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살아있다 2 - Night at the Museum: Battle of the Smithso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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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나면 왜 박물관이 살아있지 않아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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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9-06-1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한번쯤 보고 싶어지는 40자평입니다~~

플라시보 2009-06-15 20:55   좋아요 0 | URL
히힛 BRINY님. 별점을 보고 선택하심이..^^

하하 2010-10-1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40자 평 재미있네요
 

리서치 앤 리서치사의 조사에 따르면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의 약 89%가 가장 공포를 느끼는 병원은 치과라고 한다. 나는 매우 평범한 인간이므로 당연히 내가 이용했던 그 모든 병원들 중에서 치과를 제일 무서워한다. 그러나 막상 내가 이빨이 아픈 것 같아 라고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빨은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더 큰 돈과 더 큰 고통을 요구할 것이 뻔하므로 재빨리 치과를 찾으라고 말한다. 마치 자기네들은 그 89%에 해당하지 않는 비범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참고로 리서치 앤 리서치사라는 이름의 리서치 회사는 없다. 내 친구가 만들어낸 가상의 회사이다.)

치과가 왜 무서운지 말해보라면 일단 내가 진료를 받기 위해서 드러누워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대부분의 진료는 아파 구르지 않는 한 의자에 앉아 진행된다.) 그리고 내가 누워야 할 의자 바로 옆에는 내 이빨을 뚫거나 뽑아낼 각종 드릴과 펜치 그리고 석션을 위한 기구들이 즐비하며 제일 위에는 수술에나 쓰일 것 같은 커다란 등이 달려있다. 그리고 의사들은 대게 진료를 시작하면 일단 그 등을 켜고는 입을 크게 벌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쇠로된 뾰족한 것들로 내 이빨을 누르면서 말한다. ‘이 이빨이 아프시단 거지요?’ 이미 아프다고 말을 했는데도 굳이 뾰족쇠로 내 이빨을 짓눌러서 진짜로 확실하게 아프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더구나 치료시 내 얼굴에 튀길 각종 오물을 걱정해서 입 구멍만 뚫려 있는 천을 얼굴에 뒤집어씌우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오싹오싹 공포체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까는 뻥을 쳤지만 인간은 뇌와 가깝게 위치한 부분일수록 공포감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치료를 받을 장소는 뇌에서 그다지 멀다고 할 수 없는 이빨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라식 수술을 한 인간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는 이빨이 아파도 어지간하면 꾹 참는 편이다. 고맙게도 이 세상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진통제는 두통 다음으로는 치통을 언급하며 내가 치과에 가야할 시간을 뒤로 미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치과를 가게 되었다. 그것도 이빨이 전혀 아프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출발은 그간 내가 자주 전화를 하지 못해서 약간 미안해하던 친구 (사실 그녀도 나에게 전화를 잘 걸지 않았지만) 에게 안부 전화를 걸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 : 친구야 오랜만이구나

친구 : 그렇구나. 근데 너 요즘 바쁘냐?

나 : 글쎄 뭐... 그러니까 바쁘다면 바쁠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렇다라고 하기에는...

친구 : 안바쁘구나 그럼 너 내 부탁 좀 들어줘야겠다.

나 : 음.......

친구 : 내가 알다시피 회사를 다니느라 바쁘잖니. 근데 내가 얼마 전 눈에 넣어도 안아플 내 딸을 양치시키다가 충치를 발견했거든? 그래서 말인데 나대신 니가 치과에 며칠 좀 데리고 가줘야겠다.

뒤늦게 나는 여차여차한 일들로 내가 얼마나 바쁘고 거기다 피곤하기까지 한지 설명하려 했지만 친구는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의 세 살배기 여자 아이를 데리고 치과를 가게 된 것이었다. 사실 내 친구의 부탁도 부탁이었지만 그 딸아이가 나를 ‘공주 이모’ 라고 부른다는 것도 그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도 동물원도 아닌 치과를 데리고 간데 단단히 한몫 하기는 했다. (그 아이는 백화점에서 만난 이모는 백화점 이모. 공주 인형을 선물한 이모에게는 공주이모라고 부른다. 그래도 어쨌건 내가 이 나이에 이 외모에 어디가서 공주 소리를 듣겠나 싶은 건 사실이다.)

