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프스튜 자살클럽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이은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지는 한참인데 이제야 리뷰를 쓰게 되서 좀 스스로 어색하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그당시 난 이게 과연 미스테리 소설에 넣어야 하는지 그냥 소설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는지 잠깐 생각해 봤지만 생각나는 건 뜬금없는 초콜릿 케이크였다. 자취하는 먹보는 늘상 배고픈 법이다. 결국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서야 슬슬 이 책은 미스테리 소설 카테고리에 넣어야겠다, 고 결심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간단했다. 난 스트레스가 쌓이면 읽는 책의 종류가 99.9%의 확률로 '추리소설'에 편중된다. 이 책은 저번 학기의 불행한 기말고사 전, (공부도 안 하면서) 스트레스에 지친 내가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이다. 제목에 떡하니 '자살클럽'이라는 자극적인 말이 쓰여 있길래 집었는데 표지의 남자들 얼굴이...저 나이대의 남자들이 옹기종기 캔 속에 모여있는 모습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보다는 수염이 너무나 인상깊어 '비프스튜'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식욕이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책 구성 자체는 아기자기한 편이다. 소제목에 2페이지를 할애해서 각 사건의 구별을 뚜렷히 해 줄 뿐 아니라 한 두 문장을 집어넣어 좀 더 기대하게 만든다. 각 사건 뒤에는 요리수첩처럼 요리에 관한 짤막한 글이 백과사전 마냥 실려 있는데 꽤나 흥미롭다.

 

줄거리는 사실 아주 간단하다. 비프스튜 클럽이라고 불리는 남자들 10명의 모임은 한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식사를 대접한다. 장장 21년간 지켜져온 클럽은 클럽을 결성했던 라모스가 죽고 난 뒤 엉망진창으로 와해되기 시작하고... 화자인 (뚱뚱한) 다니엘은 그런 클럽이 안타까워 어떻게든 활기를 불어넣고 싶어한다. 우연히 만난 루시디오라는 이름의 엄청난 실력의 요리사가 다음 식사를 준비하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기가 막혔다. 만찬의 다음 날 멤버 하나가 죽기 전 까지는. 처음 회원들은 그걸 모르고 다음 달마저 다른 회원 하나를 상납하고야 만다. 슬슬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는 회원들, 하지만 루시디오의 요리를, 그들은 거절 할 수가 없다...

 

끝까지 스토리를 말하자면 다른 분들에게 실례일까; 나름의 작은 반전이랄까, 반전이라는 말로 칭하기엔 너무 소소하지만, 수수께끼는 풀린다. '왜' 루시디오가, 라는 질문이. (아- 뭐랄까 다른 분들도 금방 아시게 될테니까...그래도 네타일까나;)

 

제목이 왜 비프스튜 '자살'클럽일까. 멤버 중 하나인 사무엘은 다니엘이 왜 루시디오가 멤버들을 죽일까, 라고 의문을 표하자 정정한다. 왜 우리가 '자살'하고 있는가, 라고.

 

첫번째 희생자와 두번째 희생자까지는 혹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뒤부터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은, 확실히 자살이라고 불릴만하다. 미식가들이란 다 그런것일까. 아니, 사실 그들은 특별히 '미식가'라기엔 문제가 있는 자들이었는데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둘도 없는 미식가였다. 죽음의 요리를 거부하지 못하는 슬픈 미식가. 독을 내민 것은 루시디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건 멤버들이다.


자살이라는 단어는 또한 그것이 단지 미각, 식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걸 뜻한다. 그들은 21년간 클럽을 운영해오면서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애당초 건실한 점은 없었던 그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초라해지고 인생에 고뇌가 묻어난다. 철없는 듯 아직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감싸주지만, 인생의 굴곡은 피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은 마지막을 '선택'해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이번 차례라는 걸 알고 받아 들일 것인지, 피할 것인지. 이 바보같은 사람들은 '미식가'답게 마지막을 택했다.

 

글쎄,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이런 바보들...하고 조금은 안타까워하고 그저 음식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 한 편으로 이 사람들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답게, 클럽 사람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게 되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죽음을 택해서 마음이 가벼워 졌다면 그걸로 됐다, 고.

 

나로서는 그게 과연 어떤 엔딩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리석고 뚱뚱한, 아이같은 남자들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그런 '맛난' 책이었다.

