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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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에 가난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가난해지고 있는가? 저자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의 경험을 토대로 그 이유를 선진국들, 세계 유수의 대기업이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선진국에 살고, 대기업의 이윤창출만을 옹호하며 다른나라를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구조를 외면하는 사람들 또한 원인임을 암시합니다.

40여년전 만성적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사람은 4억명이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8억 5400만명이 되었습니다. 18억명이 극빈층이 되었고, 전세계인구의 33%는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가난과 기아가 줄어들기는 커녕 더욱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수 없다는 우리네 속담이 옳은 것일까요? 저자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유엔 개발계획 2006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850억 달러씩 10년간 투자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기초적인 교육과 의료, 영양, 식수, 위생 시스템을 보장받을수 있다고 합니다. 대인지뢰 퇴치에 20억, 민주기구 건설에 20억, 핵무기 체제 해체에 70억, 인구증가 방지에 105억, 영양실조와 기아 퇴치에 190억, 빈민퇴치에 200억,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49개국의 부채 탕감에 300억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는 커피 소비를 위해 700억 달러를 쓰고 있으며, 군비 지출액은 7800억달러를 쓰고 있습니다.

부채 해결은 기아를 퇴치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부채를 갚기 위해 공립학교나 병원, 사회보험 등의 사회투자에 소요되야 할 예산이 없어지며 부채의 멍에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짊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왜 잘사는 국가가 49개국의 빚 탕감에 돈을 써야 하느냐는 질문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 이유중 하나는 현재 부채로 고통받는 나라의 대다수는 2차세계대전 당시 식민지 상태의 시스템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며, 독립 이후에도 선진국들의 실정에 의해 독재국가가 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도 한번 빚에 허덕이면 헤어나오기 힘들듯이 국가도 마찬가지여서 또다른 대출을 위해 국영사업 민영화 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더욱 빚을 지게 됩니다. 이러한 빚이 단순히 약한 국가에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97년 외국의 투기자본이 태국을 공격했고, 태국은 엄청난 빚을 졌으며 공장 수천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세계11위의 경제대국 브라질은 국가총생산의 52%에 달하는 외채를 안고 있습니다.

추악한 부채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르완다의 경우 전 정권이 투치족과 후투족 80~100만명을 학살하기 위해 대량의 벌목칼을 포함한 무기들을 프랑스,이집트,중국 등지에서 샀습니다. 이런 집단학살을 위해 프랑스는 끝까지 무기를 공급했고 그 무기값은 약 10억달러라는 외채로 남았습니다. 그후 자신의 부모와 자식을 죽인 무기값을 지불할 도덕적 의무감을 느낄수 없었던 새 정권은 부채 상환 무효를 요청했지만, 세계은행은 르완다를 위협함으로서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에 반해 이라크를 점령한 연합군측은 이라크의 부채는 추악하며 빚을 탕감해줄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다지 영양분이 없는 국가의 외채는 탕감해주길 거부하지만 부자나라가 지배하게 된 국가의 부채는 추악하며 값지 않아도 된다는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부채를 탕감하면 세계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거라는 주장에 저자는 2007년 증권위기때 3조달러가 증발했지만 전세계 금융시장은 버텼는데 가난한 나라의 부채는 3조달러의 1%에 불과한 부채를 탕감해준다고 해서 타격은 오기 힘들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신들은 구호를 받는 가난한 자들을 원하지만, 나는 가난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 빅토르 위고  

정부간의 부채 뿐만 아니라, 농업시장의 독점, 신약, 유전자변형 경쟁 등을 통해 세계의 기아를 확산시키는 거대한 영구적 법인이라 불리는 거대 다국적 기업 또한 예외가 아닐수 없습니다. 500개 기업의 생산은 전세계 생산의 52%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기술, 전자, 첨단기술의 독점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약의 경우 포장 디자인이나 색깔 등만을 바꿔서 출시하는 에버그리닝이라는 형태로 독점권을 무한히 지속시킬수 있습니다. 또한 1975년부터 2000년까지 출시된 1393개의 신약중 선진국 외의 국민들이 주로 걸리는 병에 대한 약은 16가지에 불과한 약의 치우침 현상이 심각합니다. 물론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이윤이 크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네슬레 농업담당 국장 한스 조허는 커피가격 폭락으로 인해 타격을 입은 농가들에 대해서 무한한 연민을 느끼며 그들을 돕고 싶어한다. 그는 가히 현기증이 날 만한 제안을 서슴지 않는다. 현재 지구상에는 커피 생산자가 2500만명쯤 되는데, 이들 중에서 적어도 1000만명은 "기꺼이 사라질 것을 수락해야 한다" 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바꿔 말하자면, 시장을 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조허는 남아도는 인간들에게 '사라질' 것을 권유한다. - p.176

