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이슈 - 포르노로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야기
몸문화연구소 엮음 / 그린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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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음란물 사용 세계 2위의, 명실상부한 포르노 강국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포르노 세계에 입장할 수 있으며, 포르노가 아니더라도 우리사회의 온갖 매체에 유사 포르노물이 존재합니다. 이런 현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포르노 담론을 이야기하는것은 껄끄럽고 불편한 것으로 다루어졌습니다. 포르노는 일반인들도 쉽게 이야기하기 힘들 뿐 아니라 학자들도 학문적 논의에서 다루기에도 부담스러운 주제였습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논쟁》에서 말하길, 미국사회에서 니거(nigger)란 단어가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다루지 못하는 금기의 영역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히친스의 지적처럼 우리사회에서 포르노, 야동, 망가, 야애니 등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런 영역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포르노 이슈》는 과감하게도 포르노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포르노와 우리 몸의 관계를 진화학과 신경학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왜 인간이, 그중에서도 남성이 포르노를 즐기는지에 대한 이유로 남성이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어하는 자연적인 욕구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자연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많은 섹스파트너를 추구하게끔 심리기제를 진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포르노를 보는 것이 그러한 심리기제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르노 시청에 대한 기본 통념은 섹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 생각이 우리에게 성적 흥분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거울뉴런계에 대한 연구는 이 통념을 뒤집고 있습니다. 포르노 시청은 보는이로 하여금 섹스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섹스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뇌가 포르노에 반응하는 매커니즘은 포르노에 대한 지각이 아니라 포르노 행위 그 자체이며, 뇌의 관점에서는 포르노 시청이 곧 포르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21세기 데카르트적 향유 주체의 세계에는 더 이상 포르노그래피는 없다. 외설도 없다. 모든 것은 취향과 선호, 즐김, 향유일 뿐이다. 포르노 단계를 넘어선 판타지의 세계, 그것이 데카르트적 향유 주체에 대응하는 세계이다. - p.86 

포르노에 대한 연구는 남성이 많은 여성과 섹스하고 싶다는 자연의 심리를 포르노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자연의 욕구는 여성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습니다. 남자가 포르노를 소비하는 양만큼 여자는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를 소비합니다. 포르노가 지닌 대부분의 특징이 남성에 맞춰져 있다보니 여성이 포르노를 덜 보는것일 뿐이지, 남성이 포르노를 원하는 욕구만큼 여성 또한 그런 자극을 욕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여성은 남성들이 보는 포르노를 시시하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여성이 좀더 깊은 차원의 자극을 원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욕망은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여자의 욕망은 남자의 욕망을 대상으로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과 여성이 성을 향유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여성의 몸을 환상 속에서 대상화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포르노는 진짜가 아닌 가짜입니다. 모니터에서 영화『다크나이트』를 본다고 해서 배트맨이 실존하다고 믿을 수 없는 것처럼, 포르노를 본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이성이 실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론 이런 가짜를 선택합니다. 결혼한 사람도 포르노를 봅니다. 때문에 포르노는 가짜 섹스이면서 동시에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실재입니다. 김종갑은 이런 포르노를 과잉섹스라고 부르는데, 진짜 섹스가 커피라면, 가짜 섹스인 포르노는 TOP인 것입니다. 포르노는 실재보다 더한 실재로서 주체에게 다가옵니다. 포르노에 등장하는 지칠 줄 모르는 남성의 성능력, 끊임없이 흥분하는 여성, 온갖 상상력이 총동원된 무제한적인 분야의 페티쉬는 성 그 자체의 근원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러한 포르노의 특징은 극단적으로 순수한 성으로의 여행인 동시에, 지젝이 언급하는 것처럼 너무 가까이 다가서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때문에 포르노를 통한 성의 추구는 영원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으며 추구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포르노를 찾고자 합니다.

한때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세상의 근원』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어떠한 것이 포르노인가, 포르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사회마다 다릅니다. 서윤호는 우리사회의 법이 포르노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지적합니다. 현재 포르노에 관련된 법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음란물이라도 문서, 도화, 필름은 형법 243조를 통해 처벌받는 반면 인터넷 포르노나 음란게임은 정보통신망법이나 게임진흥법에 의해 처벌받습니다. 문제는 같은 내용의 음란물일지라도 형태의 차이로 인해 두배의 형량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포르노에 대한 법률 규정이 중복성이 있고, 형량이 통일되지 않으며, 처벌 기준도 과도하게 중형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포르노와 관련된 법은, 포르노는 섹스에 관련되지만, 섹스보다는 권력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포르노를 많이 접할수록 성적 충동이 더 강해지면서 성폭력이나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성범죄의 진정한 원인을 자칫 호도할 수 있다. 성범죄의 경우 성에 대한 기본 관점이나 가치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지 포르노 자체가 범죄 유발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 p.161 

포르노와 관련된 법이 지닌 문제점들은, 법의 변화가 포르노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김운하가 지적하듯이, 포르노는 테크놀로지입니다. 기술은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지각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포르노 테크놀로지 또한 인간의 성욕과 성적인 상상력, 호기심에 기반한 기술로서 인간과 공진화하고 있습니다. 포르노를 책으로만 접하던 세대와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세대는 인간 자체가 다릅니다. 만약 포르노가 더 발전해 사람과 동일한 촉감을 지니고 성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으며 대화까지 나눌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하는 미래가 온다면, 그 당시의 사회와 개인은 현재와 크게 다를 것입니다. 포르노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 중 하나인 성욕과 관련되어 있는 기술입니다. 때문에 포르노는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이런 포르노의 중요성은 더이상 우리사회가 포르노에 대한 사회적, 학문적 담론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제 우리는 야동의 중심에서, 야동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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