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증명 - 상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해문출판사 / 2003년 5월
구판절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쟁은 치열하고, 나중에 온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이민자들이 구한 자유는 굶주리는 자유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들은 바닥도 없는 수렁 같은 뉴욕의 예토(정토의 반대) 속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다. 예토 속의 욕망만이 메탄가스처럼 부풀어올라 갈 곳 없는 좌절의 독기만 기르게 될 뿐이다. 이 독기는 언제 불이 붙어 폭동으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사회에 해악을 끼칠 뿐인 위험한 에너지이다. -상, 133쪽

그런데 이곳의 하늘은 어떤가?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은 별을 한꺼번에 뿌려 놓아서 별들끼리 부딪치면서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다. 그것은 마치 잘 갈아놓은 금속같이 날카로운 빛이며, 그 하나하나가 흉기처럼 끝이 뾰족해서 찔릴 듯한, 따뜻한 맛이 전혀 없는 광채였다. 별하늘 밑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무수한 별 부스러기들이 굶주린 짐승의 떼가 먹이를 발견하고 일제히 떠들어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살벌하게 느껴지는 별이로군."-상, 255쪽

일본인의 강인함과 무서움은 야마도 민족이라는 동일 민족에 의해서 단일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가족의식’과 정신주의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인인 한 대개 그 신원을 알고 있다. 요컨대 일본인 사이에는 ‘어느 말 뼈다귀’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인종의 전시장이라는 말처럼, 세계의 온갖 인종이 모자이크처럼 모여있는 복합 국가이다. 국민 모두가 ‘말 뼈다귀’뿐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불신이 싹트기 쉽다. 사람들은 인간보다는 물질을 믿게 된다. 자동판매기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가 미국이다….쓸쓸할 때, 괴로울 때, 실연을 했을 때에도 동전만 던져 넣으면 각각 그 방면의 전문가가 녹음재생기로 제각기 인생의 고민에 대해서 상냥한 대답을 해준다…
사람들은 그 간편함과 확실성(어디서나 돈만 내면 같은 것을 살 수 있다)에서 자동판매기를 별 생각 없이 쓰고들 있지만, 이것은 인간이 물질만을 믿는 단적인 구조이다...
틀림없이 돈은 인간 사이를 옮겨가고 있으면서도, 거기서 인간은 완전히 무기물처럼 되어가고 돈만이 살아있다. 그러나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하, 64쪽

"그야 인간이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지만, 그래도 인생의 대부분을 가족과 더불어 걸어가게 되지."
"단지 함께 걸어가는 것뿐이지, 각자가 고독하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피붙이나 친구들은 편대를 이루고 날아가는 비행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편대를 이룬 비행기?"
"그렇습니다. 어떤 비행기에 고장이 생기거나 또는 비행사가 부상을 입고 비행불능이 되어도 함께 가던 비행기가 대신 조종해 줄 수는 없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옆으로 다가가서 격려를 하는 정도지요."
"그래도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낫지."
"실질적으로는 그런 격려는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아무리 격려해 보아야 비행기의 고장이 고쳐질 리도 없고, 비행사의 몸이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비행기를 계속 날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혼자밖에 없는 겁니다."
"꽤 냉엄한 생각을 하고 있군."
"인생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것 아닐까요? 아무리 기체에 상처를 입어도 남의 비행기와 바꿀 수도 없고, 조종을 대신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하, 91-92쪽

긴자의 밤에서 견뎌내기 위해서는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칠칠치 못한 남편이 견뎌내야 할 세금일지도 모른다.
불쾌하긴 했지만, 그것뿐이라면 견딜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내와 공개된 긴자의 여자와의 병존이었다. 궁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부분에 공개된 영역이 침범해 왔다. 침략은 가차없이 확실하게 행해졌다. 그를 위해서 보존되었던 조그만 화원마저 야금야금 침범해왔다.
그것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병이 나을 때까지 참는 것이다. 그때가 오면 지금의 침식 같은 것은 단숨에 쫓아내고 다시 자기만의 화원으로 되돌려놓을 테다. 그리고 그 화원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아름답고 개성적인 꽃을 기르는 거다. 그럴 자신은 있었다. 적어도 공개된 부분에 의해서 아내의 영역이 침범되어 있는 동안은 세금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 침식에는 개성은 없다. 가면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본 얼굴이 죽는 것은 아니다. 본 얼굴이 일시적으로 숨겨질 뿐이다. -상, 99쪽