 

-대개 추리소설에서는 최후에 남는 사람이 범인이다. 만일 둘이 살아남으면 하나는 바람잡이고, 다른 한 명이 범인이다. (14)

 

-자기의 죄를 종이에 적어 세상에 알리는 사람은 미치광이 소설가뿐이다. (14)

 

-개성이 각기 다른 우리는 미각을 공유하는 떠들썩한 의식을 통해 친밀함과 특이함을 마음껏 과시했다. 우리는 인생의 쾌락을 음미했다. 우리의 식욕이,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통해 배우게 될 온갖 쾌락을 대표한다고 믿으며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세상을 원했지만 아, 결국은 자기 오물을 묻히고 돌아다니는 한낱 실패한 모임으로 끝나버렸다. (23)

 

-어떤 예술도 이처럼 진가를 인정받기 위해 파괴가 필요하고, 숭배와 소비가 동일한 행위라는 철학적 도전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감각의 인지라는 면에서 어떤 예술도 먹는 행위에 비할 수 없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엉덩이를 실제 손으로 톡톡 건드려보는 것뿐이다, 라고 말햇다. (27)

 

-어느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몇 초 사이에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복어의 풍미를 높이는 겁니다.(41)

 

-치명적인 생선을 맛보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유대감을 복원하고, 라모스의 죽음이 몰고 온 비통함과 맞비난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53)

 

-수년만에 처음으로 친구의 기쁨이 내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꼈고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다, 우리 클럽은 아직도 구원받을 수 있고 나도 구원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결국 파멸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다. (63)

 

-지난 몇 년간 어려움이 커지면서 우정도 녹슬었고 사울로는 번번이 믿을 수 없는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지만 그럼이도 나는 그들을 그리워한다. (101)

 

-게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분명 음식에 대한 미감을 상승시켰다. 루시디오가 복어에 대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죽음에 대한 위협은 틀림없이 혀의 미각세포에 영향을 끼쳤다. 맛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모두는 행복감에 도취된 상태에서 음식을 즐겼다. (109)

 

-우리가 사형수를 부러워 하는 것은 그가 자기 삶을 언제 어떻게 끝맺을지 알기 때문이야. 그가 우리보다 더 나은 독자이기 때문에 부러워하는 거지. (123)

 

-"왜 우린 스스로 독살당하려는 거지?"(152)

 

-죽음을 앞두면 누구라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의미를 갖게 되는 법이다. (174)

 

-자네들도 알다시피 처음부터 이것은 일종의 보복이었어. 루시디오는 처형자였고. 자네들은 모두 그 의식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고, 보복이 자신을 겨냥한 거라고 믿었지.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했어. 죽은 친구들 모두 스스로 죽어 마땅하다고 믿었지. (202)

 

-초콜릿마니아는 마르키즈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205)

 

-내가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라면 그 괴로운 작업을 해야 하리라.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218)

 

-그것은 추리소설을 읽기 전에 마지막 책장을 미리 들춰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좀 더 효과적으로 책을 읽게 될 것이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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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초콜릿 코스모스>. 처음으로 읽게 된 온다 리쿠의 책은 강렬하지 않은 살구색이 어쩐지 눈길을 끄는 책이었다. 재능을 지난 두 배우의 이야기는 만화 <유리가면>처럼 연극계에 문외한인 나도 빠져들 수 있게 했다. 처음 그 책을 읽고 작가가 마음에 들어 다른 작품이 뭐가 있나~ 하고 가벼운 마음에 컴퓨터 검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보느라 켜둔 스탠드 등에 컴퓨터 화면이 하얗게 빛났다. 지금은 살지 않는 그 자취방에선 전기세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그래도 컴퓨터를 하지 않을 생각은 안 했다는 게 나답다) 스탠드 등만 켜두곤 했다. 느리게 돌아가는 컴퓨터 덕에 조각조각 떠오르는 정보들은 솔직히 말해 뜻밖이었다. 아니 연극계에 대해서만 썼을거라고는 생각도 안했지만, 이 온다 리쿠라는 작가는 오히려 어쩐지 으스스한 작품이 유명했다.

