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면 난 그들보다 더 그들처럼 되고 만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변이를 즐기는 쪽이다. 잠깐이나마 다른 존재가 되는 자유. 그건 전율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그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술이 요구된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뽑아낼 뿐 아니라, 무형으로만 존재하는 그들의 삶에 형체를 부여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삶을 그들에게 제공한다. 그게 예술이 아니면 뭐가 예술이란 말인가?-17쪽
그녀는 케이트처럼 보인다.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합리적이면서도 감각적이며, 소녀답지만 언제나 사내애처럼 굴고 싶어하는 여자...-24쪽
훌륭한 책은 모두 다르지만 형편없는 책은 완전히 똑같다...소설이든 회고록이든, 나쁜 책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거다.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좋은 책이 반드시 진실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읽는 동안만큼은 사실처럼 느껴져야 한다. 출판사에 있는 친구 하나는, 이것을 '수상비행 시험'이라고 부른다...-83쪽
내가 하는 일은 우리의 경험을 한데 모아 내 기억의 일부가 그의 기억의 일부와 섞이도록 하는 것이다...성공한 사람들이 삶을 반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시선은 늘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그래야 성공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느꼈고, 무엇을 입었고,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기억하는 건 그들의 본성과 거리가 멀다...유령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우린 그들을 피와 땀이 흐르는 인간으로 만들어준다.-129쪽
그는 심해에서 건져 올린 희귀어종이나 다름없었다. 극도의 스트레스하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괴물. 해변에 상륙해 정상적인 인간처럼 탁 트인 공기를 마시면서 살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존재. 그는 이 철저한 따분함으로부터 언제든지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135쪽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은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유쾌한 우주와 같다. 하지만 하나의 단어를 적는 순간 그건 지상의 소유물이 되며, 한 문장을 완성하게 되면 지금까지 쓰인 모든 책들과 똑같이 완성품으로 봐야 한다. 최고가 아니라고 해서 최선을 포기할 수는 없다. 천재성이 부족하다 해도 기교는 남는다. 최소한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책으로 만들 수는 있다는 뜻이다.-205쪽
루스의 몸은 냉장고에 넣은 석고만큼이나 단단해 보였다...이 여자에겐 늘 긴장감 같은 것이 있었다. 자동적이고 자발적인 에너지. 이 여자 자체가 하나의 세력이었다.-234쪽
백포도주. 목적이 뭘까? 나는 병을 들어 라벨을 살펴보았다. 수사슴의 오줌으로 발효시킨 암소 뿔과 서양톱풀 꽃술로 퇴비하고 달의 주기에 맞춰 김을 맨 토양에서 재배된 포도주라고 적혀 있었다. 마치 마녀를 화형하는 절차 같았다.-247쪽
불행의 에피소드야말로 회고록 매상의 첨병이다. 성폭력, 극단적인 빈곤, 사지 마비 등은 제대로만 먹힌다면 그야말로 금광이 따로 없다. 솔직히 말해서 서점에는 샤덴프로이데(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라는 독립 코너가 있어야 한다.-255쪽
그거 아나?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지만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하는 건 권력이 아니야. 권력을 빼앗기는 거지.-342쪽
마음은 이미 칼을 뽑아들고 있었다. 두렵기 때문이리라. 공포심은 알코올이나 탈진보다 훨씬 강력하게 판단력을 흐리는 법이다.-176쪽
자신의 삶을 가볍게 여기는 자가 타인의 삶을 지배한다. -세네카-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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