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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의 야회 미스터리 박스 3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항상 추리소설을 읽을 때에는 단숨에 뒷장을 열어 범인이 누구인지 동기가 무엇인지 확인하고픈 충동에 시달린다. 몇 번이고 머뭇머뭇 뒷표지를 잡았다가 떼며 아쉬운 눈으로 안절부절하며 읽게 되는 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일까.

소장하고 있는 책의 반은 추리소설일 정도로 (만화책을 제외한 책을 말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면서도 도통 늘지않는 추리력 때문에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답답스럽다. 그래서 예전에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같은 추리물을 좋아했었던 내가 요즘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어딘가 로맨스틱한 추리소설에 푹 빠져있다. 슬슬 해문에서 나온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전집을 다 모아갈 무렵이라(처음 1권을 샀던 건 내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참 징하게도 오래 걸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다른 추리소설을 보고 싶었다. 80권이나 되지만 추리소설의 세계는 끝이 없는 법, 게다가 난 취향을 타기 때문에 아는 추리소설도 별로 없다.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며 책장을 파르륵 넘겨봐도 도통 마음에 차는 게 없었는데, 문득 두껍다면 두꺼운 책이 보였다. '제물의 야회' 이게 무슨 뜻이야... 제목을 도통 모르겠다, 음 글쎄. 앞표지가 어쩐지 기묘하다, 재미있을까. 뒷표지의 설명이 어쩐지 끌려, 읽어볼까. 진지한 추리소설 매니아분들이 보신다면 좀 야단맞을 가벼운 기분으로 책을 골라들었다.

애초에 나는 일본소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내가 처음 읽었던 일본 소설은 '빙점'이란 책으로 중학생에게는 너무 두껍고 정적인 책이라 인상은 강하게 남았어도 딱히 다시 읽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물론 나도 좋아하는 일본 작가는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라든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든가. 하지만 일본의 추리소설은, 어떨까.

뭐, 결론만 말하자면 책은 재미있었다. 다른 추리소설에 비하면 조금 두꺼운 편이지만 여러 가지 사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뒷 내용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스케일도 크고 등장인물도 많아서 중간쯤 읽다보면 이름이 다 헷갈리긴 하지만 그런 것쯤은 이름치인 내게 익숙한 일이니까. 추리소설이라고는 해도 내가 한참 빠져있는 수사물의 냄새를 풍긴다. 처음에는 피해자(가 될 예정인 사람들)의 일상 등을 비춰서 어느 정도 감정이입이 될 때쯤 범인이 급습한다. 난 처음에 그 사람들이 무슨 일에 휘말려 사건을 풀어나가나 보다 하고 넋놓고 보다가 깜짝 놀라서 뒷 장을 넘기기가 무서웠다. 오히려 주인공은 딸을 잃고 아내와는 따로 떨어져 사는 고독한 형사와 그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전문 청부살인자로, 확실히 일본 소설답게 착실히 읽어갈 때마다 그 사람들의 심정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것 같았다.