그러나 가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본 얼굴이 되어버렸다면? 다른 얼굴이 옛날의 본 얼굴을 덮는다면? 덮인 본 얼굴은 끝내 되돌아오지 않을 테지. 그것은 본 얼굴의 변질이다.
오야마다는 최근 아내를 침범하는 부분에 다른 개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어느 틈엔지 다른 사내의 괭이가 아내의 몸속에 새로운 개척의 자국을 남겨 놓았다. 세련되고 직업적인 훈련이 아니고, 여자의 의지에 의한 ‘변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기의 아내에서 다른 남자의 여자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미 자기를 위한 화원은 말라 죽고 다른 사내가 뿌린 씨앗이 새로운 움을 튀우고, 다른 꽃봉우리를 맺고, 전혀 다른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상,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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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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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저자 미셸 투르니에는 우리의 사유가 열쇠-개념을 계기로 작동하고, 각각의 개념은 다른 개념과 짝을 이룬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유의 틀을 구성하는 116개의 열쇠-개념을 규정한다. 그리고 그 개념을 가장 구체적인 것부터 추상적인 것 순으로 나열하여 짧은 개론서 한 권을 완성해냈다. 책이 얇고 여백이 많아 일견 가볍게 보이지만 실로 야심찬 계획이고, 어지간한 통찰력과 자신감 없이는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구상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유의 틀을 빌려 독자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내 경우에는 우선 그 개념쌍 중에 버드나무와 오리나무, 피에로와 아를르캥처럼 전혀 몰랐거나 관심이 없던 조합이 있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개념들을 접할 수 있었고, 이미 알던 개념이라도 상반되거나 비교할 만한 개념을 함께 떠올려 봄으로써 각 개념의 정의나 성격이 한층 도드라지는 효과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사랑과 우정에 대한 정의는 다종다기하겠으나, 여기에서는 양자의 차이를 상호성으로 규정하여, 상호성을 나눌 수 없는 우정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사랑은 서로 나눌 수 없다는 불행으로부터 자양분을 얻기도 한다고 규정하는 순간 두 개념이 한결 명확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개념간의 대비를 좀더 확장시키면, 세상을 파악하는 사고의 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부의 형성은 외혼과 내혼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원칙으로 이루어져, 외혼제 원칙도 있지만 내혼제 원칙이 더 우세하게 작용하는 프랑스에서는 너무 가까운인척과의 결혼도 안되지만 너무 먼사람들끼리의 결혼도 안된다는, 그래서 인종, 종교, 직업, 재력, 거주지역 등 가급적 유사한 테두리 내에서 결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식의 설명이나 역사와 지리, 즉 시간과 공간이란 개념에서 시작하여 역사학자와 지리학자, 역사화가나 풍경화가, 역사소설과 지리소설, 나아가 역사적 시간(전쟁 등의 사건)과 지리적 시간(계절의 순환주기), 그리고 그 예로서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의 비교로 종횡무진 뻗어가는 사유의 전개는 재미와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준다.  

 

