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마크 롤랜즈는 어려서부터 크레이트 데인처럼 큰 개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개가 몹시도 그리웠는데, 첫 직장인 조교수 2년째 무렵 신문광고에서 발견한 '새끼 늑대 판매'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습니다. 이 귀엽고도 파괴적인 존재 '브레닌'은 마크 롤랜즈와 함께 11년을 살았고, 롤랜즈와 언제나 붙어 지냈습니다. 롤랜즈가 럭비를 할때도, 교수가 되어 강의를 할때도, 여행을 다닐때도, 레스토랑에 갈때도 함께였습니다. 브레닌은 젊은 철학자에게 있어서 동생이자 형이였으며,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책에서는 늑대 브레닌과의 따뜻한 일화와 진중한 철학이 번갈아 나옵니다. 하지만 이 연결은 지극히 자연스러운데, 브레닌에서 철학이 시작되고, 철학에서 브레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늑대인 브레닌이 영장류인 마크 롤랜즈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에서, 늑대가 자연에서 살지 않고 사람과 사는 것이 늑대로서 자연스러운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면 그것은 본질과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이것은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나 하이데거로 연결됩니다. 둘 다 사회적 집단을 구성하는 늑대와 영장류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영장류인 우리는 늑대와 다르게 근거, 증거, 정당화, 보장과 같은 개념이 필요하며, 불만이 많을수록 정의가 필요하고 도덕적 동물이 되어야 한다는 차이점을 알아차린다면, 그것은 이마누엘 칸트의 도덕률로 연결됩니다. 브레닌과 마크 롤랜즈가 산책을 하는 시간을 정하거나 놀이방법을 정하는 모습에서 사회계약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문명을 대표하는 영장류와 자연을 대표하는 늑대 중 어느 쪽이 더 야만적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사회계약의 이면을 볼 수도 있습니다.

