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써틴
볼프강 홀바인.하이케 홀바인 지음, 이병서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13. 써틴. 처음 이게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소리에 한 번 놀라고 동화치고는 엄청난 두께(어지간한 소설보다 두꺼운!)에 또 한 번 놀랐다. 택배로 도착한 책을 보고 엄마는 '넌 이제 호러소설도 읽냐'고 질린 듯이 말했다. 응? 하며 다시 한 번 표지를 살펴보니 이게 일단은 '동화'라는 걸 모르는 엄마가 착각할만도 했다. 커-다란 보름달 배경에 웅장하지만 으스스한 저택, 잡초가 무성한 정원...거기다 으스한 글씨체의 제목까지.

 

철썩같이 '동화'라고 믿고 있었는데 엄마 말 듣고 표지를 보니 불안이 밀려왔다. 이미 시간은 저녁, 거기에 난 나이와 상관없이 무서운 거라면 질색하는 겁쟁이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조마조마해 하며 책을 펴들었지만 순식간에 '써틴'의 모험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책을 다 읽고나니 내가 써틴을 따라다니며 모험을 한 것마냥 피곤했다. 아니 물론 저녁이라 내 체력이 바닥나서 일수도 있겠지만 안 그래도 두꺼운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나가려니 머리가 어찔어찔했다. 혹시 저녁에 피곤할 때 읽으실 분이 계신다면 저녁을 든든히 먹고 읽으시길 추천하고 싶다...

 

13은 익히 알다싶이 외국에서는 불길한 숫자로 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4'와도 같은 위치인 듯 싶지만 그리 심각하게 신경쓰지 않는 우리와 달리 외국의 13은 유난히 문화적 영향력이 큰 듯 싶다. 영화소재로도 종종 등장하고, 심지어는 컴퓨터 바이러스로도 등장하고. 내가 알기론 예수의 13번째 제자,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이후로 13이 악마의 숫자가 됐다고 하는데 확실한 건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13이라는 숫자가 외국에서 굉장히 불길한 숫자로 통하고 있다는 거다. 분명, 이름으로는 절대 쓰지 않을 그런 숫자로.

 

그런 의미에서 '써틴' (본명 안나 마리아)는 13이라는 숫자에 얽힌 것만 치자면 그 나이또래 중 불행의 최고도를 달린다. 태어난 날짜도 시간도 13, 인생 곳곳에 숨은 13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읽는 사람도.

 

'써틴'은 아버지를 여의고 결국 어머니까지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유언대로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할아버지를 만나러 독일로 가게 된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그녀를 죽이려는 누군가와 마주친 그 순간부터 영문도 모르는 적과 마주하게된다. 어딘가 음침한 할아버지의 집부터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들까지. 차례차례 밀려오는 적과 음모에도 '써틴'은 도망치고 포기하기보다는 맞서싸우는 쪽을 선택한다. 아슬아슬하게 두 세계를 넘나들며 적의 실체를 알아가던 '써틴'. 이 모든 것이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알게되는데...

 

-라고 요약해 봤지만 이 이야기의 모든 것을 담기엔 너무 요약한 듯 싶다. 역시 책은 읽어야 맛이다.

 

이 책의 특이점을 말한다면 뭐니뭐니해도 독특한 구성을 빼놓을 수 없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동화치곤 방대한 양은 둘째치고 중간중간 2단으로 나뉘어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그야말로 동시상영(!) 하는 부분은 두 부분을 한꺼번에 읽어야 할지 혹은 한 쪽을 먼저 읽고 다른 쪽을 읽어야 할지 날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조금 헤갈리게도 했고.

 

'써틴'은 이야기 속에서 집의 탈을 쓴 무언가를 경계로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건너다닌다. 처음 엄마를 잃고 홀로 남아 할아버지를 찾아가려던 연약한 소녀는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길을 자신이 결정해나간다.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는 단순한 호러동화가 아니다. 성장스토리에 영혼을 빼앗긴 듯 살아가는 어른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영혼을 저쪽 세계에 빼앗긴 사람들은 건강하고 능력있고 심지어는 성공까지 했지만 사랑과 우정 같은 따스한 감정은 모조리 잊어버린다. 오로지 성공, 그리고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달릴 뿐이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이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거듭 말한다. 모든 사람 속의 나쁜 부분이 튀어나온 거라고. 감정보다 차가운 이성이, 자신의 이익부터 생각하는 그런 면이 누구에게나 있는거라고. 그래서 '써틴'은 생각한다. 그렇게 수많은 방해를 받고도 그 사람들이 '안됐다'고.

 

이게 아이의 시선이라면, 아이들은 한없이 일에 치여 사는 어른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걸까.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난 '써틴'에 동감했고 그 '성공한 어른들'의 성공만큼은 부러웠다. 슬프게도.

 

여름은 다 지나갔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스릴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동화라고 하지만 판타지 소설의 대가인 작가의 작품인만큼 어른들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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