읽다보면 통쾌하다든가 추리가 잘 풀려서 오는 그런 후련함은 어디에고 없는 것 같다. 일상에서 살인은 그 자체로 피해자를 전제로 한 범죄이고 그 피해자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 소설은 애초에 바탕에 깔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누군가를 잃는 것은 그게 사고에 의한 것이든 의도된 바이든 괴롭다. 감정은 누군가가 잴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어느 누구가 더 힘들다, 라고 잘라말 할 수는 없지만 누구든 사소한 아픔 하나씩은 품고 살아간다. 그 아픔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소화해 내느냐에 따라 사람이 강해질 수도 있고 손 쓸 수 없이 약해질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걸 질릴 정도로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까지. 일본과 우리나라의 제도과 과연 같은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디에나 부패된 조직은 있는 법이다. 오히려 그런 부패를 먹고 자라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는 법이고. 정석대로라면 그런 부패를 발견하면 거부하고 소탕해야 하겠지만. 과연 실제 사회에서 그런 일이 얼마나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아직 사회 생활을 잘 모르는 나조차 그런 '부패'는 상부에서 잘 일어난 다는 것도, 그렇다면 그걸 거부할 시에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모든 상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서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념과 커리어 사이에 고민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었다. 오랜만에 일본 추리소설을 읽었는데 이렇게 찜찜하다니. 재미와는 별개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입맛이 쓴 책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가 죽어버렸다... 그래도, 이런 소설이 있다면 또 보고 싶어지는게...아무래도 중독성 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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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브라운 신부 전집 1
G. K. 체스터튼 지음, 홍희정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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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는 해도 좀 편파적인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4명의 캐릭터들 중 한 분인 브라운 신부님....(나머지는 포와로, 뤼팽, 홈즈) 어렸을 적 홈즈, 뤼팽 전집을 다 읽고 새로운 추리소설에 허덕일 때 보게된 캐릭터이기도 하고, 그 뒤에 읽게 된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덕분에 밀려나게 된 캐릭터 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세 캐릭터들과 비교해 결코 꿀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꼭대기에 서 있을 법한 브라운 신부님은, 겉보기에는 상당히 허술하신 신부님이죠. 늘상 들고다니는 우산은 놓쳐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는 일쑤고 키가 작고 허름한 옷을 입어 종종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점이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저는. 실제로 제가 어렸을 적에 처음 이 시리즈를 보았을 때에도 저는 이 작달만한 신부님이 너무 좋았었거든요. (그 뒤 포와로의 매력에 빠졌음)

우선, 책부터 보자면... 북하우스에서 나온 이 브라운신부 전집은 여느 책보다 작고 하드커버지만 무겁지 않아서 들고다니기 괜찮습니다. 표지에 는 작가이신 G.K. 체스터튼의 얼굴과 싸인(으로 추정되는)이 보이고요. 뒷표지와 자필원고처럼 보이는 배경으로 이어져있는 책등에는 은색으로 작은 브라운 신부님이 새겨져 있어요. 전집 5권을 다 꽂아놓으면 브라운 신부님이 5분이나...! 저는 만족도 5점 주겠어요~

브라운 신부님 시리즈는 다른 추리소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길이가 참 짧아 단편소설 수준입니다. 이 결백이란 책 한 권에 무려 12편의 추리소설이 담겨져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결코 허술하지 않고 장편 추리소설의 늘어지는 전개(가끔 이러면 짜증나죠...)가 없다는 게 이 시리즈의 장점이죠.

제가 인상깊은 구절로 집어넣은 '기적에 관한 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이다.'는 제일 첫번째 소설인 푸른 십자가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서 처음 보게되는 브라운 신부님은 꽤나 선하고 허술해 보이십니다. 물론 끝까지 읽어보신다면 선하시긴 하지만, 결코 허술하진 않다는 걸 뼈저리게... 그리고 멍-하게 알게되실 겁니다. 제가 아직 다른 4권의 책들을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서 '결백'에 나온 중요 캐릭터들이 다 나옵니다. 브라운 신부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플랑보와 발렝탱이 나오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순서인 비밀의 정원에서 기막힌 반전이.... 전 그 캐릭터를 참 좋게 봤었다구요! 그 충격이라니... 전 그 캐릭터가 '홈즈와 왓슨' 식의 보조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대 충격! ...이런 식으로 브라운 신부님 시리즈는 읽다보면 허를 찌르는 반전이 많습니다. 뭐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신 분들은 거의 짐작할 만한 트릭이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센세이션이었을 것 같아요.

이 브라운 신부님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누군가가 떠오르신다면 십중팔구 미스 마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도 그랬으니까요. 특별히 연구한 건 아니지만 신자들의 회개를 통해 수많은 '악'의 방법을 알게 된 브라운 신부님과 어디 돌아다니지 않아도 집에 앉아 마을의 소식을 접하며 범죄의 온상을 받아들이게 된 미스 마플. 두 분 다 사소한 일을 가지고 사건을 풀어나가죠.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아가사 크리스티가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님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_^

뭐 여러모로 읽으며 즐거운 책입니다. 묘사도 훌륭하고 인상깊은 구절도 많죠. 인상깊은 구절 몇 개는 밑에 따로 쓸거구요, 묘사는... 정말 끝내줍니다. 체스터튼은 주로 '두 명의 영국 경찰을 밤에 피는 히스꽃 들판으로 끌고 나와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찾는 것만도 못한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에 휩싸였다' 같은 식으로 다른 일에 상황을 빗대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맥베스의 노크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모두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도 그런 식이죠. 체스터튼식 묘사의 제일 좋은 점은 굉장히 문학적이면서도 문화적으로 독특하다는 겁니다. 보고 있으면 어쩐지 즐겁죠.