편의상 그 여자 아이를 민지라 부르기로 하자. 민지를 처음 데리고 간 치과는 시설도 좋아 보이고 치과 의사가 무려 열댓 명은 포진하고 있는 무척 큰 병원이었다. 가자마자 나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반항해대는 아이를 3명의 간호사와 함께 간신히 치과 의자에 눕혀서 치아 상태를 확인한 다음 코디네이터라 부르는 사람과 (정확하게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담을 했다.

코디네이터 : 어머니 아이의 치아에 현재 4개의 충치가 발견되었거든요?

나 : 저는 얘 엄마는 아닌데요...음..뭐 그건 중요한건 아니지만...근데 애 이빨을 보면 까맣게 썩은 건 하나거든요?

코디네이터 : 어머니 많은 환자분들이 까맣게 썩어서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치아만 충치라고 생각하는데요. 속이 썩어 있어서 진료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도 있답니다.

나 : 아....네... (나 어머니 아닌데)

코디네이터 : 그래서 말인데요. 민지가 아직 어려서 아직 4개의 충치를 치료하려면 공포감이 너무 심해서 억지로 치료를 강행할 경우 트라우마가 생길수도 있고 해서 저희 병원에서는 이런 어린 아동의 경우에는 마취를 권하고 있습니다.

나 : 치과 치료는 당연히 마취를 하는 거 아니었나요?

코디네이터 : 부분 마취가 아니라 전신마취를 말하는 겁니다.

나 : 충치 치료하는데 전신마취요?

코디네이터 : 걱정 마세요. 저희 병원에는 마취 전문의도 있구요. 어제도 세 살 난 남자 아이가 전신마취로 충치 3개를 무사히 치료했습니다.

나 : 아...네.... (근데 충치 뽑으려고 전신마취는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럼 비용은 얼마나?

코디네이터 : (매우 밝게 웃으며) 네.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제가 어머님과 상담을 하는거랍니다. 일단 충치 치료에 전신마취까지 하시구요. 그 다음에는 불소 치료를 하셔야 합니다. 불소치료가 꼭 필요한 이유는 아이의 이빨에 불소를 씌우면 차후에 발생할 충치를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면 이렇게 전신마취까지 해 가면서 충치 치료를 하시러 올 일도 없어지는거죠. 
 

나 : 아....네.... 그래서 비용이 전부 얼만가요?

코디네이터 : 네. 다 해서 380만원인데요. 저희가 특별 행사 기간이라 40만원 DC해서 340만원에 해 드리겠습니다.

