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검시제도를 논하다
문국진 지음 / 글로세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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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故 장준하 선생이 타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됬습니다. 당시 장 선생이 산행을 하다가 추락사했고, 정부는 단순 실족사로 발표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 타살 의혹은 꾸준하게 제기되어왔고, 37년 만에 유골 검시가 이뤄지면서 원형 인공물체에 의한 두부골절 흔적, 오른팔과 엉덩이에 의문의 주사자국 등이 보고됬습니다. 이 사건은 검시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조선시대엔 '증수무원록'이란 훌륭한 검시 지침서가 있었고, 과거 시험의 필수과목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초검관은 율관과 의관을 대동해 검시를 했고 그 결과를 상부관에게 제출합니다. 제2검시로 복검관을 두었고 복검관 또한 상부관에게 검시결과를 제출했으며, 초검관과 복검관은 어떤 경우에도 서로 내용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상부관은 초검관과 복검관의 내용이 일치하면 사건을 처리했고, 일치하지 않을 경우 기록에 따르면 6검까지 실시했다고 합니다. 검시하는 방법도 매우 훌륭했는데, 그 예로 은채법은 중독사를 판단할 때 은비녀를 조각수로 깨끗이 씻어 시체의 목구멍 안에 넣고 입을 종이로 오랫동안 밀봉한 뒤 이를 꺼내보아 만일 그 색이 푸르거나 검게 변하였으면 다시 조각수로 비녀를 씻어 봅니다. 그래도 그 빛깔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독약을 먹고 죽은 것으로 판단하는 방법이였습니다. 이에 반해 당시 16세기 유럽에 있어서의 검시는 관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관법은 범죄로 사망한 사건의 경우 범인이라고 추정되는 용의자를 살해된 시체의 옆에 데리고 가 손을 대게 하면 시체의 상처에서 출혈이 야기된다고 판단한 법이였습니다. 만일 출혈이 야기되면 그 용의자는 진범이므로 순순히 자백하지 않으면 고문해서라도 범행을 자백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법의학적 전통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맥이 끊기고 맙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 미국식 의학 교육제도를 도입했는데, 의학을 미국식으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잘못 도입하는 바람에 법의학의 발전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은 전문적인 법의관 검시제도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법의학 과정을 실시하지 않았고, 해방 후 우리나라의 의학교육시찰단이 이 대부분의 의과대학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들은 법의학 교육을 받지 않고 의사가 되었고, 이 의사들이 대륙법계에 따라 검시를 행했기 때문에 검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의학 불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검시제도는 크게 두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영국의 검시관제도와 미국의 ME제도인 전담 검시제와 대륙법계라 부르는 겸임 검시제가 있습니다. 대륙법계는 또 두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한국을 포함해 덴마크, 그리스,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법검시위주제도와 오스트리아, 독일, 일본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행정검시우선제도가 있습니다. 사법검시위주제도는 부검분류 및 채택여부를 경찰 또는 검찰이 하는데 반해 행정검시우선제도는 훈련된 법의전문의사에 의해 시행된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륙법계중에서 사법검시위주제도이기 때문에 검시에 검사, 경찰관, 의사, 판사의 네 직종이 참여합니다. 이 네 직종은 모두 임무가 따로 있기 때문에 책임성이 떨어지고 신속도가 낮아집니다. 또한 초동검사가 경찰관이기 때문에 범죄와 관련된 경우가 아니면 제대로 검시제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검사, 판사, 의사, 경찰관이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검시에 대한 특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전문성 또한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저자는 사회적인 검시제도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고, 전문적 초동 검시인력 양성이 시급하며, 법적, 정치적 관심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최근에는 복지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를 살아 있는 동안의 복지뿐만이 아니라 국민이 사망할 경우 그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을 필수 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는 사망자 개인 및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모든 권리의 적정한 정리 그리고 사법 작용으로의 사회 질서 유지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고 말합니다. 법의학과 검시제도는 인간의 마지막 권리, 안심하고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를 보완하는 것은 죽은 자의 권리를 외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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