침팬지 집단을 연구한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프란스 드 발이 지적하듯이, 영장류는 다른 사회적 동물이 걷지 않았던 이중성과 음모로 포장된 길을 걸어왔고, 영장류는 늑대가 결코 꿈도 꾸지 못하고 실행하지도 못할 무자비한 방식으로 동료를 대하며 살아남았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인간의 우월성과 이성의 유일성이라는 관념의 틀을 가져 왔는데, 인간은 계약을 할수 있기 때문에 문명상태가 되었고, 시간의 개념 속에서 삶의 의미를 좇을 수 있기 때문에 우월하며 자유의지를 지닌 유일한 존재는 인간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지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롭게 태어났기 때문에 무엇보다 더 가치있다는 류의 만물의 영장설은 칸트, 사르트르 등의 철학자들을 토대로 현대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은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며 유일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브레닌은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대답하고 있습니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라고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 이외의 존재는 자유롭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레닌이 보여주듯이 선호하는 음식인 치즈를 달라고 요구하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싶은 것을 하는 모습은 과연 동물들은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인간이 언어로 대화하고 글을 쓰는 등의 특징이 우월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브레닌이 달리는 모습 또한 우월함의 표현일 것입니다. 영원토록 행복을 추구하며 집착하기까지 하는 인간에 비해 순간을 살아가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브레닌의 사냥 모습, 자연의 모습은 삶이란 어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장류적 영혼의 유산이 소유할 수 있는 무언가에 삶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면, 늑대는 중요한 것은 소유의 사실이나 정도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인간의 선은 아무런 힘이 없는 자들을 대할 때 순수와 자유로움 그 자체로 나타난다. 가장 극단적이고 너무나 심오하여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진정한 인간성의 도덕적 시험은 힘없는 동물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다른 모든 이들이 무감하게 따라하게 되는 인간의 근본적인 직무유기가 여기에 존재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브레닌의 모습을 보며 인간이 다른 존재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늑대는 우리가 규정하는 인간의 모습속에 숨은 이면, 우리가 주장하는 인간이 아니라 실존하는 인간 자체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가장 명확하고 단순한 특징은 감정을 숭배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이며, 어떤 감정을 좇다 못해 좇기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늑대는 감정이 아닌 실체를 좇습니다. 결국 늑대가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가 가질 수 없는, 혹은 잃어버린 모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늑대보다 영장류에 더 가까우며,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늑대의 모습이 거의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늑대를 멸종시킨 대가는 결국 우리가 치러야 합니다. 젊은 철학자와 자유롭게 살다 간 늑대 브레닌은 우리들에게 하여금 가끔은 수다쟁이 영장류의 속삭임 대신 내면에 있는 과묵한 늑대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머사회 - 솔깃해서 위태로운 소문의 심리학
니콜라스 디폰조 지음, 곽윤정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소문은 우리 곁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커피 자판기 앞, 흡연실, 학교 화장실, 소셜 미디어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소문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소문에 민감한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연예인, 기업인 등이였습니다. 한 예로 민주당 예비 선거 전에 퍼진 '오바마는 이슬람교도다!'라는 소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져갔고, 심지어는 가십잡지에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평범한 사람도 루머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소문은 우리의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때문에 소문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소문은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가 없이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한 상황이 만들어질 때 발생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모든 정보가 진실인지 하나하나 의심하고 알아보려고 하면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만 진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궁금증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설명이 부족한 상황을 매우 싫어하며, 애매모호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내고 평가하고 더 명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 소문을 활용합니다. 설명은 보편적인 인간의 활동이며, 사람은 사건에 대해 인식하고, 주목하며, 해석하려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설명이 시작되며 설명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몇몇 지점에서 소문이 영향을 끼칩니다. 소문은 그 기반이 불명확한 상황이기 때문에, 입증되지 않은 정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미가 불명확하고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을수록 소문은 더 만들어지기 쉽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에 더 주의합니다. 소문 또한 마찬가지로 긍정적 소문보다는 부정적 소문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때문에 소문의 대다수는 부정적인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정보라고 해서 꼭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소문은 사람들에게 불명확한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거나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데 도움이 되는 행동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위협이 도사리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소문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독려하거나 기분이 나아지게끔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사람은 자신 혹은 자신과 동일시하는 집단이 비난을 받거나 명예가 실추됐을 때 기존에 고수했던 믿음, 태도, 사고방식 혹은 정체감 등에 대한 도전에 강하게 방어하려는 감정을 가지게 되며 소문은 이와 같은 위협을 중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때론 타인을 위해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친사회적 동기'라고 합니다. 소문의 공유는 단지 호기심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교류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소문과 비슷한 형태로 뒷담화와 도시괴담이 있습니다. 소문은 결코 확인되지 않지만 뒷담화는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뒷담화가 사적인 영역이라면 소문은 더 큰 맥락에서 집단의 이해나 위협을 다룹니다. 사회심리학자인 찰스 워커는 뒷담화를 비방의 뒷담화와 칭찬의 뒷담화라는 두가지 범주로 분류했는데, 소문과 마찬가지로 뒷담화 또한 비방의 비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뒷담화는 사회적 맥락에서 적절한 행동 방식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비방의 뒷담화는 규탄의 대상으로,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나 평판에 치명적인 해를 끼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괴담 중 하나를 고르자면 역시 '선풍기 사망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소문은 이야기의 한 부분인 반면에 도시괴담은 완전한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소문은 사람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면, 도시괴담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유포됩니다.

사람들이 소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 들여볼 수 있다면, 소문을 만들어낼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기존의 권위가 도전을 받고 있는데, 공식적인 뉴스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소문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의사소통 수단이 됩니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소문을 전달하고 분류하고 이해하려 합니다. 중요한 점은 소문이 사건을 설명하는 원인이나 단서를 제공해 각 개인의 이해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소문은 반복해서 들을수록 더 믿게 됩니다. 소문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소문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에 대해서 정보가 부족하거나 의견이 분분할 때 발생합니다. 때문에 의견 일치를 보거나, 혹은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거나, 진실에 근거한 반박으로 정보를 제공한다면 루머를 멈출 수 있습니다. 소문은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초기에 대처할수록 좋으며, 신뢰받는 제3자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문은 더 빨리 여행하지만 진실만큼 오래 제자리에 머물 수는 없다. - 윌 로저스 

