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의 주먹이 로봇의 안면을 강타했다. 로봇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로봇이 공격하려고 팔을 드는 순간, 플라시보는 공중으로 5미터 가량 뛰어오른 뒤 내려오면서 발차기를 했다.
“콰콰쾅!”
로봇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클라인수선(kleinsusun)이 다가왔다.
“대단한데! 야클을 두단계나 업그레이드한건데, 쉽게 이겨버리네”
플라시보는 상기된 표정으로 땀을 닦았다.
“좀 더 업그레이드 할 수는 없어?”
로드무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면 돈이 더 필요해. 이런 말하기 안됐지만, 우리 월급도 석달째 밀렸잖아!”
플라시보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비, 비가 오네. 분위기 좋은데?”
플라시보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로드무비의 말이 가슴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돈, 돈, 돈이 무엇이기에!’
순간 플라시보는 아버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늘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땅 파봐. 십원이라도 나오나’, 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땅 파면 좋은 게 나온단다”
처음엔 그게 굴착기 기사가 땅을 파서 월급을 번다는 얘기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은 아버지가 땅 속에 뭔가를 숨겨놨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 바로 그거야!”
플라시보는 삽 한자루를 가지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마당이 원채 넓어서 혼자 하기엔 힘이 들었다.
“이봐, 일어나”
클라인수선이 눈을 떠보니 플라시보가 삽을 들고 있다.
“뭐, 뭐하는 거야!”
옆에서 자던 로드무비도 화들짝 놀랐다.
“웬 삽이야?”
플라시보: 땅을 좀 파야겠어
수선: 이 새벽에?
로드무비: 너 혹시 몽유병 있니?
하지만 그들은 플라시보의 완력에 못이겨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에 뭐가 있다고 우릴 괴롭히는 거야”
심드렁하니 땅을 파던 클라인수선의 삽에 뭔가가 걸렸다. “팅---”
그건 A4 크기의 상자였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데?”
플라시보가 씩 웃으며 열쇠를 부숴버렸다. 로드무비는 플라시보의 완력에 몸을 떨었다.
상자가 열리자 갑자기 동영상이 나타났다. 웬 아름다운 여인이 보인다.
“플라시보, 알라딘의 운명이 네게 달렸어. 난 파란여우라고 해. 오오오-----”
잠시 울부짖던 여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2005년 5월 20일 오후 8시, 그날 알라딘에 대형 버그가 발생해”
‘버그라고?’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래, 버그. 그 버그는 알라딘의 태생적 오류에서 비롯된 거라 막을 수가 없어. 5분간 알라딘의 기능이 중단되지. 그 기회를 틈타 알라딘을 정복하려는 무리들이 있어. 그걸 막아야 해”
‘하지만 어떻게?’
“상자 안에 보면 조그마한 조각이 있어. toofool이라는 건데, 이게 버그 기간 중 쥴과 합쳐지면 알라딘 서버를 장악할 수가 있어. 그러니 그 전에 쥴을 찾아서 합체한 다음 파괴해 버려야 해. 시간이 없어, 플라시보”
말을 마친 파란여우는 여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오오---”
동영상이 끝나자 셋은 어리벙벙했다. 상자 안에는 밝게 빛나는 조각이 하나 있었다.
“보물이라도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클라인수선이 투덜거렸다.
“근데 왜 꼭 5월 20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 지금 부숴도 되잖아”
그럴듯하다 생각해 플라시보는 그 조각을 내리쳤다. 조각은 부서지지 않았다. 불에 태워봤다. 끄덕도 없었다. 로드무비가 말했다.
“화장실에 넣고 물 내리면 되잖아!”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그렇게 했다. 화장실이 막혀서 셋은 일을 볼 때마다 지하철 역으로 가야 했다.
“그래!”
변기에 앉아 골똘히 생각하던 플라시보가 소리쳤다.
“쥴을 찾아서 없애버리면 되지!”
플라시보가 나가자 모두들 째려봤다.
“아니 화장실을 전세냈나? 혼자서 몇십분을 쓰는 거야?”
어느덧 5월 20일이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용을 만든 플라시보는 상쾌한 기분으로 집에 갔다. 그런데.