 

으스스한 작품이라... 나는 귀신이야기는 커녕 조금만 이상한 배경음악이 흘러도 귀부터 막고보는 진짜배기 겁쟁이지만, <초콜릿 코스모스>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과감히 다른 작품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게 <밤의 피크닉>. 제목에 밤이 들어가서 아예 작정하고 긴장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긴장한 게 무색한 작품이었다. 작품 자체가 아니라 '으스스'함에 대한 내 기대치가. 하지만 두번째 작품 덕분에 '온다 리쿠'라는 작가라면 믿고 살 수 있겠다-나는 보통 책을 빌려서 보고 맘에 들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유지니아>를 골랐다. 온다 리쿠라는 작가 알아? 라고 친구에게 물어봤을 때 그... 유지니안가 뭔가로 유명한 작가? 라고 답변이 돌아와 응, 이라고 말은 했어도 읽어보진 않아 (내용을 물어볼까봐) 내심 긴장했던 작품이다.

 

방학을 맡아 자취방을 정리하고 집에서 생활하니 영 책을 읽는 장소가 불편하다. 원룸이라 어딜가든 동선이 짧은 자취방에서는 오히려 책상앞에 앉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방이 많아지니 어느 방에 가든 각이 맞질 않는 느낌이 난다. 특히 여름이 무르익어 갈수록.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가죽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 땀으로 끈적끈적해지기 일쑤다. 덕분에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유지니아. 예쁜 단어라고 생각했다. 표지의 여자아이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이긴 했어도, 제목 만큼은 예뻤다.

 

그리고 책장을 넘겨 읽기 시작하자,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프롤로그야 그렇다 쳐도. 느닷없이 날씨 타령을 시작하는 '누군가'가 도대체 누군지 감이 오질 않았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사람일까? 그 누군가는 차분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아서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다 한 챕터마다 화자도 달라서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조금 상황을 파악했다 싶으면 또 새로운 누군가가 나와서 이 사람은 누군가-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인물에 대입해야 했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오히려 그 구성력에 감탄했다. 유지니아는 옛날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아직까지 얽혀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어떤 특정 과거를 잊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 아주 기쁜 일이 있었거나 감동을 받았거나 슬펐거나, 무서웠거나. 그 강렬한 감정이 기억에 들러붙어 세월과 함께 엉켜가는, 어떤 의미로는 순수하게 '진실'을 조명하는 책이었다.

 

각자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들은 그 사건에 대해 속시원히 알지 못한 채 곳곳에 흩어진 단서를 하나씩 주워모아 저마다의 '사건 개요'를 완성해 나간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채로. 마지막까지 저마다의 시선에 갖힌 채로 책을 읽어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나는 '독자'이고 책 속의 인터뷰어였다. 그 모든 사람들이 고고하고 꽃처럼 아름답다고 회상했던 히사코 아가씨가 마지막 인터뷰에서 드러났을 때 나는 정말 절절하게 인터뷰어에게 동감했다. 씁쓸한 실망. 모두의 과거 속에서 히사코는 작은 여신이었고 작은 악마였는데 이런게 진실이라니, 하고.

 

동생과 종종 어렸을 적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다. 나는 의외로 과거일에 한해서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동생보다는 더 많은 걸 기억하고 있지만 동생은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게 맞다고 우기며 막판에는 골을 내버리곤 한다. 한 살차이밖에 나지 않으니 동생이 너무 어렸던 것도 아닌데, 우리들의 추억 이야기는 종내 싸움으로 번져 엄마의 호통소리에 끝이 난다. 그럴 때면 정말, 인간의 기억력이란 형편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잊어버리기 일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편리하게도 잘 기억나지 않거나 묘하게 일그러져 있다.

 

그런 '각자의 관점/기억'을 철저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각자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세심하게 살려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온다 리쿠에게 감탄했다. 읽는 내내 화자가 누구인지 골머리를 싸매야 했지만, 그와는 별도로 정말 편안하게 인터뷰를 하는 듯이 이것저것 주변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너무나 사실적이라 -영 글을 쓰려고 하면 '세심함'이 사라지는 난- 놀랐다.