저자는 프랑스 혁명 이후 20세기까지 발달한 과업을 말합니다. 정치적 민주주의, 탈식민지화, 여성차별 완화, 생산력의 발달 은 우리에게 큰 빛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경제전쟁 이후의 부작용은 너무나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고 지적합니다. 세계의 부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더 빠른 속도로 극빈층이 증가하고 있으며 기아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너무나 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고 말합니다. G8 정상회담의 중심주제는 민간투자보장, 특허권의 범보편성 보장 등이며 기아 같은 문제는 의제로 상정되지도 못하고 있지만 G8회담에 반대하는 41개국의 15만명의 사회단체, 시민단체, 종교단체, NGO 가 세미나, 공개 토론 등을 통해 부채와 기아난민, 식수공급 등 가난한 자들을 위한 토론을 하는것을 보며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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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노래 - 그들은 어떻게 대중의 눈과 귀를 막았는가?
민은기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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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역사적으로 내란이나 전쟁, 경제 불안 등의 위기 상황을 배경으로 나타납니다. 위기 상황을 극복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독재를 탄생시키지만 대부분의 경우 독재는 위기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독재는 본질적으로 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위기를 지속시키거나 악화시킵니다. 그래야 독재가 공고화되고 장기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은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김일성, 박정희, 카스트로, 후세인 등 모든 독재자들에게 발견됩니다. 독재는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독재자를 멈출 방법이 존재하지 않으며, 점점 더 심한 독재와 폭정을 일삼게 됩니다. 이런 독재를 유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통제와 탄압만으로 유지되는 독재가 미숙한 독재 체제라면, 음악과 같은 문화적인 부분을 이용하는 경우는 원숙한 독재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재는 대중을 통제하고 탄압하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독재자들은 대중들의 집단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가치와 사상을 제시합니다. 독재자는 단순히 통제와 탄압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 음악을 이용하며, 음악을 통해 독재자는 대중의 생각들을 획일화하고, 집단 정체성을 강화시킵니다.

음악은 사회 속에서 인간의 언어와 행위를 통합시키고 사회적, 종교적 계급을 강화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 에밀 뒤르켐 

나폴레옹은 프로파간다를 전쟁 무기로 사용한 최초의 지배자로, 과거 특권 엘리트층이 즐기던 오페라를 재정비하고 오페라단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해 줍니다. 저작권이나 연금에 관한 칙령을 내려 음악가들을 보호해 주기도 합니다. 스탈린은 예술이 형식은 민족주의, 내용은 사회주의라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해야 한다고 생각해 민속음악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줍니다. 스스로를 예술가이자 통치자라고 불렀던 히틀러는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고대 단순함의 미학이라는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적인 것, 그리고 누구나 이해 가능한 음악이라는 취지 하에 베토벤, 브루크너, 모차르트, 바그너와 같은 음악을 지원합니다. 김일성은 김일성 개인을 찬양하는 송가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박정희는 스스로 작사,작곡했다는 새마을 노래와 나의 조국 등과 같은 애국가요를 보급함으로서 스스로 음악의 공급자가 됩니다. 이런 노래를 보급하기 위해 외제 라디오 수입 규제와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 등을 통해 1970년대 중반 라디오를 가장 주도적이자 영향력있는 매체로 자리잡게 만듭니다. 카스트로는 예술은 혁명 무기중 하나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수많은 예술학교를 설립해 모든 국민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이런 독재자들의 문화적 발전 지원이라는 모습과 동시에 독재자들에 맞지 않는 음악은 철저하게 탄압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스탈린은 대규모 숙청 사업을 실시했고 그 와중에도 쇼스타코비치, 디마 가체프 등 많은 음악가들이 통계로도 잡히지 않는 탄압과 숙청을 겪게 됩니다. 히틀러는 퇴폐 음악 콘서트를 통해 정권에서 권장하지 않은 음악의 기준을 뚜렷이 제시했고, 유대인 음악과 현대음악, 재즈 등이 공격대상이 됩니다. 박정희는 명랑하지 못한 곡들, 실연, 비극, 고독, 불행 등을 주제로 하는 노래인 이른바 대중가요를 퇴폐풍조로 지정하고 금지곡으로 지정함으로서 무대에서 퇴출시키게 됩니다. 마오쩌둥은 악명높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전통 연극과 공연, 음악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반대파들을 철저히 공격합니다. 똑같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노래가 선택받느냐는 그 정권이 요구하는 사상을 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제욱이 지적하듯, 당시 박정희 정권이 필요로 했던 조국 근대화의 논리는 일사불란한 동원, 효율적 생활, 근검절약, 강도높은 노동, 발전된 미래를 위한 희생 감수 등이었다.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어떠한 비효율성도 적극적으로 배제시켜야 했고, 전 국민은 군대와 같은 조직으로 거듭나야 했다. 푸코식으로 표현하자면, 전근대적인 농민적 신체는 근대적으로 규율화된 군인의 신체로 재구성되어야만 했으며, 보이지 않는 권력을 통한 규율화의 작동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음악 이었다. 세상은 온통 무언가를 지시하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 p.247

