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본능 - 불, 요리, 그리고 진화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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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왜 맛있는 음식은 다 살찌는 음식일까?"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가 괴로운 이유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을 빼기 위해 생야채를 씹는 것은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리처드 랭엄에 의하면, 인간은 생야채를 씹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진화를 하면서 생야채를 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야채를 씹지 않게 됨으로써 인간은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말합니다. 진화의 기원에 무엇이 있었느냐고 물을 때 기독교인이라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대답했겠지만, 리처드 랭엄은 '태초에 음식이 있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찰스 다윈이 세계를 뒤흔든 저작《종의 기원》을 출간한 이후 어떻게 우리 인간이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직립원인의 출현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전통적인 이론은 '사냥꾼 인간 가설' 혹은 '육식 가설' 이라 불리우는 것으로서 인간이 점점 사냥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육식의 비중을 높였고 육식으로 인한 많은 담백질 섭취가 뇌의 발달을 가져와 현재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 리처드 랭엄은 이 책《요리 본능》을 통해 다른 가설을 내놓았습니다. 기존의 가설로는 인간이 다른 영장류에 비해 치아와 턱이 약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리처드 랭엄은 '화식(火食)가설'을 주장합니다.

기존의 진화론에서 불은 진화를 이룬 후 얻은 업적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랭엄은 음식을 불을 이용해 먹기 시작함으로써 진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익힌 음식의 장점은 그것이 맛있다는 것 외에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음식은 익혀서 먹을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음식에 든 에너지를 소화할 수 있는 양이 더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같은 양의 음식이면 더 많은 에너지를, 적은 음식이라도 같은 에너지를 얻게 됨으로써 인간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익힌 음식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만은 아닙니다. 연구 결과는 침팬지부터 시작해서 곤충들까지도 익힌 음식을 선호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익힌 음식의 장점은 현대의 생식주의자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때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생식을 하면 가장 확실한 것은 체중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 평균적으로 여성은 12킬로그램, 남성은 10킬로그램의 체중감소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체중감소는 현대사회의 미의식에는 부합할 지 모르나, 만성적 에너지 결핍 상태에 해당합니다. 과학자들은 엄격한 생식을 하면 적절한 에너지 공급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생식을 할 경우 인간은 번식 기능이 저하됩니다. 남성의 경우 성 기능이 줄어들었고, 여성의 경우 50퍼센트는 생리가 끊겼고 10퍼센트는 생리 불순을 겪었습니다. 생식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번식 능력의 저하는 진화의 측면에서 볼때 종의 전멸을 의미합니다.

익힌 음식이 날것보다 좋은 이유는 생명체의 삶이 주로 에너지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음식을 불로 익히는 조리가 가져오는 비타민 파괴나 독성이 있는 화합물의 생성이라는 부정적인 변화는 더 많은 열량을 얻을 수 있다는 효과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 조상들이 처음으로 익힌 음식을 먹어 더 많은 열량을 얻었을 때, 그들과 그 후손들은 날것을 먹는 같은 종의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하는 데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 p.112 