코디네이터와의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코디네이터가 뭐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된 것 이외에 네 살배기 아이의 영구치도 아닌 유치의 충치 치료에 우리 할머니의 위아래 틀니 제작에 버금가는 돈이 깨진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안전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 전신마취에 관해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병원을 상대로 절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과 동시에 모든 책임은 사인을 한 당사자에게 있다는 각종 문구에 사인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친구는 수소문 끝에 다른 병원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리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돈은 줄였지만 생각지도 않은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치과는 뭐랄까 무척 한가해 보였다. 원장님 한분이 진료를 하시고 간호사도 딱 한명이었다. 아까보다는 현저하게 비용이 적게 들겠다 싶었지만 이게 웬일인가. 그 의사는 너무 심하게 세심했다. 내가 이전의 병원에서 알려준 비용과 전신마취를 운운하자 의사는 마치 심하게 상처라도 받은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했다.
‘그렇게 치료를 하고 나면 아이가 치과의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은 영원히 사라지는 겁니다. 당연히 부분 마취만 하고 치료를 해야지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지금도 사탕을 빨고 있는 민지의 충치 치료는 4개 정도로 끝이 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미리부터 치과에 적응해서 마치 약국에 진통제를 사먹으러 가듯 치과를 아무런 공포감 없이 가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곧 이어 매우 공포스런 말이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일단 애들은 엄마가 하고 나면 자기들도 따라하지요. 그러니까 어머니 먼저 이 의자에 누워 시범을 보이시겠어요?’
이젠 뭐 더 이상 엄마가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도 귀찮아서 나는 그래 시늉인데 뭐 어때 저 어린것도 잠시 후면 드릴로 이빨을 갈아야 하는데 싶어서 눈 딱 감고 의자에 누웠다. 그런데 의사가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지금 중요한건 민지의 충치 치료가 아니라 내 이빨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면서 예의 그 뾰족쇠로 여기저기 찔러가며 지금 당장 치료를 해야 할 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잠시 갈등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이빨일랑 잊어버리시고 그냥 계획대로 아이나 치료해달라고 하고는 싶었으나 저 멀리서 사탕을 빨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와 의사를 번갈아 쏘아보고 있는 민지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어른으로서 약간 비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못 말릴 착한 심성이 비집고 나와서 그만 OK를 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일주일째 민지와 함께 내 치과 치료를 하고 있다. 민지의 치료는 언제 하냐고? 그건 일단 내 치료과정을 모두 지켜봐서 민지가 치과 치료는 전혀 무섭지 않아 라고 충분하게 느낀 다음에야 한단다. 물론 나는 민지가 그렇게 느끼도록 아무리 아파도 오른손을 드는 것으로 여태까지 비명이 해 왔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민지 덕분에 비록 내가 알지 못했으나 속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던 내 이빨들을 더 큰 비용과 고통의 쓰나미가 닥치기 전에 치료하게 된 것은 뭐 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솔직히 나는 이렇게 말 하고 싶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이냐고 난 마음의 준비도 전혀 안되었는데 말이지. 치과 치료 따위에 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냐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리서치 앤 리서치사의 조사에 따르면 무려 89%의 인간들이 치과를 무서워한다고. 그리고 나는 매우 평범한 인간이라고. 
 

*이번주 마감할 원고인데 어제밤 갑자기 아파트에 정전이 되는 바람에 매우 스펙타클한 상황에서 완성이 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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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6-1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ㅎㅎ 저도 세상에서 치과가 제일 무서워요. 하지만 나이 40에 벌써 이를 5개나 뽑아낸 친오빠가 있답니다. 오빠는 잇몸이 약해 임플란트도 할 수 없어 더 많은 이를 뽑게 되면 그때 틀니하라는 조언을 받은 상황이죠.
그러니 아무리 무서워도 치과는 꼬박꼬박 가요. 최소한 임플란트나 틀니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위안을 하면서요. @.@

플라시보 2009-06-15 20:54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네 그렇지요. 치과는 늦으면 늦을수록 더 고통스럽고 돈이 많이 드는곳이죠. 그런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쩜 이렇게 가기가 싫을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몸살이 걸렸기를 바라는 요즘입니다. (몸살나면 치과 치료는 안하는게 좋다고 해서요.)

마노아 2009-06-1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 스펙타클이라니! 이건 그냥 소설인데요! 5분짜리 드라마로 만들어도 대박일 것 같아요. 이거 실화 맞지요? 안쓰러운데 막 웃음이 나와요, 어째요.....;;;;;

플라시보 2009-06-15 20:55   좋아요 0 | URL
네. 실화 맞습니다. 아니고서야 이런 허섭스러운것을 소재로 어떻게 글을 쓰겠습니까. 흐흐. 근데 웃음이 나오시다니 이거 서운합니다. 낄낄 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데요...