나폴레옹은 화려한 음악이 그의 통치를 위대하고 숭고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과거 전설적인 전쟁 영웅과 나폴레옹을 동일시하도록 음악을 사용합니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주의, 애국주의와 연관지음으로서 아리안족 중심의 인종우월주의를 주장했고, 마오쩌둥은 예술은 혁명 사업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 병사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고, 김일성은 김일성의 찬양과 우상화가 목적이 되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박정희는 반공과 경제발전이라는 근대화의 가치를 주장했고, 카스트로와 스탈린은 사회주의의 이념을 음악에 담았습니다. 이러한 집단적 가치를 대중이 수용하도록 여론조작과 선전활동 등의 정치공학이 동원됩니다. 그 결과 독재자는 대중의 가치를 대변하는 선구자이자 리더로 부상하게 되고, 대중은 독재자의 지시를 자발적으로 수행합니다. 음악은 독재자의 총과 칼 못지않게 강력한 수단으로서 권력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순수한 예술인 음악이 독재자의 손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독재자가 자신의 지배에 정당성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데 음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독재체제에서 음악을 활용하는 집단적 의식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며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응징과 복수가 이루어집니다. 그 피비린내나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독재자들의 성공적인 음악의 활용은 우리가 역사속에서 정치와 예술, 정치와 음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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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 식량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카길’의 음모를 파헤친다!, 한국판 보론 증보 개정판
브루스터 닌 지음, 안진환 옮김 / 시대의창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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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길Cargill. 1865년에 설립된 이 오래된 기업은 72개국에서 100여가지의 사업을 펼치고 있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입니다. 카길의 모토인 '종자에서 슈퍼마켓까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식탁에 올라올 수 있는 많은 식품들을 생산, 가공, 유통을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포브스에서 '카길은 병아리 한 마리당 보는 손해를 달걀 생산과정에서 농부에게 사료를 공급해 얻는 수익으로 그대로 보충하고 있다.(129쪽)'라고 지적하듯이 마치 우리의 먹거리 시스템 자체가 된듯한 이런 사업 구조는 매우 안정적입니다. 카길의 역사는 현대 농업, 축산업에서 진행된 대규모화, 공장화의 역사와 일맥상통하고 있으며 카길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카길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고 유력한 기업 중 하나입니다. 또한 비공개 기업인 개인기업이기 때문에, 분기별 배당 따위에 연연해 하는 일 없이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회사입니다. 비공개 기업의 특징답게 내부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며 많은 부분에서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그런 은밀성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식음료 생산 부문에서 세계1위를 달리고 있으며, 5대 곡물 메이저 중 한곳입니다. 이런 거대한 규모답게 카길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 또한 막강한데, 스타 트리뷴은 '아마 이 사람은 몇몇 대통령을 제외하고 선거로 선출된 공직자들 대다수보다 공공 정책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윌리엄 피어스는 반평생 카길 사의 내정과 미국의 농업 그리고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과 적국의 외교 정책에 영향을 끼쳤지만, 미네소타 주민은 이 은퇴하는 카길의 부회장에 대해 거의 들은 바가 없다.(85쪽)'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카길의 특징은 그야말로 이 책의 원 제목인 Invisible Giant, 보이지 않는 거인이라 부를만 합니다.