인간은 침팬지 등에 비교했을때 입이 작고, 턱이 약하고, 어금니가 작은 등 소화기관이 모든 면에서 왜소합니다. 이런 신체적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진화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익힌 음식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익힌 음식은 더 높은 에너지와 더 빠른 소화속도를 제공함으로써 높은 지능을 가진 두뇌나 작은 창자 등 인간의 몸을 합리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또한 익힌 음식은 식사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여줌으로써 인류에게 여유시간을 제공했습니다. 익힌음식이 제공해준 여유시간은 문화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사회적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현대 사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더 맛있고, 더 부드럽고, 더 높은 열량을 지닌 음식을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렇게 진화해온 인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고운 가루, 더 부드러운 음식, 더 높게 농축된 열량을 지닌 음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익힌 음식을 먹음으로써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데 성공했지만, 현대의 음식문화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합니다. 리처드 랭엄은 우리 조상이 익힌 음식을 선택함으로써 진화에 성공했음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익힌 음식을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개선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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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사진의 심리학 - 사진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마르틴 슈스터 지음, 이모영 옮김 / 갤리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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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인간의 삶을 영구히 변화시켰습니다. 인간을 둘러싼 기술생태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면, 사회와 개인의 존재 양식 자체를 다르게 규정짓게 됩니다. 비타없는 삶은 상상이 안가는 것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사진이 없는 현실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진은 많은 테크놀로지중에서도 인간에게 가장 근접한 것 중 하나입니다. 마르틴 슈스터는 사진이라는 매체와 현상이 심리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사진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은 다른 종류의 지각입니다. 프랑크에브라르가《안경의 에로티시즘》에서 안경이 단순히 사물이 아닌 인간의 확장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사진 역시 인간의 시각적 지각을 확장합니다. 시지각은 경험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만을 빠르게 인식합니다. 인간의 정보 처리 용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은 불가피합니다. 1826년에 최초로 등장한 이후, 사진은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왔습니다. 사진지각은 인간이 시지각으로 인식하지 않은 부분을 인식하게 해 줍니다. 인간은 사진을 가지게 됨으로써 순간을 저장하고,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눈으로 인식하는 방식을 사진이 보완해 줌으로써 사진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사진은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며, 시간을 뛰어넘어 반복해서 회상함으로써 기억을 만들게 됩니다. 카메라는 여행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여행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찍는 대상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 장소를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 사진으로써의 의미를 가집니다. 사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소중해집니다. 사람들이 잘 보지도 않을 결혼사진을 찍는데 공들이는 것도 그 사진이 미래에 가질 가치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시각적 지식을 민주화합니다. 현대사회에선 누구라도 사진을 통해 중요한 이슈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은 지구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험의 지평을 확장시켰습니다. 전쟁과 관련된 르포 사진처럼, 사진은 백마디 말보다 더 즉각적인 반응을 사회에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사진은 연상, 은유, 상징을 통해 의미를 시각화합니다. 사진은 곧 메시지이며, 이러한 광고를 잘 활용한 사람들중에는 독재자들이 있습니다. 독재자들은 사진을 통해 자신을 미화했고 연출했습니다. 인간의 시각적 인지는 학습된 기대감과 보이는 자극의 혼합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독재자를 인식할 때, 독재자 자신보다 사진들을 인식하게 됩니다. 사진은 진짜보다 더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탈근대 기술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측면은 인간과 기계의 직접적 결합과 융합의 심화, 인간 신체의 사이보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변화시켰던 사진의 테크놀로지도 이러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구글 글래스와 같은 기술은 사진의 영향력을 더욱 확장시킬 것입니다. 때문에 미래에는 사진이 말해주는 심리학이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마르틴 슈스터는 심리학의 새로운 영역인 사진 심리학을 소개함으로써 인간 행동과 경험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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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이슈 - 포르노로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야기
몸문화연구소 엮음 / 그린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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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음란물 사용 세계 2위의, 명실상부한 포르노 강국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포르노 세계에 입장할 수 있으며, 포르노가 아니더라도 우리사회의 온갖 매체에 유사 포르노물이 존재합니다. 이런 현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포르노 담론을 이야기하는것은 껄끄럽고 불편한 것으로 다루어졌습니다. 포르노는 일반인들도 쉽게 이야기하기 힘들 뿐 아니라 학자들도 학문적 논의에서 다루기에도 부담스러운 주제였습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논쟁》에서 말하길, 미국사회에서 니거(nigger)란 단어가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다루지 못하는 금기의 영역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히친스의 지적처럼 우리사회에서 포르노, 야동, 망가, 야애니 등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런 영역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포르노 이슈》는 과감하게도 포르노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포르노와 우리 몸의 관계를 진화학과 신경학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왜 인간이, 그중에서도 남성이 포르노를 즐기는지에 대한 이유로 남성이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어하는 자연적인 욕구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자연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많은 섹스파트너를 추구하게끔 심리기제를 진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포르노를 보는 것이 그러한 심리기제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르노 시청에 대한 기본 통념은 섹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 생각이 우리에게 성적 흥분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거울뉴런계에 대한 연구는 이 통념을 뒤집고 있습니다. 포르노 시청은 보는이로 하여금 섹스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섹스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뇌가 포르노에 반응하는 매커니즘은 포르노에 대한 지각이 아니라 포르노 행위 그 자체이며, 뇌의 관점에서는 포르노 시청이 곧 포르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21세기 데카르트적 향유 주체의 세계에는 더 이상 포르노그래피는 없다. 외설도 없다. 모든 것은 취향과 선호, 즐김, 향유일 뿐이다. 포르노 단계를 넘어선 판타지의 세계, 그것이 데카르트적 향유 주체에 대응하는 세계이다. - p.86 