 

덧붙여 그 날 저녁 자려고 누우니 어둠 속 천장에 두둥실 표지 속의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에 오싹했다. 책 속의 은근한 분위기, 숨겨진 악의에 오스스 소름이 돋아 이 무더운 여름밤, 이불을 꼭꼭 여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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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누구? - 황금 코안경을 낀 시체를 둘러싼 기묘한 수수께끼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더니 1층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도무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다고 한다. 여느 때처럼 신문을 보는 사람들 옆에서 어정어정 엘리베이터가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걸어다녔다. 어느 장소건 빨리 집에 가려고 최단시간을 목표로 잡는 나지만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답시고 계단을 막아놔서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혹시 올라기는 길이 없어 책을 빌리지 못하는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도서관 안을 구경하는 척(누가 도서관을 구경하고 다니는지는 제쳐두고) 어정어정. 구석의 계단을 발견하고서 기쁜 맘에 올라갔더니 이건 또... 어째 2층도 내 기억과는 조금 다르다. 음- 10년이 지나지 않아도 강산은 변하는군...

 

-하고 도서관에서 혼자 감상에 빠진 게 벌써 3주 전. 그 때 빌린 책들 중 3권은 연체하고(;;;) 2권은 아직 내 수중에 있는데 도통 손이 안 가서 힘들었다. 슬럼프인가 싶기도 하지만 단순한 취미에 슬럼프라 말하기도 뭐하고... 날씨가 우중충하니 그냥 멍하니 컴퓨터를 하거나 침대에서 꾸물거리게 된다. 방학이라 더 그런 거겠지만.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일단 그나마 손이 가는 책을 골라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의 '누구?'에 TV에서 종종 등장하는 '뉴규'(정확한 발음이 뭐지?)가 떠올라 피시식 웃으며 골라들은 거였지만...

 

나는 추리소설을 꽤 좋아하고 드라마에서도 수사물이라면 우선 볼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의외로 추리소설 작가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다. 읽은 작가라고는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아가사 크리스티 뿐이니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그 밖에도 다른 작가의 작품도 읽긴 했지만 딱히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음) 애초에 고른 작가들이 다작하는 타입(?)이라 여태까지 파고들어도 무난히 지내올 수 있었던 것도 한 몫했지만 슬슬 아가사 크리스티의 전집도 다 모아가고 새로운 작가를 개척할 때가 아닐까...

 

뒷표지를 보아하니 '20세기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손꼽히는' 이라고 적혀있길래 이번만큼은 겸허히 남들의 평가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조금 설레는 기분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뭐랄까 20세기 초의 영국 귀족이라니 확실히 새로운 타입이다. 가장 새로웠던 건 이 '피터 윔지 경'이 너무 인간적이라는 거지만.

내가 여태껏 읽었던 탐정들(셜록 홈즈, 마플부인, 포와로, 뤼팽-은 탐정이 아니지만)은 각기 개성이 무척 강하고 활동 지역도 달랐지만, 단 하나 범죄를 파헤치고 추리해 범인을 밝혀내는 데에 있어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완벽한 탐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호기심 많은 귀족 탐정 아저씨는 탐정이라는 면에서는 현저히 약한 면을 보인다. 실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추리해 나가면 자기가 스트레스 받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이 피터 윔지 경의 매력이라면 매력인 셈이다. 물론, 그 끊임없고 정신없는 수다도. (...)

 

귀족 탐정 아저씨의 캐릭터도 신선했지만, 시체 역시 뭔가 남달랐다. 전라에 황금 코안경이라니...죽은 사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시각적 상상력에는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충격적인 시체 사건과 실종 사건이라는 겉으로 보기엔 전혀 관계없는 두 사건이 기묘하게 얽혀들어가는 내용에 매력있는 탐정을 새로이 알아가는 책이라 다소 예측 가능한 사건이라도 재미는 있다. 무엇보다 이게 피터 윔지 경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작품 곳곳에 탐정을 소개하는데 주력한 듯한 흔적이 보여 사건보다는 탐정에 주목하게 되는 것도 새로운 재미라고 본다.

 

참고로, 하인과 귀족-이라는 새로운 탐정과 조수 콤비가 굉장히 흥미롭다. 심지어 번터(하인)는 가끔보면 피터 경보다 재치가 넘치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저 내가 번터를 좋아하는 것 뿐...)