카길은 초국적 기업답게 세계적 규모로 비교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서구 경제학의 고전적인 이데올로기를 추종합니다. 국가나 지역의 식량 자급자족은 비효율적이며, 글로벌 식량 생산품의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데올로기와는 다르게 카길의 모습은 반 시장주의에 가까운 형태로 성장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카길을 지목하며 '농업 자유 시장을 맹렬히 옹호하면서도 절대적일 정도로 정부 노력에 의존하며 곡물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93쪽)'고 말하고 있고, 뉴욕 타임즈는 '보조금 지원 프로그램은 연방 행정부서 중 규모가 가장 크면서도 규제는 가장 적게 받는 부처인 농무부 그리고 그 규제 대상이지만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기업들 사이의 공생관계를 잘 보여준다.(95쪽)'라고 지적합니다. 미국 정부가 지원한 농산물 수출보조금 덕분에 카길을 포함한 곡물 수출 대기업은 엄청난 성장을 거듭합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기업 이념은, 기업이야말로 지혜의 원천이며 시장의 지시 또는 이념에 따라 글로벌 생산과 유통을 결정짓는 최고의 경쟁력 있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기업들은 공적 수입원의 약탈자로서, 자신들은 입안 가득 음식물을 물고는 공적 부채와 사회복지제도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카길의 예에서 보듯이 결국 이들의 성공은 때로 사업적 통찰력보다는 공적 보조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과 더 관련이 있는 셈입니다.

1993년 카길은 네브래스카에 위치한 기존의 육류 가공공장에 1500만 달러를 투자해 새로운 시설로 개조하기로 결정하였다. 혼자서 이 소규모 프로젝트의 자금을 조달하기가 아까웠던 카길은 네브래스카 경제개발부에 155만 달러의 교부금을, 고속도로 관리국에 도로정비 명목으로 30만 4000달러의 지원금을, 그리고 연방 경제개발청에 44만 5000달러의 지원금을 요청했다. 그 걸로도 모자라 지역 주민에게 재원 조달을 목적으로 하는 263만 달러의 세금 인상안을 주민투표로 결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 p.109 

카길의 시장 전략은 농업 기반 그 자체에 있습니다. 농업에 필요한 모든 부분에서 시장 점유율을 차지함으로서 회사에 대한 의존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존성을 키우는 것은 식민 지배자가 식민지 주민의 희생을 대가로 이익을 얻고자 사용한 아주 오래된 식민주의적 관행입니다. 카길이 인도에서 추진한 활동을 살펴보면, 카길이라는 식민화 군대에서 종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떠올려보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식민지 점령군이 되어 지배자의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곳 농민에게 일용 농산품을 생산하도록 지시한 다음, 생산된 일용품을 거두어 가공한 후 그것을 구입할 능력이 있는 식민지 주민에게 다시 판매합니다. 재배업자들은 자신이 받는 가격에 불만이 있어도 표시할 방법이 없으며 생산비 일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협상할 길도 없습니다. 그들은 상품 시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설정한 가격에 판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재배업자들은 제분업자들처럼 공급과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생산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논리에 따라 제분업자들에게 종속됩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태평양의 지배 세력으로 떠올랐고 일본과 한국, 대만은 북미의 군대와 북미 식품에 점령당하면서 미국 식량 침략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의 피해자가 되었다. 식량은 말 그대로 사람들을 굶주려 죽는 것에서 구원하는 직접 원조의 형태로 침투했고, 때로는 재건에 조력을 제공하면서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항해 싸우는 동맹국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형태는, 남아도는 미국 식품을 위한 시장을 창출하는 도구로서 이용된 것이었다. 어떤 경우든 최종 효과는 동일했다. 식습관을 바꾸고 주로 흰빵 형태의 직접 소비를 위한 미국산 밀과 밀가루에 대한 의존성을 증가시키며 미국에서 수입되는 가축 사료인 옥수수와 대두에 기반을 둔 집약적인 가축산업이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 pp.299~300 

