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질링 살인사건 찻집 미스터리 1
로라 차일즈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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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앤 플루크의 베이커리 살인사건 시리즈도 그렇고, 이 <다질링 살인사건>도 그렇고 외국에서는 음식업계에 종사하는 미혼여성의 아마추어 탐정소설이 인기인가 보다. 음식과 추리의 상관관계를, 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읽으면서 조앤 플루크의 베이커리 살인사건(스스로는 예쁘지 않다 칭하지만 매력남에 훈남까지 프로포즈하고 있는 여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 자꾸 생각났다. 작은 가게를 가지고 있고 훌륭한 제품들을 자부심있게 판매하며 젊은 아가씨가 가게에서 일하고,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는데다 미스터리에 엄청난 호기심으로 파고들어간다. 마지막으로...범인의 정체를 막판에 죽음의 위기와 함께 알아차리는 점이 꼭 닮았다. 예전 김전일과 코난을 번갈아 가며 읽을 때도 느꼈지만 베이커리 살인사건의 한나와 다질링 살인사건의 시어도시아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진다. 아마 둘이 서로 과자를 권하고 차를 권하고 화기애애하겠지...

 

다질링 살인사건은 주인공 시어도시아가 경영하는 작지만 기품있는 찻집을 배경으로 시어도시아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간다. 분명한 건, 차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정보와 팁이 책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는 거다. 물론 차와는 거리가 먼 나로서는 거의 흘려읽었지만. 차를 좋아하시거나 관심있으신 분들께는 소설 + 정보니 일거양득이 아닐까 싶다.

 

난 피곤할 때 격하게 추리소설을 찾는 습관이 있다. 환상이 가득한 판타지 소설도 좋고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동화도 좋지만 아무래도 머리가 복잡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을 때는 오히려 머리를 비워주는 -책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추리소설이 피곤을 덜어주는 기분이 든다. 그 중에서도 이 <다질링 살인사건>처럼 적당히 상냥하고 적당히 스릴있는 책이 가볍게 보기엔 더 좋다. 굳이 콕 집어 얘기하자면 일본 추리소설은 심리추리소설이 많아서 책을 덮은 뒤에 도리어 복잡해 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어지간하면 잘 읽지 않는다.

 

오늘은 화창하진 않아도 적당히 뒹굴거리기 좋은 날씨에 머리 아픈 일이라곤 레포트밖에 없었지만, 마침 도서관 반납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고 하니 가장 가까이 있는 이 애교스러운 표지의 <다질링 살인사건>을 주워들었다. (책장에 책이 많아서 요즘은 바닥에 쌓아두고 있다)

 

단언컨데 수없이 많은 추리소설 중에서도 이렇게 아기자기한 표지는 찾아보기 힘들거다. 볼을 붉히며 윙크하는 찻주전자를 든 아가씨나, 애교스럽게 웃고 있는 강아지나. 딱 <다질링 살인사건>에 어울리는 표지다. 표지만 봐도 복잡한 일들이 잊혀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도 어울리고. 하지만 시어도시아는 좀 더 우아하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 책은 굳이 얘기하자면 호흡이 좀 짧다. 덕분에 가볍게 읽기에는 좋지만 군데군데 떡밥을 던져놓고 그 뒤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물론 이야기 전개에 그리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앞서 말했듯이 조앤 플루크의 베이커리 살인사건이 자꾸 떠오르다 보니 비교가 되어서 그런지 그런 점이 좀 아쉽게 느껴졌다. 나야 딱히 꼬투리를 잡는 성격이 아니라 설렁설렁 넘어간다고 해도 세심한 분들은 (혹시) 그런 점들에 괴로워 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옴니버스 식이라 그런걸까, 생각해 봤지만 다음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했으니 아무래도 판단은 미뤄둬야겠다.

 

그래도 시어도시아는 훌륭하다! 열심히 미스터리를 판 것치고는 범인을 마지막까지도 알아채지 못한데다 헛다리 집는 일에 열중하긴 했지만 그 열정과 행동력에 감탄했다. 심지어 예쁘기까지 하다니 그녀가 실제한다면 먼 거리를 무릅쓰고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 심정이다. (차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지만 적당히 추천해 주겠지!)

