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노래 - 그들은 어떻게 대중의 눈과 귀를 막았는가?
민은기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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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역사적으로 내란이나 전쟁, 경제 불안 등의 위기 상황을 배경으로 나타납니다. 위기 상황을 극복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독재를 탄생시키지만 대부분의 경우 독재는 위기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독재는 본질적으로 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위기를 지속시키거나 악화시킵니다. 그래야 독재가 공고화되고 장기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은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김일성, 박정희, 카스트로, 후세인 등 모든 독재자들에게 발견됩니다. 독재는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독재자를 멈출 방법이 존재하지 않으며, 점점 더 심한 독재와 폭정을 일삼게 됩니다. 이런 독재를 유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통제와 탄압만으로 유지되는 독재가 미숙한 독재 체제라면, 음악과 같은 문화적인 부분을 이용하는 경우는 원숙한 독재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재는 대중을 통제하고 탄압하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독재자들은 대중들의 집단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가치와 사상을 제시합니다. 독재자는 단순히 통제와 탄압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 음악을 이용하며, 음악을 통해 독재자는 대중의 생각들을 획일화하고, 집단 정체성을 강화시킵니다.

음악은 사회 속에서 인간의 언어와 행위를 통합시키고 사회적, 종교적 계급을 강화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 에밀 뒤르켐 

나폴레옹은 프로파간다를 전쟁 무기로 사용한 최초의 지배자로, 과거 특권 엘리트층이 즐기던 오페라를 재정비하고 오페라단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해 줍니다. 저작권이나 연금에 관한 칙령을 내려 음악가들을 보호해 주기도 합니다. 스탈린은 예술이 형식은 민족주의, 내용은 사회주의라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해야 한다고 생각해 민속음악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줍니다. 스스로를 예술가이자 통치자라고 불렀던 히틀러는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고대 단순함의 미학이라는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적인 것, 그리고 누구나 이해 가능한 음악이라는 취지 하에 베토벤, 브루크너, 모차르트, 바그너와 같은 음악을 지원합니다. 김일성은 김일성 개인을 찬양하는 송가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박정희는 스스로 작사,작곡했다는 새마을 노래와 나의 조국 등과 같은 애국가요를 보급함으로서 스스로 음악의 공급자가 됩니다. 이런 노래를 보급하기 위해 외제 라디오 수입 규제와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 등을 통해 1970년대 중반 라디오를 가장 주도적이자 영향력있는 매체로 자리잡게 만듭니다. 카스트로는 예술은 혁명 무기중 하나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수많은 예술학교를 설립해 모든 국민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이런 독재자들의 문화적 발전 지원이라는 모습과 동시에 독재자들에 맞지 않는 음악은 철저하게 탄압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스탈린은 대규모 숙청 사업을 실시했고 그 와중에도 쇼스타코비치, 디마 가체프 등 많은 음악가들이 통계로도 잡히지 않는 탄압과 숙청을 겪게 됩니다. 히틀러는 퇴폐 음악 콘서트를 통해 정권에서 권장하지 않은 음악의 기준을 뚜렷이 제시했고, 유대인 음악과 현대음악, 재즈 등이 공격대상이 됩니다. 박정희는 명랑하지 못한 곡들, 실연, 비극, 고독, 불행 등을 주제로 하는 노래인 이른바 대중가요를 퇴폐풍조로 지정하고 금지곡으로 지정함으로서 무대에서 퇴출시키게 됩니다. 마오쩌둥은 악명높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전통 연극과 공연, 음악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반대파들을 철저히 공격합니다. 똑같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노래가 선택받느냐는 그 정권이 요구하는 사상을 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제욱이 지적하듯, 당시 박정희 정권이 필요로 했던 조국 근대화의 논리는 일사불란한 동원, 효율적 생활, 근검절약, 강도높은 노동, 발전된 미래를 위한 희생 감수 등이었다.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어떠한 비효율성도 적극적으로 배제시켜야 했고, 전 국민은 군대와 같은 조직으로 거듭나야 했다. 푸코식으로 표현하자면, 전근대적인 농민적 신체는 근대적으로 규율화된 군인의 신체로 재구성되어야만 했으며, 보이지 않는 권력을 통한 규율화의 작동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음악 이었다. 세상은 온통 무언가를 지시하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 p.247

나폴레옹은 화려한 음악이 그의 통치를 위대하고 숭고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과거 전설적인 전쟁 영웅과 나폴레옹을 동일시하도록 음악을 사용합니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주의, 애국주의와 연관지음으로서 아리안족 중심의 인종우월주의를 주장했고, 마오쩌둥은 예술은 혁명 사업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 병사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고, 김일성은 김일성의 찬양과 우상화가 목적이 되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박정희는 반공과 경제발전이라는 근대화의 가치를 주장했고, 카스트로와 스탈린은 사회주의의 이념을 음악에 담았습니다. 이러한 집단적 가치를 대중이 수용하도록 여론조작과 선전활동 등의 정치공학이 동원됩니다. 그 결과 독재자는 대중의 가치를 대변하는 선구자이자 리더로 부상하게 되고, 대중은 독재자의 지시를 자발적으로 수행합니다. 음악은 독재자의 총과 칼 못지않게 강력한 수단으로서 권력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순수한 예술인 음악이 독재자의 손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독재자가 자신의 지배에 정당성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데 음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독재체제에서 음악을 활용하는 집단적 의식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며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응징과 복수가 이루어집니다. 그 피비린내나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독재자들의 성공적인 음악의 활용은 우리가 역사속에서 정치와 예술, 정치와 음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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