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눈이 왔다.
내리는 눈이 너무 반가워서
일 때문에 만난 의사 선생님 (알고 보니 나보다 2살 밖에 많지 않았다.) 과 와인을 마시고
다시 지인을 만나 사케를 마셨다.
눈 오는날 사케는 정말 끝내줬다.
통유리창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 눈을 보고 사케를 마시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정말 어릴때는 몰랐었다.
이런 일들이 감사할 일인줄.
그냥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이고, 누구나 맘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의 여유도 필요하지만
삶에 대한 전반적인 여유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록 몇 푼 안되는 돈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나 역시 한때는 그렇게 살아야만 했다.
돈이란 참 요상한 물건이다.
잘만 쓰면 삶을 정말로 풍요롭고 윤택하게 해 주지만
이것에 너무 매달리고 신경을 쓰다보면
돈은 삶에 있어 거의 모든 고통과 불행을 대변하게 된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다.
넓은 평수의 갓 지은 아파트라든가
잘 빠진 외제 스포츠카 같은건
나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라 생각한다.
혹 앞으로 그런 것들을 누리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것들을 갖고 싶다거나 가지겠다는 바람은 없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게 있다면
비 오는 날이면 소주를 걸칠 수 있는 여유.
가끔은 혼자 카페에 앉아서 맛있는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눈이 오면 와인이나 사케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는 여유.
아주 가끔은 이 돈으로 물건을 사면 그게 얼마나 더 남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접어두고
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념일에 내 마음을 전달할 선물을 사 줄 수 있는 정도의 여유.
그런 여유면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여유를 위해 원고를 쓰고 일을 한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내가 일 하는 이유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저런 것들은 사실 돈 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마음의 여유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는 좀처럼 가지기 힘든 것이다.
그러니까 몸과 육체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처럼, 그리고 그것들이 융합되어서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것 처럼.
돈과 마음의 여유는 그렇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돈이 먼저인가 마음의 여유가 먼저인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도 비슷한것 같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좋은 집, 좋은 차를 사고
은행 잔고를 빵빵하게 해 두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그것이 전부라든가 혹은 내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사람들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혹은 인생관에 관한 차이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모를 일이다.
언젠가는 나도 '다 필요 없어 돈 모아서 큰 집 사고 좋은 차 탈테야' 라고 생각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재미로 살아갈지
(실제로 한때의 나는 그렇게 살기도 했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고, 변할 수 있다.
그냥 지금 자신이 선택한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믿고,
아니 적어도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다고 믿는것.
그리고 지금 행복할 것. 그게 중요한 것이다.
돈을 모아 행복하건 그 돈을 쓰며 행복하건
키워드는 자기 만족이며 행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