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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실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건, 매우 뒤늦게도 이 책의 후속작인 '죽음의 미로'를 중간정도 읽었을 때였다. 아무래도 새로 시작하는 이야기라기엔 옛날을 회상하는 부분이 많아서 뭐지? 하고 물음표만 늘리고 있다가 문득, 아.......하고 이 책이 떠올랐다. 쯧쯧쯧,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책은 순서대로 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축복받은(!) 토요일 오후에 침대에서 뒹굴거릴 때 깨닫기엔 너무 슬픈 일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 '죽음의 미로'를 다 읽고 당장 도서관에 달려가 이 책을 빌려왔다. 다행히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만큼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닌지 서늘한 도서관 한 구석에 얌전히 꽂혀있었다. 이제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이지.
시리즈의 두번째 권부터 읽은지라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있었다. 앞에서도 썼지만, '죽음의 미로'에는 종종 '시몬'이나 '보호견'이 회상 속에서 등장한다. 처음에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지만(난 까탈스럽기보다는 둔감한 독자기 때문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시몬'이 누구인지, 앨리의 아빠와는 도대체 어떤 사이였는지, 역시 종종 등장하는 '보호견'이 어떤 존재였는지 책을 펴기 전부터 궁금해 하고 있었다. 순서가 뒤바껴도 한참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기대에 기대를 하고 읽은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 시몬! 난 첫 등장부터 이 작은 유대인이 좋아졌다. (내 상상 속에서) 순박해 보이지만 작은 눈을 영리하게 빛내는 이 애처가 아저씨가 유대인인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기에. 아델리아의 어리숙함(아델리아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구석이 있다)에 난처해 하는 그가, 단서를 잡으러 나가서 양털 제조에 대해 배워 천진하게 알려주는 그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너무 슬퍼졌다. 의도치 않게 그의 미래를 알고 있어서. 누군가의 미래를 미리 안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아델리아는 내가 좋아할만한 여자였다. 굳이 말하자면,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게 짜증스러울, 능력있고 자각있는 여자. 안전한 '의사들의 도시'에서 살아온 아델리아는 난생 처음 건너온 잉글랜드에서는 '의사'라는 자신을 당당히 내보일 처지가 아니다. 그것 하나만으로 '마녀'로 몰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어디까지나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다. 죽은자들을 위한 의사. 그들을 대신해 말을 해주는 의사.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에요. 나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말하려고 온 겁니다. (124)
난 그 투철한 직업정신과 대비되는 순진함, 그럼에도 반짝이는 영민함에 대번에 아델리아가 좋아졌다. 아마 현대에 태어났어도 그렇게 도도하고 순진했을 것 같다.
줄거리를 대충 말하자면, 잉글랜드의 어느 마을에서 아이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게 유대인의 짓이라 생각해 유대인을 핍박하고, 그때문에 부유한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못 받게되어 슬픈 헨리왕은 저 멀리 시칠리아에서 사건을 조사해줄 '죽은 자를 다루는 의사'를 초청하게 된다. 불행히도 여자의사가 마녀로 몰리던 시절, 뛰어난 재능으로 이름을 날리던 아델리아는 난데없이 잉글랜드로 가게 되고 살인범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동시에 사건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는데...
난 역사는 잘 모른다. 우리 나라 역사도 헷갈려하는 마당에(자랑은 아니지만) 남의 나라 역사가 머리 속에서 제대로 정리되어 있을리 만무하다. 덕분에 옛날 사회 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되살리느라 끙끙대며 책을 읽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가볍게 넘어갔다. 어차피 외국의 '중세'는 비슷비슷한데다 역사적 지식을 그렇게 요구하는 책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자세히 알고 있다면 '역사적' 재미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역사시간이 재미있었던 유일한 순간은 역사 속 야사와 비사를 속삭여주던 순간이었다. 불행히도 내 머리는 역사와 년도는 거부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동화마냥 머리속에 박혀 있다. 해가 지날수록, 어린 시절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단순히 내가 싫어서) 역사에 흥미가 가는 것도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이제 슬슬 나도 뒤를 돌아보게 된 것인가...
중세시대에는 종교가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력에도 큰 비중을 차지했고) 책에서는 종교적인 배경이 종종 등장한다. 수도원장, 수녀들... 은수자라는 듣도보도 못한 존재(은둔해서 수행하는 사람)... 딱히 종교를 가지진 않았지만 그 당시 종교와 권력이 상충하던 시기는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는 편이다. 기독교 관련 강의시간에도 재미있게 들었던 부분이기도 하고. 하지만 종교를 떠나서 이 책 덕분에... 책 끄트머리에서야 겨우 호쾌하게 등장하는( 맨 앞에서도 나오지만 거기선 너무 제멋대로이기만 하니까) 헨리왕에게 관심이 높아졌다. '이 사람'이 '그' 헨리왕이라 이거지.
-매복 기습이라고 아델리아는 생각했다. 성공적이든 아니든, 교활함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행위를 지금 구경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 (511)
헨리왕 말고 이 책에서 가장 매력있는 등장인물은 단순히 내 관점에서, 주인공 아델리아가 아닌 유대인인 시몬이다. 그 시절은 기독교가 성행하고 있었고 힘이 있는 종교였기 때문에(현대도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상당히 핍박받고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탄생한 부당한 대접은 비합리적이지만, 어디 인간의 생이 합리적으로만 흘러가던가. 그것은 그 시대 유대인들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빚이었다. 어느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미개하다, 라는 인종주의도 싫지만 단순히 어느 민족이 예전-까마득한 예전-에 했던 일 때문에 겪는 민족차별은 더 싫다. 현재를 살아라,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오로지 '가르침' 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현재가 과거를 짊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시몬이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데에 단순히 열이 받았다. )
재미있는 책이었다. 아델리아의 다음 행보가 상당히 기대된다. 실은 이미 두번째 권은 읽었지만서도.
-내일이란 건 없다, 그는 그걸 모른단 말인가? 내일이란 것들은 무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오늘, 지금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예의 따위를 신경 쓸 시간이 없다. (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