소문은 사람들이 가진 소망, 공포, 분노 등을 담고 있으며 불신은 이러한 소망을 키웁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오바마는 이슬람교도다!'라는 소문에 대해서 오바마는 이렇게 대처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방송의 데이비드 브로디와의 인터뷰에서 소문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명백하게 반박했습니다. 자신과 관련한 소문의 내용을 대중들에게 자세히 공개했고, 강력한 증거를 대며 반박했으며, 대중들에게 도움과 협조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넣었습니다. 오바마는 사람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해 신뢰받는 제3자를 통해 공개적으로 소문에 대처했습니다. 소문은 인간성에 대해 두가지를 말해줍니다. 인간은 불명확함을 경험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불명확함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소문의 강력한 영향력을 인정하고 그 안에 담겨진 사람들의 근심이나 신념, 두려움 등을 읽어냄으로써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과거에 있었던 루머들은 진실에게 그 자리를 넘겨 줬습니다. 소문은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하나의 출발점이였던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권 이펙트 - 인간은 어떻게 사람다울 권리를 찾게 되었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3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박홍규.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토머스 페인이라는 이름은 굉장히 생소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페인은 영국의 해럴드 래스키의 말처럼 '마르크스를 제외하면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논객' 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영국의 애틀랜틱 북스가 선정한 '세계를 뒤흔든 도서' 시리즈 10권 중 하나로, 토머스 페인의《인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인권》과 같이 선정된 책들은《성서》,《국부론》,《종의 기원》,《자본론》등이 있으며, 이 책들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들어봤을 법한 쟁쟁한 책들입니다. 중학교를 중퇴한 코르셋 제조업자인 토머스 페인의 업적에 우리는 아직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페인은 영국, 미국, 프랑스를 넘나들며 활동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다 해고된 뒤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스스로 노예제도 폐지론자라고 선언하고 미국 반 노예협회의 창립위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자 페인은 그의 다른 저서《상식》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1년만에 15만부에서 50만 부 정도 팔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워싱턴은 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모든 군인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독립전쟁 전만 해도 대부분의 아메리카 사람들은 영국 왕을 부정하지도, 독립을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페인은 50페이지밖에 안되는《상식》을 통해 그러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고, 독립과 민주주의가 상식적이라는 획기적인 사상을 확립시킵니다. 페인의《상식》은 독립전쟁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독립선언서」에서도 페인의 주장을 거의 인용함으로써 페인이 미국에 남긴 업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페인은 미국 독립혁명 뿐만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에서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는《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을 쓴 버크와 대립했고, 권력자들을 조롱했으며, 프랑스 혁명 의회에서 활동했습니다. 페인은 자유는 소망으로 획득될 수 없으며, 보복이 아닌 법령에 의한 처벌을 하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루이16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됬는데, 페인은 루이16세가 사형에 처해져서는 안되며, 재판부터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페인은 "군주제의 전례가 지닌 증오와 사악함에서 엄격히 스스로를 지켜야 할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되었다. 프랑스가 왕정을 폐지한 유럽의 첫 번째 나라가 되었듯이, 이제 사형제를 폐지하는 첫 번째 나라 또한 되게 하라."고 말했는데, 이 때문에 장 폴 마라와 같은 혁명영웅들과 입장대립을 했습니다. 루이16세 재판 회부 논쟁 때문에 뤽상부르 감옥에 몇 개월간 유폐되기도 했고, 나폴레옹의 등장을 계기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페인은《인권》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던 교양을 갖춘 대중들에게 인권과 민주주의에서 수반되는 것들에 대한 토론을 제공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자연적 인권을 타고났다는 페인의 인권론은 많은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또한 입헌정치의 원칙들과 사회보장체계를 제안하는, 현대 복지국가의 도안을 설계하고 제시합니다. 또한 여러 국가의 권리와 무역을 위한 국제연합을 제안했는데, 이는 현대의 UN과 같은 개념을 최초로 구상한 것입니다. 냉정한 실용주의와 숭고한 낙관주의를 바탕으로《인권》의 논지를 말한 페인은, 그 논지를 자신의 다른 저서인《이성의 시대》로 마무리합니다. 페인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은 하나의 신, 바로 인간의 평등을 믿으며, 유대교, 가톨릭교, 개신교 등 다른 종교의 신앙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종교가 가진 제도적인 권력과 기적이나 계시와 같은 비과학적인 부분을 이성적으로 비판하고 부정했는데, 이 거침없는 주장은 그 당시로선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주장이였습니다.

세계를 뒤흔든 두개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국제적인 혁명가이자 사상가인 페인은 다른 혁명가들과 다르게 펜으로 자신의 혁명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더 인상적입니다. 당시의 사상가였던 홉스나 존 로크, 흄, 제러미 벤담, 스튜어트 밀 등은 모두 부르주아 출신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중학교를 중퇴했을 뿐인 페인이 남긴 업적은 이질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위대한 업적에 비해 페인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이성의 시대》로 반종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바람에 많은 동료들이 페인에게 등을 돌렸고, 프랑스에서의 수감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자신의 저서를 거의 헐값에 팔았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페인이 죽은 해에 찰스 다윈과 링컨이 태어났는데, 이들은 페인이 시작에 일조했던 논쟁을 완성하고 마무리했습니다.

