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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비를 만났다 - TED 과학자의 800일 추적기 ㅣ 지식여행자 시리즈 2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살아 움직이는 시체인 좀비는, 죽음에 대한 상식을 파괴한다는 독특함 덕분에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조지 로메로의 영화『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좀비물이 만들어졌습니다. 좀비는 전통적으로 부패한 외향과 느린 움직임을 가지고 있지만, 최신 게임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강력한 초인과 같은 모습으로 나오는가 하면, 네크로맨서 소녀에 의해 좀비로 되살아나는 문학작품도 있고, 인간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청년 좀비가 주인공인 영화가 나오는 등 좀비의 모습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작품에 등장하는 좀비는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상징성이 지닌 의미야말로 제작자가 소비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수많은 좀비 중에서도 저자 웨이드 데이비스는 좀비의 기원, 아이티 공화국의 부두교가 만들어낸 좀비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총을 한두발 맞아도 끄떡없고, 다른 사람마저 좀비화하는 전염성을 지닌 좀비의 모습은 문학작품이나 영화, 게임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러한 좀비는 당연히 가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시체인 좀비는 실존했고, 실존하고 있습니다. 클레어비우스 나르시스의 사례가 인상적인데, 그는 공식적으로 1962년에 사망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생존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보통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에 도시전설쯤으로 취급되지만, 나르시스는 미국이 운영하는 신뢰할만한 단체에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나르시스는 1962년에 알베르트 슈바이처 병원에서 사망했고, 미국인 의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했으며, 가족들이 시신을 확인하고 공식 사망증명서를 작성했습니다. 나르시스는 20시간동안 냉장창고에 보관되었다가 그의 고향의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18년 뒤, 나르시스는 살아서 고향에 등장했습니다.
저자 웨이드 데이비스는 이러한 좀비화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티 공화국에서 좀비독약을 찾고자 했습니다. 좀비독약은 의학적인 가치도 굉장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는데, 좀비화의 매커니즘을 이해한다면 마취제에 엄청난 발전을 야기할 수 있을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추적 끝에 좀비 독약의 성분 중 하나는 자연계 내에서 가장 강력한 독성 물질 중 하나인 신경독, 테트로도톡신을 함유하고 있음을 밝혀냅니다. 독약 속에 든 테트로도톡신은 희생자의 대사율을 거의 임상적인 사망 수준까지 떨어뜨립니다. 희생자는 임종을 지켜본 의사들로부터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사실상 산 채로 묻힙니다. 이 과정에서 아마 대부분의 희생자는 영화『어웨이크』처럼 '수술 중 각성'상태로 죽어가며, 일부의 희생자는 다른사람들이 묘를 파내어 꺼내어진뒤 강력한 향정신성 약물을 마시고 방향감각과 기억상실 상태에 빠진 인간, 좀비로 살아가게 됩니다.
인상적인 점은 좀비 독약은 명확한 화학적 매커니즘이 적용되는 반면, 해독제는 화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결국 좀비가 된 인간들, 앞에서 말한 클레어비우스 나르시스의 운명을 궁극적으로 결정지은 것은 가루약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신이었습니다. 나르시스는 아이티의 소작농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산송장의 실체를 믿도록 순응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신념은 가족과 친구들의 증언을 통해 아이티인들의 삶 전반에 강요됩니다. 아이티인들에게 좀비는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말을 못하고 혼자 힘으로 저항하지 못하며 자기 이름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해독제의 효과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신체적인 제약보다는 정신적인 부분, 즉 믿음이야말로 사람을 좀비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좀비들은 저항하지 않는 시민이며, 저항하지 않는 시민은 노예가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믿음을 사용하던 간에 이런 부류의 노예화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아이티에서 좀비라는 존재가 탄생하게 된 것은 부두교의 특징과 아이티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정복자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데려와 아이티에서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식민 농장 소유주들은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잔인한 제도들을 만들었는데, 노예들에게 양철로 만든 재갈을 강제로 물리는가 하면, 힘줄을 잘라 절름발이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두로 낙인찍기, 채찍질, 강간, 살인은 일상적으로 행해졌고, 구리로 된 철사로 입술을 꿰매거나 성기를 절단하는가 하면, 생매장도 일어났습니다. 노예의 항문에 화약을 넣고 폭파시키는 고문은 너무 흔해서 단순한 유머로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프랑스인들의 가혹한 고문과 고된 농장일로 인해 탈주하는 노예들이 증가했고, 이들이 뭉치면서 프랑스 정부에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탈주노예들은 물리적인 저항 뿐만 아니라 독약을 이용한 화학전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라서 프랑스 정부의 정규군도 탈주노예들의 저항을 막지 못했습니다. 결국 1793년에 아이티는 독립했고, 아이티는 흑인 독립 운동의 최전선에 서게 됩니다. 아이티는 독립했지만 군부독재가 등장하면서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워졌고, 아이티인들은 국가의 부실한 체제 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이 인식하기 힘든 내부규율을 지닌 조직이 만들어낸 삶 속에서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부두교가 만나 등장한 좀비는, 공동체 내에서 비우호적인 행동을 하거나 공동체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부두교 사회에서 좀비화는 범죄행위는커녕 오히려 부두교 사회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연합된 조직들의 승인 아래 부과된 사회적 제재인 것이다. - p.310
결국 좀비는 마술도, 마법도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고자 할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사회적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문명사회에서는 법을 통해 사회적 질서를 지키고 그것을 어긴 사람들에게는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부과하지만, 국가의 기틀이 아직 확고히 다져지지 않은 아이티에서는 부족사회의 룰이 중요하며 그것을 어긴 사람들에게는 좀비화라는 형벌이 가해지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종료된 지금도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아이티 좀비들의 모습은 인간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좀비는 비단 아이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