 

다음 시리즈도 발표했다고 하는데 아직 한국에는 번역되지 않았나보다. 이 다정하고 매력적인 찻집 아가씨를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런지 기대해본다.

 

-싫든 좋든, 분명히 나는 이미 수수께끼에 허리까지 푹 잠겨 있잖아.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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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써틴
볼프강 홀바인.하이케 홀바인 지음, 이병서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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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3. 써틴. 처음 이게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소리에 한 번 놀라고 동화치고는 엄청난 두께(어지간한 소설보다 두꺼운!)에 또 한 번 놀랐다. 택배로 도착한 책을 보고 엄마는 '넌 이제 호러소설도 읽냐'고 질린 듯이 말했다. 응? 하며 다시 한 번 표지를 살펴보니 이게 일단은 '동화'라는 걸 모르는 엄마가 착각할만도 했다. 커-다란 보름달 배경에 웅장하지만 으스스한 저택, 잡초가 무성한 정원...거기다 으스한 글씨체의 제목까지.

 

철썩같이 '동화'라고 믿고 있었는데 엄마 말 듣고 표지를 보니 불안이 밀려왔다. 이미 시간은 저녁, 거기에 난 나이와 상관없이 무서운 거라면 질색하는 겁쟁이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조마조마해 하며 책을 펴들었지만 순식간에 '써틴'의 모험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책을 다 읽고나니 내가 써틴을 따라다니며 모험을 한 것마냥 피곤했다. 아니 물론 저녁이라 내 체력이 바닥나서 일수도 있겠지만 안 그래도 두꺼운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나가려니 머리가 어찔어찔했다. 혹시 저녁에 피곤할 때 읽으실 분이 계신다면 저녁을 든든히 먹고 읽으시길 추천하고 싶다...

 

13은 익히 알다싶이 외국에서는 불길한 숫자로 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4'와도 같은 위치인 듯 싶지만 그리 심각하게 신경쓰지 않는 우리와 달리 외국의 13은 유난히 문화적 영향력이 큰 듯 싶다. 영화소재로도 종종 등장하고, 심지어는 컴퓨터 바이러스로도 등장하고. 내가 알기론 예수의 13번째 제자,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이후로 13이 악마의 숫자가 됐다고 하는데 확실한 건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13이라는 숫자가 외국에서 굉장히 불길한 숫자로 통하고 있다는 거다. 분명, 이름으로는 절대 쓰지 않을 그런 숫자로.

 

그런 의미에서 '써틴' (본명 안나 마리아)는 13이라는 숫자에 얽힌 것만 치자면 그 나이또래 중 불행의 최고도를 달린다. 태어난 날짜도 시간도 13, 인생 곳곳에 숨은 13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읽는 사람도.

 

'써틴'은 아버지를 여의고 결국 어머니까지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유언대로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할아버지를 만나러 독일로 가게 된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그녀를 죽이려는 누군가와 마주친 그 순간부터 영문도 모르는 적과 마주하게된다. 어딘가 음침한 할아버지의 집부터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들까지. 차례차례 밀려오는 적과 음모에도 '써틴'은 도망치고 포기하기보다는 맞서싸우는 쪽을 선택한다. 아슬아슬하게 두 세계를 넘나들며 적의 실체를 알아가던 '써틴'. 이 모든 것이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알게되는데...

 

-라고 요약해 봤지만 이 이야기의 모든 것을 담기엔 너무 요약한 듯 싶다. 역시 책은 읽어야 맛이다.

 

이 책의 특이점을 말한다면 뭐니뭐니해도 독특한 구성을 빼놓을 수 없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동화치곤 방대한 양은 둘째치고 중간중간 2단으로 나뉘어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그야말로 동시상영(!) 하는 부분은 두 부분을 한꺼번에 읽어야 할지 혹은 한 쪽을 먼저 읽고 다른 쪽을 읽어야 할지 날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조금 헤갈리게도 했고.