-지혜는 우연에 의존해야 하는 법이다.

-범죄자가 창조적인 예술가라면, 탐정은 비평가에 지나지 않지.
(명탐정 코난에서 괴도 키드가 같은 말을 했죠? 기억이 가물가물...)

-범죄는 예술작품과 같은 것입니다. 지옥과 같은 고통스런 작업에서 탄생하는 것이 예술작품만은 아니니까요.

-인간은 선한 일에 있어서는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네만, 나쁜 일에는 그 수준을 유지할 수가 없다네. 점점 더 내리막길을 내달릴 뿐이지.


제가 자신있게 추천하는 추리소설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라지만 알만 한 분들은 다 아시니 제가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요. 정말로 강추!

+추리소설의 범인이 너무나 궁금해 미칠 것 같은 분(빨리 알 수 있어요)
+추리소설의 진수를 맞보고 싶으신 분
+홈즈/포와로 시리즈를 다 읽었는데 아직 브라운 신부님 시리즈를 안 읽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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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대 반전.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저 말 밖에 없다.

 

보통 내가 책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책의 내용과 두께에 따라 달라지지만 서도) 1~2시간이다.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리뷰쓸 메모까지 하느라 한없이 시간을 잡아 먹고 있지만. (노트북이 절실하다....)

이 책을 읽을 때도 샤프와 공책을 한쪽에 두고 읽어내려 가고 있었는데 (물론 적는게 지긋지긋하기도 했음) 어느 순간! 나는 이야기가 내가 전혀! 결코!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는 메모고 뭐고 푹 빠져서 단숨에 읽어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어찌 이렇게 잘 쓰시는지...

좋게 말하자면 작가의 역량이 엄청난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날 속였어!!!!!!!!!!!!!!! 정도?

책을 덮는 그 순간에 느끼는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굳게 믿었던 게 한 번에 무너져버린 느낌이랄까. 덕분에 내 리스트엔 또 다른 작가님이 올라가게 되셨다...! (요샌 리스트가 너무 빠방해 졌어....)

 

어찌 된건지; 요즘 눈에 띄는 책들이 죄다 보통의 소설 형식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편지책으로 구성된 <마법의 도서관>에, 포스트잇 편지로 구성된 <포스트잇 라이프>에 이어 각종 일기, 편지, 진정서, 대자보, 이메일 등으로 구성된 <개를 돌봐줘>까지.

다른 두권의 책들과 이 책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두 주인공 (막스와 으젠)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편지, 대자보, 이메일 등도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남의 일기보다는 약하지 않나 싶다.

사실 남의 일기 훔쳐보는 재미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 아닌가! (라고 주장한다) 나는 어렸을 적 내 동생의 일기장을 너무나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틈만나면 훔쳐볼 정도였다. 하나의 일을 나와 정반대로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 어린애 다운 똘끼, 엉망진창인 그림, 내 동생 답게 짧고 굵은 내용들... 분명 나 말고도 남의 일기 훔쳐본 사람이 많을거라 (위로하고 있다) 생각한다.

형식에 대해 얘기하자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끝이 되기 전까진 누군지 절대 알 수 없는, 심지어 난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철썩같이 믿은, 화자의 글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일기와 편지들을 넘나들며 하나하나 주석을 달듯 친절하게 풀어놓으니 착각할 만도 하다. 이것마저 작가의 "독자 속이기" 장치의 일종이니 조심할 것!

 

프랑스 소설이라 이름치인 난 끝까지 갈피를 못 잡은 이름도 몇 개 있었다. 라자르 몽타냑 씨를 포함해서. 물론 글을 읽는 데 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워낙 개성들이 강해서; 정말 그렇게 개성강한 사람들이 모이기도 힘들텐데.

