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이펙트 - 인간은 어떻게 사람다울 권리를 찾게 되었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3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박홍규.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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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페인이라는 이름은 굉장히 생소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페인은 영국의 해럴드 래스키의 말처럼 '마르크스를 제외하면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논객' 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영국의 애틀랜틱 북스가 선정한 '세계를 뒤흔든 도서' 시리즈 10권 중 하나로, 토머스 페인의《인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인권》과 같이 선정된 책들은《성서》,《국부론》,《종의 기원》,《자본론》등이 있으며, 이 책들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들어봤을 법한 쟁쟁한 책들입니다. 중학교를 중퇴한 코르셋 제조업자인 토머스 페인의 업적에 우리는 아직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페인은 영국, 미국, 프랑스를 넘나들며 활동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다 해고된 뒤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스스로 노예제도 폐지론자라고 선언하고 미국 반 노예협회의 창립위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자 페인은 그의 다른 저서《상식》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1년만에 15만부에서 50만 부 정도 팔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워싱턴은 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모든 군인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독립전쟁 전만 해도 대부분의 아메리카 사람들은 영국 왕을 부정하지도, 독립을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페인은 50페이지밖에 안되는《상식》을 통해 그러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고, 독립과 민주주의가 상식적이라는 획기적인 사상을 확립시킵니다. 페인의《상식》은 독립전쟁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독립선언서」에서도 페인의 주장을 거의 인용함으로써 페인이 미국에 남긴 업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페인은 미국 독립혁명 뿐만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에서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는《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을 쓴 버크와 대립했고, 권력자들을 조롱했으며, 프랑스 혁명 의회에서 활동했습니다. 페인은 자유는 소망으로 획득될 수 없으며, 보복이 아닌 법령에 의한 처벌을 하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루이16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됬는데, 페인은 루이16세가 사형에 처해져서는 안되며, 재판부터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페인은 "군주제의 전례가 지닌 증오와 사악함에서 엄격히 스스로를 지켜야 할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되었다. 프랑스가 왕정을 폐지한 유럽의 첫 번째 나라가 되었듯이, 이제 사형제를 폐지하는 첫 번째 나라 또한 되게 하라."고 말했는데, 이 때문에 장 폴 마라와 같은 혁명영웅들과 입장대립을 했습니다. 루이16세 재판 회부 논쟁 때문에 뤽상부르 감옥에 몇 개월간 유폐되기도 했고, 나폴레옹의 등장을 계기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페인은《인권》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던 교양을 갖춘 대중들에게 인권과 민주주의에서 수반되는 것들에 대한 토론을 제공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자연적 인권을 타고났다는 페인의 인권론은 많은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또한 입헌정치의 원칙들과 사회보장체계를 제안하는, 현대 복지국가의 도안을 설계하고 제시합니다. 또한 여러 국가의 권리와 무역을 위한 국제연합을 제안했는데, 이는 현대의 UN과 같은 개념을 최초로 구상한 것입니다. 냉정한 실용주의와 숭고한 낙관주의를 바탕으로《인권》의 논지를 말한 페인은, 그 논지를 자신의 다른 저서인《이성의 시대》로 마무리합니다. 페인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은 하나의 신, 바로 인간의 평등을 믿으며, 유대교, 가톨릭교, 개신교 등 다른 종교의 신앙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종교가 가진 제도적인 권력과 기적이나 계시와 같은 비과학적인 부분을 이성적으로 비판하고 부정했는데, 이 거침없는 주장은 그 당시로선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주장이였습니다.

세계를 뒤흔든 두개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국제적인 혁명가이자 사상가인 페인은 다른 혁명가들과 다르게 펜으로 자신의 혁명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더 인상적입니다. 당시의 사상가였던 홉스나 존 로크, 흄, 제러미 벤담, 스튜어트 밀 등은 모두 부르주아 출신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중학교를 중퇴했을 뿐인 페인이 남긴 업적은 이질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위대한 업적에 비해 페인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이성의 시대》로 반종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바람에 많은 동료들이 페인에게 등을 돌렸고, 프랑스에서의 수감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자신의 저서를 거의 헐값에 팔았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페인이 죽은 해에 찰스 다윈과 링컨이 태어났는데, 이들은 페인이 시작에 일조했던 논쟁을 완성하고 마무리했습니다.

현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인권과 민주주의가 당연한 '상식'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가 아닌 체제에서 드러나는데, 설령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이 현대의 상식입니다. 하지만 페인 이전에는 그것이 상식이 아니였습니다. 페인은 그러한 개념을 단 50페이지의 글로 바꿔놓았고, 세계를 바꿨습니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권리와 이성 모두가 여러 가지의 직간접적 공격을 받는 이 시기야말로, 토머스 페인의 글은 항상 우리가 의존해야 할 무기로서 존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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