물론 문화적 맥락이 다르다 보니 이해를 돕자고 든 예가 오히려 더 생소하거나, 작가의 개념 구분이나 정의가 자의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개념의 연결과 조합, 풍부한 인용구, 그리고 작가만의 철학적 통찰이 어우러져 뜻밖의 생각을 자극하는 대목도 여럿 있었다. 마냥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판에 박힌 일상적 사고에서 벗어나 한 뼘쯤 생각의 수위를 높이고 싶을 때 아무데나 펼쳐서 읽어봄 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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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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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같은 데 잡다하게 끄적거릴 때에나 사용되는 줄 알았던 '잡문'이란 말을 당당히 책 제목으로 내세워 이만한 화제성과 판매부수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다시금 작가 하루키의 저력과 입지가 확인된다. 애당초 잡문집을 표방한 이상 어차피 하루키의 글보다는 하루키란 사람, 또는 작가가 궁금해서 들춰볼 독자들이 타깃인 만큼 오랜 기간 다방면의 잡문을 충실하게 모아놓은 것만으로도 제 몫의 역할은 다했다고 본다. 그 동안 소설과 수필을 다 찾아 읽고도 군데군데 비어있던 하루키란 인물의 편린을 찾아내어 그 전체상을 짜맞춰가는 기분으로 읽으면 좀더 즐길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수확이라면, 하루키의 소설가로서의 태도와 번역에 대한 여러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키가 생각하는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이다. 많은 것을 관찰하는 이유는 많은 것을 올바로 묘사하기 위해서이고, 이는 곧 어떠한 사상이나 사물과 작가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와 방향을 데이터로 축적해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올바르고 유효한 가설들을 가려내어 자연스럽고 솜씨 좋게 쌓아가면 그것이 절로 이야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될 뿐 그 가설의 행방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주체는 작가가 아닌 독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가의 일은 자기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 질문을 거의 본능적으로 이야기의 형태로 치환해가는 것, 예를 들자면 굴튀김에 대한 글을 통해 굴튀김과 자신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을 표현함으로써 자연스레 작가 자신에 대해 쓰게 되는 쪽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작가가 말끔한 결론을 제시하여 즉각적인 효력을 꾀하기보다는 어디까지나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는 한결 풍성하다. 하루키는 42개국에서 작품이 번역되고 있는 작가인 동시에 자신도 많은 소설을 번역해온 번역가이기 때문에 번역을 양방향에서 경험하는 특수한 입장에 서있다. 또 수십 년간 특별한 스승이나 문학 동인 없이 줄곧 혼자서 소설을 써오면서, 번역을 통해 좋은 글이 왜 좋은가같은 원리나 작품의 구조 등을 명확히 파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번역한 작품에 대해서는 남녀가 몇 년 같이 사는 느낌에 비유할 정도로 애정이 넘치고, 자신의 번역된 작품에 대해서는 막힘 없이 술술 읽힐 정도만 되면 기본적 의무는 다한 셈이랄 정도로 관대하며, 훌륭한 번역에는 어학실력 못지 않게 편파적인 사랑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14년에 걸쳐 레이먼드 카버의 전집 번역을 마치고 나서, 혹은 스콧 피츠제럴드나 챈들러 같이 편애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나서 쓴 그의 후기에서는 남다른 소회가 느껴진다. 아울러 경애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골라가며, 본업에 도움이 되는 즐거운 취미생활로서 번역을 만끽하는 그의 삶에서 번역가란 직업의 가장 행복한 전형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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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16인의 반란자들 - 사비 아옌, 스테이지팩토리

   책이 예쁘다는 평이 많아 서점 간 김에 찾아보았다. 정말 고급스러운

   종이와 사진들 속에, 이름은 친숙하지만 작품은 별로 읽어본 적이 없는

   작가들이 고즈넉이 포진해있었다. 무엇보다 작가들의 주름잡힌 얼굴이나

   손 등의 신체부위를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들이 눈길을 끌면서, 집에

   모셔놓고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는 소장욕과 독서욕을 마구 자극했다.

   공들여 만든 티가 팍팍 나는, 비싼 책이라 신간평가단으로 받기엔

   부담스럽겠지만, 단연 관심가고 눈길가는 12월의 에세이임엔 틀림없다.

 

 

 

  2. 뜨겁게 안녕 - 김현진, 다산책방

  또래 저자들 중 이 작가만큼 일찌감치 유명세를 얻은 이도 드물 것이다.

  그후로 잊을 만하면 한번씩 책이 나왔고, 소식이 들렸고, 주로 시끄러웠다.

  그동안 읽어본 글로써 판단하자면, 내게는 적어도 이 젊은 작가가 신념과

  삶을, 그리고 글을 다르게 가져가지는 않으리란 작은 믿음이 있다.

  작가의 미모를 내세운 표지사진이 좀 의외다 싶지만, 이왕 나온 거

  판매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라며, 적어도 한가로이 노닥거리는

  에세이는 아니리라 믿고 관심을 가져본다.

 

 

 

  

  3. 인생의 낮잠 - 후지와라 신야, 다반

  참 다작하는 작가인 듯하다. 일찌기 작가의 사진과 글이 모두 좋다는

  소문을 들었고, 작가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눈도장을 찍어뒀지만 막상

  읽어보진 못했다.