 

이 책의 처음은 너무너무 유쾌하게 시작된다. 같은 날 맞은 편 아파트로 이사온 막스 코른느루와 으젠 플뤼슈는 각각 상대방이 자신을 염탐, 감시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장나서 창 밖이 훤히 보이는 창 너머로 그들은 서로를 의식하며 경계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서로가 여러가지 방해공작을 해가며. 그런데 이웃들도 평범치 않다. 카메라 하나 없으면서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는 자모라(막스의 아파트), 성질 괴팍하고 아파트 관리에 죽을 힘을 다하는 (정말로) 욜랑드 라두 부인(막스), 악마의 자식일 거라 추정되는 브뤼노(막스)에 자칭 예술가라 표현하는 으젠의 아파트엔 에로 소설가인 라자르 몽타냑씨와 쥐들을 사랑하는 뒤모제씨가 당당히 버티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면서 등장인물들의 재능과 성격 탓에 일은 최악으로 번지고 만다. 개를 무척 사랑하던 브리숑 부인이 얼마전 실종된 (실은 막스의 종이상자에 운명을 달리한) 엑토르의 가죽을 손에 쥔 채 번지점프하는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이고 갑자기 등장해 사람들을 악박하고 다니는 형사 덕에 숨조차 쉴 수 없게 된다. 으젠은 막스가 그런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다 누군가 흘린 모든 자료 (두 사람의 일기와 모든 편지 등)을 보고 진범은 따로 있다는 걸 깨닫는다. 불운하게도. 결국 그도 죽은 채 발견이 되고 마는데.....

 

보시다 시피 앞에는 한없이 유쾌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 유머가 악랄하게 느껴질 정도의 전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유쾌한 유머를 잊지 않다니 이 작가, 심히 감탄스럽다. 그리고 존경스럽다.

 

아직 못 읽은 분들을 위해 범인이 누구인지 힌트조차 꺼내지 않았으니 부디 읽어보시길!

정말 재밌고 멍뎅해지는 책입니다!

 

*유쾌한 글귀 (중간에 중단했음)

-내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낌새를 보이자, 그는 곧 영감에 휩싸인 시인의 표정을 지으며 구름을 바라보는 척했다ㅏ. (막스 -> 으젠) (9)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척하며 내 아파트 쪽을 염탐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고양이는 마치 햇볕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벌렁 드러누워 그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 작자가 마치 헐벗을 대로 헐벗은 정신 상태를 증명이라도 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아무리 애정을 구걸해도 고양이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보기에도 딱하다. (으젠 -> 막스 ) (11)

-그러곤 더위, 피고, 술기운을 재료로 하는 비밀스런 연금술로 인해 그 멋진 사내들이 '네 어미 매춘부'라는 무궁무진한 주제를 놓고 즉흥시 경연을 벌였고, 이어 능숙한 앙트리샤 (공중에 떠서 양발을 서로 엇갈리게 하는 발레 동작)와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는 절묘한 묘기가 동원된 놀라운 포스트 모던 발레가 시작되었다. (13)

-내가 놀란 나머지 종이상자를 떨어뜨리고 말았으니까.

나는 몇 년간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빅토르 위고 전집으로 주변을 조용하게 만든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29)

-폭주하는 미치광이.

-질문 : 미치광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 : 그보다 더 미친 척 한다. (51)

-하지만 현실은 많은 경우 허구보다 더 황당무계하다. (161)

-증오, 그것도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287)

 

+유쾌한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손에서 뗄 수없는 그런 책을 찾고 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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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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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설레던 금요일이었다. 비록 어제까지 따땃하던 날씨가 다시 추워지고 있다고 해도, 한 시간이나 일찍 끝난 수업덕에 집에 일찍 내려갈 수 있다는 건 모든 안 좋은 일을 상회해버릴 정도의 일이었으니까. 룰루랄라 말 그래로 발걸음도 가볍게 짐을 챙겨들고 버스 정거장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집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타며 일찍 가게 됐으니 도서관에라도 들려 책이나 빌릴까, 하고 한가로운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기분 좋았던 날이었더랬다.