 

-내게 이게 취미잖나. 사물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다 보면 너무 재밌으니까 이 일을 하는 거지. 게다가 더 안 좋은 건 내가 이 일을 즐긴다는 거야. 어느 정도까지는. 이게 이론뿐이라면 속속들이 즐길 수 있겠지. 처음은 좋아. 여기 관련된 사람들을 모를 때는 그저 흥미롭고 재미있기만 하네. 하지만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까지 파고 들어가 그 사람을 교수대로 보내야 하거나 못해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면 내가 이런 일에 끼어들 핑계가 없어지거든. 이 일은 내 생업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일을 재미있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하지만 재미있는 걸 어쩌나.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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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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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었다. 단지...역시 내 청개구리 기질 때문에 읽을 마음이 별로 없었달까. <모방범>은 좀 흥미가 갔지만 도서관에 가보면 항상 3권 중 한 권이 사라져 있어서 다음을 기약하곤 했다. <쓸쓸한 사냥꾼>을 빌린 건, 실은 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랄까. 요즘 텐션이 현저히 낮아져(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너무 감정적이 되었다는 거. 뭐 안 좋은 소식도 많았고.)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구경하는 건 좋았지만 막상 책을 뽑아들고 집에 돌아오면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아 반납할 때까지 멀뚱멀뚱 표지만 바라보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고, 그럴 때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추리소설이 최고다-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미드를 고르는 기준의 첫번째도 수사물인지 아닌지,로 판단할 정도로 나는 수사물, 추리물이라면 사죽을 못 썼다. 딱히 추리에 소질이 있거나 눈치가 빨라 범인을 알아채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신경줄이 약해 스릴러도 잘 못보는 내게 수사물은 내가 체험할 수 있는 스릴의 최대치인 셈이다.

 

역시나 모방범 세트가 없길래 되는대로 책을 뽑아들고 대출해왔다. 그리고 또 방바닥에 팽개쳐두길 일주일. 주말에 뒹굴거리다 보니 손에 닿아 읽기 시작했는데, 어...이 책, 재밌다. 오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는 다르구나, 약간 반성섞인 감탄으로 일단 작가를 칭찬해본다.

 

책 표지는 펼쳐진 책 위에 피 묻은 흉기가 놓여있는, 어찌보면 자극적인 그림이지만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듯한 터치 때문인지 너무 수사물에 무뎌진 내 감각 때문인지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책 속에 그려진 서점이 책 속의 '다나베 서점'인지 궁금하다. (그림 속의 간판은 한자에 뭉개져 있어 잘 모르겠다)저런 책방이 동네에 있으면 좋을텐데.

 

실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던 건, '다나베 서점'과 이와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에 있었음 좋겠다-였다. 책을 좋아하지만 엉덩이가 무거워 요새는 서점에서 책을 사기 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본 좋은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곤 하는 내게 헌책방이라는 건 어쩐지 아련하고 색다른,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다. 거기에 '이와 씨'처럼 현명한 할아버지가 주인이라면, 덧붙여 손자와의 만담도 볼 수 있다면 안 가는 게 손해가 되겠지. 어쩌면 이와 씨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으으.. 정말이라면 좋을텐데.

 

<쓸쓸한 사냥꾼>속 단편은 총 6편으로 이어진 듯 따로 전개되는 옴니버스 식이다. 주 무대는 '다나베 서점', 주인공은 현명하고 관찰력 좋은 이와 씨와 그런 이와 씨를 잘 따르는 손자, 미노루다. 서점이라는, 어찌보면 소음과도 거리가 멀 듯한 장소와 관련해 어쩜 그렇게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말하자면 서점이 아니라 '이와 씨'가 사건에 말려드는 거지만.

 

단편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작가의 성향이 그런지 모든 단편들은 아주 무섭다거나 잔인하다기 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그린 듯한 터치로 이어진다. 특히 할아버지와 손자, 라는 흔히 친하게 지내고 자주 다니기 힘든 조합이 작품들을 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서점에서의 일과, 손자와의 사이에 집중하다보니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도 가볍게 읽을 수 있을 법하다.

 

내가 가장 맘에 든 작품은 <말없이 죽다>다. 살인사건이 나오기는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일상을 소원했던 아들이 훔쳐본다, 라는 설정은 잔잔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 아버지가 귀여우시기도 했고. 가만보면, 미스테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힌 수백권의 책들처럼.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는 그런 미스테리를 솜씨좋게 건져내 글을 엮어간다.

