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쟁은 치열하고, 나중에 온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이민자들이 구한 자유는 굶주리는 자유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들은 바닥도 없는 수렁 같은 뉴욕의 예토(정토의 반대) 속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다. 예토 속의 욕망만이 메탄가스처럼 부풀어올라 갈 곳 없는 좌절의 독기만 기르게 될 뿐이다. 이 독기는 언제 불이 붙어 폭동으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사회에 해악을 끼칠 뿐인 위험한 에너지이다. -상, 133쪽
그런데 이곳의 하늘은 어떤가?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은 별을 한꺼번에 뿌려 놓아서 별들끼리 부딪치면서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다. 그것은 마치 잘 갈아놓은 금속같이 날카로운 빛이며, 그 하나하나가 흉기처럼 끝이 뾰족해서 찔릴 듯한, 따뜻한 맛이 전혀 없는 광채였다. 별하늘 밑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무수한 별 부스러기들이 굶주린 짐승의 떼가 먹이를 발견하고 일제히 떠들어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살벌하게 느껴지는 별이로군."-상, 255쪽
일본인의 강인함과 무서움은 야마도 민족이라는 동일 민족에 의해서 단일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가족의식’과 정신주의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인인 한 대개 그 신원을 알고 있다. 요컨대 일본인 사이에는 ‘어느 말 뼈다귀’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인종의 전시장이라는 말처럼, 세계의 온갖 인종이 모자이크처럼 모여있는 복합 국가이다. 국민 모두가 ‘말 뼈다귀’뿐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불신이 싹트기 쉽다. 사람들은 인간보다는 물질을 믿게 된다. 자동판매기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가 미국이다….쓸쓸할 때, 괴로울 때, 실연을 했을 때에도 동전만 던져 넣으면 각각 그 방면의 전문가가 녹음재생기로 제각기 인생의 고민에 대해서 상냥한 대답을 해준다… 사람들은 그 간편함과 확실성(어디서나 돈만 내면 같은 것을 살 수 있다)에서 자동판매기를 별 생각 없이 쓰고들 있지만, 이것은 인간이 물질만을 믿는 단적인 구조이다... 틀림없이 돈은 인간 사이를 옮겨가고 있으면서도, 거기서 인간은 완전히 무기물처럼 되어가고 돈만이 살아있다. 그러나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하, 64쪽
"그야 인간이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지만, 그래도 인생의 대부분을 가족과 더불어 걸어가게 되지." "단지 함께 걸어가는 것뿐이지, 각자가 고독하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피붙이나 친구들은 편대를 이루고 날아가는 비행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편대를 이룬 비행기?" "그렇습니다. 어떤 비행기에 고장이 생기거나 또는 비행사가 부상을 입고 비행불능이 되어도 함께 가던 비행기가 대신 조종해 줄 수는 없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옆으로 다가가서 격려를 하는 정도지요." "그래도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낫지." "실질적으로는 그런 격려는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아무리 격려해 보아야 비행기의 고장이 고쳐질 리도 없고, 비행사의 몸이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비행기를 계속 날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혼자밖에 없는 겁니다." "꽤 냉엄한 생각을 하고 있군." "인생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것 아닐까요? 아무리 기체에 상처를 입어도 남의 비행기와 바꿀 수도 없고, 조종을 대신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하, 91-92쪽
긴자의 밤에서 견뎌내기 위해서는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칠칠치 못한 남편이 견뎌내야 할 세금일지도 모른다. 불쾌하긴 했지만, 그것뿐이라면 견딜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내와 공개된 긴자의 여자와의 병존이었다. 궁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부분에 공개된 영역이 침범해 왔다. 침략은 가차없이 확실하게 행해졌다. 그를 위해서 보존되었던 조그만 화원마저 야금야금 침범해왔다. 그것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병이 나을 때까지 참는 것이다. 그때가 오면 지금의 침식 같은 것은 단숨에 쫓아내고 다시 자기만의 화원으로 되돌려놓을 테다. 그리고 그 화원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아름답고 개성적인 꽃을 기르는 거다. 그럴 자신은 있었다. 적어도 공개된 부분에 의해서 아내의 영역이 침범되어 있는 동안은 세금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 침식에는 개성은 없다. 가면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본 얼굴이 죽는 것은 아니다. 본 얼굴이 일시적으로 숨겨질 뿐이다. -상, 99쪽
그러나 가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본 얼굴이 되어버렸다면? 다른 얼굴이 옛날의 본 얼굴을 덮는다면? 덮인 본 얼굴은 끝내 되돌아오지 않을 테지. 그것은 본 얼굴의 변질이다. 오야마다는 최근 아내를 침범하는 부분에 다른 개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어느 틈엔지 다른 사내의 괭이가 아내의 몸속에 새로운 개척의 자국을 남겨 놓았다. 세련되고 직업적인 훈련이 아니고, 여자의 의지에 의한 ‘변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기의 아내에서 다른 남자의 여자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미 자기를 위한 화원은 말라 죽고 다른 사내가 뿌린 씨앗이 새로운 움을 튀우고, 다른 꽃봉우리를 맺고, 전혀 다른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상,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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