오랜만의 집 냄새에 냉기도 아랑곳않고 헤집고 돌아다니기를 서너시간. 빈둥거리기에도 질려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무렵에야 집어든 책은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 어떤 이야기일까 두근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아...가슴이 턱하니 막힌다. 내 즐거운 금요일 저녁은 어디로 갔나.

내가 병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한사코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데. 내가 그 재밌다는 사랑과 전쟁을 안 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데.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되도록이면 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봐야 했던거지? 아아- 얼굴을 있는 힘껏 찡그려 가면서도 끝내 책을 놓지 못하고 읽어버렸다. 호러영화를 무서워 하면서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다 읽고 나니 처음엔 그저 재미있게만 보였던 표지마저 철의 표면에 녹이 든 것같은 초록색이었고 군데 군데 줄지어 보이는 붉은 얼룩은 전에 없이 우울해 보였다. 이래서 인생, 관점이 중요하다고 한거구나, 우울하게 중얼거리며 멍하니 표지만 내려다 보았다.

 

단편도 좋아하고, 블랙 유머도 좋아하는데 어쩜 이렇게 날 괴롭힐 수가 있는지. 끔찍한 우울증에 시달린다면 모를까 거울을 들여다보며 종일 자기의 나쁜 점만 곰곰히 뜯어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없을 거다. 자신에 대해서 장점을 더 아는 게 당연 즐거울테고.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꼭 내가 그 끔찍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느껴진다. 안 좋은 면만 계속 바라보고 있는 그런 우울증.

신문이나 뉴스를 들여다 보아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음침하게 만들 수 없다. 신문과 뉴스는 - 몇몇 감정적인 인터넷 뉴스는 제외하고 - 어디까지나 사실을 전달해야 하니 가벼운, 사회적으로 훈련된 양심이 작게 울렁이긴 해도 다시 내 일에 몰두할 수 있다. 감정이입하기엔 신문의 기사란은 너무 작으니까. 이 책은 그런 나쁜 뉴스를 신문에서, 뉴스에서 끌어내려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간다. 너무 씁쓸해서 가급적이면 알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너무 적나라 하게 펼쳐 보이기에 내 자기중심적인 뇌세포마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으니, 그게 작가의 의도었다면 이 책은 훌륭히 본연의 목적을 완수한 셈이다. 지나치게 훌륭히.

 

따뜻한 날씨가 고마웠다. 전철역도 있고 지하도도 있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노인의 집은 여전히 많았다. (127)

세상 사는 일엔 좋고 나쁜 굴곡이 있다는데 이 글 속의 주인공은 나쁜 일의 언덕을 힘겹게 넘어 휴- 하고 나도 변한 것이 없다. 세상은 여전히 그들에게 차갑고 매정한 곳이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씁쓸함과 부조리함과  자조감, 그 속에서도 휴, 하고 어딘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보인다. 험하게 굴려진 순박한 사람들이 눈을 깜박거린다. 돈이 있어도 악에 받힌 사람들의 눈은 번들거리고. 묵직하고 어느 한구석 시원한 기색이 없는 엔딩에도 그래도 잘됐다, 어쨌든 끝났다, 라며 스스로 얘기하는 내가 있었다.

 

생생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고 아, 어차피 이건 다른 세계 이야기야, 하고 스스로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명색이 애완견이라는 개와 생존을 놓고 싸워야 한 어린 아이의 이야기를, 장애인이 된 후로 성인용 인형에 집착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사랑의 방식이 폭력이라 믿는 편집증 환자에게 묶여버린 두 여자의 이야기를 읽고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냐 말이다. 사회라고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인 학교가 전부인 미숙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끝없이 우울해 하며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것 뿐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전혀 모르는 백치와도 같은 상태에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 모든 부조리를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작고 무능력하지만 이제 두번 다시는 외면할 수 없을 거라는 날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사실뿐이었다.

 

아, 어떻게 그냥 외면하고 살아가면 안 되는 거였나? 내 금요일 저녁은 정말 멋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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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죽은 자의 증언 모중석 스릴러 클럽 11
캐시 라익스 지음, 강대은 옮김 / 비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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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 진화가 덜 된건지 추위에 유난히 약한 내가 오랜만에 도서관에 나갔다. (물론 나는 그 날이 따뜻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영어공부를 하자! 라는 내 방학 결심에 맞게 언어학 쪽을 기웃기웃했지만 독서 본능은 숨길 수 없는 법. 어느 새 정반대편인 800번대에서 까치발까지 들어가며 책장을 살핀 나...