글로벌 시장논리에 따라 우리의 밥상에 음식을 제공하는 업체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 7대 곡물 메이저는 현재 5대 곡물 메이저가 되었고, 언젠간 두세개의 기업이 모든 식료품의 생산, 유통, 판매를 담당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세계 식량생산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육류소비의 증가, 바이오에너지 생산,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갈수록 식량부족이 누적되고 있으며, 이는 급격한 곡물가격 상승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2000년에서 2006년 사이에 쌀은 77%, 밀은 59%, 옥수수는 70%, 콩은 53% 가격이 상승했고, 이런 가격상승은 투기자본의 새로운 투자처가 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엔 밀의 가격이 169.8%가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식량 총생산량 가운데 약 12~13%에 해당하는 2억 5000만톤 정도가 국제곡물시장을 통해 거래되는데, 이 거래량의 80%정도를 5대 곡물 메이저가 취급하고 있습니다. 초국적 곡물기업이 대부분의 유통을 담당함으로서 이러한 가격상승, 투기현상을 더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2006년 기준으로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OECD 최하위 수준인 25.3%(26위)입니다. 전체 식량의 75%를 수입해오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식량위기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 이유는 쌀의 자급기반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쌀도 2014년 이후 쌀시장 완전개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금의 석유가격처럼 국제곡물가에 큰 영향을 받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현재 카길은 한국 사료용 곡물시장 점유율이 40%에 달하며, 200만 미터톤 이상의 곡물과 소금, 가죽, 설탕, 커피, 식물성 기름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카길의 역사, 전략을 바라보며 가속화되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밥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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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 -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
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 / 후마니타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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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서울을 방문한 한 프랑스인은 서울의 모습에 큰 의문을 가졌습니다. 한국인들은 왜 아파트에서 사는가? 수없이 많은 대규모의 아파트단지는 프랑스인에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아파트란 씨테라 불리며 관리 부실과 볼품없는 건축미를 지녔고 젊은 사람들과 하위 계급이 사는 도시문제 발생지역으로 인식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한국의 아파트 현상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있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아파트는 서울 주민들에게 별 호응을 얻지 못했으며 중,상류층은 여전히 개인주택을 선호했습니다. 아파트는 서민을 대상으로 한 작은 평수의 주택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였습니다. 게다가 1970년에 일어난 와우아파트 사태는 높은 건물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이 사고는 부실 공사 탓이라기보다는 아파트라는 건물 자체의 결함이 빚어낸 결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후 1971년 완공된 강북의 동부이촌동단지는 아파트단지의 선구적 역할을 합니다. 평수가 80평까지로 늘어나 부유층을 겨냥했고, 아파트 전 세대가 기름보일러식 중앙난방이였기 때문에 개인주택에서 연탄을 사용했던 대다수의 입주자들에게 이 변화는 혁신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동부이촌동단지의 성공을 기점으로 서울 시민이 가지고 있었던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아파트 현상은 유신체제를 지나면서 더욱 활기를 띄게 됩니다. 권위주의 국가는 인구증가를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을 경제발전에 헌신하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려 했습니다. 중간계급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소유와 자산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으며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상호 혜택의 구조 때문에 도시 중산층과 중간계급 일반이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하층의 사회계층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습니다. 대규모 주택의 공급은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발전의 표상이었습니다. 공공 재정의 역할은 미미했지만, 정부 정책에 부응해 주택구입의 재정적 부담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최하위 계층을 포함해 누구든 자신 소유의 주택을 손에 넣으려면 그만한 재산을 동원할 수 있기까지 상당한 물질적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식이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지불능력이 있는 계층, 즉 중,상류층에게 유리한 정책적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런 아파트현상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은 조국근대화를 위해 전 국민이 수락했던 수많은 물질적 희생의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커밍스에 따르면, 이것은 한국 경제 기적을 가능케 했던 중요한 요인인데, 한국의 경제 발전은 엄밀히 말해 기적이 아니라 1960년대 성인 계층의 고된 노동의 결과이자 그들의 희생에 바탕한 것이었고, 그런 모습은 아파트를 통해 형상화됩니다.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구조와 특성, 여기서 비롯된 계층적 차별구조와 획일화된 문화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71년 유신헌법에 이어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이 공포되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국가가 주도한 본격적인 아파트단지 건설은 권위주의 체제를 견고히 하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에서 아파트의 급증은 권위주의 국가 주도의 성장 모델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정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은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되는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은 큰 수익원이다. 당첨된 가구는 중간계급으로 편입되면서 체제의 수혜자이자 동조자가 되는 것이다." - p.102 