현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인권과 민주주의가 당연한 '상식'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가 아닌 체제에서 드러나는데, 설령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이 현대의 상식입니다. 하지만 페인 이전에는 그것이 상식이 아니였습니다. 페인은 그러한 개념을 단 50페이지의 글로 바꿔놓았고, 세계를 바꿨습니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권리와 이성 모두가 여러 가지의 직간접적 공격을 받는 이 시기야말로, 토머스 페인의 글은 항상 우리가 의존해야 할 무기로서 존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
에버하르트 뫼비우스 지음, 김라합 옮김 / 보리 / 200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에 '아이들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곳은 아이들의 나라라는 이름답게 아이들의 힘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피터팬》의 이야기일까요? 아니면《나무 공화국》이나《15소년 표류기》의 이야기일까요? 이곳은 동화책이 아닌 현실에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에 있는 벤포스타 공화국입니다. 벤포스타 공화국은 예배당, 구두와 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변전소, 도기 공장, 자동차 정비소, 마구간, 승마장, 축구경기장 등을 가지고 있으며, 국경이 있고, 전용 화폐를 사용합니다. 당연히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입국 비자를 신청해야 합니다. 주민 총회라는 의결 기구도 있으며 대통령, 장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직무를 아이들이 봅니다. 어린이 공화국의 기본 이념은, 이미 만들어진 지금의 사회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고, 극복하고, 개선하는 것입니다.

벤포스타의 역사는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3년에 태어난 헤수스 실바 멘데스는 9살때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 집도 없이 떠도는 아이들을 위해 도시를 건설한 에드워드 조지프 플래니건이라는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소년들의 마을」을 보게 됩니다. 1937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실바의 인생을 바꿔 놨습니다. 플래니건 신부의 감동적인 교육 활동은 실바에게 하여금 신부가 되고 싶게 했고, 어린이들을 위한 도시를 세우고 싶게 했습니다. 그리고 실바는 정말로 사제가 되었고, 자신의 꿈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 왕국의 주민이 될 아이들을 찾는것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플래니건이 찾았던 것처럼, 가난하고 절망에 빠진 아이들은 사회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혹은 곧 버림받을 아이들은 사회학적 통계에서 보면 그대로 방치할 경우 범죄자가 되거나, 부모처럼 빈곤층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부류의 아이들입니다. 실바는 이런 아이들에게 발전의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스페인은 독재자 프랑코가 통치하던 시절이였는데, 독재정권의 영토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등한 공화국이 생겨난 것입니다.