 

'써틴'은 이야기 속에서 집의 탈을 쓴 무언가를 경계로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건너다닌다. 처음 엄마를 잃고 홀로 남아 할아버지를 찾아가려던 연약한 소녀는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길을 자신이 결정해나간다.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는 단순한 호러동화가 아니다. 성장스토리에 영혼을 빼앗긴 듯 살아가는 어른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영혼을 저쪽 세계에 빼앗긴 사람들은 건강하고 능력있고 심지어는 성공까지 했지만 사랑과 우정 같은 따스한 감정은 모조리 잊어버린다. 오로지 성공, 그리고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달릴 뿐이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이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거듭 말한다. 모든 사람 속의 나쁜 부분이 튀어나온 거라고. 감정보다 차가운 이성이, 자신의 이익부터 생각하는 그런 면이 누구에게나 있는거라고. 그래서 '써틴'은 생각한다. 그렇게 수많은 방해를 받고도 그 사람들이 '안됐다'고.

 

이게 아이의 시선이라면, 아이들은 한없이 일에 치여 사는 어른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걸까.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난 '써틴'에 동감했고 그 '성공한 어른들'의 성공만큼은 부러웠다. 슬프게도.

 

여름은 다 지나갔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스릴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동화라고 하지만 판타지 소설의 대가인 작가의 작품인만큼 어른들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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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은 죽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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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탓이야>로 처음 만난 하무라 아키라는 '무심하고 시크하다'는 말에 꼭 맞는 아가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럽지는 않았던 게... 그녀는 소설계의 김전일이었다. 어릴 적 탐닉했던 김전일 시리즈를 보며 내가 얼마나 무서움에 떨었는지! 도대체 왜 김전일 곁에는 끊임없이 사건이 일어나며 그 모든 사건들은 살인을 빼놓지 않는건지. 이 사설탐정 아가씨, 하무라 아키라 역시 사건을 몰고다니는 스타일이다.

 

물론 사설탐정이라는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사건을 만나게 되겠지만, 남들은 다 적당히 넘어갈 일들을 시시콜콜 파헤쳐 '진실'과 마주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지나쳐도 될 사건들이 그녀에게 끌려간다. 굳이 말하자면 '사서 고생하는' 성격이랄까.

 

전작, <네탓이야>도 그렇고 <의뢰인은 죽었다>도 그렇고 옴니버스 식이라 전작을 보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생각 외로 이어져 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읽은 분은 좀 더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난 소소한 면에서 재미를 찾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은 어딘가 하무라 아키라처럼 무심하고 시크한 면이 있지만 뒤돌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소름이 끼치곤 한다. 그리고 그런 면은 이 <의뢰인은 죽었다>도 마찬가지였다. 소소한 사건을 파헤치는 일도 일이지만 옴니버스 형식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도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무언가'에 마지막까지 오싹했다.

 

전작 <네탓이야>에서 언니 스즈에게 죽을 뻔한 경험이 있는 하무라 아키라는 그로부터 계속 무직으로 살아왔다. 하세가와 탐정조사소 소장이 다시 그녀를 불러주기 전까지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다양한 '경력'과 지식을 쌓아온 그녀가 유일하게 오래 버텼던 탐정조사소의 재직 요청에 그녀는 역시나 쿨하게 이제껏의 생활방식은 자신의 선택이라며 정직원이 되는 것보단 '파트 타임 탐정'이 되는 걸 선택한다.

 

'파트 타임 탐정' 치고는 굵직굵직한 사건만(전적으로 파고들기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탓이라고 난 믿는다) 맏는 그녀는 탐정사무소의 일 말고도 사적으로 들어오는 '어쩔수 없는' 일거리 처리도 도맡아 해 늘상 사건에 치이고 있다.

 

자살한 남친의 자살 이유를 밝혀달라는 친구의 부탁, 자신의 딸이 왜 상사를 찔렀는지 알아봐 달라는 아주머니의 부탁, 오래전 자살한 친구를 자살로 몰아넣은 이유를 알아봐 달라는 도도한 아주머니의 부탁.

 

이렇게 나열하니 확실히 '자살'에 관련된 사건이 많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의뢰인은 죽었다>를 관통하는 '무언가'는 삶의 이유다. 자살한 사람들의 이유, 그 자살한 사람의 자살이 가지는 '존재이유', 그리고 그 자살에 과연 누가 책임이 있는가.

 

아키라는 골칫덩이 언니 스즈를 자살로 잃었다. 애초에 아키라의 삶에서 짐만 되던 언니였기 때문에 그녀는 역시나 쿨하게 생활을 이어가지만, 그 파장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자살이 남기는 흔적'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죄책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미묘한 감정을 이 책의 사람들은 공유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추억으로 어떤 사람은 슬픔으로 어떤 사람은 외면으로.