마냐 2009-06-16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컥. 반전이...--;; 그 '럭셔리 어린이 치과'는 비추입니다. 그리고 럭셔리 중에서도 좀 심하군여. 살살 달래서 치료하는게 정답이라 생각함다. --

플라시보 2009-06-16 00:5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도 그렇더라구요. 비용도 일단 큰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직 어린아이에게 수술을 하는 경우도 아닌데 전신마취를 하다니 허걱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문젠 제가 좀 괴롭다는 것이지요. 크흐흐. 그러나 어린 새싹을 위해 이 한몸 투신하기로 했습니다. 뭐 덕분에 제 이빨들도 치료를 하게 되었구요. 흐흐흐.

웽스북스 2009-06-1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플라시보님. 리서치앤리서치라는 회사 있어요- ㅎㅎ

플라시보 2009-06-18 01:47   좋아요 0 | URL
정말요? 언제 생겼데요? 혹은 원래 있었나? 아...내 친구가 즐겨 사용할때만 해도 없었던것 같은데..으흐흐 이제 어쩌죠? 원고 이미 훌렁 넘겨버렸는데..
 
마더 -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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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스포일러 만땅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분들은 읽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있다. 아들은 시쳇말로 좀 모자란다. 생긴건 예쁘장하지만 그 나이에 여자 한번 안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멍청하고 바보스러운 아들이다. 엄마는 읍내 약재상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틈틈이 야매로 침을 놓아서 생계에 보탠다. 이들의 삶은 궁핍 그 자체이다. 바보 아들은 일을 할 수 없으며 엄마의 벌이 또한 대단치않다. 엄마는 아들이라면 끔찍하다. 아들이 다칠것 같으면 작두로 자기 손을 썰어도, 거기서 나온 피가 자기 피라는 것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이다. 저 정도면 정말이지 모성애라는 것의 정점에 엄마는 가 있는것만 같다.  

하지만 엄마가 아들을 그렇게나 끔찍하게 여기는 것은 죄의식 때문이다. 엄마는 아주 힘들었을때 아들에게 농약을 먹였다. 그리고 아마 정황상 아들은 그때부터 조금 바보가 되지 않았나 싶다. 김혜자는 고백한다. 마음이 약해서 더 강한 농약을 먹이지 못했다고. 그래서 이틀동안 설사하고 죽다 살아났다고.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말한다. 그때 이후로 좋다는건 다 구해다 먹였는데... 아마 이 다음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반푼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겠지.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아들은 이 일을 기억한다. 다섯살때 일이고 그 날 이후로 바보가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마치 말아톤의 초원이가 엄마에게 '그때 초원이 손 놨지' 라고 기억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들은 간혹 무척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뒤바꿔놓을 수 있는 큰 사건을 기억해서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어느 날 이 바보 아들이 살인을 했다고 한다. 기껏 지 이름 석자를 쓴 골프공 하나가 증거물이라고 한다. 엄마는 인정할 수 없다. 아들은 풀벌레 한마리도 못 죽이는 위인이다. 그런데 살인을 했다니. 엄마는 아들 대신 아들의 무제를 자신이 직접 증명해내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죽은 여자아이의 비밀을 알게 되고, 어쩌면 아들이 아닌 그 여자아이의 비밀의 남자들 중 누군가가 살인을 했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는 아들에게 기억을 해 보라고 한다. 그때 혹시 누군가를 보지 않았냐고. 드디어 아들은 기억을 해 낸다. 엄마는 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거기서 엄마가 들은 얘기는 아들이 살인을 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바보 아들을 위해서 살인을 한다. 아들이 살인을 한 이유는 엄마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바보라고 하면 참지 말라는 것. 아들은 엄마가 시킨대로 한것 뿐이었다. 엄마가 살인을 하고 난 이후 형사가 찾아온다. 진범을 잡았다면서. 그런데 가서 보니 아들보다 대여섯배쯤은 더 모자라 보인다. 그녀는 묻는다. '엄마는? 엄마는 있니?' 그러면서 목놓아 운다. 그 아이에게도 자신과 같은 엄마가 있어야 살인죄를 뒤집어쓰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들과 엄마는 이제 비밀을 공유한 사이가 된다. 표면적으로 아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가 살인당시 흘린 결정적 증거를 되돌려준다. 엄마는 짐짓 아무일도 없는듯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만 아는 침자리에 침을 놓고 미친듯이 춤을 춘다. 아니 어쩌면 엄마는 정말로 미쳐버린건지도 모른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엄청난 비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폭력의 승계 혹은 폭력의 최후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가난은 하나의 폭력이었다. 그 폭력은 엄마로 하여금 아들에게 농약을 먹이고 자신도 죽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엄마에 비해 아들이 약자였으므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들에게만 돌아갔다. 농약 때문에 바보가 된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은 또 다시 자신보다 더 약자인 여자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하필 아들이 죽인 여자아이 역시 그 동네에서 가장 약자의 입장이다. 늙은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며 친척들은 나몰라라 한다. 여자아이는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이 몸을 판다. 돈을 받고 더러는 쌀도 받으면서. 여자아이의 핸드폰이 담긴 쌀독은 그래서 끔찍하다. 엄마는 아들을 위해 또 다시 폭력을 행사한다. 이번에는 아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힘없는 노인이다. 그리고 그 폭력은 다시 아들보다 더 모자라는 남자에게로 이어진다. 이제 이 사건의 최후 피해자는 누구일까?  