 

글쎄, 다른 책들은 아직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확실히 <쓸쓸한 사냥꾼>은 내 취향이었다. 내 청개구리 기질을 잠시 치워두고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

 

 

-남이 땀 흘려 창작한 것에는 다들 경의를 표해야 마땅한 것이며, 책도 그 가운데 하나로 여길 뿐이다. (13)

 

-그런 생각이 들자 몸이 떨렸다. 미치야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따분한 인생을 보낸 사람에게도 그런 패기가 있었다-. (95)

 

-태어나면서부터 패배자로, 언제나 관중석에서 구경이나 할 인간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생기면 나도 달릴 수 있다-. (96)

 

-기껏해야 한 편의 소설이다. 꾸며낸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가씨의 한마디가 유키코를 뒤흔들었다. 유키코가 갇혀 있던, 어떤 의미에서는 안이한 생각 속으로 번개처럼 헤집고 들어왔다. (209)

 

-우리는 모두 쓸쓸한 사냥꾼이다. 돌아갈 집도 없이, 거친 들판에 내던져진 외톨이다. 이따금 휘파람을 불어도 대답하는 것은 바람소리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그리워한다.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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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무작정 제목만 보고 책을 집어들었을 때,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자극적인 제목에 쉽게 걸려든다...) 표지를 보고 순간 흠칫했다. 표지 속의 사람들 눈에 눈동자가 없어서 상당히 선명한 색상에도 괴기물을 보는 것 같았다. 색이 선명해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하고, 또 어렸을 적부터 줄곧 읽어왔지만, 단 한번도 수월하게 이 사람이 범인이네, 혹은 이건 트릭이다,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한 번 읽었던 책도 나중에 다시 보면 흥미진진하게 읽는데 오죽할까...싶기도 하고 여태껏 읽은 추리소설의 경력이 허무하기도 하고. 내 스스로 변명을 좀 해보자면, 추리소설을 읽을 때에도 스토리를 따라서 읽을 뿐, 진지하게 추리를 하지는 않는 편이다. 거기에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잡아내지 못하는 둔한 성격도 한 몫하는 듯 하고.

<회랑정 살인사건>을 읽는 동안에도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늘 그렇듯이 범인이 누구인지 도통 모르는 상태로 그저 책장을 넘겼다. 트릭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게... 공간능력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이 회랑정의 구조를 살짝 이해는 해도 생생하게 떠올리기는 무리라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 나온김에 추리소설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은 대부분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다. 여성작가다운 섬세한 감정라인에 몇몇 작품은 연애소설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사건에서 오는 기묘한 오싹함과 대비되어 읽는 맛이 나기 때문이다.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와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어렸을 적에 하도 읽어서인지 요새는 잘 손대지 않지만,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는 작품이다. 추리소설에서 '긴장감'은 다른 어떤 소설에서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긴장감, 다음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이 독자들을 다음 페이지로 이끄는 원동력이랄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회랑정 살인사건>에서는 그런 생생한 긴박감은 못 느껴서 아쉽다. 이야기에 흠잡을 곳도 없고 트릭도 기발하진 않아도 괜찮았는데 너무 주인공의 감정이 세세하게 드러나서인지 긴박감이 떨어진 듯 했다. 아니... 혹시 이건 그냥 소설일까나... 소재가 살인사건일 뿐인? 작가소개를 보면 굉장히 대중적이고 이름있는 작가인데...오늘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일 수도 있으니 다음에 다시 읽어볼 책 리스트에 올려두어야 겠다.

뭐, 무난하게 읽히는 책이고 마지막의 엔딩도 나름 반전이라 실망스러운 작품은 아니다. 엔딩을 읽고 느낀게 여자의 서글픔이라는 건 좀 슬프지만...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논 것도 모자라 그런 흉악한 일까지 하다니, 정말 주인공이 범인 색출에 목숨까지 바치는 게 무리는 아니다 싶다. 원래 이런 소설에서는 힌트를 주는 게 예의가 아니고, 난 원래 스토리 요약을 못하니 쓰지 않을 테지만-

잠시 잠깐의 장난기로 힌트를 주자면, 여주인공의 모든 동기는 '나의 지로가 살해당했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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