포르노에 대한 연구는 남성이 많은 여성과 섹스하고 싶다는 자연의 심리를 포르노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자연의 욕구는 여성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습니다. 남자가 포르노를 소비하는 양만큼 여자는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를 소비합니다. 포르노가 지닌 대부분의 특징이 남성에 맞춰져 있다보니 여성이 포르노를 덜 보는것일 뿐이지, 남성이 포르노를 원하는 욕구만큼 여성 또한 그런 자극을 욕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여성은 남성들이 보는 포르노를 시시하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여성이 좀더 깊은 차원의 자극을 원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욕망은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여자의 욕망은 남자의 욕망을 대상으로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과 여성이 성을 향유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여성의 몸을 환상 속에서 대상화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포르노는 진짜가 아닌 가짜입니다. 모니터에서 영화『다크나이트』를 본다고 해서 배트맨이 실존하다고 믿을 수 없는 것처럼, 포르노를 본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이성이 실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론 이런 가짜를 선택합니다. 결혼한 사람도 포르노를 봅니다. 때문에 포르노는 가짜 섹스이면서 동시에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실재입니다. 김종갑은 이런 포르노를 과잉섹스라고 부르는데, 진짜 섹스가 커피라면, 가짜 섹스인 포르노는 TOP인 것입니다. 포르노는 실재보다 더한 실재로서 주체에게 다가옵니다. 포르노에 등장하는 지칠 줄 모르는 남성의 성능력, 끊임없이 흥분하는 여성, 온갖 상상력이 총동원된 무제한적인 분야의 페티쉬는 성 그 자체의 근원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러한 포르노의 특징은 극단적으로 순수한 성으로의 여행인 동시에, 지젝이 언급하는 것처럼 너무 가까이 다가서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때문에 포르노를 통한 성의 추구는 영원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으며 추구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포르노를 찾고자 합니다.

한때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세상의 근원』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어떠한 것이 포르노인가, 포르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사회마다 다릅니다. 서윤호는 우리사회의 법이 포르노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지적합니다. 현재 포르노에 관련된 법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음란물이라도 문서, 도화, 필름은 형법 243조를 통해 처벌받는 반면 인터넷 포르노나 음란게임은 정보통신망법이나 게임진흥법에 의해 처벌받습니다. 문제는 같은 내용의 음란물일지라도 형태의 차이로 인해 두배의 형량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포르노에 대한 법률 규정이 중복성이 있고, 형량이 통일되지 않으며, 처벌 기준도 과도하게 중형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포르노와 관련된 법은, 포르노는 섹스에 관련되지만, 섹스보다는 권력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포르노를 많이 접할수록 성적 충동이 더 강해지면서 성폭력이나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성범죄의 진정한 원인을 자칫 호도할 수 있다. 성범죄의 경우 성에 대한 기본 관점이나 가치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지 포르노 자체가 범죄 유발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 p.161 

포르노와 관련된 법이 지닌 문제점들은, 법의 변화가 포르노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김운하가 지적하듯이, 포르노는 테크놀로지입니다. 기술은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지각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포르노 테크놀로지 또한 인간의 성욕과 성적인 상상력, 호기심에 기반한 기술로서 인간과 공진화하고 있습니다. 포르노를 책으로만 접하던 세대와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세대는 인간 자체가 다릅니다. 만약 포르노가 더 발전해 사람과 동일한 촉감을 지니고 성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으며 대화까지 나눌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하는 미래가 온다면, 그 당시의 사회와 개인은 현재와 크게 다를 것입니다. 포르노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 중 하나인 성욕과 관련되어 있는 기술입니다. 때문에 포르노는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이런 포르노의 중요성은 더이상 우리사회가 포르노에 대한 사회적, 학문적 담론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제 우리는 야동의 중심에서, 야동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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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노래를 들어라 - 지구와 생물 그리고 인간의 소리풍경에 대하여
버니 크라우스 지음, 장호연 옮김 / 에이도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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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간에게 음악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며, 사회 속에서 인간의 언어와 행위를 통합시키고 사회적, 종교적 계급을 강화하는 접착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음악으로 한 시대를 이해할 수도 있는데, 공제욱이 지적한 것처럼 일사불란한 동원, 효율적 생활, 근검절약, 강도높은 노동, 희생 감수 등의 원칙에 입각해 전 국민을 군대와 같은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의 논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새마을 노래」였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통한 규율화의 작동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음악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심리치료에도 사용될 정도로 음악이 사람들에게 가지는 힘은 대단합니다.