1980년대 건물의 높이와 용적률을 제한했던 도시계획법의 변화는 아파트단지 현상을 가속화합니다. 아파트단지는 강북을 넘어서 강남으로까지 확대되었는데, 강남으로의 분산정책에서 핵심은 학교 이전이었습니다. 정부는 중구, 종로구, 성북구 등에 위치하던 명문학교들을 서울 남동부로 이전할 것을 장려했고 여기서 8학군이 생겨나게 됐습니다. 기업과 학교를 강남으로 분산시킨 정부 주도의 적극적 정책은 아파트로의 부유층 이전을 부추겼습니다. 이러한 지역의 물질적 변모는 중산층의 유입과 함께 하층이 밀려나는 사회계층적 변화를 수반하고, 애초의 주민들이 그 희생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소형 아파트를 희생시켜 대형 아파트를 건설함으로써, 하위 계층을 주변 지역으로 내몰고 도심을 상층 계층이 차지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그 대표적 예입니다. 한국의 주택정책은 오랫동안 부유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행되어 왔는데, 이러한 방향은 주택여과과정의 철학에서 영감을 얻게 됩니다. 이런 발달과정은 하위 계층은 부유층이 더 값비싼 최신 주택으로 옮겨 가면서 남기고 간 주택을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해 옮겨 간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960년에서 1990년 사이 농경사회에서 도시산업사회로의 빠른 전환, 군대식 선전구호, 독재정권에 의한 외향적 경제성장 등은 한국적 모델을 특징짓는다. 재분배의 측면보다는 양적 성장 그 자체에 과도하게 집착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개인의 행복이 아닌 사회의 행복이라는 특별한 비전에 접목된 한국적 태도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서울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아파트단지들은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가 재벌과 손을 잡고 급격한 성장을 추구하면서 만들어 낸 한국형 발전모델의 압축적 표상인 셈이다. - p.86 

이러한 대단지 아파트 현상에 대한 가장 흔한 대답은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땅에 과도한 인구라는 논리가 한국의 아파트단지 현상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땅이 좁고 사람이 많다고 해서 고층의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반드시 불가피한 것도 아닌데, 협소한 영토에 인구밀도가 높은 네델란드나 벨기에에서는 도시로의 집중화가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아파트단지를 인구증가와 주거 공간의 조밀화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간주하는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밀도에 대한 수학적 정의에 기초한다고 해도, 아파트단지가 가장 조밀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서울을 예로 들면, 구 단위로 보았을 때 서울의 인구밀도는 주택 구조의 변화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0년대 초 이후, 강북 중심부 아파트의 증가는 인구밀도 상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오히려 그중 일부는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1995년 서울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구에 아파트가 가장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서초구, 강남구, 노원구의 경우 이 지역의 60~80%가 아파트이지만 인구밀도는 오히려 도시 평균에 못 미칩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파트의 아파트의 분포가 도시의 인구밀도를 구별하는 주요인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구밀도 지도는 주택 형태의 분포보다는 지형적 특성에 더 영향을 받습니다.