  그러다가 얼마전 도서관에 갔더니 또 이 책이 신간으로 들어와있었다.

  잠깐 짬이 있어 후루룩 넘겨봐야겠다 싶었는데, 몇장 보다보니 그렇게

  읽을 책이 아니었다. 사진에 비해 글이 월등히 많았고, 언뜻 보이는

  사진들은 따뜻하고 일상적이었지만 사이사이에 들어찬 글들은 사려깊고

  성찰적이었다. 이 책 역시 언젠가 나중을 기약하며 찜해두기로 한다. 

 

 

 

 

   4. 안녕하세요, 고양이씨 - 데이비드 세다리스, 학고재

   작가의 전작 중에 우연히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를  읽었

   었다. 참으로 예민한 유머와 깨알같은 재미가 과하지 않게 유쾌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영어 말발을 우리 말로 이만큼이라도 이해되도록 옮긴

   번역가의 노고가 곳곳에서 배어나왔다.

   이번에도 같은 작가와 번역가의 조합이다. 주로 가족이나 주변 이야기를

   쓰다가 새삼스레 동물 우화라니 뭔가 싶지만,  이 작가라면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싶어 무작정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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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1-0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참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왜 책 제목이나 내용에만 들어가면 그렇게 싫은지를 모르겠단 말이에요 ㅎㅎ그래서 듀이도 안 읽고있단 말입니다 ㅋㅋ

밤바람 2012-01-18 09:00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이젠 좀 식상합니다.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가면 무조건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무조건 피하게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출판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칼과황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조금은 낯설게 들리는 칼과 황홀의 조합보다는 성석제의 음식이야기라는 부제가 책을 더 정확히 설명한다. 말 그대로 성석제란 작가가 전국과 천하를 돌아다니며 겪은 음식에 관한 크고 작은 에피소드, 그에 따르는 상념들을 가볍게 풀어 쓴 이야기 모음집이다. 성석제씨는 맛집이나 음식 기행 같은 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오고 전작에서도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종종 선보여온 지라 이 책에서는 딱히 숨은 맛집 소개나 지역별로 유명한 음식 소개 등의 굵직한 테마 없이, 생활 속에서 또는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음식에 얽힌 추억을 그 특유의 능수능란한 입담에 버무려 또 한 상 푸짐하게 차려내고 있다.

 

이 작가만이 쓸 수 있겠구나 싶은 소소하고도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수두룩하지만, 왠지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가의 성장담에 속하는 이야기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름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전생에 스님이었냐?”는 질문을 진짜 스님보다 더 자주 받고 자랐다는 작가에게 돼지기름으로 볶은 김치볶음밥의 맛을 들여 은근슬쩍 괴기의 단백질과 지방을 보충해주시고, 학교에 지각하기 싫어 아침밥을 굶고 다니겠다는 작가에게 에미가 다섯 시에 일어나서 해놓은 밥을 안 먹고 가는 아들놈이 공부는 해서 뭐할 것이며 학교는 뭐하러 다니느냐. 때려치워라, 그 망할 놈의 학교라고 일갈하셨다는 그의 어머니 이야기도 참 인상적이었고, 대학신문에서 공모하는 현상문예에 당선되지 못해 불만을 따지러 찾아 뵈었던 교수님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그분이 내처 사주시는 마냥 신기한 돌고기와 홍어회 앞에서 그분을 평생의 선생님으로 모시겠다고 결심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술로 고생하며 이제 나도 어른이 되는 건가 싶었다는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도 왠지 내가 직접 겪은 듯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 밖에도 작가는 평생 참 많은 곳을 여행하고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나 먹고 마시며 쌓아온 다채로운 경험담을 쉴 새 없이 늘어놓고 있어, 그 뒤를 따라가자면 나도 모르게 숨이 차오르고 배가 고프며 목이 말라온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감정이라면 이토록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온갖 추억을 쌓고, 그것을 섬세한 기억력과 자유자재의 글로 솔직하게 풀어내는 작가에 대한 부러움일 것이다. 늘 비슷한 듯해도 늘 탄복이 나오는 그 재주가 언제봐도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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