음악을 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다른 동물들, 심지어는 자연도 노래를 합니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소리에 대한 생물음향학 분야의 연구는 각 동물에 대한 각각의 소리를 녹음하는 방식이였지만, 저자는 자연의 노래를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환경의 소리적 짜임새에 주목하고자 했던 머레이 셰이퍼가 만든 소리풍경이라는 방식으로 자연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리풍경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노래, 생물음의 분석을 통해 동물의 지리적 영역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생물군계 전체의 건강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천을 평가할 때는 오직 사람과 관련된 기준만 적용한다. 학술적인 조사의 목적은 물고기나 새, 조개, 잠자리, 작은 게의 생존환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미역을 감을 수 있는 수준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수생동물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들에게서 생존환경과 먹이 자원을 박탈한 것이다.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p.215 

자연을 소리로 이해하는 방식은 어렵지만,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시각적 정보만으로는 자연의 풍경을 이해하기 힘들며, 야생의 소리풍경은 정밀한 정보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지속 가능한 벌목이 가능한지에 대한 데이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선별적 벌목은 시각적으로는 숲의 모습이 거의 달라지지 않게 보입니다. 그러나 소리풍경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말해줍니다. 겉으로는 자연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풍요로웠던 목초지의 소리는 사라진 것입니다. 인간의 눈이나 카메라 렌즈로 자연을 바라보면 상황을 왜곡할 수 있지만, 소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소리풍경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현재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자연의 현실은 시각적으로 인지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숲은 있지만 생물이 없습니다. 새의 소리도, 곤충의 소리도, 야생동물들의 소리도 극히 희박해진 것입니다. 저자가 녹음한 소리풍경의 절반 이상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되어 다시는 녹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자연의 소리풍경 자체에 무궁무진한 정보가 가득하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에는 우리의 기원과 과거에 관한 비밀들이 들어 있고, 현재의 문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까지 소리풍경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긴꼬리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15초 동안 센 다음 40을 더하면 화씨온도가 된다. 다른 귀뚜라미들도 비슷하게 계산할 수 있는 온도 공식이 있다. - p.75 

생물음을 대신해서 지구를 거의 정복한 음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리입니다. 문제는 이 소리의 상당수가 소음이라는 것입니다. 자동차 경적 소리, 사이렌 소리, 아파트에서 경험할 수 있는 층간소음까지 우리 주변엔 수많은 소음이 존재합니다. 요아힘 에른스트 베렌트는 이런 소음을 가리쳐 음향 쓰레기라고 불렀는데, 우리의 뇌는 이런 소음과 중요한 정보를 지닌 소리를 구별하기 위해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연구자들은 소음과 신호를 분리할 때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수반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소음을 공기오염에 이어 두 번째로 해로운 환경 요소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음악적 음을 분석해보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파동 유형을 이룬다. 이것이 음악적 음과 비음악적 소음의 차이점이다. 음악적 음의 조건은 개별적인 파동이 얼마나 복잡하든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p.44 

자연의 소리풍경을 주파수 그래프로 분석해보면, 자연의 소리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소리가 아니라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은 형태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음악의 기원 역시 이런 자연의 소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동물들이, 그리고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으리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음악이 들려주는 리듬에 새가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생물음이 사라져가고 그것을 인간의 소음이 대체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지구의 소리를, 옥수수가 자라는 소리를, 눈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합니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웹사이트(http://thegreatanimalorchestra.com/)를 통해 자신이 녹음한 소리풍경을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버니 크라우스는 자연계가 집단적으로 들려주는 목소리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음악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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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비를 만났다 - TED 과학자의 800일 추적기 지식여행자 시리즈 2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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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시체인 좀비는, 죽음에 대한 상식을 파괴한다는 독특함 덕분에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조지 로메로의 영화『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좀비물이 만들어졌습니다. 좀비는 전통적으로 부패한 외향과 느린 움직임을 가지고 있지만, 최신 게임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강력한 초인과 같은 모습으로 나오는가 하면, 네크로맨서 소녀에 의해 좀비로 되살아나는 문학작품도 있고, 인간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청년 좀비가 주인공인 영화가 나오는 등 좀비의 모습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작품에 등장하는 좀비는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상징성이 지닌 의미야말로 제작자가 소비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수많은 좀비 중에서도 저자 웨이드 데이비스는 좀비의 기원, 아이티 공화국의 부두교가 만들어낸 좀비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총을 한두발 맞아도 끄떡없고, 다른 사람마저 좀비화하는 전염성을 지닌 좀비의 모습은 문학작품이나 영화, 게임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러한 좀비는 당연히 가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시체인 좀비는 실존했고, 실존하고 있습니다. 클레어비우스 나르시스의 사례가 인상적인데, 그는 공식적으로 1962년에 사망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생존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보통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에 도시전설쯤으로 취급되지만, 나르시스는 미국이 운영하는 신뢰할만한 단체에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나르시스는 1962년에 알베르트 슈바이처 병원에서 사망했고, 미국인 의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했으며, 가족들이 시신을 확인하고 공식 사망증명서를 작성했습니다. 나르시스는 20시간동안 냉장창고에 보관되었다가 그의 고향의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18년 뒤, 나르시스는 살아서 고향에 등장했습니다.