집에 갔더니 로드무비와 클라인수선이 쓰러져 있고, 집안이 엉망이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로드무비가 말했다. “그러니까....놈들이 찾아왔어. 아주 무시무시한 놈들이.... toofool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모른다고 하니까 막 때리고 꼬집고 할퀴고 간질이고...흐흑”
플라시보는 toofool을 자신이 챙기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조심해야 해. 놈들은 또 올거야” 클라인수선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껄껄껄껄껄...캑”
플라시보는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부하들 몇을 거느린 채 서 있었다.
“너는 누구냐?”
“난 마냐다!”
플라시보는 악당이 저렇게 미녀라는 사실에 놀랐다. 마냐는, 머리를 자른 플라시보가 소문만큼 미모가 아니라는 사실에 자신감을 가졌다.
“흥, 머리 자르더니 영 맛이 갔구나!”
플라시보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 “안그래도 그 미장원 다시 안갈거다! 근데 날 찾아온 목적이 뭐냐?”
마냐가 손뼉을 두 번 쳤다. 매너리스트가 나와서 상자를 바쳤다. 상자 안에는 빛이 나는 물체가 들어 있었다.
“자, 봐라. 이게 쥴이다!”
플라시보: 어디서 났냐?
마냐: 수니나라에 가서 아영엄마가 갖고 있는 걸 뺐었다! 음하하하.
플라시보: 대단하군. 그걸 가지고 뭘 하려는 거냐
마냐: 니가 갖고 있는 toofool과 합체를 시켜 알라딘을 지배할 거다
플라시보: 왜 그래야 하는데?
마냐: 들어봐. 얼마 전 이주의 리뷰에 마태우스가 당선되었어. 읽어봐서 알겠지만 그게 어디 리뷰야? 이런 불공정한 시스템을 혁파하고 새로운 시스템, 그러니까 너와 나만 이주의 리뷰에 계속 당선되는 체계를 만들려고 해. 서재 달인도 매주 되고.
플라시보: 내가 거절한다면?
마냐: 넌 거절하지 못할거야. 너 이달의 마이리뷰 된 적 있어? 없지? 하고싶지?
플라시보: 응.
마냐: 거봐. 그러니까 우리 협력해야 해. 짝수달엔 니가, 홀수달엔 내가 이달의 리뷰를 휩쓰는 거지.
플라시보: 좋아.
하지만 클라인수선과 로드무비가 꼬집는 바람에, 플라시보는 정신을 차렸다.
“안돼! 난 실력으로 이달의 리뷰 될거야!”
마냐가 차갑게 웃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힘으로 뺏는 수밖에”
플라시보가 윗도리를 휙 집어던졌다. 로드무비가 윗도리에 맞고 쓰러졌다.
마냐도 윗도리를 집어던졌다. 근육질의 몸매가 드러났다. 등에는 판다 모양의 문신도 있었다. 마냐가 몸을 날렸다.
“휘익!”
“퍽”
“으악!”
플라시보의 두발차기와 마냐의 공중새우꺾기가 불꽃을 튀겼다. 삼십합을 겨뤄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에잇!”
플라시보는 공중으로 5미터를 솟아올랐다. 그리고 내려오는 탄력으로 마냐를 가격했다.
“으윽!”
구슬픈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냐는 그렇게, 천천히 쓰러져 갔다. 플라시보는 마냐에게서 쥴을 빼앗아 toofool과 합쳤다. 밝은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얍!”
플라시보는 합체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콰쾅 소리와 함께 합체가 깨어졌다.
그날 오후 여덟시, 알라딘에 알 수 없는 버그가 생겼다. 리뷰를 다 쓰고 글을 올리려던 진우맘, 페이퍼를 열나게 쓰던 미스 하이드, 198줄짜리 댓글을 달던 오즈마, 그리고 책을 주문하던 올드핸드는 컴퓨터 모니터에 친숙한 에러 메시지 대신 화면 전체에 이런 사진이 뜨는 걸 발견했다.

“에이”
“잰장”
"저 재수없는 놈은 누구야?"
아파트 곳곳에서 이런 탄식이 들려왔다. 탄식은 5분 후에 멈췄다.
“축하해!”
집에 막 들어온 플라시보는 로드무비와 클라인수선의 축하를 받았다.
“뭘 축하한다는 거지?”
“오늘이 니 생일이잖아. 5월 20일, 맞지?”
2005년 5월 20일, 플라시보의 서른번째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