 

같은 작가, 같은 주인공, 같은 출판사의 시리즈인데도 불구하고 '왜' 전작에 비해 표지가 하드보일드 풍인가~ 싶었더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러가지 사건 사고(그리고 살인)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톤으로 읽을 수 있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의뢰인은 죽었다>는 어딘가 떨떠름~한 기분으로 읽게된다. 거기다 결말에 심어주는 궁금증까지.

아- 정말 다음 권을 기다리게 만드는 책이라니까. 도대체 <나쁜 토끼>는 언제 나오는거야? 별수 없이 이 책을 읽고 또 읽어야겠다. 하무라 아키라는 만나도 만나도 질리지 않는 여자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안개에 갇힌 듯한 상태에서 무엇과 맞닥뜨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죽음과 맞닥뜨릴 수도 있었다. 죽음이 뒤 따라오는 중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선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수밖에 없다.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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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동화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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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온다 리쿠.

난 한 번 '꽂히는' 작가를 만나게 되면 차근차근 작품을 읽어나가기 보다는 단숨에 현재까지 나온 작품을 몰아 읽는 편이다. 옛날에 전집류(셜록홈즈 시리즈, 뤼팽 시리즈)를 자주 사줬던 엄마의 영향일 수도 있고, 그저 편식을 하는 내 성격일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마지막 작품까지 읽고 그제서야 만족의 한숨을 쉬곤 한다.

 

하지만 온다 리쿠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저번에 '유지니아'를 읽은 이후, 문득 아, 이 작가 작품은 몰아읽을 수 없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 속 불안감을 조용히 흔드는 글을 단숨에 몇 권이고 읽어버린다면 당분간은 일상 생활 속에서 그 흔들림을 담은 채 살아야 할 테니까. 가뜩이나 방학 끝무렵 + 개강이라 여러가지 일이 복잡한데 가슴 속 술렁거림을 감당할 여력이, 내게는 없었다.

 

<불안한 동화>는 그나마 흔들림이 적지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는 건 다른 책과 마찬가지다. 순식간에 사람을 끌고들어가는 흡착력, 집중력이 책에서 느껴진다. 노리코의 그림처럼.

 

호러 미스터리 라고 표지에 적혀있지만 실상은 무섭다기 보다 얼이 빠져 읽어 내려서인지 '흥미로웠다'. 환생, 기억을 읽는 사람,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가 잘 섞여 들어간 마블링 볼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환생, 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편이라 신이 나서 읽었지만 보통 내가 즐겨읽던 판타지에서의 '환생'이 주는 발랄함보다는 제목답게 '불안'한 기운이 맴돈다.

 

사람이 전생의 기억을 이어받는 게 가능할까. 나도 이런 걸 좋아하는 편이라 예전부터 여러가지 정보를 찾아다니긴 했지만 솔직히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달라이 라마는 '모두' 전생의 달라이 라마로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의 내게는 그게 그저 우와-그런가, 하고 놀랄거리였지만 조금 머리가 컸다고 이제는 그게 과연 좋은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리꼬는 '다음 생에는 잘 할거야'라고 마지막에 되뇌인다. 그래, 만약 사람이 정말 '환생' 하는 거라면 그 이유는 전생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기회가 내려오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전생을 기억할 이유는 없는 거 아닐까. 딱히 어느 인생보다 낫다, 고 잘라말할 수는 없는 내 인생이지만 전생이랍시고 '누군가', 지금의 내가 아닌 누군가의 기억이 끼어든다면 조금 짜증스러울 것 같다. 아무것도 없지만 주제파악만은 확실히 하는 나로서는 전생이든 뭐든 결국은 남의 기억이 아닌가 싶다.

 

불안한 동화, 동화를 현실로 끌어내리니 새로운 동화가 시작되었다. 평생을 어머니의 그림자에 휘말려왔던 뵤,가 어린시절 동화를 풀어헤쳐 얻은 건, 마음 편히 발을 디딜 수 있는 '현실'이었다. 잔인한 진실이었을지라도 뵤에겐 새출발의 계기가 되었을거라 생각해 괜히 흐뭇해 진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읽으면 왜 온다 리쿠의 책들이 사람을 울렁울렁 술렁술렁하게 만드는지(의성어만 잔뜩 늘어놓을 수 밖에 없는 내 심정도) 이해하게 될 책이다.