저자 웨이드 데이비스는 이러한 좀비화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티 공화국에서 좀비독약을 찾고자 했습니다. 좀비독약은 의학적인 가치도 굉장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는데, 좀비화의 매커니즘을 이해한다면 마취제에 엄청난 발전을 야기할 수 있을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추적 끝에 좀비 독약의 성분 중 하나는 자연계 내에서 가장 강력한 독성 물질 중 하나인 신경독, 테트로도톡신을 함유하고 있음을 밝혀냅니다. 독약 속에 든 테트로도톡신은 희생자의 대사율을 거의 임상적인 사망 수준까지 떨어뜨립니다. 희생자는 임종을 지켜본 의사들로부터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사실상 산 채로 묻힙니다. 이 과정에서 아마 대부분의 희생자는 영화『어웨이크』처럼 '수술 중 각성'상태로 죽어가며, 일부의 희생자는 다른사람들이 묘를 파내어 꺼내어진뒤 강력한 향정신성 약물을 마시고 방향감각과 기억상실 상태에 빠진 인간, 좀비로 살아가게 됩니다.

인상적인 점은 좀비 독약은 명확한 화학적 매커니즘이 적용되는 반면, 해독제는 화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결국 좀비가 된 인간들, 앞에서 말한 클레어비우스 나르시스의 운명을 궁극적으로 결정지은 것은 가루약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신이었습니다. 나르시스는 아이티의 소작농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산송장의 실체를 믿도록 순응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신념은 가족과 친구들의 증언을 통해 아이티인들의 삶 전반에 강요됩니다. 아이티인들에게 좀비는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말을 못하고 혼자 힘으로 저항하지 못하며 자기 이름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해독제의 효과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신체적인 제약보다는 정신적인 부분, 즉 믿음이야말로 사람을 좀비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좀비들은 저항하지 않는 시민이며, 저항하지 않는 시민은 노예가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믿음을 사용하던 간에 이런 부류의 노예화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아이티에서 좀비라는 존재가 탄생하게 된 것은 부두교의 특징과 아이티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정복자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데려와 아이티에서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식민 농장 소유주들은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잔인한 제도들을 만들었는데, 노예들에게 양철로 만든 재갈을 강제로 물리는가 하면, 힘줄을 잘라 절름발이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두로 낙인찍기, 채찍질, 강간, 살인은 일상적으로 행해졌고, 구리로 된 철사로 입술을 꿰매거나 성기를 절단하는가 하면, 생매장도 일어났습니다. 노예의 항문에 화약을 넣고 폭파시키는 고문은 너무 흔해서 단순한 유머로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프랑스인들의 가혹한 고문과 고된 농장일로 인해 탈주하는 노예들이 증가했고, 이들이 뭉치면서 프랑스 정부에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탈주노예들은 물리적인 저항 뿐만 아니라 독약을 이용한 화학전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라서 프랑스 정부의 정규군도 탈주노예들의 저항을 막지 못했습니다. 결국 1793년에 아이티는 독립했고, 아이티는 흑인 독립 운동의 최전선에 서게 됩니다. 아이티는 독립했지만 군부독재가 등장하면서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워졌고, 아이티인들은 국가의 부실한 체제 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이 인식하기 힘든 내부규율을 지닌 조직이 만들어낸 삶 속에서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부두교가 만나 등장한 좀비는, 공동체 내에서 비우호적인 행동을 하거나 공동체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부두교 사회에서 좀비화는 범죄행위는커녕 오히려 부두교 사회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연합된 조직들의 승인 아래 부과된 사회적 제재인 것이다. - p.310
결국 좀비는 마술도, 마법도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고자 할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사회적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문명사회에서는 법을 통해 사회적 질서를 지키고 그것을 어긴 사람들에게는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부과하지만, 국가의 기틀이 아직 확고히 다져지지 않은 아이티에서는 부족사회의 룰이 중요하며 그것을 어긴 사람들에게는 좀비화라는 형벌이 가해지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종료된 지금도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아이티 좀비들의 모습은 인간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좀비는 비단 아이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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