쪽

...성에 대한 집착과 육체적인 것의 거부라는 상반된 개념은 대립되고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경계를 무너뜨린다. 육체성과 영혼성의 경계 파괴는 천사와 같은 순진한 모습의 알폰소에게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후에는 리고베르토씨가 근친상관을 알고 독실한 신자처럼 엄격한 삶을 사는 것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암시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이야기는 '원죄 없는 잉태'라는 기독교의 영혼성과 나머지 텍스트를 관통하는 성적 매혹에 대한 요소를 결합시킨다. 이것은 섹스는 포르노든 고상한 문화든, 심지어 종교든 세상의 모든 인간적 삶에서 중심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르가스 요사의 생각이 작품 속에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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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카프카의 고백 - KAFKA's Dialogue
카프카 글, 이우일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6월
품절


저도 이제 한 살 더 먹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작년이랑 올해랑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뭔가 변한 것이 있죠.
숫자만 하나 변했을 뿐인데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저의 한결같은 생각은,
나이를 먹는다고 거저 정신도 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고양이나요.
나이를 먹을수록 모두가 철이 들고 했다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나이란 것은 충분히 그냥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주 부질없이.
흔히 말하는 나잇값을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어른이든 아이든 고양이든 개든 말이죠.
그래서 철든 아이가 있는 한편 철없는 어른도 존재하는 것입니다.-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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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구판절판


일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면 난 그들보다 더 그들처럼 되고 만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변이를 즐기는 쪽이다. 잠깐이나마 다른 존재가 되는 자유. 그건 전율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그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술이 요구된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뽑아낼 뿐 아니라, 무형으로만 존재하는 그들의 삶에 형체를 부여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삶을 그들에게 제공한다. 그게 예술이 아니면 뭐가 예술이란 말인가?-17쪽

그녀는 케이트처럼 보인다.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합리적이면서도 감각적이며, 소녀답지만 언제나 사내애처럼 굴고 싶어하는 여자...-24쪽

훌륭한 책은 모두 다르지만 형편없는 책은 완전히 똑같다...소설이든 회고록이든, 나쁜 책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거다.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좋은 책이 반드시 진실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읽는 동안만큼은 사실처럼 느껴져야 한다. 출판사에 있는 친구 하나는, 이것을 '수상비행 시험'이라고 부른다...-83쪽

내가 하는 일은 우리의 경험을 한데 모아 내 기억의 일부가 그의 기억의 일부와 섞이도록 하는 것이다...성공한 사람들이 삶을 반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시선은 늘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그래야 성공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느꼈고, 무엇을 입었고,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기억하는 건 그들의 본성과 거리가 멀다...유령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우린 그들을 피와 땀이 흐르는 인간으로 만들어준다.-129쪽

그는 심해에서 건져 올린 희귀어종이나 다름없었다. 극도의 스트레스하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괴물. 해변에 상륙해 정상적인 인간처럼 탁 트인 공기를 마시면서 살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존재. 그는 이 철저한 따분함으로부터 언제든지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135쪽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은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유쾌한 우주와 같다. 하지만 하나의 단어를 적는 순간 그건 지상의 소유물이 되며, 한 문장을 완성하게 되면 지금까지 쓰인 모든 책들과 똑같이 완성품으로 봐야 한다. 최고가 아니라고 해서 최선을 포기할 수는 없다. 천재성이 부족하다 해도 기교는 남는다. 최소한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책으로 만들 수는 있다는 뜻이다.-205쪽

루스의 몸은 냉장고에 넣은 석고만큼이나 단단해 보였다...이 여자에겐 늘 긴장감 같은 것이 있었다. 자동적이고 자발적인 에너지. 이 여자 자체가 하나의 세력이었다.-234쪽

백포도주. 목적이 뭘까? 나는 병을 들어 라벨을 살펴보았다. 수사슴의 오줌으로 발효시킨 암소 뿔과 서양톱풀 꽃술로 퇴비하고 달의 주기에 맞춰 김을 맨 토양에서 재배된 포도주라고 적혀 있었다. 마치 마녀를 화형하는 절차 같았다.-247쪽

불행의 에피소드야말로 회고록 매상의 첨병이다. 성폭력, 극단적인 빈곤, 사지 마비 등은 제대로만 먹힌다면 그야말로 금광이 따로 없다. 솔직히 말해서 서점에는 샤덴프로이데(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라는 독립 코너가 있어야 한다.-255쪽

그거 아나?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지만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하는 건 권력이 아니야. 권력을 빼앗기는 거지.-342쪽

마음은 이미 칼을 뽑아들고 있었다. 두렵기 때문이리라. 공포심은 알코올이나 탈진보다 훨씬 강력하게 판단력을 흐리는 법이다.-176쪽

자신의 삶을 가볍게 여기는 자가 타인의 삶을 지배한다. -세네카-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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