실바신부와 15명의 아이들로 시작된 벤포스타 공화국은, 24개 국가에서 온 2,000여명의 아이들로 규모가 확대됬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일합니다. 다른 사회가 아이들을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 반면, 이곳은 아이들의 자발성과 상상을 믿습니다. 벤포스타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는 물론 어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결정권을 되도록 제약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지식과 기술을 전해 주는 것이지만, 어른들 쪽에서 주는 지식과 기술이 아이들의 학습 욕구와 정확하게 일치해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적대자여서는 안 되고 학생들을 자기에게 굴복시키는 훈육자여서도 안되며, 또한 아이들이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모범 인물이어서도 안됩니다. 실바 신부는 그동안의 교육과정에서는 아이들의 창조성이 싹도 틔워 보지 못한 채 짓밟히고 말살당했지만, 좀더 나은 세상, 좀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아이들의 창조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의 바람직한 목적이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가르쳐주면서 이웃과 함께 살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면, 벤포스타같은 방식으로도 이런 교육이 가능하고 자율적이고 공생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곳은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기존의 교육체계와 다를바 없이 아이들을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해 줍니다. 실제로 벤포스타 학생들이 커서 기존 교육체계에 들어가더라도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으며, 대학에도 들어갑니다. 기존 교육체계와 벤포스타가 다른 점이 있다면, 벤포스타엔 성적표가 없고, 따돌림이 없으며, 공부할 때와 노는 때의 구분이 없습니다. 삶 자체가, 공화국 전체가 자극을 주는 학습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교육의 이론과 실천이 함께 이루어지며 노동과 봉사활동과 예술활동은 아이들을 더 바람직한 시민이 될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런 아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체계와 비슷한 것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영국에 있는 서머힐과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벤포스타는 기존의 교육체계와는 다른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해 줍니다. 어찌보면 아이들의 공화국이라는 벤포스타의 방법은 극단적이기까지 합니다. 기존 체계가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에 체계를 바꿔나가기보다는 아예 아이들과 기존 체계를 분리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벤포스타의 교육방침, 아이들의 자발성과 상상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책임을 맡긴다는 용기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벤포스타의 이런 방식이 교육의 완성형인 것은 아닙니다. 벤포스타를 만든 실바 신부는, 완성된 벤포스타는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완성이란 움직임이 멈추는 것이며 틀 속에 갇히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계속 변화해야 합니다. 우리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계속 자문하고, 계속 변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가야노 도시히토 지음, 임지현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흥미로운 글에 관한걸 본 적이 있습니다. 꽤나 유명한데다 인상깊었던 글이라 구글 검색으로 다시 찾기 쉬웠는데, '살인은 죄인가?' 라는 글이였습니다. 아마도 저 글을 쓴 사람의 독특한 말투 때문에 유명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 글에서 묻고 있는 것처럼,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겁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면, 이 책은 꽤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저 질문은 일본의 TV토론 프로그램에서 한 중학생이 던진 질문이였는데, 당시 패널로 참가한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자 가야노 도시히토는 책을 통해 폭력에 담긴 여러 의미들을 고찰해 나갑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폭력은 안 된다' 혹은 '살인은 안 된다'고 배워 왔습니다. 하지만 폭력은 안 된다고 가르치며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나, 살인은 안 된다고 말하지만 사형은 시키는 모습은 분명 모순적입니다. 폭력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더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며 그것을 좋은 폭력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은, 과연 폭력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합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도덕론을 통해 이러한 물음에 답했는데, 그는 정언명법을 통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에는 무언가 이유를 부여하거나 특정 조건을 달아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칸트는 동등성의 원리에 근거해 사형을 찬성했기 때문에 모순적 상황에 부딪치고 맙니다. 이 모순은 결국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도덕률은 정언명법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근본적으로 도덕은 가언명법으로 성립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나쁘다 라는 입장은 도덕론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존재론적으로는 완전한 오류인 것입니다.

도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폭력 또한 그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며, 나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폭력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폭력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는 한, 우리는 폭력을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으로 구별하는 가치판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폭력의 구별행위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적과 아군의 구별은 정치의 세계를 출현시켰습니다. 칼 슈미트는《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적과 아군의 구별이야말로 정치성의 고유한 지표이며, 인간을 폭력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위험한 존재로서 수용하는 것이 정치적 사고의 전제가 되며, 이러한 현실을 도덕적인 관념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존재에 있어서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도덕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정치의 차원으로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의 차원에서 폭력에 대한 논의는 바로 국가에 대한 논의입니다. 국가는 폭력을 바탕으로 성립하며, 사회 속에서 국가만이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는 '폭력의 권리'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폭력의 권리가 사회 속에 확산되어 있었습니다. 폭력의 권리가 분산되어있는 이러한 상태를 학자들은 자연상태라고 불리웠는데, 이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가혹한 세계였습니다. 때문에 사회계약설이 등장했고, 근대 주권국가의 출현은 폭력의 권리를 일원화했습니다. 근대국가가 출현할 수 있었던 중대한 요인 중 하나는 총화기의 발달이라는 군사 테크놀로지의 변화였는데, 분산되어 있었던 폭력의 권리를 국가가 일원화하기 위해서는 분산되어있던 폭력보다 더 강한 폭력으로 다른 폭력들을 압도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권리를 일원화하고 오직 국가만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폭력의 체제 중에서 가장 바람직합니다. 국가의 폭력은 힘의 논리와는 다른 수단인 법으로 컨트롤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국가는 폭력의 실천을 바탕으로 성립한 이상, 언제라도 억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국가의 폭력이 악행을 일삼거나 남용되는 경우를 우리는 각종 독재정권 등과 같은 역사에서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의식이 계속 필요합니다. 저자는 존재와 폭력의 연관성을 직시하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의 폭력 비판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폭력은 우리 존재의 조건이며, 도덕적으로 부인한다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폭력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다.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내면적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다. - 막스 베버,《직업으로서의 정치》 

우리가 폭력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사는 이상, 폭력을 부정하는 교육방식은 무의미하며 무책임합니다. 폭력을 부정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의롭게 보일지 모르나, 사실상 폭력에 대한 성찰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폭력이라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려고 하면 안 된다는 냉철한 경고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도덕적으로 비관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결국 폭력을 인정함으로서 폭력이 범람하는 사회에서 생존해 나갈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