 

적당한 타협선에 영어 책 3권과 소설책 두권을 빌려오기는 했는데 어차피 리뷰할 책이 쌓여있어 가볍게 읽어보자, 했던 책이...럴수 재밌다.

물론 애초에 이 책을 집어든 이유가 1. 내가 좋아하는 추리분야니까, 2. 드라마 <본즈>의 원작이라니까 였으니 어느 정도는 내 취향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초반에는 상당히 고전했다.

 

책도 두꺼운 편이고, 번역이랄까 문체가 술술 읽히는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가 기대한 드라마 <본즈>의 흔적은 주인공의 이름과 직업 뿐... 안녕 부스, 안녕 걸핏하면 총들고 설치는 템피... 이건 거의 패러렐(등장인물을 가지고 다른 배경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패러디의 일종)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떨어져서 부스와 템피의 러브러브 라인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던 마음 70%였던 내겐 좀 실망스러웠다. 책에 어쩐지 미묘한 라인의 라이언이라는 사람이 나오긴 하지만 좀 복잡한 거 아닌가 싶고. (애초에 설정이 대학다니는 딸에 이혼녀인데다 막판에는 전남편과 딸까지 셋이서 여행을 간다고 하니;)

개인적인 호기심(주로 수사물 미드를 통한) 덕분에 용어들은 꽤 알지만 역시 책에서 줄줄 어디가 어떻고 하는 얘기를 늘어놓으니 조금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왜, 집중이 안 되서 같은 줄을 또 읽고 또 읽는 그런 느낌이랄까. 1인칭 관점이라 템피의 의식을 따라 가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운 부분도 좀 있었고. 초반에 읽기를 포기하시는 분들이 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뭐 책 자체는 재미있다. 전문적인 부분이 눈에 안 들어온다면 적당히 넘어가주면 될 일이고, 초반의 지루함은 좀 참으면 그만이다(내 기준에 한해서). 애초에 추리/수사물의 초반은 모르는 일이 투성이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일쑤니까! 그런 의미에서 후반의 긴장감은 흥미진진했다.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은 내 머리가 외국 이름을 자세히 기억하길 거부해 약간 헷갈렸지만, 템피의 집에서 일어난 일은 긴장감 최고조에 일어나 단숨에 책장을 넘겼다.

 

뭐 내용은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드라마 <본즈>의 템피를 상상하시는 분들은 좀 실망하실 듯. 대학생 딸이 있는 중년의 나이에 이혼녀, 옛날에는 알콜 중독끼가 있었고 오지랖이 넓다(뭐 이 부분은 약간 비슷하려나;). 나름 연약한 감성에 시체를 보며 드러내는 인간적인 감성까지... 앞서 말했듯이 이름과 직업을 빼면 공통점이 거의 없다. 드라마 <본즈>의 재미는 뼈를 통한 수사 말고도 인간적인 면이 여러모로 부족한 브레넌 박사가 FBI요원 부스를 통해 조금씩 감정을 드러내게 되는 과정에서의 만담(...)과 미묘한 감정 라인이라면 책의 재미는...굳이 말하자면 잘 몰랐던 전문과정과 프랑스의 일상 아닌 일상을 알아가고 이해못할 성격의 사람을 막판에 이해하게 되는...진지함이랄까. 음, 책이 재미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역시 드라마 만큼의 유쾌함은 없다.

 

그래도 막판에 라이언과의 떡밥(...이라기엔 너무 미약한)을 뿌려주셨으니 감사히 다음권을 봐야할 듯. 일단 드라마 <본즈>를 별개로 바라보니 이 무심한 듯한 관계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수사물 좋아하시는 분

+드라마 <본즈>의 원작은 뭐가 됐든 꼭 읽어봐야겠다, 하시는 분

 

덧) 아... 나 또 너무 리뷰를 가볍게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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