 

솔직히 말하면 <유지니아>를 읽고나니 그 강렬함에 비해 이 <불안한 동화>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흡인력 있지만 온다 리쿠 특유의 '술렁술렁'함이 2% 부족한 느낌이다. 이거, 몇 권 읽지도 않고서 온다 리쿠에 너무 깊이 빠져든 건 아닐까...

 

-속물스러운 사람들은 어째서 모두 닮았을까.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목소리를 낸다. 우리는 너희와 달라. 인생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즐기지. 어때? 즐겁겠지?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손짓발짓을 보고 있노라면, 무심결에 코웃음을 칠 것 같다. 자존심 덩어리 같은 시선과 들으라는 걸 전제로 늘어놓는 자랑이 숨 막힐 듯 덥다. (16)

 

-내가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이 세계가 존재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적어도 나는 그 사실을 증명할 수가 없지 않은가. 모두들 내가 태어난 시점에 미리 말을 맞추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이 세계가 나만의 100미터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영원히 끝나지 않는 릴레이 경주라는 것을 이해하기란 너무 어렵다. (18)

 

-꿈이 현실로 침입해온 지금, 내게는 달아날 곳이 없다. (108)

 

-아무래도 최근 젊은 여자들은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무조건 자신을 타인과 차별화하고 '뭔가'를 추구하는 타입과 판에 박힌 '여자의 인생'을 걷는 타입으로. (119)

 

-최근에 비로소 깨달았지만, 내게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남들보다 부족한 것 같다. 유학과 결혼, 이 두 가지는 결국 같은 것이다. 둘 다 사회든 남성이든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것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러니 근본적으로는 뿌리가 같은 욕망이다.
물론 나 역시 당연히 행복한 게 좋다. 그러나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며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만으로 스릴이 넘치고,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나 자신을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여기에 다른 것이 더해지면 내가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 삶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터에, 다른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다. 나는 이게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120)

 

-아마 같은 버스에 타서도 소녀들의 시야에는 노인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병도, 늙음도, 죽음도 소녀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세계일 테니까. (172)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오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하고, 여러 사람을 사귀어도 손안에 남는 건 겨우 한 줌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요. 그것이 만약 증오였다고 해도 이렇게 형태를 갖추고 손에 남는다면 좋은 일이죠.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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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실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건, 매우 뒤늦게도 이 책의 후속작인 '죽음의 미로'를 중간정도 읽었을 때였다. 아무래도 새로 시작하는 이야기라기엔 옛날을 회상하는 부분이 많아서 뭐지? 하고 물음표만 늘리고 있다가 문득, 아.......하고 이 책이 떠올랐다. 쯧쯧쯧,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책은 순서대로 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축복받은(!) 토요일 오후에 침대에서 뒹굴거릴 때 깨닫기엔 너무 슬픈 일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 '죽음의 미로'를 다 읽고 당장 도서관에 달려가 이 책을 빌려왔다. 다행히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만큼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닌지 서늘한 도서관 한 구석에 얌전히 꽂혀있었다. 이제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이지.

 

시리즈의 두번째 권부터 읽은지라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있었다. 앞에서도 썼지만, '죽음의 미로'에는 종종 '시몬'이나 '보호견'이 회상 속에서 등장한다. 처음에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지만(난 까탈스럽기보다는 둔감한 독자기 때문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시몬'이 누구인지, 앨리의 아빠와는 도대체 어떤 사이였는지, 역시 종종 등장하는 '보호견'이 어떤 존재였는지 책을 펴기 전부터 궁금해 하고 있었다. 순서가 뒤바껴도 한참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기대에 기대를 하고 읽은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 시몬! 난 첫 등장부터 이 작은 유대인이 좋아졌다. (내 상상 속에서) 순박해 보이지만 작은 눈을 영리하게 빛내는 이 애처가 아저씨가 유대인인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기에. 아델리아의 어리숙함(아델리아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구석이 있다)에 난처해 하는 그가, 단서를 잡으러 나가서 양털 제조에 대해 배워 천진하게 알려주는 그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너무 슬퍼졌다. 의도치 않게 그의 미래를 알고 있어서. 누군가의 미래를 미리 안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아델리아는 내가 좋아할만한 여자였다. 굳이 말하자면,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게 짜증스러울, 능력있고 자각있는 여자. 안전한 '의사들의 도시'에서 살아온 아델리아는 난생 처음 건너온 잉글랜드에서는 '의사'라는 자신을 당당히 내보일 처지가 아니다. 그것 하나만으로 '마녀'로 몰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어디까지나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다. 죽은자들을 위한 의사. 그들을 대신해 말을 해주는 의사.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에요. 나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말하려고 온 겁니다. (124)