흔히 약자는 착하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는 맞다. 약자는 늘 강자에게 당하니까. 하지만 약자도 살기 위해 또다시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그것은 당연하지만 그 약자보다 훨씬 더 약자에게 돌아간다. 영화에서 엄마와 아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이다. 엄마는 아들의 친구에게조차 이용을 당해야 할 만큼 약자이다. 하지만 엄마와 아들은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보다 훨씬 약자에게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한다.   

엄마는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해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나 자신, 내 아이.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끔찍한일도 다 정당화 될 수 있는 문제일까? 피해는 돌고 돈다. 그래서 마침내 사회적으로 제일 약자에게 최종전달이 된다. 그리고 그 약자는 살기 위해 또 다른 피해자를 찾을 것이다. 자기보다 훨씬 약한 존재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온 폭력과 피해를 해소한다. 지금 내가 행하는 하나의 폭력은 결코 끝이 나질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것은 형태를 다르게 해서 혹은 진화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마치 운동의 법칙과도 같다. 폭력을 행사하고 누군가가 피해를 입으면 그 곳에서 모든게 끝난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폭력의 흐름을 추적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폭력이 돌고 돌아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그 길에 어떤 힘없는 이들이 그 폭력으로 인해 쓰러지거나 혹은 자신도 폭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지.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서 조금 덜 세련되어 보이긴 하지만 주제 의식은 가장 뚜렷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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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1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렐라인 : 비밀의 문 - Coralin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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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악몽 보다 약간은 시시했던. 그러나 좀 더 소녀적 취향으로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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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결혼 나쁜 결혼 이상한 결혼 - 결혼에 대한 환상을 뒤집는 기막힌 인터뷰
신은자.신진아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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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혼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였다. 

그러니까 일단은 해보고 후회하는게 더 낫지 않겠니? 라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글쎄다. 

결혼은 연애와 달리 되돌릴수가 없다. (영 방법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진 않단 얘기다.) 

연애가 끝장나는 이유는 사랑이 끝나서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면 네버 

엔딩 러브스토리가 되는 것일까?  

결혼을 한 사람들 중에서 아직까지도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말 한 사람을 만나는건 드문 일이다. 

유효기간이 3년이라 했던가?  

3년동안은 그럭저럭 사랑하며 살 수 있다. 그러면 그 이후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랑 없이 그냥 의 

리로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랑보다 더 큰 동지애가 생겨서 '그래 나 아니면 누가 너랑 살고 너 

아니면 누가 나랑 살겠니. 이 험한 인생길 같이 의지하며 걸어보자' 라는 생각이 드는걸까?  