산업화가 발달하면서 아파트는 서구적인 것, 현대적인 것을 상징하게 됩니다. 이러한 아파트의 현대성이란 1960년대의 단독주택과 20세기 말의 주택을 대표하는 아파트 사이의 비교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는 다르게 한국 아파트의 특별한 구성은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토로했던 한옥의 특징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전통적인 움직임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파트의 공간 구성과 각 장소의 용도를 살펴보면, 외부와 내부의 단절, 한옥과 아파트의 안방의 유사성 등은 아파트가 한옥 구조를 재구성한 것임을 확인시킵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현대 혹은 전통 가옥을 규정하는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실제의 공간 구조와 생활양식이 아니라 한국인들 자신이 그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나 가치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프랑스에서 아파트단지는 젊은 세대의 중간계급이 거주했고 얼마 후 이 계층이 단독주택으로 옮겨가면서 가차 없이 버려졌습니다. 그와 반대로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상위 계층에서 시작되었고 중간계급 일반과 하위 계층으로 확산됐습니다. 이런 차이점은 프랑스에서의 아파트는 기피해야 할 거주공간으로,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좀더 나은 계층이 되기 위한 꿈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서구적 삶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아파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우리의 아파트 구조는 한옥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대단지 아파트의 출현은 자연스러운 사회적 변화였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정부 정책으로 표현되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대단지 아파트는 대규모 도시문제뿐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 공간적 차별화를 낳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차별화를 고착시키는 효과를 가집니다. 이런 게이티드 커뮤니티 현상은 한국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호화 아파트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유지관리 문제가 복잡해질 뿐만 아니라 그 비용이 증가하는 구조를 가집니다. 이런 구조는 대단지 아파트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두가지 답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에서처럼 계속적인 재개발을 해서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한국은 어떤 도시 형태와 사회구조를 발전시키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 기초 위에서 어떤 주택정책과 주거 공간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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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검시제도를 논하다
문국진 지음 / 글로세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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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故 장준하 선생이 타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됬습니다. 당시 장 선생이 산행을 하다가 추락사했고, 정부는 단순 실족사로 발표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 타살 의혹은 꾸준하게 제기되어왔고, 37년 만에 유골 검시가 이뤄지면서 원형 인공물체에 의한 두부골절 흔적, 오른팔과 엉덩이에 의문의 주사자국 등이 보고됬습니다. 이 사건은 검시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조선시대엔 '증수무원록'이란 훌륭한 검시 지침서가 있었고, 과거 시험의 필수과목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초검관은 율관과 의관을 대동해 검시를 했고 그 결과를 상부관에게 제출합니다. 제2검시로 복검관을 두었고 복검관 또한 상부관에게 검시결과를 제출했으며, 초검관과 복검관은 어떤 경우에도 서로 내용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상부관은 초검관과 복검관의 내용이 일치하면 사건을 처리했고, 일치하지 않을 경우 기록에 따르면 6검까지 실시했다고 합니다. 검시하는 방법도 매우 훌륭했는데, 그 예로 은채법은 중독사를 판단할 때 은비녀를 조각수로 깨끗이 씻어 시체의 목구멍 안에 넣고 입을 종이로 오랫동안 밀봉한 뒤 이를 꺼내보아 만일 그 색이 푸르거나 검게 변하였으면 다시 조각수로 비녀를 씻어 봅니다. 그래도 그 빛깔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독약을 먹고 죽은 것으로 판단하는 방법이였습니다. 이에 반해 당시 16세기 유럽에 있어서의 검시는 관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관법은 범죄로 사망한 사건의 경우 범인이라고 추정되는 용의자를 살해된 시체의 옆에 데리고 가 손을 대게 하면 시체의 상처에서 출혈이 야기된다고 판단한 법이였습니다. 만일 출혈이 야기되면 그 용의자는 진범이므로 순순히 자백하지 않으면 고문해서라도 범행을 자백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법의학적 전통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맥이 끊기고 맙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 미국식 의학 교육제도를 도입했는데, 의학을 미국식으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잘못 도입하는 바람에 법의학의 발전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은 전문적인 법의관 검시제도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법의학 과정을 실시하지 않았고, 해방 후 우리나라의 의학교육시찰단이 이 대부분의 의과대학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들은 법의학 교육을 받지 않고 의사가 되었고, 이 의사들이 대륙법계에 따라 검시를 행했기 때문에 검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의학 불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검시제도는 크게 두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영국의 검시관제도와 미국의 ME제도인 전담 검시제와 대륙법계라 부르는 겸임 검시제가 있습니다. 대륙법계는 또 두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한국을 포함해 덴마크, 그리스,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법검시위주제도와 오스트리아, 독일, 일본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행정검시우선제도가 있습니다. 사법검시위주제도는 부검분류 및 채택여부를 경찰 또는 검찰이 하는데 반해 행정검시우선제도는 훈련된 법의전문의사에 의해 시행된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륙법계중에서 사법검시위주제도이기 때문에 검시에 검사, 경찰관, 의사, 판사의 네 직종이 참여합니다. 이 네 직종은 모두 임무가 따로 있기 때문에 책임성이 떨어지고 신속도가 낮아집니다. 또한 초동검사가 경찰관이기 때문에 범죄와 관련된 경우가 아니면 제대로 검시제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검사, 판사, 의사, 경찰관이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검시에 대한 특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전문성 또한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저자는 사회적인 검시제도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고, 전문적 초동 검시인력 양성이 시급하며, 법적, 정치적 관심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최근에는 복지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를 살아 있는 동안의 복지뿐만이 아니라 국민이 사망할 경우 그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을 필수 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는 사망자 개인 및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모든 권리의 적정한 정리 그리고 사법 작용으로의 사회 질서 유지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고 말합니다. 법의학과 검시제도는 인간의 마지막 권리, 안심하고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를 보완하는 것은 죽은 자의 권리를 외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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