 

난 그 투철한 직업정신과 대비되는 순진함, 그럼에도 반짝이는 영민함에 대번에 아델리아가 좋아졌다. 아마 현대에 태어났어도 그렇게 도도하고 순진했을 것 같다.

 

줄거리를 대충 말하자면, 잉글랜드의 어느 마을에서 아이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게 유대인의 짓이라 생각해 유대인을 핍박하고, 그때문에 부유한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못 받게되어 슬픈 헨리왕은 저 멀리 시칠리아에서 사건을 조사해줄 '죽은 자를 다루는 의사'를 초청하게 된다. 불행히도 여자의사가 마녀로 몰리던 시절, 뛰어난 재능으로 이름을 날리던 아델리아는 난데없이 잉글랜드로 가게 되고 살인범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동시에 사건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는데...

 
난 역사는 잘 모른다. 우리 나라 역사도 헷갈려하는 마당에(자랑은 아니지만) 남의 나라 역사가 머리 속에서 제대로 정리되어 있을리 만무하다. 덕분에 옛날 사회 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되살리느라 끙끙대며 책을 읽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가볍게 넘어갔다. 어차피 외국의 '중세'는 비슷비슷한데다 역사적 지식을 그렇게 요구하는 책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자세히 알고 있다면 '역사적' 재미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역사시간이 재미있었던 유일한 순간은 역사 속 야사와 비사를 속삭여주던 순간이었다. 불행히도 내 머리는 역사와 년도는 거부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동화마냥 머리속에 박혀 있다. 해가 지날수록, 어린 시절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단순히 내가 싫어서) 역사에 흥미가 가는 것도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이제 슬슬 나도 뒤를 돌아보게 된 것인가...

 

중세시대에는 종교가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력에도 큰 비중을 차지했고) 책에서는 종교적인 배경이 종종 등장한다. 수도원장, 수녀들... 은수자라는 듣도보도 못한 존재(은둔해서 수행하는 사람)... 딱히 종교를 가지진 않았지만 그 당시 종교와 권력이 상충하던 시기는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는 편이다. 기독교 관련 강의시간에도 재미있게 들었던 부분이기도 하고. 하지만 종교를 떠나서 이 책 덕분에... 책 끄트머리에서야 겨우 호쾌하게 등장하는( 맨 앞에서도 나오지만 거기선 너무 제멋대로이기만 하니까) 헨리왕에게 관심이 높아졌다. '이 사람'이 '그' 헨리왕이라 이거지.

 

-매복 기습이라고 아델리아는 생각했다. 성공적이든 아니든, 교활함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행위를 지금 구경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 (511)


헨리왕 말고 이 책에서 가장 매력있는 등장인물은 단순히 내 관점에서, 주인공 아델리아가 아닌 유대인인 시몬이다. 그 시절은 기독교가 성행하고 있었고 힘이 있는 종교였기 때문에(현대도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상당히 핍박받고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탄생한 부당한 대접은 비합리적이지만, 어디 인간의 생이 합리적으로만 흘러가던가. 그것은 그 시대 유대인들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빚이었다. 어느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미개하다, 라는 인종주의도 싫지만 단순히 어느 민족이 예전-까마득한 예전-에 했던 일 때문에 겪는 민족차별은 더 싫다. 현재를 살아라,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오로지 '가르침' 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현재가 과거를 짊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시몬이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데에 단순히 열이 받았다. )

 
재미있는 책이었다. 아델리아의 다음 행보가 상당히 기대된다. 실은 이미 두번째 권은 읽었지만서도.
 

-내일이란 건 없다, 그는 그걸 모른단 말인가? 내일이란 것들은 무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오늘, 지금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예의 따위를 신경 쓸 시간이 없다.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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