골드미스니 어쩌니해서 대한민국의 나이든 싱글 여성들의 위치가 격상된듯 굴지만 잘 살펴보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골드미스에게 이 땅이 하는 일은 똥차 되기 전에 얼른 시집을 보내는 일이다. 스댕이건 은이 

건 골드건 간에 어찌되었건 결혼을 하기는 해야하는 것이다.  

 

책의 도입부에서 상당히 웃었던 기억이 난다. 촌철살인의 글빨하며 너무도 기막힌 비유하며.. 

거기다 뒤이어 등장하는 각종 케이스들은 혹시 우리가 밟을지도 모를 지뢰를 미리 표시해준다. 

결혼을 하더라도 이런 마음으로 하는건 좀 아니지 않니? 

혹은 결혼을 할때 사랑도 조건도 모두 다 중요해. 왜냐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게 결혼이고, 그 

사람들이 잘살려면 조건이라는게 충족되어야 하니까. 같은 충고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이 아닌 실전(?)에 입각한 충고라 더욱 와닿는다.  

 

사실 연애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없듯. 결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 안에 있는 수많은 

변수와, 주체의 성질에 따라 얼마든지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는게 그렇듯 

늘 지옥, 늘 천당은 없다.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게 일상이고 삶이다.  

가끔 결혼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싱글들을 본다. 그들은 결혼이 자신의 삶에 확실한 터닝 

포인트를 찍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것이 하나 있다. 그 결혼에 자신 

이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점들은 결혼을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 

는다. 오히려 상대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단점 즈음에서 그치지 않고 핵폭탄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무언가 확실하게 달라지고 이전 삶과는 궤를 달리하는 어떤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한다. (혹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이들이 이 책을 보면 아마 많은걸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싱글들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시댁과의 관계. 그리고 결혼으로 인해 새로 생성되는 인간관 

계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은 '사랑과 결혼' 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사례들만 있는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극단 

적인 사례가 아니라고 해서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지는 않다.  

 

나는 공부를 참 싫어한다. 하지만 인생 자체가 공부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결혼처럼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나 이 사람이랑 살거에요. 하고 선언하는 일은 더더욱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다. 그리고 그 공부는 이미 해 본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하는게 최고인것 같다. 우리가 유럽같다면 

동거로 가상시뮬레션을 돌려보겠지만 이 보수적인 땅에서는 그것마저 쉽지 않다. 그러니 남의 사 

례를 듣고 보며 앞으로의 내 상황을 유추할밖에.. 

결혼은 인생에 있어 학교 졸업이나 취직보다 더 큰일이다. 그런데 그 일에는 머리 싸매고 공부하면 

서 결혼은 그냥 등떠밀려서 하거나 해야 하나보다 하고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아마 살아보면 알것이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이다. 평생을 함께 할 짝을 찾는 일인데 

하다못해 반에서 이상한애랑 짝이 되어도 1년이 피곤한데,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다.  

책은 결혼을 하라던가 하지 말라던가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결혼을 할거라면 제대로 좀. 

그리고 오래 생각한 끝에, 앞으로 생길 온갖 변수에 대해 단단히 마음을 먹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왜냐면 우리는 제각각의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내게 

는 어려울수도 있고 내가 잘 버티는 일을 남들은 죽어도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학처럼 정답이 

똑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공부를 안할수는 없는 일이다. (철학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학습쪽에 분류가 되어야 더 적절한지도 모른다.  

 

아무튼 책은 상당히 재미있다. 물론 그 안에 든 내용은 결코 재밌을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지만 

어찌되었건 내 얘기는 아니니까. 슬픈 영화를 본다고 해도 진짜 슬퍼지지는 않는 이유는 우리가 

그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은 어쩌면 내 얘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내가 별 

생각없이, 고민없이, 각오없이, 등떠밀려서 하게 된다면 말이다.  

오늘도 결혼을 해 말아 로 고민하는 수많은 싱글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일단은 남의 사례라도 

한번 꼼꼼하게 보길. 그래서 나와 닿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방어하거나 피해가거나 이도저 

도 아니라면 잘 견뎌보겠다고 각오를 다지는데 유용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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